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해의 장르살롱] 13.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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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외로 추리소설은 쓰기 힘들다고 봐요. 제가 언급하는 추리소설은 특정 쟝르적 외피에 갇힌 작품이 아니라, 김성종 작가님처럼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추리의 기법을 채택할 수 있는 작품은 사실 인상적인 작품이 많지 않은거 같아요.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 쪽 서사가 더 핍진성있으면서도 그 목적을 다하는 작품이 눈에 띄니까요. 작가님들의 창작의 고통과 생업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좀더 분발하셔서 좋은 작품이 나오길 바랄뿐입니다.
borumis 님 물음에 대한 답변)) 1)영향을 받은 철학자: 제가 철학 책을 읽는 이유는 허무의식 또는 불안감(쿤데라: 단 한번 뿐인 생애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해결책을 찾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헤매는 중이고 이럴 땐 외려 나와 감정과 생각이 비슷한 작가(대부분 어둡고 음울한)에게서 위로를 얻습니다. 페소아, 김진영 철학자, 에밀 시오랑, 시인 최승자를 좋아합니다. 지난 1년 내내 주말이면 <불안의 책>과 김진영의 <조용한 날들의 기록>을 읽었어요. 2)지젝: 지젝은 추리소설과 대중문화에 박학다식해요. 헤겔-라캉 틀로 추리소설을 해석하는 데 완전 매료되었어요. 지젝에 자극받아 더실 해밋을 다 읽었지만, 역부족으로 에세이는 쓰지 못했어요. 데뷰작이자 출세작인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상대적으로 어려우니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나 <까다로운 주체>가 전 괜찮았어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당신의 징후 를 즐겨라>가 좋구요. 3)제 경우는 늘 반전(구성적 재미)과 주제(작가의식) 시이에서 헤매다 밥도 죽도 아닌 것이~역시나 추리소설은 구성/플롯 짜다 머리에 쥐가 나요. 4)당연히 오리지낼리티에 대한 아쉬움이죠. 대부분의 우리 사유가는 인용하는 글을 쓰면서 "권위적 미성년자"가 돼요.역사가 단절되면서(19세기는 동학-전봉준, 최한기로 기억되지만 사실은 철저한 몰락의 역사예요. 추사 김정희(성인)-->하원 정수동(동심, 아이:공자가 야비하다 말한들 어떠랴!)-->가야금 산조(자궁속 태아)로 이어져 단절에 이르죠. 끊어졌으니 비빌 언덕이 없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외국 아저씨 형님 누나 얘기를 전가의 보도인 양 끌어와야 하는데 그 순간 자신의 미숙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몇몇 사상가를 제외하곤 둘 중하나죠.외국 권위를 빌리거나 미성년으로 남거나. ※제가 보루미스님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고민하는 철학적 주제가 있나요? 우리 철학자 대부분은 대학교수라는 직업에 만족해 하며 강단철학(남의 지식을 전달하는 자)에 머물러요. 자기 고민 주제가 없기 때문에요. 주식투자하기 위해 주식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했는데 평생 책만 읽다가 끝나는 꼴이죠. 이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자기-주제가 있어야 해요.
