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

D-29
찬쉐의 <격정 세계>는 북클럽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네요. 찬쉐는 주변 비평가들의 추천을 많이 받아서 한 권 두 권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확확 읽게 되지는 않지만 읽을 때마다 아 정말 소설 잘 쓴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찬쉐가 쓴 인물들의 시선대로 세상을 보고 있는 그 순간이 저한테는 순도 높은 자유를 체감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최근에 읽은 건 <신세기 사랑 이야기>였어요. 이번 소설은 좀 더 '독자친화적'이라는 평가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소설일지 많이 궁금하네요. 저는 일단 이 책 구입했습니다!
<귀신들의 땅>은 근래 민음사에서 출간된 해외 소설 중 가장 인기가 많아요. 지운 편집자님 이야기처럼 한국과 대만이 공유하는 비슷한 역사적 경험, 귀신이라는 소재로 일종의 '한'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너무 알레고리적이거나 혹은 오컬트적으로 풀어내지 않는 적절한 은유, 미스터리한 주인공의 사연 등등이 대만 소설이라는 사실상 '불리한 조건 '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친근하다'는 느낌도 받았는데, 해외 소설 읽으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좋기도 했어요.
<격정 세계>와 <귀신들의 땅> 모두 앞 부분을 조금 읽어봤는데, 격정 세계는 문장들이 조금 더 통통 튀면서 다채로운 느낌을 줘서 재미있고 <귀신들의 땅>은 단단한 느낌을 주네요. 뒤에 일어날 일들이 궁금한 느낌이고 서사 같은 것이 굉장히 강렬할 것 같은 인상이네요... 일단 첫 느낌으로는 두 권 다 함께 읽으면 아주 재밌을 것 같고 할 이야기도 많을 것 같아요. 특히 <격정 세계>는 초반부터 샤오마가 책을 읽으며 "난 점점 똑똑해지고 있어"라고 말하는 게 너무 귀엽고 좋네요. 책을 읽어서 똑똑해지고 더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게 성장하게 되고... 이런 것에 대한 뭔가 분홍빛 환상 같은 게 감돌고 있는 것 같은데 보통 이런 건 뒤에 가면 와장창 박살나게 되던데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요...ㅎㅎ
안녕하세요! 모두들 잘 지내셨나요? 말씀하신 <귀신들의 땅>은 저도 읽고 있는 책인데 아직 초반부이긴 하지만 정말 흥미로워요. 타이완 소설을 읽고 있는데 왜 그렇게까지 낯선 기분이 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운 선생님 말씀처럼 비극적인 역사 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미신이나 고유한 풍습같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점도 이 소설을 비교적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쭉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라 선생님들과 이야기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귀신들의 땅>에 더욱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언급하셨던 영화 <파묘>의 영향이 좀 있을 것 같아요. 오컬트... 무섭지만 자꾸 보고싶어지는 장르잖아요. 이 책과 함께 읽고 있는 책이 이사구 작가의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인데요. 연작소설집이라서 우리의 대상작은 안 되겠지만,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 오컬트 소설입니다. 원래 이상했던 직장 상사가 갑자기 착해진 것을 수상하게 여겼는데, 알고보니 악귀가 씌인 것이라는 설정이 귀여우면서도 웃겼어요ㅋㅋ 보통 악귀가 씌인다고 하면 더 악독해지거나 할 것 같은데 그 반대일 수 있다는 게 재밌었고요. 생각해 보면 제가 이런 K-오컬트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보건교사 안은영>은 귀엽게 그려졌지만 비슷한 부류인 것 같고요. 어떤 면에서는 한국적인 요소들이 가장 잘 사는 느낌이에요. 그런 점에서 <프라이스 킹!!!>도 엄청 궁금해집니다! 찬쉐의 <격정 세계>도 읽어보고 싶어요! 저번 계절에서 <신세기 사랑 이야기>가 언급된 후로 혼자 읽어 보았었는데요. 최근에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들을 만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사랑'이 찬쉐의 소설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은데, <격정 세계>는 또 어떤 사랑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을지 궁금해요. 북클럽에서의 사랑 이야기라니... 궁금하지만 왠지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한 건 저뿐일까요 = . =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소심하고 평범한 디자이너와 신세대 무속인이라는 이색적인 조합의 콤비가 활약하는 코믹 퇴마물. 작가 이사구의 데뷔작으로,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한 악귀라는 존재와 사사건건 맞닥뜨리는 디자이너의 기구한 생활기가 유쾌하게 그려지는 연작 소설집이다.
