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예리한 눈빛과 따뜻한 미소의 병립 구조: 히가시노 게이고와 마루야마 마사오>
이 7장이야말로, 가장 쉽게 재미있게 읽은 파트였습니다. :-)
하핫, 아무래도 제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센세의 작품을 다뤄서 말이지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습니다. 게다가 백휴 작가님이 이론적 근거를 마루야마 마사오의 이론에서 따온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합리성과 비합리성 사이에서의 고뇌라... 본격도 사회파도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을 분석하기엔 적절한 틀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백휴 작가님의 이 7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가가, 유가와, 덴카이치 이 3명의 대표적인 탐정(형사)들을 놓고 그들을 분류하여 분석한 내용이었어요. 유가와, 덴카이치를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 탐정으로 분류했다면 가가 형사는 따로 떼어놓고 합리성과 비합리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사회파에 가까운 탐정(그러나 사회파는 아닌!)으로 분석하고 있지요.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백휴 작가님은 질문을 던집니다.
본격 - 사회파 - 신본격으로 이어지는 일본 추리문학사 안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본격이라고 하기엔 덜 치밀하고, 사회파라고 하기엔 덜 집요한 듯한 히가시노 게이고. 하지만 본격도 사회파도 아니면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엔 성공한 히가시노 게이고.
우리 살롱 참여 독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작가일까요?
[박소해의 장르살롱] 13.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D-29
박소해
추리문학
박소해님, 보루미스님
어려운 질문이네요.
정치적 타협(생존의 필연성 으로부터, 노동을 통한
경제활동으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가능한)이 철학의 모습을 띠면 관조(해석)--대상과 거리를 둘 수
있기에 가능한--가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이란 관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 알 듯이 마르크스는 더이상 해석(관조)하지 말고 실천(노동)하자고 했죠. 더 추상화하면 이론/실천의 대립 하에서 '이론적 실천'도 실천인가, 라는 주제로 까지 번져갑니다. 오래 전 <문학과 지성(모더니즘을 대표) >과 <창작과 비평>의 논쟁이기도 했죠. 인간의식이 이익의 관점을 벗어날 수
없다면 뭔가를 주장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뭘 얘기하든 내 이익을 대변하고 있을 테니까요. 역사도 강자의 이익을 대변한 서사에 불과할 테구요. 이런 논쟁에선 모호한 표현이긴 한데~과연 깨어 있는 정신이란 게 가능할까요? 역사의
종말을 얘기했던 담론들은 바로 이 어려운 부분을
은폐하기 위한 매듭짓기 전략이 아니었을까요?
개인이나 작은 그룹(경제적 이익이 상대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는) 영역에선 더 나은 의견을
수용하거나 타협할 여지가 있는 반면 정치라는 큰
공간에 오면 '적/동지'의 프레임이 작용하면서 좋은 의견보다는 이기는 의견이 더 중요시됩니다. 지식인이 맞닥뜨리는 정치의 벽인 셈이죠. 그래서
점점 더 온건한 중간층은 사라지고 집단의식과 고독한 개인의식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 가는 형국
입니다. 배가 부르니 고독의 제스처도 취할 수 있다고 하겠지요. 아렌트는 정치담론-->사회담론을
역사적 흐름으로 파악하여 예전이 좋았다는 느낌
을 갖는 듯 합니다. 이 획일성을, 경제문제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담론으로 보는 것인 데 계급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양보할 수 없기
에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키는(결국 추리소설의 합리성이란 보편성이 없는 부르주아의 합리성이 되는 것이겠죠) 기능을 한다는 것이겠죠.
우리 정치에서 보면 지역구 이익을 대변(국회의원에 한번 더 당선되려면 어쩔 수 없는)하는 가치와
국가전체를 위해 지역구이익을 훼손하는(일종의 통치행위)의 갈등이기도 할 겁니다.
하이데거는 여전히 우월한 개인의 관조를 중요시
여깁니다. 니체는 급진적 귀족주의자라 일컬어지고요. 맞습니다. 계급이익을 버린다고 해서 곧바로 탁월한 정치행위(정치담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얘기가 빙빙 돌죠? 변증법적 종합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야말로 각자가
오래도록 탐구해야 할 주제일 듯 합니다. 같이
고민을~~
borumis
아 예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Nichomachean Ethics와 Politics를 읽은 걸 다시 펼쳐보면서 흐릿해진 기억을 다시 되짚어봅니다..;; 그러고보니 읽을 때 당시에도 좀 논란이 있던 부분인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Politics 7권 9장에서 미덕의 창조 및 정치적 삶을 위한 leisure가 필요하다는 부분이 있었는데 또한 같은 장에서 이런 노동이 노예 또는 외국인들에게 넘겨지는 부분도 있는 듯 했고 여성은 아예 인간 이하로 취급했던 아리스토텔레스였으니 과연 이런 theoria가 우리 시대의 현실에 맞는 걸까?하고 의문을 품었는데요. 반면 Nichomachean Ethics 10권 7장에서 나온 self-sufficiency가 contemplative life(관조적 삶)와 연관되고 happiness는 leisure (schole)와 연결되었는데 여기서 순수히 intellectual 한 삶을 지향하지만 노동 뿐 아니라 전쟁이나 정치적인 행동과 관련된 미덕조차 leisure가 없고 관조적 삶의 행복에 못 미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런 순수하게 지적인 삶은 인간의 실제 한계를 넘어섰지만 인간이라고 해서 인간적인 일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고도 합니다.. 즉 현실로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노오오오력해서 그걸 뛰어넘어야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는 거 같은데.. 어렵죠..;;(아 어쩌라고;;)
솔직히 말씀대로 그런 깨어있는 정신, 순수히 관조적인 삶이 가능할까?하며 의심이 들 때는 오히려 마르크스의 입장이 더 매력적이긴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적/동지 같은 이분법적 프레임도 이기지 않으면 무참히 잊혀지는 담론도 마음에는 안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렌트가 옹호하는 듯한 예전이 좋았다는 느낌(제가 '인간의 조건' 초반을 읽으면서도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이 찝찝하긴 하네요. 우월한 개인의 관조나 강압적인 획일화에 국한되지 않은 취향/입장 존중의 확장된 사유나 변증법적 종합은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볼 주제같습니다.
