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해의 장르살롱] 13.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D-29
오 저도 동의합니다. 많은 배경지식이 있다면 소설을 쓰는 데 유리하다고 봅니다. 그때그때 자료조사를 하는 것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기본기'가 이미 있는 상태라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역사적 배경 지식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추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좋겠지요. 이 모든 걸 감안하면 결론은 공부, 공부, 공부 뿐이네요. (조금 시무룩) 저는 북클럽 2개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제 단골책방에서 하는 북살롱이고요, 나머지 하나가 바로 이 장르살롱입니다. 이 두 개의 북클럽이야말로 제가 계속 책을 읽게 만드는 독서메이트네요. :-) 앞으로 장르살롱 선정도서는 장르소설 뿐만 아니라 이번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책처럼 장르소설을 읽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도 같이 선정할 계힉입니다. 김정환 님이 장르살롱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기자 출신이라고 하시니 앞으로 써주실 소설이 무척 기대가 되네요. 추협 작가님들 중에 김세화 작가님이란 분이 계신데 방송국 기자 출신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에 최재봉의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를 읽었는데 역시 기자 30년의 내공이 느껴지는 재밌는 평론집이었어요..해박한 지식은 역시 방대한 독서와 글쓰기, 철학이 아닌가 봅니다.
1장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는 위기를 비극을 암시하죠
검은 고양이가 예로부터 비극과 위기를 암시하는 걸로 유명하죠. 애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고전 명작 중의 명작이자 공포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실제 검은 고양이는 귀엽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전 특히 노란 눈을 한 검은 고양이가 예쁘더라고요. ^^
서문과 1부를 읽었는데 그나마 많이 읽은 에드거 앨런 포와 보르헤스인데도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제가 라캉 등 현대철학에 깜깜눈이어서 그런지.. 실은 여기 나온 해외추리소설은 꽤 읽어본 것인데 국내 추리소설작가들은 잘 모르고.. 거기다 이 책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언급되는 배경지식같은 문학비평가나 철학가들의 기초적 개념들도 모르고.. 과연 끝까지 완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존 어윈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가 포와 보르헤스에 대해 말했던 게 갑자기 나오기도 하고.. 갑자기 라캉의 기표개념이 나오거나 정신분석학과 위상수학이 무관하지 않다는 등 배경지식에 대한 설명이 없이 결론을 내리는 것 같아서 처음에 좀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포나 보르헤스의 이중적 자아 (짝패) 개념이나 시적이면서도 수학적인 면과 솔루션이 반드시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점 등 두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진 점은 수긍가는 점이 많았습니다. 안그래도 포의 뒤팽이 처음 화자와 만났을 때 그의 생각을 유추해내는 부분도 셜록이 왓슨과 만나는 첫 장면처럼 그 정답보다는 그 정답에 이르는 과정 속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재미있었죠. 그리고 그렇게 그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뒤팽이 화자의 입장에 들어가야하는 점 등 (D장관과의 사건에서도 실제로 탐정인 자신이 도둑의 입장이 되었기도 하구요.) 탐정과 범인의 동일화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커튼 등에서도 평상시의 추리 전개보다도 더 극적인 반전 요소가 가미되기도 해서 어찌 보면 정말 극한의 수단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모든 인간적 사유에서 응용되는 것이 바로 그런 거울 뉴런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생각을 유추하고 반추해 보는 방법이 아닐까 하네요. 어찌보면 포나 보르헤스는 표면적인 미스테리보다는 그 미스테리 속에서 범인과 탐정이 생각을 하는 과정 자체가 미스테리이자 거울 속에 반영하고 싶은 자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감합니다. 추리소설은 탐정과 범인이 벌이는 대결이나, 범인이 던지는 수수께끼만이 미스터리가 아니라 수수께끼의 해결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거대한 미스터리가 되게 할 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포의 <도둑 맞은 편지>의 반전과 결말이 모두 공개돼 있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그 소실을 읽는다는 사실이 그 점을 반증합니다.
그 짧은 프롤로그 읽는데 엄청 오래걸렸어요 ㅎㅎ 아직 철학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게 많아요. 이번 기회에 다른 분들 이야기도 잘 들어보고 많이 배우고 싶어요
프롤로그가 짧은 듯하지만 이해하면서 읽으려니 긴 느낌이었죠. :-)
3쇄라니 축하할 일이군요.