찬쉐의 소설이 한 번에 확확 읽히지는 않지만 읽을 때마다 정말 잘 쓴다, 라는 감상을 불러일으킨다는 혜진 선생님 말씀에 동의해요. 저도 매우 느리게 진도를 나가고 있는데 봤던 페이지를 다시 보면 새롭게 감탄하게 되는 부분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 같아요.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이랄지, 대화를 만들어가는 구조랄지 ... 그 ‘잘 쓴’ 선택들이 모여서 소설 속 세계를 마치 실체가 있는 무엇처럼 확실하게 세워놓고 시작하는 느낌이랄까요? <<황니가>>도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런 지점이 몰입도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찬쉐는 확실히 제게 신뢰할만한 작가인 것 같아요. <<격정세계>>가 어딘가 귀엽다는 (...) 보원 선생님 말씀 보고는 웃었네요. 저도 샤오마와 샤오마를 바라보는 샤오쌍의 혼잣말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간혹 등장하는 그의 “아휴,” 가 너무 좋아요. ㅎㅎ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 말씀 들어보니 (<파묘>는 아직 안 봤고, 조금 자신이 없지만...^^ 다들 <파묘> 상영관 괴담 들으셨는지...) <<프라이스 킹!!!>>도 당장 읽어보고 싶고요.
그나저나 <<오렌지만이 과일이 아니다>>라는 장편의 재출간 소식을 보고 이 책도 대상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가져와봤습니다. (재출간 도서도 대상이 된다면요!) 이미 읽어보신 선생님들도 많겠지만... 잉글랜드 작가인 지넷 윈터슨의 데뷔작이라는 점, 반(半)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 더불어 “성정체성을 깨닫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한 소녀의 아름답고 당돌한 이야기”라는 점 모두가 지금 우리에게 여러모로 흥미로운 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처음 읽는 소설이고, 소개를 위해 앞 부분만 좀 읽어보았는데요. ‘창세기’라는 제목의 1부는 다음의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레슬링을 즐겨 보았고, 어머니는 레슬링하기를 좋아했다. 무엇과 레슬링을 벌이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홍코너 선수였고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 어머니에게는 오로지 친구 아니면 적이 있을 뿐이었다. 적들은 (다양한 모습의) 사탄, 옆집 (여러가지 형태의) 섹스, 민달팽이 친구들은 하느님, 우리 집 강아지, 마지 이모, 샬럿 브론테의 소설들, 민달팽이 퇴치용 알약” 장편소설은 대개 그 특성 상, 적어도 한 명의 인물에 대해서라면 그가 속한 가계도를 보여주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저는 때때로 작가가 주요 인물의 부모 이야기를 어떻게 펼치는가에 따라 그 장편을 계속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저만 그런가요...) 우선 시작부터가 서술자의 부모를 매우 궁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소설처럼 다가옵니다. 사탄을 적으로, 샬럿 브론테의 소설을 친구로 삼는 레슬러 어머니라... 게다가 그 어머니 곁에서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해나가는 십대 소녀의 이야기라니 매우 궁금해집니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성정체성을 깨닫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한 소녀의 아름답고 당돌한 이야기. 예민한 십대 소녀가 보수적인 관습에 맞서 싸우는 반(半)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지넷 윈터슨의 데뷔작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가 민음사에서 새로운 장정으로 재출간되었다.
파묘 상영관 괴담 뭔가요? 밤에 자꾸 귀신 생각날 것 같아서 아직 파묘 안 봤는데 괴담 넘 궁금합니다! 아직은 기사에서 '묘벤저스'란 말 보고 혼자 너무 웃었던 기억만 있네요. 작년부터 올해까지 무속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소설을 더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은데, 몇몇 사례들로 경향을 말하는 건 좀 억지스럽지만 확실히 대세적 현상인 것 같긴 해요. 어쩌다 유튜브에서 무속인 오디션 콘텐츠도 본 적 있는데, 그래서인지 김홍 소설 <프라이스킹>도 조금 관심이 가네요. (특히 장편)소설 읽을 때 제가 가장 재미있어하는 게 직업적 디테일이거든요. 앞부분 60쪽 정도 읽었는데, 직업으로서의 무속인을 표현한 부분들이 흥미롭더라고요. 김홍의 '아무 말' 바이브도 좀 재밌었고요.
