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 2

D-29
안녕하세요? 저는 시와 문학평론을 쓰는 송승환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믐'이란 곳을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함께 책 읽는 것이 매력적이어서 저도, 첫, 그믐, 모임지기가 되었습니다. 부족한 점 많겠지만. 여러분의 도움과 적극적인 참여로 즐거운 순간들을 발명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에 황현산 선생님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된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난다, 2023)는 2번에 나눠서 아주 천천히 읽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2번의 '그믐'이 되도록 8번에 걸쳐서 천천히, 깊이, 읽고자 합니다. 제 경우, 정기수 번역본, 윤영애 번역본, 김붕구 번역본 등으로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여러 번 읽어봤는데, 미세하거나 큰 차이가 있는 시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오래 기다렸던 황현산 선생님의 완역본. 천천히, 깊이, 읽고자 합니다. 『악의 꽃』 시즌 1. 끝나고 『악의 꽃』시즌 2. 는 4월 1일부터 시작합니다. 4/1-4/7일까지는 61번 시 <식민지 태생의 한 귀부인에게>>부터 75번째 시 <우울>까지 읽으시고 좋았던 시 추천, 그 시의 느낌, 궁금한 점을 자유롭게 올리시고 덧글도 서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저도 올리면서 소통하겠습니다. 저의 인사글에 댓글로,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가능하신 분은 간단한 자기소개^^;;도 해주시면 더 친근한 공간이 될 듯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승환 드림.
기쁜 마음으로 시즌2 신청합니다!^^ 시 읽기 한 다음 황현산 교수님의 <황현산 전위와 고전>이란 책도 읽어보고 싶어 구매했습니다~
@ICE9 반갑습니다! 다시. 뵙게 되어서 저도 기쁩니다! 곧 뵙겠습니다~^^
시즌1 부분을 안 읽었는데 시즌2에 도중에 참여해도 될까요? 보들레르의 시 꼭 읽어보고 싶긴 했는데
아, 그리고 난다 출판사의 책으로 꼭 읽어야하나요?
지금 보니 완역이군요. 1부를 놓쳤고 다 못 따라가도 찬찬히 제가 갖고 있는 불어 원문과 비교해보며 읽어보겠습니다.
@borumis 안녕하세요? 천천히 읽는 모임이니. 함께 읽어가시면 됩니다. 불어 원서도 읽으시는 분이시니. 더욱 반갑습니다!
@borumis 황현산 번역본. 난다. 완역이고. 문학과지성사. 윤영애 번역과 다른 번역이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62. MOESTA ET ERRABUNDA에서 이 시에서 처음 이름이 나오는 듯한 (아닐수도 있지만) 여성의 이름 아가트인데요. 다른 곳에서 나오는 여성들은 이름이 없는 대신 다른 외적인 묘사가 있는 대신 아가트는 '슬픈 마음'에 대한 언급을 빼고는 외적인 묘사가 없어요. 즉, 은밀한 순결한 정신적인 어떤 이상 또는 슬프지만 숭고한 마음을 나타낸 듯 합니다. 그리고 지옥이나 더러운 지상에 대한 다른 시들과 달리 이 시는 바다, 낙원, 창공, 기쁨 등을 노래하는 시여서 인상적이군요.
AGATHE의 그리스어 어원도 선하고 고결하고 지조 있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앞의 식민지 태생의 귀부인이나 뒤에 63. 유령에서 나오는 갈색여인과는 대조적으로 이름과 마음만 있고 육체적 실체가 없는 아가트는 실제 여성이 아닌 어떤 정신적 이상이 아닐까 하네요.
그런데 저는 순결한 아가트보다는 63번의 갈색여인이나 65번의 달의 슬픔에서 나온 좀 더 육감적이고 매혹적인 시들이 더 맘에 드네요. 참 파이프 시에서 나온 아비시니아나 카프라리아가 나오는데 카프라리아의 Kaffir는 현재 '야만인'같은 모욕적인 속어로 쓰이고 있어서 되도록 안 쓰는 게 좋다고 하네요. 아마 진갈색 파이프의 모습을 담기 위해 쓴 직유법같네요.
73번 시의 다나이데스는 신화에 의하면 다나오스의 딸 50명들을 통칭하는데 아버지 명령에 따라 신혼 첫날밤 아이깁토스의 아들 50명 (참 많이들도 낳았지요?)들을 한 명 빼고 다 죽여서 그 벌로 지옥에서 계속 구멍이 송송 뚫린 물통을 퍼붓는다네요. 열받을 때 술마시면 안되는데...^^;; 직장에서 열받으면 꼭 술을 마시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 시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증오는 술집 구석의 취객, 술에서 갈증이 마냥 새로 태어나 레르나의 히드라처럼 새끼를 치는 것만 같다. - 그러나 술꾼들은 다행히 정복자를 알아 모시지만, 증오 앞에 떨어진 애처로운 운명은 결코 탁자 아래 쓰러져 잠들 수도 없다는 것.
