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해의 장르살롱] 13.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D-29
제 경우는 <불한당들의 세계사>로 보르헤스를 접했고 그가 남미 출신의 세계적인 대문호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요. 이번에 <추리소설로 철학하기>를 통해 포의 유지를 떠받든 작가라는 걸 알게 되니 매우 흥미롭습니다. 미스터리가 미스터리의 해결보다 크다는 주장도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3부를 읽으면서 거의 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삶이나 당시 시대상과 관련되서 수긍이 간다고 생각했는데 도중에 이야기가 갑자기 텍스트 개념이 작가의 위상과 결부되어왔다는 점에 주목시킨다. 이 이야기는 갑자기 왜 나온 것일까? 롤랑 바르트가 작품과 텍스트의 첨예한 대립을 기의와 기표의 대립에 상응시킨다는데 기의 (the signified)는 그 텍스트가 담고자 하는 의미 (여기선 작가가 작품을 쓴 동기나 목적)인데 반해 기표(the signifier)는 그 의미를 담은 vessel같은 텍스트 자체라면 필립 말로의 증거들은 천칭을 기울게 하는, 즉 어떤 해석(기의)을 이끌어내는 확률들의 합(기표)인 것이겠다. 보통 우리가 확실하고 절대적이라고 보는 증거는 결국 그 의미를 명작이거나 오락 소비 위주의 펄프라고 해석하기 나름인 텍스트처럼 상대적인 일개 확률로 변한다. 이 확률들의 합은 더 많은 의미를 이끌어내긴 하지만 낱낱이 보면 마치 포드주의의 분산된 톱니바퀴들처럼 각자 개개인으로서는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부품으로 전락한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런 상대적인 증거들은 절대적이고 확고한 등식이나 질서정연한 이분법에 등을 돌리고 자신만의 실존적 정체성을 찾아가게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필립 말로는 범인을 잡거나 벌하는 결말보다 가끔 좀 과하게 센티멘탈해보이고 즉흥적인 자신만의 법을 따라간다. 타락한 법의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타락시키려는 팜 파탈의 유혹을 뿌리치며 최소한의 자신만의 경계를 지키면서 실존하고자 하는 저항 속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필립 말로의 모습은 단순한 plaisir를 넘어선 jouissance를 지향한 것일까? 독자의 수동적 읽기를 파괴하고 어떤 비판이나 저항 또는 사고의 전복을 부르기에 아직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이전의 탐정이 전지전능한 정의의 수호자 역할을 맡는 고전적 추리소설에서는 크게 내려놓고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작품과 텍스트 (author와 writer), 기의와 기표, 쓰기와 읽기, 선과 악, 남과 여, 등 기존 질서와 권위의 전복을 통해 작가의 삶이 낳은 작품의 친자 관계 또한 거부하며 이와 관련되어 작가와 작품(주인공인 탐정)과의 상호작용 또는 교체 가능성을 암시하는 다음 파트의 폴 오스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필립 말로가 재즈같다면 폴 오스터는 좀더 Philip Glass같은 현대 음악으로 넘어가려고 했달까.. (실은 뒤팽 시리즈 말고 다른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서는 더 전위적인 느낌이 잘 살려있다. 폴 오스터의 단편들에서는 카프카나 에드거 앨런 포의 '군중 속의 사람'이나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챈들러의 재즈스러움은, 필립 말로의 허무와 닮았고, 곧 작품이 아닌 텍스트, 즉 writer로 넘어가게 한다는 논리가 신선했습니다.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은 20대 시절 읽었는데 이번 기회에 재독해보고 싶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모임 흥미로운 토론이 계속되고 있군요.^^ 프롤로그~ 6부 이야기는 이번주 내내 죽 합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갈수록 재미있어서 매일 한 부씩 읽으니 벌써 이번주 진도의 반을 읽었네요. 다음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psychoanalysis와 문학평론으로 유명한 줄 알았는데 추리소설작가인 건 처음 알았어요!! 아직 안 읽어본 추리소설이어서 스포일러에 당할까봐 걱정되기도 하지만.. 호기심이 생겨서 일단 읽어보겠습니다.