2부를 읽었습니다. 초등학생때부터 워낙 많이 읽어온 크리스티여서 여기 나온 소설 중 가장 친숙하지만 그만큼 보통 너무 가볍고 신속히 소비되었다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요. 물론 제가 보기에는 제국주의와 남성적 영웅에서 벗어나서 미스 마플이나 포와로로 넘어간 점은 맞지만 Hercules에서 연상되는 Heracles가 보통 남성적인 근육맨으로 연상되는 걸 생각해보면 오히려 크리스티 작품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자조적 영국식 유머같고 Hercules Poirot의 이름은 다른 곳에서 착안되었다는 설도 많은데 죄송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백휴 작가님이 여기서 '대지'와의 연상 등 포와로의 이름에 대해 좀 너무 과하게 '꿈보다 해몽'식으로 해석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면과 연극성 부르주아적 안정추구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지적을 받았던 부분인데 이것을 니체의 원본 따위는 없다는 표면의 가면보다도 더 깊은 곳에도 구축된 연극 무대가 펼쳐진 그녀의 작품 속에서는 진실이 없는 것 자체보다는 진실을 진정 알고 싶은지에 대해 자문하는 (제 생각에도 그녀는 진실보다는 자신의 심신의 안정을 택할 듯 합니다. 그녀 자신도 냉소적이고 자조적으로 그런 식으로 자신과 자기 작품과의 관계를 인정하기도 했구요. 제가 갖고 있는 책에서 그녀는 포와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죠: We are friends and partners. I am beholden to him financially. 또한 여기서 언급된 로저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에서 포와로는 그에게 탐정 조사를 의뢰한 이에게 이렇게 반문합니다: Are you quite sure it is the truth we want? 여기서 you가 we로 바뀐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가면 밑에 숨어있든 애초에 없었든 간에 우리는 과연 진실을 알고 싶은 건지? 그게 더 중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인상적인 건 밀실 트릭이나 다른 조작된 세계나 범인이 누구인지 보다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끝없는 관심이었습니다. 니체의 Thus Spake Zarathustra에서도 과연 짜라투스트라를 따라온 그의 제자들이 실제로 진실에 관심 있는지 아니면 또다시 머리를 땅구멍에 박고 동굴 속에서 나오길 거부하는 건지 반문하게 되는데 냉소적이라고도 사이다같다고도 할 수 있는 그녀의 글 속에는 그런 질문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챕터를 읽을 때 아래 링크에 있는 니체의 짧은 에세이 중 하나 On Truth and Lies in a Nonmoral Sense (Über Wahrheit und Lüge im aussermoralischen Sinne)을 참고했습니다. https://jpcatholic.edu/NCUpdf/Nietzsche.pdf
와우 이러한 열정은...!
@borumis 님의 짧지 않지만 레퍼런스를 통해 명쾌하게 펼쳐보이신 이야기 덕분에 저의 책을 읽는 자세를 고쳐잡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읽어나가면서 함께 나눠주실 인사이트가 사뭇 기대됩니다! 🥹
저도 덕분에 단순히 재미있게 읽었던 추리소설도 철학자들의 눈으로 새롭게 읽어보게 되네요. 그런데 모르는 작가도 많고 작가들의 전작을 읽어본 것은 아니라서 쉽게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공부해보고 고민해보려구요..^^
보통은 독서 중에 밑줄치기를 하지 않는 저인데, 연필을 꺼내들었습니다. 공부모드, 오랜만에 느껴봅니다. ㅎㅎ
저도 줄을 긋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계속 밑줄모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이 책의 매력이 바로 그 지점이지요. 재미로 읽어왔던 추리소설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는 것...!
헨리님 계속 함께해주세요. :-)
날카로운 의견 개진에 감사드립니다. 살롱은 다양한 의견과 이견 제시를 늘 환영합니다. :-) 우리가 과연 진실을 알고 싶은가? 이 명제에 관해선 전 이렇게 답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가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어떤 미스터리는 진실을 덮어버리는 시도 자체로 미스터리가 되기도 합니다. 진실을 밝히는 게 아니라요. 저에겐 제주 4.3이 그러한 미스터리이지요. 무려 70년 동안이나 진실을 덮으려고 시도한 거대한 제노사이드이니까요...
간단하게 감상평(혹은 저의 오독)을 조금씩 써 보겠습니다. '진리란 표면에서 발견되는 것이다'에서 다룬 두 작가, 에드가 앨런 포와 보르헤스는 여러모로 반가운 조합이었습니다. 대학생 때 보르헤스에 푹 빠져서 그의 책을 계속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는... 제 소설에서 지분을 차지하는 분이셔서...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며 장르문학의 아버지이자 추리문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포의 작품 속에, 뜻밖에 지금도 첨예하게 논쟁이 붙을 법한 장르의 대한 깊은 고찰(특히 미스터리의 본질과 '합리성'에 관한 사유)이 담겨 있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보르헤스는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지만 그가 장르소설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장르물을 더러 썼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지요. 저는 그의 추리물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의 추리물에 포의 영향력이 이정도로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비로소 그의 작품이 보이는 기이한 현실 혹은 사실적인 비현실의 양상이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알았고요.(일부러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습니다.) 두 작가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미스터리 그 자체를 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지적했다시피 미스터리의 해결은 미스터리보다 덜 인상적이지요.(포의 탐정은 성공하지만, 보르헤스의 탐정들은 실패하거나 그걸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인 결말을 맞는 게 문득 떠올랐습니다. 두 작가의 성향 혹은 시대적 환경의 차이?) 생각이 잘 정리되기보다는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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