작년에 지넷 윈터슨의 <프랑키스슈타인>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그 작가의 출발이었던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가 다시 나오는 게 더 반갑더라고요. 자신을 가장 억압했던 바로 그 세계관을 소설의 형식으로 삼아 썼다는 게 저한테는 뭐랄까, 기억에 남을 만큼 멋있었요. 아, 세상에 비수를 꽂을 땐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생각할 만큼. 언젠가 작가의 전작을 읽게 된다면 지넷 윈터슨을 읽고 싶어요. 오렌지 때 작가가 쓴 것들이 계속 발전하고 깊어지면서 근작인 <프랑키스슈타인>까지 온 것 같은데, 그 사이의 작품들을 제대로 못 읽어서 감동을 못다 느낀 듯한 아쉬움도 있었거든요.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들에 잠시 파묻혀 있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왔네요. 오늘 아침 한국일보에서 나온 마르케스 신작 관련 기사를 보고 문득 여러분들 생각이 궁금해졌어요. 마르케스의 유고작 <8월에 만나요>에 대한 얘기인데요, 출판하지 말라는 마르케스의 의사에 반해 출간된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쪽에서는 작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고 (그 입장 안에는 이 소설의 수준이 과히 좋지 않다는 의견도 포함된 듯합니다.) 반대쪽에서는 마르케스의 소설이란 이미 마르케스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입장도 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처음엔, 이 소설을 쓸 당시의 마르케스가 기억상실증이 심했단 얘기가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출간하지 말란 얘기를 한 거라, 자녀들이 무리해서 책을 낸 거 아닌가, 내가 그런 부탁을 받았다면 절대 출간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었는데요, 반대 의견들을 들어보니 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처음엔 별로 읽고자 하는 생각이 강하지 않았는데 이런 '이슈'가 있으니 급, 읽고 싶어져서 오늘밤 한번 읽어 보려 합니다. 마침 분량도 짧더라고요.
8월에 만나요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유고 소설 『8월에 만나요』가 그의 사후 10주기인 2024년 3월 6일(마르케스의 생일)에 전 세계 동시 출간된다. 이 책은 규범이나 구속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마주하는 여성에게 바치는 마르케스적 찬가다.
<8월에 만나요>가 마르케스의 의사에 반해 출간된 거였군요.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에요. 사실 마르케스뿐만 아니라, 이미 문학사에서는 작가의 의사와 상관없이 출간된 작품들(아마 대부분 유고겠죠)이 워낙 많기도 하고, 또 그 중에는 문학사에서 워낙 중요한 작품들도 있어서 뭐라 딱 잘라 말하기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자신이 쓴 원고를 모두 불태워 없애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던 카프카의 유언이 그대로 지켜졌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독자로서 너무 아찔해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전세계인의 애독서가 된 <안네의 일기>도, 만일 내가 안네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참 아찔한 일이고요… 좀 벗어난 얘기일 수 있는데, “마르케스의 소설의 마르케스 자신만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로알드 달 소설의 일부 표현을 수정하는 것을 두고 영국 내에서 일었던 여러 논란이 생각나기도 하더라고요. 최근 로알드달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출판사에서 로알드 달 소설 속 신체 묘사, 정신 건강, 젠더, 인종 등과 관련한 수백가지 표현을 수정했는데요. 예를 들어 ‘마틸다’에서 악역 선생을 표현하는 ‘가장 무서운 여성(female)’을 생물학적 여성을 뜻하는 ‘피메일’ 대신 ‘우먼(woman)’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는 소인족 움파룸파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아주 작은(tiny)’에서 ‘작은(small)’으로, 성별도 ‘남자(men)’에서 중성적 표현인 ‘사람(people)’으로 바꿨다고 해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에선 주인공 미스터 폭스의 아들들을 딸들로 바꿨고, ‘이중 턱(double chin)’처럼 신체를 묘사하는 단어, 작가가 즐겨 사용한 ‘미친(crazy·mad)’이란 수식어는 삭제됐고요. 원작에 없던 문장이 추가되기도 했는데 ‘더 위치스’에선 “마녀들이 가발을 쓰는 이유는 대머리이기 때문”이라는 부분에 “여자들이 가발을 쓰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고, 전혀 잘못된 게 아니다”라는 설명을 붙였어요. 이걸 두고 살만 루슈디는 “터무니없는 검열”이라고 했고 심지어는 총리실이랑 커밀라 왕비까지 수정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 영국 사회 전체로 논쟁이 번졌는데, 사실 이게 영국 사회만의 고민은 아닐 거고요. (좀 더 찾아보니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도 개정판을 내며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가 모두 삭제됐고, 특정 인종을 연상시키는 ‘사랑스러운 하얀 치아’나 ‘검은 대리석’ ‘인디언 기질’ 같은 표현도 삭제됐다고 하더라고요. 이언 플레밍 007 시리즈도 인종차별적 표현을 고친 개정판을 출간한다고 하고요) 과거의 예술 작품을 수정하는 건 검열일까 정치적 올바름일까… 민감한 주제이지만 다같이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서 얘기를 꺼내봅니다. ㅎㅎ
