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료』 함께 읽기.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D-29
하지만 이 어려운 문제를 현 정부는 간단히 풀고 있습니다. 현재 3058명에서 5058명으로 시원하게 65% 를 늘렸습니다.
글쎄 잘은 모르지만 인구수가 줄고 있어 학과통폐합이니 지방대 소멸이 안 그래도 문제인데 더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어린이집도 아이가 없어 문을 닫고 초등학교도 그 연장선상에서 폐교하고 미술관으로 탈바꿈 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목격되는 가운데~ ai의사도 등장하는 마당에 의대정원 늘리기는 뭐랄까? 이슈로 이슈가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원래 의대정원확대 이슈가 늘 논의되어 온 뇌관인지는 외부인 입장에서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김여사 이슈는 성공적으로 또 덮여젔다는 게 팩트로 보입니다.
정부는 지방소멸의 대책 중 하나로 의대정원확대를 고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수도권의 의대 정원을 획기적으로 늘린다 -> 의대를 가려고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이 줄어들고 오히려 지역인재전형으로 의대를 가려고 지방으로 이사를 간다 -> 지방인구가 줄지 않는다. 이런 플로우 인 것 같습니다. 20년이 지난뒤 쯤 이게 신의 한수였는지 관뚜껑에 못을 박은 건지는 알게 되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옳은 방향의 개혁이더라도 급격하게 증원을 하고 (3000명에서 5000명으로 2000명 증원), 정책수행의 중요한 파트너 집단을 악마로 만들고 (환자를 팽개친, 돈만 밝히는, 리베이트를 챙기는 등등) 때려잡는 방식의 추진 방법은 정말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돈만 밝히는 의사들 덕분에 정치공작과 불법촬영 피해를 입으신 여사님은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하시고 힘드실 것 같습니다.
의대 입학정원 증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체로 비슷하다. 현재 의사 수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향후 의사 인력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현재 지역별, 전공과목별로 의사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공공영역에서 일할 의사도 부족한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 공급을 늘려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경쟁을 통해 의료서비스 수준이 향상된다, 등의 주요근거다. 그 외에 3시간 대기 3분 진료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서, 군의관 및 공중보건의사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도 거론된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83, 박재영 지음
반대쪽 논리도 만만치 않다. 현재 OECD 평균보다 의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사 수의 증가율이 매우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보다 의대 입학정원을 더 늘리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구 10만명단 의사 수의 경우 OECD 평군이 3.1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1.9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증가율은 OECD 평군이 1.7%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4.3%나 된다. 또한 의사 수 증가는 필연적으로 의료비 증가로 이어지므로, 의료비 억제를 위해서라도 의대 입학정원의 동결 혹은 감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84, 박재영 지음
하지만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는 '비용'이다.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 이용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의료서비스의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의사유발수요라고 부른다. 의사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많아지면 그로 인한 피해는 의사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 문제가 의사들의 이해관계에 얽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와 관련 있는 문제인 것도 그 때문이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86, 박재영 지음
우리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3회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의사 1인당 외래 진료 건수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우리 국민들의 의료 이용량은 적정 수준보다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므로, 만약 이를 억제하는 방향의 정책을 펼 경우 의사 공급은 지금보다 덜 필요해진다. (중략) 현재의 의료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의사를 늘린다고 해서 그들이 대거 시골 보건소로 몰려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86, 박재영 지음
제가 책을 구하진 못해서 꼽아주신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눠봤을 땐,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가 근거가 되어서 이어지는 내용이 답답하기도 하고 아쉬웠어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치료와 처방을 받는데 왜 전문가들의 견해로 바탕이 되어야만 할까.. 언어와 힘이 부족한 치료받을 당사자들은 통계에서 자꾸 생략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통계에도 저는 배제되어있는 것 같고, 시골 보건소에 오지 않을 거라는 마지막 문장에도 속이 상하네요. 결국 안 갈거라고 못 박고 거칠게 표현하자면 협박(과장된 표현이라고 느끼실 수 있겠어요. 시골에 사는 제가 느낀 부분이고요. 다른 표현을 고민했으나 대체가 되지 않네요.)하는 듯했습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이 아닌, 수도권에서 대체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집단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거리감이 드네요.
