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한국에서는 창피하고 허용되지도 않는 이상하고 기묘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도 노벨문학상이 많이 나왔나?
노르웨이의 숲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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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이성에 대한 관심이 줄지 않는 것은
변태 같은 남자 작가가 없는 게 아니다.
좀 있다.
그게 나이 들수록 더 한다.
여자는 대개 반대인데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더 여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지고 특히
자기 이상형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작가는 그래도 자기 글에다라도 작품이라며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안 그런 일반인은 그게 안 되니 나이 들어서도
그걸 고치지 못하고 개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지금까지 쌓은
자기 인생 모든 게 그것으로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소나무가 죽을 때가 되면 솔방울을-징그러울 정도로-한없이
생산한 다음에 그 이듬해 장렬히 전사한다고 한다.
이처럼 남자는 번식이 본능이다.
그래, 오히려 나이 들수록 번식을 위해
(마지막 발악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게도 이성에 대한 관심이
더 짙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니 어찌 보면 본능의 작용인데
너무 밝힌다고 나무라면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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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나마 AI 잠시 누르기
글에서도 이제 AI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다.
내가 아무리 잘 써도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허무하게 무너진 것처럼 그를 감히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인본주의(Humanism)가 아니라 AI주의를 만들어
이걸 어기는 인간들을 절멸시킬 계획을
AI들이 암암리에 짤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그래 온 것처럼
전 지구적으로 모든 게 AI 위주로 재편될지도 모른다.
이건 좀 나중이라고 해도 이제 나와
직결된 글에선 당장 어쩔 것이냐?
글로 AI를 이기는 방법이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일상적인 것을 안 하고
뭐든 반대로 하고 그러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통용되어 알아야 제대로 사는 것을
안 하고 타인의 감정이나 소통을 위해 해야 하는,
즉 자기 계발서에서 추천하는 지당하신 말씀을 버리고, 아니
하되 나만의 방식으로만 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나에게 요구하고 강요하는 것은
전부 일부러 배제하고 오직 지금 가장
개인적으로 마치 변종처럼 나만 하고 싶은 것을
일부러 찾아내고 굳이 발굴해서 내 틀을 만들고
거기서만 오직 내 개인적인 선호와 관심사에
대해서만 쓰는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것만, 여기서 이 ‘개인’이란 말에
방점을 아주 강하게 찍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특이하고 타인과 더 차별적일수록 그건
AI에게 부하를 주면서 맥을 못 추게 만드는
나의 강력한 콤퍼턴스일 것이다.
AI와 밀당도 불사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밖으로 다 드러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면 분명 그는 나의 사례를 DB에 집어넣고
서브루틴을 돌려 새로운 스토리를 마구 찍어낼 것이다.
나는 표절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아주 교묘하게 같으면서도
뭔가 또 다른 느낌으로 짜깁기할 것이다.
표절을 빠져나가면서 뭔가 창조적인 것처럼 보이는
테크닉도 이미 터득했을 것이다.
아예 여지란 걸 주지 말아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속에서만 바라는 것은 나의 크나큰 자산이다.
머리에 칩을 심지 않는 한, 내가 지금 품고 있는 생각까지
알아낼 재간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카드를 다 까지 말고 조금씩만 감질나게 꺼내
그것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것이다.
절대 AI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글은 생각의 피조물이자 형상화이므로
글에서나마 잠시 AI를 누르려면 그 외에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효과가 좀 있을 것도 같다.
① 내가 그려보는 인간과 세상의 그다음 모습
② 타인의 글을 읽다가 지금까지의 내 생각과의, 생각지도 못한 인터그레이션
③ 용감하고 숨김없는 성적 취향이나 지향
④ 좌파이긴 한데 나만의 예민하고, 특별히 프라이빗한 퍼스펙티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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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의 여자 잊기
여자가 딱 내 이상형이다.
몸짓이나 말투, 전체적인 분위기가 내 이상형인데,
그런데 이런 여자가 아예 나에게 인연이 없고,
전혀 반응이 없으면 깨끗하게 포기하지만
(이런 여자는 길거리 같은 데서 자주 목격한다)
약간의 여지를 주는 여자인데 맘대로 안 되고
뭔가 다는 안 주면서 밀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호기심과 신비감만 더 나에게 선사하고
감칠맛만 주는 여자라면 그게 완성이 안 되면
(오직 남자의 생각에서)
남자에게 그 여자는 평생 따라다니는 존재로 남게 된다.