아침 출근 버스와 지하철에 꽉 끼어서 시 한편 겨우 읽었습니다^^;; 62번 [서글프고 방황하는]에서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화자의 모습이 담긴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화자의 '현실'은 '더러운 도시'/'검은 대양'/'진창'의 이미지와 닿아있는 듯하구요, 이 현실의 속성으로 '열차'와 '쾌속 범선'이 제시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속성들은 근대/속도/이성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파리 구 시가지를 도시 정비하면서 쭉쭉 뻗은 도로와 하수시설을 정비한 시기의 공기를 담고 있는 듯 여겨졌구요. 화자가 바라보는 '이상'은 시에서 '향기로운 낙원'/'초록빛 낙원'/'순결한 낙원' 등의 표현으로 집약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낙원'은 손에 닿지 않는 머나먼 곳에 있을 뿐이구요. 이 손에 닿지 않는 '낙원'의 이미지가 '초록빛'으로 빛나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네요. 저는 여기서 <위대한 개츠비>의 바다 건너 있는 데이지 저택의 '초록색 불빛'을 떠올리기도 했고, 영화 <Shape of Water>의 포스터도 생각났습니다. 강렬한 빨간색 드레스와 빨간색 신발을 신었던 여인이 물 속에서 괴물과 포옹하고 있는 (다소 암울한) 청록색의 물빛을 떠올렸습니다. 이 '초록빛'이 화자가 앞에서 언급한 현실, '더러운 도시'와 '향기로운 낙원'사이의 간극을 가득 메우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 '초록색'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상 혹은 사랑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었나 떠올려보면서요. 그래서 이 '초록빛 낙원'이라는 표현이 어느 순간 생생히 다가온 느낌이었습니다.
- 그러나 천진난만한 사랑의 초록빛 낙원은, 은밀한 기쁨 가득한 순결한 낙원은, 벌써 인도보다, 중국보다 더 멀어졌는가?
악의 꽃 131p, 62.서글프고 방황하는,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희붐한 아침이 올 때면, 너는 내 빈자리를 볼 터인데, 저녁까지 그 자리 싸늘하리라. 남들이 애정으로 휘어잡듯이, 너의 목숨과 너의 젊음에, 나는, 나는 공포로 군림하리라.
악의 꽃 132p, '유령',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아 저도 이 부분 참 좋았어요.
63. '유령'이란 시에서는 '유령'이란 제목과 마지막 문장의 '공포'라는 시어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사람에게 '공포'를 주는 대상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공포'란 '인간의 인식 능력 내에서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가 싶습니다. 좀 더 간단히 말해, 우리가 모르는 대상,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대상에 대해서요... 이 시에서도 화자가 '공포'로 군림할 것이라는 표현은 '너'의 통제 밖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구요. '너'의 목숨과 젊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화자인 '나'는 갖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합니다. 보들레르의 시 여러 편에서는 '이교도' 혹은 '이민족' 여인이 종종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시에서도 '갈색 여인'이 등장하네요. '갈색 여인'은 아프리카인처럼 '토착적'이고 '원시적'인 혹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대상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마지막 시행의 이 '공포'는 어쩌면 식민주의적/남성적/정복적 문명이 가져올 암울한 운명을 암시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생각해보면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이미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사탕수수 농장의 노에로 아이티로 데려와 지배한 역사도 떠오릅니다.
오늘부터 참여해도 괜찮을지요.
그럼요. 아직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어요~
안녕하세요. 시 읽기에 참여합니다. 65번 <달의 슬픔>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1. 햇빛이 사라진 저녁은 달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시간이지만, 달은 '죽어갈 듯 길고 긴 기절'에 빠지고 '꿈'을 꾸고 '환영'을 봅니다. 날이 밝으면 변함없이 뜨겁게 이글거리는 해와 달리, 달은 매달 사위어갑니다. 달의 눈물도 곧 말라버리겠지요. 그런데도 그 달이 흘린 눈물을 시인은 손바닥에 받아 제 가슴에 간직하려 합니다. 달이 사위어가는 걸 어찌할 수 없으니 달의 눈물이라도 간직하려는 걸까요? '죽어갈 듯'한 달이 느끼는 슬픔, 그 달을 향해 시인이 느끼는 슬픔을 간직하고 싶은 걸까요? 사라지는 것(달, 달의 눈물)을 언젠가는 사라질 육신을 지닌 시인의 사라질 기억 속에 간직한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사라지는 것, 죽어가는 것, 영원하지 않은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려는 시인의 간절한 몸짓에서 슬픔과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느낍니다.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요. 어느새 성장해 달라진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랜만에 들여다본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은 이런 적이 있었나 싶게 낯설게 느껴집니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마음속에 새기고 싶어 가끔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하지만 정신없이 일상을 살아가느라 마음속에 담아둔 그 때의 아이 얼굴을 곧 잊어버리겠지요. 2. 모두 잠들고 시인 혼자 깨어있는 저녁은 달과 마주하는 고요한 시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달의 슬픔, 달의 눈물)을 시인이 볼 수있는 시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달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파리한 눈물을 오목한 그 손바닥에 받아, 해의 눈 못 미치는 제 가슴에 간직한다.' 저는 이 문장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시선을 지녀서, 사위어가는 것(달, 달의 눈물)을 가슴속에 간직하려는 경건한 마음이 있어서 시인은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서글프고 방황하는>에서 그린 것처럼)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시선을 갖고 싶습니다. 사라지는 아름다운 것들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삶의 고통과 버거움을 조금은 잊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3. '때로는 한가롭고 나른하다못해, 이 지구에, 슬그머니 눈물 한 방울 흘려보내면'. 달이 권태로워서 일부러 눈물을 흘려보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 시집의 첫 번째 시 <독자에게>에서 시인은 '권태'에 대해 시인 자신도 알고 독자도 안다고, 그 정도로 권태가 세상에 퍼져 있다고 말합니다. <달의 슬픔>에서는 그 권태가 '더 게으르게', '얼빠진', '한가롭고 나른하다못해'로 표현됩니다. 달이 권태로워서 일부러 흘려보낸 눈물을 시인이 소중히 간직하는 것은 달에게서 시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까요? 죽어갈 듯하면서 권태로움을 느낀다는 점이 비슷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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