혜진 님께서 거론해주신 주제에 쉬운 답을 내리긴 어렵지만, 다소 원론적이긴 해도 저작자의 의사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게 결국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범 님 말씀처럼 사후에 작가 동의 없이 출간된 작품과 사적 기록이 문학사에는 참 많지만, 발표 전 작가가 사망하게 돼 부득이하게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원고라면 모를까 작가 본인이 출간을 극구 반대한 작품을 굳이굳이 온 세상 사람들 앞에 공개해야 할까 싶기는 해요ㅎㅎ(라고 말하면서 카프카 일기 재밌게 읽은 사람) 하물며 태작에 불과한 작품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한데, 물론 작품에 대한 평가를 세상에 내놓기 전에 극소수의 관계자들이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는 있겠죠. 한편 한 작가의 온 생애를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치는 분들께는 미공개 작품이나 사적 기록이 전기적 연구의 귀중한 단서나 근거가 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작가가 사인(私人)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영역은 없는지, 작가를 공인으로 만드는 기준선은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작가에겐 일종의 상징적 부관참시가 될 수 있다 보니 이 문제에 있어서는 이성적/논리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인간적 연민의 감정이 앞서네요ㅎㅎ 소범 님께서 제기해주신 문제와 관련해서는 루슈디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작품에 담긴 차별적 인식이나 표현을 들추고 지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곤 결코 보지 않지만(그러나 그런 지적만으로 소설 작품에 대한 감상을 다했다고 자족하는 독자 문화가 일각에서 형성된 듯한 체감도 있는데, 이런 풍토가 그리 바람직한 것 같진 않네요ㅎㅎ), 이런 문제는 작품 외부의 장에서 활발히 지적하고 논의하면 될 문제이지 작품 자체에 직접 가위질을 하는 건 온당치 않은 것 같아요. 정 필요하다면 주석판 등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원문 자체를 수정하는 건 그 작품에 담긴 차별적 인식 및 표현의 역사적 맥락을 지우는 것이기도 해서 조치의 의도와 무관하게 오히려 작가의 혐오표현 이력을 세탁해주거나 작품이 생산된 시대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본래 현실과 다르게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역기능도 함께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논란의 대상이 된 로알드 달의 경우는 주독자층이 어린이들이다 보니 이 정도의 첨예한 이슈에 대한 고려는 일단 차치해둔 채 소박한(혹은 안이한) 교육적 차원에서 취해진 조치 같지만요! 2020년 미국에서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두고 비슷한 논란이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작품에 담긴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 KKK에 대한 미화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충분히 문제적이죠. 저는 이에 대한 비판과 지적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작품의 유통과 방영을 금지하는 데는 반대하는 편이에요.(아무리 도널드 트럼프 같은 작자들이 지극히 백인 우월주의적인 맥락에서, 향수 어린 시선으로 이 작품을 떠받든다고 해도 말이죠.) 실제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바함사]를 스트리밍하고 있던 HBO 맥스에서는 이 작품이 인종차별적 인식과 폭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데 책임을 통감하고 서비스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고 하는데요. 이 결정을 두고도 논란이 이어졌고, 결국 작품의 차별적 측면에 대한 해설 문구를 영화 앞부분에 수록해 스트리밍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HBO 맥스가 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지 않다 보니 해당 버전을 직접 확인해보진 못했습니다만, 전해지는 설명을 근거로 판단하자면 저는 HBO 맥스가 취한 두 번째 조치가 꽤 적절했다고 보는 편입니다.