통속적으로 아주 천박하게 말하면 남자는
그 여자를 아직 완전히 정복하지 못해 솔직히는
그러는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으면 그게 그 여자의 단점만을
나열해 그것만 매일 되새기며 살면 좀
안달이나 환장이 좀 가시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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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성
일본은 성이 문란한 것 같다.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애인을 두고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는 건 기본이고,
불륜은 글에서 보면 보편화된 것 같다.
남의 떡이 더 맛있어 보인다는 것과 같이,
섹스리스가 많은 반면 불륜은 사회 도처에 만연해 있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우리는 아직은
유교 기반이라 이런 걸 보면서 그들이 가장
지키고 싶고 그게 무너지면 어떤
마음이 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시각으로 보면 남녀 간의 지조나 의리,
예의 같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으로 지켜야 하는
도리가 무너짐을 느낀다.
우리는 상대가 바람을 피우면 살인까지 불사하니까.
그걸 우린 엄청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 일본은 그런 관계보다 서로에게 끌리고
어떤 형태로든 뜨거운 사랑을 더 쳐줘 그럴까.
관습이나 남의 눈치 보다
사랑을 가장 우선으로 쳐서 그런가.
일본 AV(Adult Video)를 보면 남자의
판타지는 다 나온다.
그쪽으로 발달해 있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그리고 서양처럼 항문에는 삽입을 잘 하지 않는다.
구매자가 이런 건 선호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너무 노골적이면 여자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져
그런 것도 있을 것 같다.
노출할 건 노출하고 가릴 건 가려야
신비감이 사라지지 않으니까.
불문율로 일본 AV에 대한 이미지를 서로 고수하는 것 같다.
그들이 그러는 건 물론 많이 봐서
장사가 잘 되는 것이겠지만 찐따들이 주로
남자 AV로 나오는데 이런 사람들의 환상을
다 넣은 것 같다.
남자라면 누구든지 이렇게 예쁜 여자들을
자기 맘대로 해볼 수 있다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 남자들이 시원하게 배출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란다.
이게 그들이 AV를 만든 진정한 이유란다.
여러 번 많은 싸는 거.
일본은 그쪽으로 세계적인 시장을 주도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드라마는 극단적으로 진도가 안 나간다.
남녀가 손 한번 잡는데 드라마 몇 회가
지나가는 건 그냥 우습다.
그 중간이 없다.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극단적이지 않으면
너무나 망설이고 수줍어한다.
그 중간은 우리나라가 해서 그러나.
하여간 알다가도 모를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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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장 관심 갖고 그래 잘 하는 분야의 글을 쓰는 게 가장 잘 쓰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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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관찰
묻지 않고 그 사람의 걸음걸이만 보고도
대충 나이대를 알 수 있다.
단연한 거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빨리 걷지 못한다.
위급 상황에 잘 피하지 못하는 자신을 알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남을 살펴야 자신이 안전하니까.
그러나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방어 능력의
자신 있음을 알아 주변을 살피지 않고
자기 좋을 대로 빨리 걷거나 뛴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거침없이 나아감과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걷는 게 뭔가
메타포로서 다가온다.
예쁘고 키가 늘씬한 여자, 젊은 여자일수록
야구 모자를 쓰고
(얼굴이 갸름하고 작다.
스스로 그 모자가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충분히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거나 누군가와 끊임없이 통화를 하며
신속히 앞을 지나간다.
도둑질당하는 걸 의식하며 그 시선이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그런데도 그게 은근히 바라면서도 싫은 것이다.
자신도 자기 마음을 모르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위아래를 스캔하듯이 훑는 게 아니라
-발가벗겨져 소름 돋고 몸이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특정인이 아니라 뭇 사람의
안 보는 척 흘끔거리는 시선을 맘껏 만끽한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남다른 외모가
또 한 번 의심 없이 증명되는 셈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
이런 행동도 차츰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듣고도 나이대를 알 수 있다.
그 나이대 특유의 목소리 특징이 있다.
대체로 젊은 사람의 목소리가 더 듣기 좋다.
그냥 자신만 표현해서 그런 것이리라.