오 재미를 느끼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 잘 모르는 단어, 개념, 철학자나 학자 이름에 겁먹지 않고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곧 제 리뷰도 올리겠습니다. :-)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아직 책을 가 못 받으셨는지 아직 많이 글이 안 올라와서.. 어서 토론이 활발하게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어요~ 전 매 파트마다 질문이 엄청 많아졌는데;;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한 권을 여니 굴비 묶이듯 책들이 줄줄이 달려오더군요. 특히 읽고 싶은 책으로는 <<필립 말로>>(이룸),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헐리우드의 정신분석>>(한나래), <<리틀 시스터>>(북하우스), <<뉴욕 삼부작>>(웅진지식하우스) 였어요. 6부까지 읽으면서 이 책이 추리문학 안내서이자 사용법이자 지침서로 다가왔습니다. 1. 진리란 표면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와 보르헤스 [짝패]에서 낡은 저택이 갖는 공간속의 자아는 '통합된 데카르트적인 코기토가 아니라 끊임없이 기표 위를 미끄러져 내리는 자아, 다시 말해 분열된 자아'(p.34)라는 부분이 새로웠습니다. 이제 포의 추리문학을 읽을 예정인데 요 '짝패' 부분을 염두에 둘 것 같습니다. [포는 왜 억압되었는가?]에서 탐정 뒤팽이 '자기동일성을 잃고 시적 인간과 수학적 인간으로 분열된 데다 그 거울 이미지인 D장관으로 이중화'(p.45) 되어 있으며 어윈이 이 이중화로 포와 보르헤스의 소설을 '해결책을 알고 나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추리소설을 썼으며, 미스터리의 해결보다는 미스터리 자체에 중요성을 부여했다'(p.46)는 문장에 밑줄을 그을 수 밖에 없었어요. 해서 포의 뒤팽 3부작과 보르헤스의 단편 3편을 읽어보자는 마음이 일어났지요. 2. 삶은 가면놀이다 : 애거사 크리스티와 니체 음, 어렸을 때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고 스무살 언저리 이후론 추리소설에서 멀어졌던 기억을 꺼내본 시간이었습니다. 대학 입학하면서 사회과학, 정치철학 관련 책을 접하면서 추리소설에서 멀어졌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크리스티의 '안정성의 희구'(p.59)나 '훼손된 가족 질서의 회복과 사유재산의 옹호'(p.63) 라는 측면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어요. 3. 생존감각을 확보하는 법 : 레이먼드 챈들러와 사르트르 3번 챕터가 가장 좋았습니다. 국내 출판된 챈들러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요. 특히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사투]에서 ‘나는 누구이고, 왜 여기 있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을 하드보일드 추리소설과 1930년대 미국 재즈 음악을 연결시킨 부분에 크게 납득되었어요. 작년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진행한 행복학교 시리즈 중 <재즈> 강의를 수강하면서 재즈의 즉홍성과 자유를 살짝 맛보았는데 '당김음이 정체성의 혼란, 탕진, 파국의 이미지를 갖는다‘(p.97)는 말을 절로 알겠더라구요. 4. 악인이란 가장 사회적인 인간이다 : 추리소설가가 된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크리스테바는 엑스펄션을 ‘가족국가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대립으로 좁혀 읽지 않고 제한과 속박을 벗어나는 그 어떤 과잉으로 읽어낸다. 문학의 시니피앙이야말로 이 과정을 드러내는 사건인바, 시니피앙(기표)과 시니피에(기의)의 관계에 개입하는, 다시 말해 합목적성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장악하려는 정치와 종교의 이데올로기성을 비판한다.'(p.113) 는 대목에서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가 떠올랐어요. 이 책의 원제 La fête de l’insignifiance가 밝히는 바, 기표되지 않은 것들은 차별과 배제, 혐오를 넘어서므로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쿤데라의 메세지가 중첩되었거든요. 5. 