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 2

D-29
@늦깎이 반갑습니다! 전혀 늦지 않으셨습니다! 시의 리듬 물결에 그냥 맡기시면서 읽으시면 됩니다:-)
@borumis 원문까지 올려주시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orumis Les Hiboux 원문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차운과 병렬운. 그리고 소네sonnet에서 한 행. 음절 수 헤아리기가 쉽지 않은데, 한 행 10음절과 8음절의 교차까지 고려해서 읽으니, 더 음악적으로 느껴집니다.
<부엉이들> 불어 낭독으로 들어봅시다. https://youtu.be/fBRdwYAiOjU?feature=shared
우왓~ 감사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텍스트가 나와 있는 시를 읽는 것 같지만, 발음을 따라가다가도 어디를 읽는지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tumult와 mouvement이란 단어의 발음도 들어보네요~
그의 고뇌가 막심하면, 나는 연기를 뿜지요. (중략) 그의 넋을 얼싸안아 흔들어주지요. 불타는 내 입에서 피어올라 한들거리는 파란 그물 속에.
악의 꽃 137p, 68번 시 <파이프>,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68번 시 '파이프'의에 담긴 목소리가 독특합니다. 생명이 없는 사물인 '파이프'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주는 목소리라는 점에서요... 흥미롭기도 하구요. 첫 번째 행의 '어느 작가'란 보들레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러게요.. 전 이 시를 읽고서 마그리트 그림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문장이 생각났어요. 그 그림에 담긴 metalanguage개념처럼 이 시 쪼한 이것은 시인의 파이프에 대한 노래가 아닌 파이프가 시인을 노래한 화자와 대상을 뒤집은 느낌이 들어요.
70번째 시 <무덤>.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시입니다. '정결한 별들이 무거워지는 눈을 감고, 거미가 줄을 치고, 독사가 새끼를 낳는 시간.' 이리떼와 마녀들의 울음, 희롱, 어두운 음모의 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무덤가의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오래된 폐허의 잔해', '그대'의 죽음. 옛 세계뿐만 아니라 '그대'도 소멸됩니다. 거미가 줄을 치며 자신의 세계를 건설하고, 독사는 새 생명을 낳습니다. 생성과 소멸이 함께 일어납니다. 개개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자연의 흐름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무한으로 이어집니다. '정결한 별들이 무거워지는 눈을 감고'는 별의 소멸을 뜻하는 것일까요?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세상은 살아있는 생명들에 의해 여전히 떠들썩하게 굴러갑니다. 기독교에서 죽음은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어느 착한 기독교도가 자비심으로' 그대의 몸을 묻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종교가 밀려난 시대,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를 믿는 시대에는 영원한 안식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칭찬받던 그대'가 죽어서는 세상 굴러가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느라 편히 쉬지 못하는 벌을 받는 것일까요?
그러게요. 기독교에서는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지만 실제로 죽음 후 맞이하는 것은 이런 소란스럽고 탐욕스러운 일상이 여전히 진행되며 비밀스러운 평안을 방해하네요. 마치 그런 시도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63번째 시 <유령>은 싸늘함, 섬뜩함이 느껴지는, 감각적인 시입니다. '유령'은 권태로 가득해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린 삶, 목숨은 붙어있지만 죽은 듯이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묘혈의 둘레를 기어다니는 뱀'처럼 죽음 가까이에 있는 것. '희붐한 아침이 올 때면, 너는 내 빈자리를 볼 터인데, 저녁까지 그 자리 싸늘하리라.' 날이 밝으면 유령은 자신의 자리를 비우고 오늘을 살지 않습니다. '너의 목숨과 너의 젊음에, 나는, 나는 공포로 군림하리라.' 유령이 살아있는 '너의 목숨과 너의 젊음'을 시샘하는 걸까요? 또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기운, 권태의 기운을 퍼뜨린다는 뜻일까요? 또는 유한한 생명인 '너' 역시 죽음과 노화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일까요? 제국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시각이라는 @ICE9 님의 해석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4/8일-4/14일까지는 76번 우울(나는 천년을..)부터 100번. (당신이 시샘하던..)까지 읽으시면 됩니다. 특히, 89번. 백조 Le Cygne는, <악의 꽃>에서 단연 가장 탁월한 시이자 가장 중요한 시 1편으로 제가 생각하는데, 여러 비평들도 검색해보면. 역시 <백조>를 중요하고 탁월한 시로 선정하고 있으니. 깊이 읽으시면 시집 <악의 꽃>을 관통하는 주제와 수사법. 시적 태도를 간파하실 수 있으실 듯 합니다. @숨쉬는초록 @borumis @ICE9 @계피s @늦깎이 모두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어렵기만 했던 보들레르의 시들이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고 감상하는 재미에 들기 시작합니다. 저는 선생님들께서 올려 주신 글들 읽는 것도 벅차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겠습니다. 귀한 글들 감사합니다.