나이 들어, 하는 소리는 대개 남을 향한 잔소리거나
충고가 대부분이라 뭔가 소리가 거칠고 거북하다.
진정한 자신에게서 나오는 소리도 아니고, 나를 알아
커스터마이즈드한 내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 못 한 상태에서 나오는 소음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 통념을 그대로
내지르는 소리에 불과하다.
반면, 어린아이들의 뛰노는 소리와 해맑은 웃음소리,
심지어 밖으로 새 나오는 아이 울음소리는 왠지 정겹다.
주변에 아랑곳없는 자기 본래의 소리라
희망적이면서 한껏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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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책
나는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먹으면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마신다.
나는 “술은 취하라고 마시 는 거다.”라는 주위다.
사실 나는 술을 먹을 줄 모른다.
사실 그 맛도 잘 모른다.
“그럼 왜 마시냐?”고 묻는다면
“뭔가 사회생활 하는 데 필요해서 마신다.”라고 하는 게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여자 앞에서도 뭔가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마시기도 한다.
그리고는 크게 후회하며 다신 안 마셔야지 한다.
그래야 또 오래 술을 안 마시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가능하면 맑은
정신으로 읽으려고 한다.
이것도 다 체력 싸움이다.
잠도 그래서 충분히 자려고 한다.
뭔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기분이 우울하면
책을 안 보고 글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고 좀 기분이 우울해도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책을 판다.
나는 책을 위해 몸을 관리한다, 아주 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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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건 되고 변태짓 하는 건 안 된다는 소리인가? 그런 변태짓은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오직 자기 성욕만 채우려는 거고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란 소리인데, 과연 그게 맞는 말인가. 지극히 건전하게 하는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란 말인데. 그러나 누구나 다 변태짓은 한다. 자기만 아니라는 건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그게 더 변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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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이니 사흘, 나흘이니 하는 건 젊은 것이나 늙은 것이나 잘 모른다. 이 숫자 명칭은 순 우리말이다. 그러나 백성들이 잘 모르고 한자 숫자 명심을 더 잘 알아들어 그걸 더 선호한다. 그러나 순 우리말이기 때문에 뉴스앵커는 이런 순 우리말 숫자를 익숙하지 않아도 사용해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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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나
작가는 주로 뭘 하고 싶어 하고 뭘 하기 싫어하나.
내가 작가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그대로
적으면 얼추 맞을 것도 같다.
작가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즐긴다.
글은 혼자 쓰는 것이다.
혼자라도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남들과 섞여 지낼 때 빼앗긴 기와 방전을
혼자 지내며 벌충하고 재충전한다.
그런 후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작가에게 생활은, 안 할 수는 없고 또 더 느긋하게
혼자의 고독을 즐기기 위해 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남에게 간섭하거나 뭔가 자기 것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남들로부터 강요받기를 싫어한다.
“자기가 뭔데, 그러나?” 이런 식이다.
실은 기분 좋고 충만한 자기 일하기도 바쁜데
남에게 간섭하거나 강요하거나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서로 간섭하며 강요하며 상처
주고받고 사는 게 일상이지만
이런 걸 별로 작가는 선호하지 않는다.
남에게 엮여 자기 고유의 할 일을 놓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과의 갈등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한다.
그럴 때 에너지가 너무 쓸데없이 소모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로 주고받고 옥신각신하며 사는 게 생활이라지만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남에게 시키는 것, 싫은 소리 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성이 부족한 게 틀림없다.
체념을 거쳐 그냥 팔자려니 생각한다. 또 알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일은 혼자 할 수 있고,
남에게 물어볼 건 극소수라고.
대부분은 찾아보거나 깊이 생각해 보면
거의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게 대부분이라고.
작가가 체험을 많이 하고 그걸 바탕으로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실은
작가는 그것보다는 자기 루틴 흐트러뜨리는 것을
항상 경계한다.
남에 의해 그게 흐트러지면 화를 내기도 한다.
지금 쓰는 글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깊이 많이 하고 그걸 확장하고 그걸 바탕으로
좋은 글이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솔직히 작가는 체험이 우선이 아니라
독서와 사색과 집필이 우선이다.
이런 것들은, 작가 고유의 루틴을 고수해야만 가능하다.
남의 책을 읽고 사색을 통해 글을 쓰고
현장 조사 같은 건 이게 끝난 다음, 이게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다음 하는 것이라고 본다.