탐정은 기호학자다 : 움베르토 에코가 앓는 형이상학적 질병 <<장미의 이름>>을 읽을 때 밤을 샜던 기억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5번 챕터에서의 푸코는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후속작인 <<전날의 섬>>이나 <<푸코의 진자>>을 사놓고도 완독하지 못했었는데, 후속작들이 이전 작품의 중언부언같았거든요. [푸코의 진자를 어디에 걸어야 하는가]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추리소설로 분류되는 <<제49호 품목의 경매>>의 저자인 토머스 핀천은 런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된 셜록 홈스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비판하면서, 그것은 사건 해결이라는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보이는 장면 너머에서 발품을 팔며 숱한 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에너지의 낭비(그래야 녹슬지 않는 지식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엔트로피의 관점에선 하나의 질서를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무질서를 양산하는)라는 논점을 들이댄다. 토머스 핀천은 이 반론을 에코의 이론에도 들이댈 수 있지 않을까?’(p.143) 대목은 괜히 통쾌해서 기분이 좋더라구요. 6. 미로 속에서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중요하지 않다 : 형이상학적 추리소설,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 ‘추리소설 애독자라면 다른 작품을 다 제쳐두고서라도 <<뉴욕 삼부작>>만큼은 반드시 읽어볼 일이다. 이 작품은 강변에서 풍경을 감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높은 산꼭대기에서 각각의 샘들이 발원해 지류를 이루고 한 줄기 큰 강으로 합류했다가 바다에 이르는, 추리소설의 정신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감동적인 뷰를 제공한다.’(p.150) 에 신나게 밑줄을 죽죽 그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책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보니^^ 형이상학적 추리소설이라고 권하면 달려들 주변 지인들도 떠올랐구요. 추리소설, 추리문학에 무심했는데, 급격하게 매혹된 독서였어요. 감사합니다.
무의미의 축제밀란 쿤데라 장편소설. 2000년 <향수>가 스페인에서 출간된 이후 14년 만의 소설이다. 첫 소설 <농담>에서 시작되어, <참을 수 없는 존재>에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그의 문학 세계는 <무의미의 축제>에서 그 정점을 이루며 '쿤데라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에러 메시지 뜨는걸 못 잡네요. 새로 가입해서 들어왔는데 뭘 여찌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예스마담 님? 그믐이 앱이 없어서 모바일이나 노트북을 껐다가 다시 켜보시면 돼요. 잘 안되시면 1대1 문의로 남겨 보세요.
저도 에러가 떠서 다시 로그인해봤는데 그렇군요
2부는 익숙한 크리스티 소설이라 공감이 많이 갓습니다. 3부의 경우는 작품과 텍스트는 연동체라는 거를 느꼇습니다.
연동제라는 의미일까요? 저는 텍스트가 수동적 고정적이라면 작품은 거기에서 더 다양하고 자유롭게 독자의 능동적이고 개별적인 해석을 통해 진화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연동한다고 느끼셨다고 하니 어떻게 보신 건지 궁금해지네요.
저도 2부는 막 공감하며 읽었고, 3부에서 챈들러가 어써가 아닌 롸이터라는 분석에 무릎을 탁하고 쳤습니다.
인식의 확장이란 결국 그 사회의 구체적인 맥락의 경험으로부터 생산된 신조어를 통해 사회현상을 달리 보는 시각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 p.9 '프롤로그' 중, 백휴 지음
며칠 동안 메일 보내고 다시 가입도 두번 했는뎌 제 이름 찾느라 시간 좀 걸렸는데 왠지 또 잘못될것 같은 불안감이..
해결되셨군요. 다행입니다^^
예스로 가입했다가 예마담으로 다시 가입했다가 쇼를 했어요..이상하게 내가 아닌것 같고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쓴 느낌이라..전 종종 에러 떠요..
에고 고생하셨네요.. 이젠 잘 되면 좋겠네요. 환영합니다. 예스마담님은 4장까지 읽으신 것 같은데 1~4장에 대해 각각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전 특히 4장에 대한 묻고 토론하고 싶은 게 많아졌어요. 비잔틴 살인사건과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다른 에세이들을 구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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