마르케스가 출판하지 말라고 했던 책이 유족에 의해 출간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 말라고 했으면 안 했어도 좋았겠지만 했으면 또 어쩔 수 없는 거고 이름을 널리 떨친 작가의 피해갈 수 없는 팔자 같은 것이 아닐까? 정도의... 물론 작가의 모든 원고가 공개되어야하는 건 아니고 당사자의 뜻이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게 맞긴 하죠. 게다가 작가라는 건 쓴 것만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으로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건데, 미공개 원고를 공개하는 건 그런 구축의 의도성을 꽤 많이 훼손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다만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유족 입장에서는 이것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미공개 원고라고 했지만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있는 작품인 것 같고, 그렇다면 그 원고를 그냥 불태운다든가 아무튼 세상에서 아예 소멸시키는 선택지는 유족에게 없었을 것 같고요. 뭔가 보존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미공개상태로 오랜 기간 원고를 보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 같아서요. 절대 확신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연구자들 등 몇몇 소수만 열람이 가능한 형태로 어딘가에 공개하는 것도 굉장히 어색하고, 열람 가능한 사람들의 범위를 정하는 것도 난해할 것 같고요. 그것을 어떻게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어떤 루트론가 새어나가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이건 뭔가 그것을 왜 공개했느냐라는 질문보다는... 그게 공개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더 재미있는 지점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단순히 관리 방법상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고다르가 아우슈비츠의 이미지는 반드시 존재할 거라고 단언했던 적이 있거든요. 저는 고다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우슈비츠는 어떤 이미지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강한 금지와 통제가 작동하던 곳이지만, 그럼에도 이미지 스스로가 가진... 재현되려는, 혹은 기록하고 다른 어딘가로 전해고 보여지려고 하는 본성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고려했을 때 어딘가에는 아우슈비츠의 이미지도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라고 받아들였었거든요. 이와 조금 다른 맥락일 수는 있지만 히토슈타이얼도 예전에는 유명해지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많은 사람들의 꿈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지금은 1초만이라도 재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 더더욱 불가능한 꿈처럼 여겨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래서 특히 마르케스 같은 거장의 경우 그가 쓴 텍스트라는 건 결국 어딘가로 가서 읽히려는 힘이라고 해야할지, 그런 것을 단순히 금지하고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유족들이 작가의 뜻을 거슬러 공개한 것도 맞지만, 어쩌면 텍스트의 그런 힘이 유족들로 하여금 자신을 공개하게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족들이란 건 텍스트가 자신을 퍼뜨리는 하나의 경로였던 거고, 유족들 입장에서도 어차피 어떻게든 공개될 텍스트라면 지금과 같은 방법이 그나마 관리나 통제에 용이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ㅎㅎ
ㅎㅎ아무래도 제 접근은 원론적인 데 머무르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보원 님께서 문제틀을 흥미롭게 비틀어주신 덕분에 더 생각해보게 되네요! 저는 관심 작품이 하나 더 있어서 공유드려봐요. 2004년 퓰리처상 수상작 『알려진 세계』가 지난 1월 출간됐는데, 1인 출판사이기도 하고 인종 문제 자체가 한국 독자들의 대중적 관심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아서인지 대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더라고요. 미국에서는 노예제가 법적으로 1960년까지 남아 있었는데, 이 소설은 1955년이라는 과도기를 배경으로 “서른세 명의 노예를 거느린 노예 출신의 흑인 농장주 헨리 타운센드의 요절을 계기로 그의 가족, 노예, 지인 들이 맞는 변화”를 다루고 있다고 하네요. 2000년 이후의 영미권 문학을 논할 때 주요 매체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라고 하니 궁금증이 생깁니다! 출판사 섬과달은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소설집』으로 처음 알았던 것 같은데, 10년 이상 편집자로 일한 이력이 있으신 대표 이승한 님께서 편집, 디자인, 번역까지 모두 홀로 해내고 계시더라고요.
알려진 세계 - 2004년 퓰리처상 수상작미국 소설가 에드워드 P. 존스는 흑인 문학, 나아가 미국 소설을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가다. 이 책 『알려진 세계』가 나왔을 때 미국의 언론들은 앞서 같은 계열의 작품을 쓴 윌리엄 포크너, 토니 모리슨 등과 견주며 극찬을 퍼부었다.