오 감사합니다. 지금 김진영의 '조용한 날들의 기록' 지젝의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와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를 담아갑니다. 안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제가 예전부터 갖고 있던 동양과 서양의 언어적 차이, 동양사상이나 정서에 대한 의문점이 약간 풀렸는데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 외국 생활을 많이 해서 서구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한국어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를 배웠는데 단순히 description을 위한 말, 일상적 회화 등은 한국어로 가능하지만 책이나 여러 이슈, 사상에 대해 토론할 때는 영어로 후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부족한 한국어실력을 탓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래서 그런지 한국어로 얘기할 때(또는 쓸 때)와 영어로 소통할 때 다소 그 언어가 담는 내용물도 그리고 그 내용물이 반영하는 생각도 차이가 나는 점을 느껴왔거든요. (심지어 좀 복잡한 글은 이해마저도 영어가 더 쉽습니다;;) 하지만 또한 요즘 영어로 번역된 한국소설 등을 읽거나 한의 정서나 서양인들이 쓴 동양철학 관련 책을 읽을 때 뭔가 번역에서 빠져버린 듯한 또는 왜곡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월터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읽을 때 느꼈는데 우리 언어나 문화는 좀더 구술문화의 '소리'와 관련된 문화가 서구보다 더 두드러지고 이에 따른 사유의 차이도 보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한국에서만 살았던 친구들과 사물이나 개념을 분류하는 방식도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도 저와 다른 점을 느꼈어요. 대신 동음이의 뿐만 아니라 한국어 (그리고 어쩌면 일본어도)가 유럽의 언어에 비해 의성어 뿐만 아니라 의태어 형용사 등 조금 더 소리에 많은 영향을 받은 언어가 아닐까 싶을 때가 있었어요. 영어나 프랑스어 등은 라틴어 등 어원으로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유추하지만 한국어는 그 소리의 '느낌'으로 단어의 의미를 유추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리고 제가 한문은 잘 모르지만 한글은 매우 phonetic한 언어인데 조금더 시간과 기억과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시각보다 그 순간 그 장소의 청각에 의존해서 그런지 아니면 사회 전체의 구조 때문인지 좀 덜 추상적이지만 더 실용적이고 즉각적이고 관계지향적인 (우리 말은 누가 누구에게 말하느냐에 따라 호칭 뿐 아니라 존댓말 등 말의 내용이 많이 달라지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 뿐 아니라 말과 말, 말과 상황 사이의 문맥적 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언어같아요)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의 역사나 전통이 단절되거나 몰락된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의 언어에도 어쩌면 그런 시간의 축적에 대항하는 어떤 현존적 요소가 있지 않을까 했어요. 그래서 서구 사상과 언어만으로는 다소 부족한 게 있지 않을까해서 나중에 최인훈 부분을 읽으며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제게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한데요. 문제는 저는 고민하는 철학적 주제가 꽤 많아요. 그래도 그 중 제 삶과 가장 밀접한 주제를 고르자고 하면.. 일단 저는 선천적 뇌혈관 질환이 있어서 한 때 뇌출혈로 paresthesia를 경험했는데요. 아버지도 정신과 질환 (아버지의 부재 주제가 와닿았던 이유일지도요), 아들도 신경다양성에 관심을 갖게 했고 제 직업이 유전자의 다양성을 직접 다루는 직업이다보니 nature vs nurture 뿐만 아니라 필연과 우연, 자유의지와 결정론, 그리고 다른 성별이든 다른 장애나 체질이나 상태든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계가 공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많아요. 내가 가진 선천적 체질이 이러지 않았다면... 환자들이 가진 유전적 성향이 이러지 않았다면.. what if?라는 생각에 이어 아버지나 아들이 보는 세상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다를 텐데 (실은 저도 좀 독특한 성장배경 때문에 그런지 특이한 관점을 가졌다는 말을 많이 듣고요;;) 이런 다양한 관점 (umwelt?) 