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3. <앨버트 허시먼>

D-29
저에게 허시먼이 학자로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모습 중에 하나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계획과 분석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고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실험과 임시변통'의 자세로서 상황에 맞도록 조정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요즘과 같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특히 그럴 듯한 마스터 플랜, 장기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당장에는 보기 좋을지는 모르나 실효성 측면에서는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허시먼의 이러한 유연한 사고가 저는 무척 마음에 듭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금요일(3월 15일)은 11장 '주류에 도전한 독창적 개발 이론(1956~58)'을 읽습니다. 역시 주말에는 뒤따라오시는 분들, 밀린 분들을 위해서 함께 읽기를 쉬도록 하겠습니다. 콜롬비아에 보람도 있고 즐겁지만 직업 컨설턴트로서 경력에서 멈출 뻔했던 허시먼은 기적적으로 미국 동부 대학(예일 대학교)으로 올 기회를 잡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개발 경제학자 및 경제사상가로서의 허시먼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됩니다. 이 11장은 그 시작점이 되는 저서 『경제 발전 전략』의 문제의식과 집필 과정, 주요 내용을 그의 삶과 엮어서 소개하고 있어요. 앞으로 남은 10장 중에는 이런 장이 많습니다. 저자의 탁월함이 발휘되는 장인 것 같아요. 섬세한 독해와 전후 맥락에 대한 설명이 허시먼의 행적과 사고의 흐름과 절묘하게 엮이면서 정말 탁월하게 정리가 되고 있거든요. 저자의 박식함 덕분에 우리는 그 저서가 오늘날까지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요. 10장은 개발 경제학의 한 학기 수업에서 들을 만한 핵심 내용이 한 장에 정리되어 있으니 꼭 정독하시면 좋겠어요. 아! @장맥주 님도 이번 벽돌 책 같이 읽으셔야 했는데;
어쩐지 우리 둘 다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그리고 현재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현재가 견고하고 좋으면, 그것이야말로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보다도 좋은 기반이 되어 줄 테니까.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571.,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누군가의 비르투(역량, 결단, 용기)는 다른 누군가의 포르투나(행운, 기회, 운명)가 된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578쪽,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너무 멋진 말 아닌가요? 저의 비르투가 누군가의 포르투나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사람의 비르투가 저에게 와 닿아서 포르투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절대공감!! 합니다.
우어어. 맞아요. 언젠가 이 말을 꼭 써먹을 일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마키아벨리가 그의 군주에게 말했듯이, 기회를 성취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회를 알아보고 붙잡아서 비르투와 포르투나를 내 편에 배열하는 역량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11장,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YG @롱기누스 @모시모시 님 모두에게 죄송하지만, 전 이 문장이 더 좋아요. 비르투도 포르투나도 그냥 다 내 편으로 삼고 내 편에 두고 싶어요.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대신 제가 직접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찍은 포르투나 조각상 사진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저의 뮤지엄 방문 일정 (비르투?가 아니고 hobby이었지만)이 여러분의 포르투나가 되길! 모두에게 행운을-!
오랫만에 Fortuna 상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감사합니다. Fortuna의 방향타가 저에게 향하길 바래봅니다.
포르투나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을 롱기누스 님은 ‘방향타’라고 부르시네요? 저게 영어로도 한글로도 부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뭐라고 부르는 지 헷갈려요. steering paddle? Ship’s rubber? 키? 방향키? 노?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풍요의 뿔 (cornucopia)’ 단어 통일이 되어서 괜찮은 데 말입니다. 메트로폴리탄의 포르투나는 다른 박물관의 포르투나 조각상들보다 더 전사적인 느낌이 들고 (처음엔 으잉? 했는데 자꾸보니 이게 더 좋더군요. 행운은 용기있게 붙잡아야…) 결정적으로 뒷머리가 보이지 않게 처리해서 (행운은 지나가고 나면 잡아챌 수 없음) 차별화되는 것 같아요. 다만 시선이 너무 멀리 향하고 있어서 그 앞에 서면 “여신님 나를 좀 봐줘요, 나를~ 나랑 눈 좀 맞춰줘요-” 아둥바둥 하게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 아, 이것도 계산된 배치인가? 인간의 초라한 아둥바둥?
