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해의 장르살롱] 13.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D-29
줄리아 크리스테바라는 작가 자체가 처음인데 멋진 여성같아요. 삶 속에서 궤도이탈을 경험하라고 독자에게 요구할수 있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유명세는 비록 움베르토 에코가 탔지만 사유와 추리소설의 관계를 심도있게 탐구한건 크리스테바라니..작가도 운이 좋아야 하나 봅니다. 소개글만 읽어도 흥미롭고..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소설과 에세이를 구입하셨다니 대단하세요. 전 아무래도 철학빼고 추리소설만 좋아하는가 봅니다..
맞아요... 에코 소설이 대중적으로는 더 알려졌지만,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더 심오하고 깊이있게 탐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잔틴 살인사건>은 소문만 들었던 소설인데 이번에 백휴 작가님 덕분에 일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프롤로그 하나 읽고 압박감이..그래도 익히 아는 작가님을 필두로 에드거 앨런 포와 보르헤스, 애거사 크리스티와 니체, 레이먼드 챈들러와 사르트르 까지는 조금 안다고 술술 익혔네요..4장 부터 새로 알게된 사실과 지식이 읽는 재미에 불을 지펴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있어요. 글쓰기가 안되고 읽기는 가능해서 계속 들어와서 쭉 살펴보았는데 해박한 지식들에 감탄하는 중입니다..
저도 챈들러와 사르트르까지는 읽었는데 줄리아 크리스테바부터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전혀 명확한 설명이 없어서 물음표 투성이네요;; 그런데 참고할만한 reference도 주석에 나와있지 않아서;; 1. 주석에서 '메타(초월)의 위치를 상실한 현대 사유'라고 했는데 이건 현대 사유가 meta-analysis에 약하다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왜 '가치의 상대성'과 '형식의 허무함'을 극복하기 어려운 걸까요? 아예 meta-analysis를 못한다면 이런 상대적 가치나 허무한 형식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 2. 세미오틱과 쌩볼릭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어서 모르겠던 부분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따로 인터넷과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보통 세미오틱과 쌩볼릭에 대해 아는 독자가 많을까요? 이 책이 대상으로 생각한 독자들이 추리소설 독자가 아니라 철학 전공하신 분들인가 봅니다. 3. 유교적인 성숙의 지향점이 inside적이고 프랑스인의 문학적 상상력은 outsider적이라고 하는데 outside를 outsider로 잘못 쓴 건지.. introvert와 extrovert대신 inside/outside를 쓴 건지 outside (외부)대신 outsider (외부인)를 쓴 이유가 구체적으로 있는 건지 굳이 프랑스 철학이나 문학에서 갑자기 영어로 쓰는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4. 기호계 너머엔 아마 광기가 있을 것이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5. Expulsion을 제한과 속박을 벗어나는 그 어떤 과잉으로 읽어내고 문학의 시니피앙이야말로 이 과정을 드러내는 사건인 바라고 했는데, 무엇의 과잉을 의미하는 것이고, 문학의 시니피앙이 어떻게 expulsion의 과정을 드러내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질문을 던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 1. 이 부분은 추리소설이 ‘메타(초월)를 가능하게 한 은유를 의심하는 정신이다’라는 저자의 말에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은유를 의심하는 것이 현대 정신, 추리소설의 정신이란 뜻이겠죠. 2. 이 부분은 주석이 편집 과정에서 실종됐다고 백휴 작가님이 해명해주셨습니다. ^^; 3. 이건 저도 백휴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네요. 다만, 이런 용어의 경우 한국어로 풀어서 인사이드/ 아웃사이더 표기하면 상당히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그럴 경우 원어와 병기하기도 합니다. 4. 기호계 너머는 언어계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들로 가득차 있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5. 주어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 해석이 어려울 수 있는데요, Expulsion은 작가가 시니피앙을 통해 우리에게 그동안 강요되어 왔던 제한과 속박을 벗어나고자 하는 과잉을 의미한다, 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서 들어오시게 됐군요... 애쓰셨습니다. ㅎㅎ 계속 함께해주세요. 어려운 책이지만 마치 등산하듯이 차근차근 ‘정복(?)’하는 맛이 있는 책입니다. :-)