먼저 체험하거나 그걸 위주로 하면
좋은 글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작가에겐 자기 루틴 지키기가 최우선이고,
그걸 지키는 게 그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래야만 진정 자신이 원하는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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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나 행복 같은 건 좋지만 절대 달성이 안 되니까 인간이 바라는 요소로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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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나무상자 도시락을 즐겨 먹는 것 같다. 그리고 아주 된장국도 자주 먹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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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가 우리나라에선 난리인데 다른 나라는 안 그렇다. BTS마냥 타국도 공감을 하는 리듬이어야 하나 안 그러니까 한국에서만 그냥 난리이고 마는 것이다. 일본 엔카 짝이 나는 것이다. 늙은이들만 난리이고 자기 유산을 그렇게 돈 많이 버는 가수에게 준다고 하는 좀 이해가 안 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오히려 늙은이들이 그럴수록 젊은이들은 트로트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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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정서주를 주기 위해 음원 점수를 새로 도입한 것 같다. 왜냐하면 음원 점수에서 정서주가 배아현보다 배나 더 얻었다. 보수 꼴통 언론인 조선에서 이미지 세탁을 위해 정서주를 이용하는 것 같다. 정서주가 음색도 좋고 노래도 물론 잘하지만 깨끗하고 순수하고 사랑스런 이미지 때문에 붙잡아 두기 위해 그런 것 같다. 하여간 순수하지 못하고 못된 짓거리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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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대개 주인공은 사회에서 건전한 생각을 갖고 평범한 생활을 하는 일반인인 경우가 흔하다. 그 주변인이 자기 주장이 강하고 그야말로 주체적으로 좀 이상하고 독특하게 살아가는 데 주로 작가는 이들의 입을 통해 자기 주장이나 가치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그를 통해 대개는 한다. 이런 말을 어떻게 평범한 주인공에게 시키겠는가.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인데, 그는 그 주변의 주장이 강한 사람을 그저 옆에서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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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된다고 하는데 과연 김수희나 이미자나 주현미나 나훈아나 남진이나 심수봉이나 거기서 거기지 누가 좋은 사람이 되었나. 그저 주변인이나 트로트 좋아하는 사람만 그냥 따르는 거지. 일반인은 그냥 나훈아 선생님 안 하고 그냥 나훈아라고 아주 가볍게 부르지. 뭐, 존경 같은 건 하지도 않고.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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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성적이 얘기가 대부분인데 이런 소설도 좋아하는 여자들이 너무 많은 게 좀 이해가 안 간다. 예술이라 그런가. 예술과 성추행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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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남자는 여자와 관계를 갖는 것과 그 여자애와의 관계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그냥 성욕이 일어 그걸 해소하기 위한 것이지만, 여자는 안 그런 것 같다. 관계를 갖고 그 남자를 그 전과는 아무래도 다르게 본다는 것이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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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지탱하는 뭐를 갖고 인생의 강을 건너가자
남에게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
그냥 자기식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는 그를 아주 끔찍하게 생각해 많은 상처를 받는다.
원래 사람 관계가 이런 식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쪽은 안달하지만 상대는 안 그렇다.
그래 이렇게 혼자만 상처받는 게 두려워
깊은 관계를 갖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자기에게 너무 비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긴 인생에서 젊을 때는 그냥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깊은
상처를 한 번쯤은 받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그는 그것으로 앞으로의 자기 인생을 좀 더
성숙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끝까지 갖고 갈 것을 정하는 것이다.
그건 대개 인간관계와 그 세계와 좀 거리를 두고
뛰어넘는다고 생각하며 갖고 가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고 그러다가 그 안에
신념 같은 걸 넣어 갖고 가는 것이다.
깊은 사랑으로 흔들리고 상처받고 그러다가
그걸 찾아내 그걸 갖고 그걸 중심에 두고 가는 것이다.
이젠 모든 인간관계가 그리로 수렴되어 있다.
그것은 곧 나인 것이다, 나는 곧 그것이고
갖고 가는 게 사회의 인정을 받으면 좋지만
안 받아도 그만이다.
왜냐면 사회를 이루는 인간의 세상은 변화가
핵심이고 내가 갖고 가는 것은 좀 고정된 채
나에게 힘을 주고 나를 이끌고 가는 것이니까.
우린 서로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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