과 우연과 필연이 공존하게 된 의의에 대해 고민해봅니다. 모순일지 모르지만 Democritus의 우주의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라는 말, 그리고 quantum physics의 randomness가 오히려 더 결정론적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관심있게 읽고 있고 그래서 제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으면서 그가 말한 제3의 눈이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걸어봤구요. 그래서 관련된 철학책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및 인문학 저서들도 많이 읽어보고 명상도 해보는데 아직은 질문과 고민만 많습니다. 또 약간 연관된 것인데 파르메니데스의 부분과 전체에 대한 생각도 세포와 세포가 모인 게 전체인 개체와 다른 것, 개인과 개인의 집합인 사회가 각 개인의 합과 다른 또 다른 층위를 형성하는 것, 아원자적 입자들의 규칙이 그 입자들이 이루는 물질과 다를 수 있다는 것, 각각 개미들의 의식이 전체 개미 콜로니의 움직임과 차원이 다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gamja님 물음에 대한 답변)) 1)20년요: 포에 관해서는 2002년, 2009년에 쓴 글이에요. 왜 이리 오래? 열정 노페이로 거의 다 돈 안받고 쓴 글(최근 에는 그래도~~~2022년에 4편의 에세이 쓰느라 1년을 보냈는데 벌이가 120만원 정도였어요)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니 다른 일로 생할비를 벌어야 했고 시간이 빠르게 흘렀네요. 책을 낼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한이 작가의 자극 덕에 내게 됐어요. 위기도 있었죠. <추리소설은 무엇인가?>의 원제목은 <추리소설은 무엇이었나?>였어요. 과거형으로 (회고--->추리소설은 무엇인가(추리소설가의 관점에서)--->독백) 쓰고 나서 추리문학계를 떠나려 했었죠. 그래서 마지막 글에, 부끄럽게도 감정이 실리고 말았어요. 당시 아무도 내 얘기에 관심이 없다고 좌절했거든요. --메아리 소리는 들려왔는가? 청사포 바닷가, 언덕, 김성종. 고독이 하나의 이념일 수 있다는 생각. 2) #서구 추리소설은 시간(역사)의 약화(퇴조) 현상에 대한 망설임(주저)의 정신적 표현이다. #한국추리소설가는 모욕(주변부 문학; 자기를 스스로 규정하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과 무시 및 조롱(오락에 불과) 사이에 호모 사케르로 존재힌다. 모욕감과 능멸감을 그 바닥까지 느끼지 않고서는,한국 추리소설가는 자아-정체성에 도달할 수 없다. (세상이 변해 추리작가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건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3)번역된 책이 워낙 적은 데다 추리문학을 포괄적으로 해설한 책도 거의 없습니다. 영문 책을 말씀들려 죄송한데, 제 경우는 주요논문을 모아늫은 "The Poetic Murder "가 큰 도움이 됐어요.
박소해님의 물음에 대한 답변)) 1)조선시대에 사내라면 무릇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하지만 법서는 절대 읽지 않는다고 했어요. 덕치 사회라 법치에 대한 고민이 덜 했던 거죠. 율관은 체아직이라 해서 번듯한 양반가문의 머리 나쁜 아들이 초라한 경력이나마 쌓기 위해 서너달 머무렀던 곳이죠. 그렇게 법관은 푸대접을 받았었죠. 현대는 법치사회로 구축되면서 검찰,판사, 변호사가 권력중심이 되면서 큰 대접을 받게 되었는데, 일반문학이 그 권력을 일부 나눠가지면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추리소설을, 앞서 말했듯이, 주변부 문학(박경리)과 오락(백낙청) 사이로 규정하고 말았어요. 박소해 작가가 더 많은 작품을 쓰고 지금보다 더 훌륭한 추리작가가 되어 서울의 내노라하는 대학강단에 서는 것을 보고 싶군요.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추리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해요. 추리소설을 규정한 인식틀을 깨뜨려야 하죠. 백낙청의 의견은 비교적 쉽게 비판할 수 있지만, 박경리의 의견(추리소설도 소설이므로 개인 과 그 개인이 처한 사회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은 권력에 의해 구조화된 벽(권력의 배분, 배치)으로 기능하기에 넘어서기 어려워요. 그래서 제가 취한 방법은 우회로를 퉁해, 유교 자체를 이론적으로 공격하려고 최인훈, 훈민정음의 원리까지 끌어들인 거예요. 일은 커져버렸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어요. 서양에선 a=a가 형식적 동어반복이지만 유교에서는 정도라 해서 이미 도덕이 개입돼 있어요. 그래서 그 지점을 공략해 보는 글을 써본 거예요. 