화제로 지정된 대화
@모임 예스마담님 해결되셔서 다행입니다. 기다렸습니다. 제가 요 며칠 바빠서 접속을 많이 못했는데요... ^^ 오늘 내일 우다다 올릴 예정입니다. 많은 의견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어서 정말 좋네요. 열공모드의 우리 장르살롱 정말 좋습니다. 프롤로그 - 6부 계속 의견 내주세요. :-)
<삶은 가면놀이다 : 애거사 크리스티와 니체> 파트는 크리스티 소설이 가진 기묘한 포인트?를 잘 짚어준 글이었다고 보입니다. 과거에의 집착, 연극적인 요소 등은 대중들이 그의 작품을 편하게 접하게 이끄는 요소였을테지만, 어쩌면 추리소설이라는 것의 형상을 고착화시키고 오해하게 만든 요소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과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후대에 끼친 영향이 다르다고 봅니다. 그들의 추리소설이 현대적으로 어떻게 변용되는지를 짚어보면, 코난 도일의 작품은 탐정과 주변 인물의 캐릭터성은 살아남아 다양한 무대에서 재창조되지만, 크리스티의 작품은 원작을 거의 그대로 리바이벌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후대의 재해석 양상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결국 크리스티의 소설이 '잘 지어진 무대이지만 무대에서만 생명을 가지는 허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한 편의 공연'이라는 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크리스티를 좋아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두 작가가 체스터턴과 크리스티니까요. 하지만 크리스티의 한계 또한 명확히 짚어볼 수 있어서 이 글이 좋았습니다.)
저도 크리스티를 좋아하지만.. 이번에 다시 애크로이드 등 크리스티 작품을 다시 읽으니 antisemitism이나 제국주의 등 예전에 못 봤던 그 당시 시대적 편견 등이 엿보이네요. 크리스티의 소설은 정말 연극 자체도 있지만 연극 무대로 그대로 옮겨놓아도 어을리는 작품이 많죠. 그런 좁은 세계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이런 걸 좋아하는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어요. 요즘도 코로나 판데믹의 영향인지 다시 cozy mystery나 심지어 fantasy도 cozy fantasy 등 cozy healing한 장르가 유행이라는데..
크리스티의 그 '연극적으로 완성된 모양새'가 후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재창조하는 데 큰 제약을 주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티의 탐정 캐릭터들이 현대 사회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글쎄요, 저는 쉽게 상상되지 않아요. 크리스티의 한계가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시대에서 벗어나면 생명력을 얻기 쉽지 않은? 그가 지은 장르의 구조와 문법은 탁월해서 그것들은 계속 후대에 계승 변주되지만, 그것과는 좀 맥락이 다른 것 같아요.
동의합니다. 크리스티의 문학은 일종의 타임 캡슐이란 면에서 백휴 작가님의 분석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노스탤지어’이자 ‘박제’인 것이죠. :-) 추리소설판 “라떼는 말이야...”라고나 할까.
결국 크리스티 작품을 새로이 창작하려고 해도 그 맛을 제대로 내려면 그 시대의 그 배경까지 가져와야 하니, 그게 새로운 창작을 하기 어려운 벽이 되는 듯합니다. 그 '라떼의 맛'(...)을 굳이 지금 다시 봐야 할 필요성을 찾지 못한다면(크리스티를 '재발견'하지 못한다면!), 크리스티 역시 탁월한 발상과 플롯, 기법만을 남기고 서서히 역사책 속에 박제되는 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물론 당대의 경쟁자들이 이미 박물관 수장고에 처박혀 잊힌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요?)