제가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올린거니 충분히 그렇게 느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 뒤 맥락이 많이 생략되어 있고요.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건 의료제도, 건강보험제도가 박리다매를 해야 의사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도덕적 헤이 이런게 아니라 제도가 그렇습니다. 사회보험 성격의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의료 이용량을 제한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병원 문턱을 많이 높여 놓는다는 거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건보재정을 위한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의료이용량을 제한하는 쪽으로 개혁을 하려고 한들 표를 잃기 딱 좋기 때문에 어느 정치세력도 그걸 못 하고 있죠. 그래서 이런 제도가 먼저 개선되지 않으면 의사수가 늘어나도 의사들은 살 길을 찾아서 서울, 수도권에서 박리다매를 할 겁니다. 그러면 굳이 시골 보건소, 시골 의원에 가서 근무할 유인이 크지 않겠죠. 제가 이해한 저 문장은 그렇습니다. ‘그들’이라는게 국민이 아닌 의사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금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정책 입안자들도 다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은 정말 쉽지않고, 표를 엄청나게 잃게 될 겁니다. 그러니 제도는 덕지덕지 누더기가 되고, 전문가들을 때려잡아서 국민들에게 제물로 바치는 포퓰리즘 정책을 펴는 거겠지요. (포퓰리즘의 여러가지 정의 중 반엘리트주의가 중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기적이고 돈을 밝히고 지방에 가서 살기 싫어하는 의사는 많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이고요. 그런데 그 비율이 다른 직종에 비해 특별히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요.
이런 모든 측면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의대 입학정원을 급격하게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정책이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87, 박재영 지음
2000명(65%)를 늘리는 것은 급격하게 라고 봐도 무리없지 않을까? 두 배 된거는 아니니 괜찮은걸까?
의료 개혁은 어렵다. 개혁보다 낮은 차원의 개선도 쉽지 않다. 뭔가 개선해 보려고 시도했다가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겠지만, 보건의료 분야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보건의료 분야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눈에 보이는데도 쉽사리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91, 박재영 지음
영국에서도 보건의료와 관련된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적지 않은 한국의 의사들이 국민건강보험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의료제도를 가리켜 ‘사회주의적 의료’라고 부른다. 외국에서도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보험에 대해 같은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보험제도는 ‘사회화된 보험’으로 사회주의적 의료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캐나다와 유럽 국가의 의사들 대부분도 직접 의료기관을 운영하거나 민간병원에서 일한다.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영국만 실제로 정부가 병원을 운영하고 정부가 의사들을 고용하는, 사회주의적 의료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92, 박재영 지음
우리 의료제도는 애초에 불완전한 상태로 출발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일단 시작했고, 시작과 동시에 문제점을 보완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의약분업의 실시 직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완한 다음 의약분업을 실시하자는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 정부는 ‘선 시행, 후 보완’을 외쳤다. 우리는 늘 그렇게 해왔으니까.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93, 박재영 지음
의사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101, 박재영 지음
하지만 의사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외부의 힘이 의사들을 강제로 변화시키려 할 때는 특히 저항을 보인다. 변화의 필요성을 스스로 수긍할 수 없을 때에는 더욱 그렇고, 그 변화가 의사들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생각될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불합리해 보이는 제도를 정부가 강요할 때, 의사들은 거기에 협조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저항히 않더라도 정부의 강요를 회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존재하는 곳이 의료분야다. 그리고 잘못 디자인된 제도를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의사들의 행태변화는 의료문화의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108, 박재영 지음
정부나 시민들이 보건의료 분야의 특성이나 의사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의사들이 정부나 시민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109, 박재영 지음
유럽 선진국들에서 병원은 그 연원자체가 일종의 사회안전망이었고, 비슷한 이유로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의료보험제도 역시 일찍부터 발달했던 것이다. 그러나 1950~60년대의 한국에서는 서민들을 위해 병원을 지어 줄 주체가 거의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가하게 병원이나 짓고 운영할 경제적 여유가 나라 전체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술을 갖고 있었던 의사들이 스스로 자본을 마련하여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규모를 키워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133, 박재영 지음
병원을 학교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문제가 많은 사립학교들이 넘쳐나고, 공립학교의 비율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기관 측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공공병원이 아니라 사립(?) 병원입니다. 소위 빅5라고 하는 병원 중 공공병원은 단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공공병원도 독립법인입니다. 대부분도 아니고 모든 사립병원의 주된 수입원은 건강보험 재정입니다.
이런 독특한 역사적 맥락은 한국의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민간 위주의 의료공급 체계 및 그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규제’라는 모습을 낳는다.
개념의료 - 왜 병원에만 가면 화가 날까 p133, 박재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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