솔직히 말해 추리소설가가 한국 사회에서무얼하는 사람인지 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 세대엔 애매모호한 것이지만, 후배 작가들은 타인에 의한 규정(정신적 노예가 되고 마는)이 아닌 스스로 자기정체성을 밝히고 드러내는 주체적 작업을 했으면, 하고 바래요. 2) 김성종 선생님얘기는 한 귀로 흘려들어도 좋다고 생각학요. 김성종 작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문연재 소설가이자 탁월한 대중소설가이지만, 훌륭한 추리소설가인지에 대해선 퀘스천 마크가 붙죠. 예전에 시드니 셀던이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가였는데 미국에서 추리소설가로서는 별로 대접을 못받았거든요. 살인사건과 범죄를 늘 다루면서도 말이죠. 김성종 선생님은 워낙 글을 잘 쓰시고 그 글발 탓에 책장이 훨훨 넘어가고 하지만 '추리부분'이 늘 미흡했어요. 제가 뒷부분의 미흡한 구성을 문제삼아 <최후의 증인>이 왜 대표 추리소설일 수 없는지, 쓴 글도 있어요. 그럼에도 인기 판매량 인지도 추리문학관 설립 등등 대표적 추리소설가임을 부인할 수 없죠. 누가 그 명성을 넘어설 수 있겄냐마는~~전 개인적으로 추리소설도 인식의 확장에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 개서미 드러나는 작가를 좋아해요. 오롯한 개성은 비교대상일 수 없죠. 작가란 모름지기 흔적을 남기는 존재라는 특권은 그 대목에서 드러나죠. 보르헤스는 서구형이상학을 판티지 소설이라 생각한 사람이죠. 비록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서구 형이상학을 미로라는 개념으로 대체하려고 했죠. 보르헤스도 소설은 인식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전 작가의 개성이야 말로 전 인식 확장의 옵션을 제공한다고 봐요. 명성과 인지도는 작가에겐 차후 문제죠. 저도 성공한 작가가 부러워요. 하지만 개성 사이에는 비교불가라는 생각이 여전히 절 지배하고 있어요. 3))반복해 말하자면~~~ 저는 결국 작가는 인식의 확장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자신의 개성을드러내기 위해 기성가치와 불화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어요. 추리소설이 예외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한국 추리소설이 뭐 그렇게까지~~ 아니그 반대죠. 한국 추리소설이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야만이 자기가 생각한 주체적 자기상 확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다른 의견을 듣고 싶군요.
인식의 확장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서의 작가. 알듯 말듯 하지만, 정답은 없겠지만 정답을 찾아내려는 작가님의 태도와 의지가 느껴져서 읽는 동안 몇번이고 찌릿찌릿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추리문학 뒤늦게 답변을 답니다. 질문 던지기를 잘했군요. :-)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 그리고 다른 추리 작가들도 모두 궁금해할 질문 같아서 제가 총대를 메는 기분으로 드린 질문이었는데요. 라이브 채팅을 앞두고 백휴 작가님의 진정 어린 답변을 읽으니 저도 무경 작가님처럼 눈가가 촉촉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실은 저 요즘 정말 힘들게 글을 쓰고 있었거든요. 추리소설이라는 이 분야에서 내가 잘해나갈 수 있을까? 한국 추리마니아들은 한국 추리소설보다 일본 추리소설이나 영미권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장편 처음 써보는데 무사히 책을 낼 수 있을까? 등등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백휴 작가님이 진심을 담아 써주신 긴 답을 읽고 나니 그 고민들이 저절로 해소되는 기분입니다. 열심히 써서 나만의 개성을 획득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새로운 추리소설을 쓰자. 기성가치와 불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가자. 추리소설이 주변부 문학이나 오락이라는 편견을 뛰어넘어 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스터리를 한번 써보겠습니다. “한국 추리소설 너무 재미있네! 읽을 만 하네! ”란 소리를 듣는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격려와 응원이 곁든 답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더 분발하겠습니다. :-)