그것이 바로... 고전이죠... ㅎㅎㅎ 고전은 계속 리메이크 되고 부활합니다. 현대적으로 각색만 어려울 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아마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크리스티 여사의 몇몇 작품은 계속 생명력을 발휘할 거라 생각합니다. :-)
그런 라떼의 맛을 찾아가는 것 또한 어쩌면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cozy mystery, cozy fantasy 장르 들이 팬데믹 시대에 다시 유행했던 것 또한 사회적으로 힘겹고 '갇혀'있던 세계에서 '예전'에 대한 향수가 가장 진했던 때여서 그런 게 아닐까요? 각색이 어려워도 또 그런 시대물을 좋아하며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도 '경성'이나 기타 레트로 시대적 배경을 담은 소설이나 드라마 등이 인기를 받듯이..
옳소오오... 복고풍 유행은 계속 찾아옵니다. ㅎㅎㅎ
만약에 현대에 와서 코지 미스터리를 쓴다면, 좀 다르게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크리스티 여사 원작의 <쥐덫> 같은 연극은 기네스 기록을 갱신하면서 장기 공연 중이죠. 아직도 런던에서 공연 중일 걸요...
한계와 그 한계가 주는 매력. 그것이 크리스티 아닐까 합니다. :-)
<생존감각을 확보하는 법: 레이먼드 챈들러와 사르트르>에서는 초기 하드보일드의 거장 챈들러를 다루면서, 그의 작품 속 특이한 캐릭터들이 존재하는 법(?)을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드보일드가 좀 웃음벨(...?)에 가깝습니다. 하드보일드의 양식을 차용해 놀린 작품들을 너무 봐서, 오리지널을 접하는데 진지한 장면에서도 계속 키득거리게 되더라고요. 이 글에서 필립 말로의 캐릭터성을 분석하는 글을 따라가면서, 개인적으로는 하드보일드의 인물이 가진 불가해한 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웃사이더 같은 특성이 결국 고독한 늑대를 연상케 하는 영웅으로 비춰지게 하는 요소인 것도 같았어요. 하지만 이는 거꾸로, 코미디적으로 놀리기 쉬운 부분이 되기도 하죠. 이 글을 다 읽으며 필립 말로(혹은 챈들러)의 성격?이 어떻게 하드보일드 장르의 정형성을 확립했는지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이 형식성은 점점 폭력적이고 퇴폐적, 통속적인 소위 '싸구려 삼류'로 달려나갈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지요.(결국 사회파 미스터리가 퇴조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고요.) 하지만 세상 사물이 언제나 그렇듯, 긴 강의 원류는 그 시작이 명쾌하지 않고 모호한, 깨끗한 물입니다.
ㅎㅎㅎ 하드보일드가 그 안에 퐁당 빠져 있을 때는 따라서 한없이 진지해지지만 그 밖으로 나오면... 객기스럽고 오바 같은 면모가 없지 않아 있지요. 세상 허무했던 20대와 30대 초반 시절에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악인이란 가장 사회적 인간이다: 추리소설가가 된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 파트는 사실 이 책에서 가장 긴장하며 읽은 부분입니다. 이름만 지나가듯 들었을 뿐인, 사실상 전혀 모르는 분이니까요! 심지어 철학자라고? 그래도 절반은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보다 더 무섭게 다가올 수밖에요! 그러다가 어떤 분이 제게,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스파이였잖아요."라고 하더군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검색해 보니 냉전 시기에 공산권에서 서방에 보낸 스파이였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고 하더라고요.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알 필요도 없겠지만, 그 때문에 갑자기 까닭 모르게 거리감이 좀 좁혀졌습니다. 이언 플레밍이나 존 르 카레를 연상해서일까요? 이런 주절거림을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백휴 평론가님의 글은 잘 읽었지만 정작 이분의 소설들을 못 읽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입니다... 그가 자신의 사유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추리소설을 썼을 거라는 짐작은 들었습니다만... 가장 짧은 글이지만 가장 긴장한 부분이었음을 다시 말하며 대충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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