잠시 나가있는(?)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네요 ...마르케스의 원치 않은 출간에 대해 선생님들 나누신 이야기에 공감이 됩니다. 특히 작가란 쓴 것만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으로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는 보원 샘 말씀에 평소 깊이 공감하는 입장에서, 저도 애초에 소설 비공개가 가능한 일인가 ...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되네요. 특히 마르케스 정도 되는 작가에게요. 그런가하면 나누신 대화를 읽으면서 완전히 결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갑자기 떠오른 책도 하나 있었는데요.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이란 책입니다. 작년에 매우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작가들의 에세이를 분석하며 에세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에세이즘’이라는 (에세이 형식에 대한 작가들의) 어떤 태도에 집중하는 책인데요. 딜런은 ‘혼잣말에 관하여’ 라는 장에서 수전 손택이 자신의 글로 끝내 인정하지 않았던 그의 일기에 대해 말해요. 다른 작가들을 향한 질투의 방백과 오만함, 열등감으로 가득찬 그 글들이야말로 손택이 그토록 원했던 스타일적 해방이라고 읽는데요.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 자신은 자신의 완성된 글로 인정하지 않는 텍스트가 보원 샘의 말에 따르면 그 자체로 어떤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 같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여기서 작가가 공개를 의도한다 의도하지 않는다가 글쓰기에 있어서, 혹은 글의 완성에 있어서 그리 단순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원하는 마음과 원치 않는 마음, 원치 않는 마음과 어쩔 수 없다는 마음, 원하는 마음과 혹시 하는 마음 등등... 이상한 마음과 조건과 시간적 풍화가... 그 텍스트의 ‘해방’을 다르게 결정하는 것 같기도 해서요. 우리가 작가들의 일기에 매료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고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의견들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그러게요, 마르케스가 쓴 소설이 공개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게 실제적으로는 더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 면에서 무엇인가를 공개적으로 쓰는 사람, 즉 작가가 된다는 것, 더욱이 전 세계적인 작가가 되거나 심지어 노벨문학상 같은 왕관까지 쓴 작가가 된다는 것에는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런 비자발적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까지 포함된 게 아닌가 싶어요. 작가 사후 70년이 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데, 그 말인즉 그떄부터는 작품의 소유권이 작가가 아니라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 나아가 인류에게 있다는 것이 현대의 '상식'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8월에 만나요>도 나름 아담하게 읽었는데요, 감상은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더 나누고 싶네요^^ 이제 대화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남은 주말 동안에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얘기해 보면 좋겠어요. 바쁜 한 달 동안 미처 추천하지 못한 작품이 있다면 불쑥 소개해 주셔도 좋고요 :D
지운 님이 소개해 준 <알려진 세계>도 소개 자료들을 찾아보니 궁금해지네요. 저는 잘 몰랐던 작가이기도 해서 더. 서른세 명의 노예를 거느린 노예 출신 흑인 농장주의 요절을 시작으로 그의 가족, 노예, 지인 들이 맞는 변화가 줄거리에 대한 소개인데, 소개문의 말마따나 '인종을 떠나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는 일의 아이러니와 비애'는 노예제도의 영향권에서 멀어져 있는 지금 다른 방식으로 더 현재적인 문제의식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뭐랄까 상당히 침착하고 철학적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약간 걱정도 되는 한편, 잘 읽으면 인간 관계에 대한 통찰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이건 좀 아주 여담이지만, 지운 님 통해 제가 잘 모르고 있었고 높은 확률로 앞으로도 몰랐을 것 같은 영미 문학 소설들 추천받은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한국에 출간된 '세계문학전집'류 도서들이 영미권 중심으로 구조화돼 있다고들 하고 사실상 그렇기도 하지만, 막상 요즘 책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심을 덜 갖게 되더라고요. 고전으로 충분히 소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이 계절의 소설 하면서 경험한 좋은 것 중 하나라서 생각났을 때 얼른 말해 두어요ㅎㅎ
ㅎㅎ 이제 곧 다음 달에 읽을 책을 선택할 시간이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야말로 찬쉐 책을 읽어보자! 한 번 해보자! 못 할게 뭐냐! 라는 느낌으로 <격정세계>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왜 책 한 권 읽는 데에 이런 각오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제가 너무 게을러서겠죠...) 한 권 더 뽑자면 여러 선생님들이 흥미를 가지기도 하셨던 김홍 작가의 <프라이스 킹!!!>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면 재밌을 것 같고요. 한소범 기자님처럼 저도 김홍 작가의 상상력과 농담에 오래 전부터 팬이었기도 하고, 출판사 문구처럼 한국적 요소들에 대한 것도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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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 그믐, 지금
딱히 이번이라고 뭔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는 없었다.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어느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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