내일 허둥지둥하다가 인사 말 잊을 거 같아 미리 올립니다. 여러분이 책을 사준 덕에 진짜 오랜만에 서점에 가서 제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의견을 교환하고 안해도 될 뒷얘기까지 하니 속도 후련하구요. 쓸 데없이 책 내용이 어려워진 점은 저의 식견부족일 테죠. 제가 연식이 오래되어 그런지 대면 독서모임이---특히 젊은 작가가 포함된---좀더 활발했으면 하는 낡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네요. 아무쪼록 만사형통하시길 바라며, 고생하신 박소해 작가님 이하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꾸벅^^
중간 소감>> 그리고 사전질문>> 지금껏 영화 관련 평론집을 제외하고, 이렇게나 집중해서 읽어낸 평론이 있었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론, 작품론 등은 가끔 접했으나, 이렇게 장르론으로 접근해서 추리소설의 역사와 철학사조를 연결지어 풀어내는 저작은 제겐 처음이라 쉽지 않으나 신선함과 반가움이 컸습니다. 물론 아직 300페이지를 목전에 둔 게으름에, 십중팔구 내일 라이브 채팅에는 완독하지 못한 채 참여할 공산이 크지만, 예의 특이했으며 남달랐던, 글을 올린 이는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글의 양적인 측면에서는 역대급의 역대급인, 이번 장르살롱의 대미를 놓쳐서는 안된다 싶어서 알람을 진작에 맞춰 뒀습니다. (1) 평론가님이 철학자이자 추리소설가이기도 하셔서 일거란 어렴풋한 개인적 예상이 있지만, 평론가님이 이번 책의 집필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나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2) 평론가님의 추리소설가로 가장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는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Henry님의 물음에 대한 답변)) 1)추리소설을 이해하기도 전에 미리 추리소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느낌이 너무 싫어 연구해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도 헌책방 파웰사나 아마존에 들어가면 크리스티에 대한 연구서가 20권 넘게 주르륵 리스트가 나왔거든요. 그때 가령 이문열이나 박완서에 대한 연구서가 한권씩이나 있었을까요? 뭔가 불편한 인식의 괴리를 느꼈습니다. 흔히 추리소설=부르주아 문학 이라고 퉁치더군요. 한데 챈들러의 소설은 프롤레타리아의 정서를 담은 노동문학의 구조라고 보는 학자도 있더군요. 결국 연구없이 그런 결론이 앞선 거죠. 또 일제강점기 탓에 고통스러운 과거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추리소설에 감춰진 시간약화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봐요. 이게 추리소설을 오해(어쩔 수 없는 역사적 측면이 있지만)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되었죠. 2))추리소설 공부에 한정하면 보루미스님도 지적해듯 지젝입니다. 서구 현대문학과 추리소설이 발생기가 거의 일치한다는 지젝의 지적은 제게 많은 암시를 줬습니다. 모더니즘과 추리문학의 그 어떤(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친연성이죠. 이브 뢰떼르의 "추리소설이란 무엇인가"가 모더니즘을 주창한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한 것은 그런 의미로 우연이 아닙니다. 리어리즘을 표방했던 <창작 과 비평>이나 <실천문학사>에선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죠.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무언가를 '추가'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글이기도 했습니다, 제게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으로 출판사별 태도, 지금은 희미해졌지만,를 통해 추리문학을 대했던 예전의 업계/학계의 경향을 가늠케 해주시니 더 잘 와닿았습니다^^
Henry님에 대한 답변)) 1) 2)는 관념적 이유이구요. 1994년 부산 국제신문 주최 김성종 추리문학에 대한 강연회가 있었는데요. 활동 안한 지 오래된 유우제 작가가 토론자로 전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부산 수산대 우듬지 문학동아리 멤버(대학 2학년생 정도)가 김성종 선생을 불륜과 선정적 주제나 다루는 3류 작가로 몰아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나름 대답을 하셨지만 제겐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그때 느낀 당혹감이 <김성종 읽기>를 쓰게 된 동력이었구요. 1995년, "추리소설은 살인을 가르치는 교과서다"라는 SBS방송이 나갔어요. 기자의 그 멘트와 함께 교보문고 추리소설코너를 카메라가 잡았는데 이태영이라는 우리 회원 작품도 포항됐죠. 사단은 명문대 출신의 교수가 재산을 노려 아버지를 죽인 사건 때문인데, 서재에 일본 추리소설 몇권이 꽂허 있었나 봐요. 