백조 전에 나온 <어느 빨강 머리 거지 아이에게>를 읽으면서 시의 초반에서는 소위 male gaze라고 하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관음적인 관점이 두드러지는데요. 거지 아이의 몸을 훑어보면서 그 아이를 소유 및 매매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부유한 남성들의 시선에 맞서 음식쓰레기를 줏어먹는 거의 야생적인 움직임이 인간을 물질로 취급하는 도시와 자본주의에 대한 외롭고 힘겨운 저항같아 보입니다.
이 시를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고민하는데 borumis님의 감상을 읽고 다시 읽어봅니다^^ ‘근대’, ‘도시’라는 조건이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적응해가는 도시인들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인간의 본성, 토착/집단 문화에 급히 익숙해져온 인간은 도시라는 비교적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도록 강하게 요구받게된 상황 같아요. 이 과정에서 인간은 기존의 삶의 조건과 연결고리를 영영 잃어버리게 된 것 같구요.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은 과연 순수한(?) 자연일까 생각해보다가, 반대로 근대 도시는 인간에게 또 다른 새로운 ‘자연’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가 시골의 단독주택/한옥을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이제 도시는 인위적(문화적)인 의미에서 인간에게 ‘자연’이 되어야하는 상황을 뒤에도 나오는 ‘파리 풍경’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고요.
네 저는 도시화와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이런 소외계층의 여자들이 인간으로서 대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물처럼 부유층의 남자들에게 소비되거나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시선에 의해 겁탈되듯 관찰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쓰레기를 주워먹는 모습에서 이렇게라도 살아남겠다는 인간의 긍지와 동시에 마치 쓰레기 취급당하는 인간성의 몰락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시였어요.
말씀해주신 '시선'이란 부분이 저도 요즈음 이따금씩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일임에도, 사회적인 시선을 나의 것마냥 내재화하여 (무의식적일지라도) 타인에게 되돌리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저도 많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이른바 사회적 편견이 저를 통해 타인의 외모나 상황을 판단하거나 평가해버리는 경우처럼요. 피부색 혹은 체형과 같은 문제, 그리고 말씀하신 사회적 계급 혹은 젠더의 문제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무심한 시선이 (의도치 않게) 한편으로는 타인을 불편하게 하거나, 심지어는 공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시의 감상과는 또 별개로 '나의 시선은 안그런가?'라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80번째 시 <백조>를 읽으니 보들레르의 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는 빅토르 위고에게 전하는 시인데, <악의 꽃> 2판에 포함되어 186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그 당시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3세에게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 영국령 건지 섬으로 망명을 간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시는 '안드로마케여, 나는 그대를 생각한다!'로 시작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고,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피루스의 포로이자 첩이 되어 그리스로 끌려갑니다. 빅토르 위고도, 안드로마케도 조국을 잃어버린 슬픔과 고통을 겪었지요. 안드로마케는 빅토르 위고를 나타내는 알레고리입니다. 여기서 화자는 파리가 변했다고 말하며 '옛 파리'를 떠올립니다. 화자는 파리에서 추방되진 않았으나 1850년대 파리 개조사업으로 파리가 변해버려 '옛 파리'에서 추방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옛 파리'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죠. 안드로마케와 백조는 '그때 그곳'에서 추방된 화자와 빅토르 위고를 나타내는 알레고리로 쓰입니다. 화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의 야자수 숲을 찾고 있던' '흑인 여자'를, '누구라도 다시는,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을!', '어느 섬에 잊힌 채 버려진 뱃사람들을, 포로들을, 패배자들을! ....... 또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이 시에는 '나는 생각한다, ~를'이라는 시구가 네 번 나옵니다. 화자 자신만의 개인적인 상실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의 경험을 한 타인을 생각합니다. '그때 그곳'에서 추방되어 '그때 그곳'을 잃어버린 경험을 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추방당'하고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고통은 화자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인간 존재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경험인 것이죠. 알레고리는 화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인간 존재의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합니다. 추방, 상실로 인한 고통은 '고뇌', '눈물', '이 불행한 짐승', '빈 무덤 곁에서 넋을 잃고 고개를 숙인 그대', '고뇌의 젖을 빠는 사람', '꽃처럼 시들어가는 말라빠진 고아'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고통에 짓눌리기만 하는 건 아닌가봅니다. '끝 모를 장엄함', '기개 높은' 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깃들어있는 숭고함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러한 상실을 해결하는 화자의 방식은 과거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대로 살려내는 것일까요? '파리는 변한다! 그러나 내 우울 속에선 어느 것 하나 움직이는 것이 없구나!' '저 진을 쳤던 바라크들, 설 깎은 대들보와 기둥들, 잡초들, 웅덩이의 물때 올라 퍼레진 육중한 돌덩이들, 유리창에 어지럽게 번쩍이던 골동품들을 이제는 모두 내 마음속에서만 볼 수 있다.'
<백조>에 대해 써주신 감상이 좋아서 출근할 때 또 읽어봅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이 겪은 상실의 트라우마가 있을 듯합니다. 빅토르 위고도 유배당하는 수모를 겪었네요. 보들레르가 위고에게 전하는 위로의 마음이었을까요? 갑자기 위고와 보들레르의 관계도 궁금해집니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사이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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