정성스러운 답변 갑사드립니다^^
박소해
보르미스님이 계속 질문을 던져주시니 co- 진행자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장르살롱에 잘 오셨습니다! :-)
박소해
@추리문학
백휴 작가님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쉬운 부분은 아니지만 상세히 설명해주시니 이해가 갑니다. :-) 저 또한 앞으로 소설을 쓸 때 개인과 사회의 충돌, 정치 담론과 사회 담론의 차이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될 듯합니다.
그동안 저에게 '철학'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통해 철학을 접해보니 철학이 어렵다는 생각이 고정관념이었네요. 일상의 모든 것에 철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제 삶이 나아질 거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삶이든, 개인으로서의 삶이든...
김정환
7부 리얼리티 vs 재미 대결
8부사회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을 압도하면 전체주의가 싹튼다. 획일성이 무서움
9부 욕망을 위한 욕망
10부 변증법 염화나트륨이 정화의 물질에서 살인도구 전해질로 변하는 이중성
11부 생존을 위한 투쟁
borumis
김정환님 전에 댓글에서도 아주 간결하게 한줄평?을 하시더니 이번에는 제목을 달아주시는 듯.. 아니면 요점 정리?
김정 환
요즘 정리입니다. 핵심이죠
박소해
이런 깔끔한 정리도 전 참 좋습니다! 계속 다음 요약을 기다리게 될 정도입니다. :-)
파랑나비
3월에 일을 시작하면서 그믐에 거의 들어오지 못했고,
안 읽은 부분을 쫓아가려고 애쓰고 있어요. borumis님의 견해를 읽으며 부족한 철학적 지식이 채워지는 느낌이라 좋습니다.
박소해
이번 에 보르미스님, 무경님 등 다양한 사유를 공유해주시는 참여자님들 덕분에 저도 자극 받고 독서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진도를 빨리 빼는 것보다는 차근차근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이 모임의 목표이니 느긋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참여해주세요. :-)
borumis
얼마전 크리스테바 읽을 때처럼 잠시 샛길로 빠져나가 라캉과 지젝의 이론에 대해 대략적으로 짚고 넘어가 본 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현대철학은 참 어렵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박소해
@모임
초창기에 많이 보이던 독자님들이 잘 안 보이고 요즘 우리 방이 쏴~~~ 한 듯한 느낌인 건 제 기분탓이겠지요. 끄덕 압니다. <추리소설로 철학하기>란 책이 혼자 읽기에 마냥 쉬운 책만은 아니란 점...! 그래서 우리 방을 만든 게 아니겠습니까? 책을 읽는 고충이나 고민, 의문점, 맘에 드는 점, 아님 방금 먹은 점심 메뉴도 좋습니다. ㅎㅎㅎ 수다해요 수다.
호옥시 매주의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그러신 거라면, 괜찮습니다. 저도 허겁지겁 따라 잡고 있는 중이거든요. ㅎㅎ
무플 방지위원회 출동해 주세요~ ^^
박소해
일단 전 방금 점심으로 충무김밥st 집밥에 조미김만 말은 김밥 + 양배추 김치 + 제주 전통 양파지를 먹었습니다. 물론 목이 메일까 봐 내추럴 미네랄 워터도 함께 마셨지요.
borumis
제주 전통 양파지는 어떤 맛일까요? 맛있겠어요 전 꿔바로우와 깐풍기 먹었습니다 ㅋ
박소해
앗 제가 양파지와 마농지를 헷갈렸습니다. 양파지는 양파를 절인 무침 반찬이고요, 마농지는 마농(마늘) 대를 절인 무침입니다. ㅎㅎ 마농지는 제주 전통 반찬이고 특히 돼지고기와 같이 먹으면 잘 어울려요. 오늘 저녁엔 식구들과 같이 목살, 삼겹살을 마농지와 곁들여 먹었네요.
박소해
꿔바로우와 깐풍기! 맛있게 드셨나요? :-)
화제로 지정된 대화
박소해
@모임
아참,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나 학자 중에서 가장 낯선 이는 누구였나요?
저는 (부끄럽지만) 고백합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마루야마 마사오, 그리고 조르주 아감벤 이 세 분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이름이라도 들어봤거나 그분들의 책을 한번 들여다보긴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세 분은 정말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했다는 거!
다른 분들은 어떠실까요? :-)
무경
저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였습니다. 언급하신 세 분의 이름은 다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정말로 이름만 아는 분이었거든요.
borumis
저도 줄 리아 크리스테바와 마루야마 마사오요. 물론 라캉이나 지젝 등 다른 철학가들도 이름만 알 뿐 이론은 전혀 모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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