범행수법이 유사하다 아니다 설왕설래가 많았구요. 이 양반 몇년 전 만기출소했는데 동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허락으로 유산 70억을 물러받았다네요. 암튼 그때 서부구로지법을 들락거리면서 판사가 진짜 추리소설의 추자도 모른다는 생각생각이 들었고 추리소설을 제대로 연구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추가로 실질적 이유를 사건을 들어 알려주시니 더 그 순간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어떤 사안에 대해서건 각자의 의견들이 있고 그것을 표방할 자유도 있겠으나, 또 언제나 그 표현의 방법과 태도 또한 잘 선택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충분한 조사를 거쳐야 함은 물론이고요. 거듭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인식의 확장이란 무게를 달고 글을 쓴다..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지점으로부터 해방되고자하는 욕구도 분명 존재할듯 보이는데요. 새로운 걸 대중에게 보여주고, 그들에게 지평을 열어주는 판을 깔아준다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의무감도 가질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욕구로만 글을 쓴다면 어디까지를 작가라고 봐야하는것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오는 주제일듯 하네요. 엘리트주의라고 비판의 소리가 들어올거 같기도 하고요. 결국 형식미에 사로잡힌 기존의 틀을 깰려고 또다시 다른 준칙을 가진다는 순환론적 담론이 이어질 수도 있는 모습도 감지가 됩니다. 그책에서도 오스틴의 사례처럼 말이지요.
새벽에 백휴 선생님이 답글 달아두신 걸 쭉 읽다가 왜인지 눈물이 살짝 맺힐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추리소설과 한국 추리소설을 보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 느껴졌거든요. 선배님들의 고독과 고뇌를 딛고 후배들이 한발씩 앞으로 내디디고 있습니다. 좀 더 좋은 작가, 좀 더 좋은 이야기를 쓰는 작가, 좀 더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작가, 그저 제대로 된 작가가 되려고 애쓰는 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백휴 선생님이 이 책의 2편을 쓰시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까지의 고뇌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를 담으실 수 있을 거라고,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후배로서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말만큼은 남기고 싶습니다.
Fatman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디. 엘리트주의는 언제든 어느 시대든 논쟁의 대상이 될 겁니다. 저는 그 전단계의 얘기입니다. 자기의식을 갖기 위한 고통의 몸부림과 비명의 외침요. 전 보편적 추리소설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추리소설은 달처럼 반사체일 뿐입니다. 발광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죠. 제 세대의 느낌과 팻맨님 세대의 느낌은 분명 다를 겁니다. 제 인상은 한국 추리소설이 문학귄력과 자본주의(한국 추리작가의 작품은 수준이하이므로 히가시노 게이고 류의 작품을 번역 출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직 활동중인 어느 출반사 사장님 말씀) 사이에 끼어 신음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 추리소설가의 관점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럴려면 권력구도에 도전할 수밖에 없으며 인식문제가 따라나온다고 봤어요.
무경님, 덕담 고맙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팻맨님 지적처럼 제 의견은, 지금 시점에서는 이미 늦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작가나 독자들이 젊은 시각으로 참신한 의견을 제출하길 바라고 있어요. 제가 추리소설가로서 느낀 불만은 제도권 비평가들이 한국추리소설가를 대개는 사회사(사회현상)의 일부로서 취급한다는 점이었어요. 저는 작가로 대접해 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부메랑 효과(네 글은 별로던데)를 알면서도 추리문학비평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젊은 작가들끼리 서로 그런 토론과 논쟁이 왕성해졌으면 합니다.
그런데.. 책 후반으로 갈수록 제목에 나온 사상가들보다 다른 사상가들의 사유와 추리소설 작가의식이 더 밀접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서미애와 칸트에서는 칸트보다는 어쩌면 사드와, 그리고 지젝과 황세연에서는 지젝보다 로티와, 류성희와 한나 아렌트에서는 아렌트의 정치공간보다는 칸트의 취미판단에 더 밀접하고 정유정과 조르조 아감벤에서는 아감벤보다 알랭 바디우의 입장이 제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기고 갔어요... 처음에는 제목에 나온 사상가의 이론이 작가의식과 관련된 것 같다가도 또 변증법적 합?또는 반보다 더 한 반?이 나오듯 결국 다른 사상가의 이론에 다가가는 반전이 보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전 챕터에서 다음 챕터의 추리소설의 예고편이나 복선처럼 다음 사상가의 생각들이 살포시 엿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것에서 저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을 때 범인이라고 처음에 다들 의심했던 사람이 red herring이고 결국 전혀 뜻밖의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는 그런 구조가 생각났는데요. 혹시 작가님이 그런 것을 의도한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12장에서 나온 '내포의 누적이 필연적으로 외적 대상 - 쌓인 증거가 필연적으로 범인k를 가리킨다는 것-을 지시한다는 것을 의심하게 한 것처럼 작가님은 이를 통해 어떤 사유를 유도하는 것일까요? 저는 실은 이건 우리가 항상 '당연시'했던 관점을 무너뜨리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진화론과 phylogenetics 등이 발전하기 전에 우리는 동물의 종이든 인종이든 성별이든 뭔가 시각적인 단서들을 종합해서 뚜렷하게 분리되고 규정된 분류와 정의에 익숙했는데 알고보니 당연히 그렇게 보였던 분류가 실은 전혀 틀렸던 패러다임의 변화처럼 우리가 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개인적 심리 또는 사회적 구조 또한 실제로 파헤쳐보면 다른 이면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조금 더 심층적으로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는 듯 하네요.
보루미스님께)) 우리 언어에 시간의 축적에 대항하는 현존적 요소가 있다는 말, 흥미롭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관계성이 강한 언어에 불만(어쩌라고?)이었어요. 고독이라는 말도 기존 관계의 단절을 말하고(부모를 잃은 고아 고/자식을 잃은 늙은이 독) 고독을 부정적 으로 봐요. 개별 항보다는 관계가 우선인 문화니까요. 우리에겐 solitude란 단어가 없어요. 관계의 단절로서의 외로움, loneliness이죠. 에밀 시오랑이 solitude 그 자체가 하나의 관점이라고 했을 때 묘한 기분이었어요. 단어가 없으면 세계도 없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 후로 사람들한테 신조어를 만들라고 얘기하고 다녔구요. 보루미스님의 환경/기질 및 체질을(잘은 모르지만) 보니 큰 기대가 되네요. 체험으로 느꼈고 들뢰즈도 말했듯이 사람들은 생각하는 걸 별로 좋아하 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 대부분이 어릴 때 부모가 울타리가 못 되어준 유년기를 보냈더군요. 페르난두 페소아,프데데리크 시프테, 토마스 베른하르트, 네르발 등등 참고로~~ 알랭 바디우가 <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에서 문학에 관심이 많고 고백을 좋아해(?) 내면일기를 남기는 니체, 키르케고르, 루소 등의 작가를 사유에 늘 잔여물(무한에 직면하여)을 남긴다고 했어요. 상징체계를 세우려는 수학적 철학자와 상반된다는 의미에서 말이에요. 김진영 철학자도 독문학과를 졸업했어요. 그 후 아도르노/벤야민을 전공하셨구요. 우울증 탓에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독일서 귀국했구요. 2018년 암으로 작고하셨는데 자신은 멜랑콜리커라고 가끔 강연중에 말하시더군요. 시간이 흘러 모든 게 사리지는 걸 늘 고민의 주제로 삼고 계셨죠. 사랑의 기원이 허무라고 말한~ 조용한~~~~은 58세부터 64세까지의 내면기록인데 전 몽테뉴의 수상록 같은 책이 꼭 나왔으면 싶 었는데~~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외롭고 힘들 때 수상록처럼 큰 도움이 되는 책이었어요. 다만, 나이가 들어 쓰신 책이라 젊은 친구들한테 권하기에는 약간 망설여지더라구요.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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