사실 해군에서는 '키'라는 말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키 왼편 15도 또는 오른편 10도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그냥 저도 모르게 '방향타'라고 적고 말았네요. 그런데 '노'는 아닌 것 같아요. 노를 저어라. 할 때 '노'라면 말씀입니다만...ㅋㅋ 암튼 저는 fortuna의 상에서 먼 시선처리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를 한거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fortuna의 특성을 잘 설명하는 것도 같구요...
아! 포르투나를 그린 회화에서 종종 헝겊으로 눈을 가린 모습을 말씀하시는 거죠? 말씀듣고 보니, 그게 조각에서는 저렇게 묘사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모시모시 님, 콜롬비아의 어떤 면을 애정하시는 지 매우매우 궁금합니다. 저에게 콜롬비아는 계속 호기심이 생기는 나라거든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몹시 애정하고요, 페르난도 보테로가 그린 넉넉한 인물들도, 콜롬비아 커피도 좋아합니다.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콜롬비아 편도 나올 때마다 모두 챙겨서 봤었는데, 내가 여행가기는 아직까지 머뭇거려지는 곳입니다. 남미를 좀 아시는 분들께 치안 상태를 물어보면 상파울로보다 안전하다거나 멕시코시티보다 안전하다고 (비교 대상이 너무 ㅠㅠㅠㅠㅠ) 10장에서 나온 대통령 후보였던 가이탄 암살은 콜롬비아 현대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던데,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가 가이탄 암살을 소재로 <폐허의 형상>을 썼어요.(우리나라에 번역된 바스케스 소설 2권 모두 아주 좋다고 합니다). 재작년에 <폐허의 형상>이랑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살인자의 성모> 사두고, 청부살인자만 반 정도 읽다가 멈췄어요 (신문에서 잔인한 폭력 사건을 계속 읽는 기분이 들길래 기빨려서..) <폐허의 형상>을 먼저 읽었어야 했어요 ㅜㅜ 10장 읽으면서 엘버트 허시먼이 머물던 시기를 좀 가늠해봤는데 <나르코스>편에 나오는 시기보다는 훨씬 앞선 50년대 초더라구요. 이 시기는 콜롬비아가 한국전쟁에 파병한 시기와 겹치는 거 같아요. 라틴아메리카에서 딱 한 나라가 남한에 파병했는데 그게 콜롬비아였다고 하더라구요. 모시모시님이 애정하시는 콜롬비아 이야기도 들려 주세요!
폐허의 형상소설의 화자는 다름 아닌 작가 본인,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카를로스 카르바요라는 남자를 만난다. 카르바요는 정치가 가이탄이 암살된 사건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며, 바스케스에게 이 음모에 대한 책을 쓰라고 요구한다.
저도 소피아님과 비슷한 이유로 콜롬비아를 애정해요. 마르케스(저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원픽! 물론 백년의 고독도), 보테로 좋아하구요. <청부살인자의 성모>는 저도 정신 피폐해질것 같아 못 읽고 있었는데 <폐허의 형상>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구입합니다. :) 콜롬비아 역사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참 기구하죠(내전 희생자가 진짜 많았고 아직 지방에 정부 공권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지역도 있대요) 저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2년 산 적이 있어서 일상적인 기억이 많아요. 저에게 콜롬비아는 신선한 커피, 길거리 음식(아레파), 벽돌색 건물, 주말 오전이면 자전거 전용으로 바뀌는 7번가에서 남녀노소 할것없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사이클 인기가 많아요), 친절하고 근면한 사람들, 뉴욕처럼(^^) 가로세로 숫자로 구분되는 도로명, 교통체증과 끼어들기, 도로에 갑자기 등장하는 (영원히 보수되지 않는) 움푹 팬 구멍들 뭐 이런 것들로 기억되요. (중구난방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보았습니다) 물론 치안이 안좋고 빈부격차가 심한것도 맞아요. 제가 외국인으로서 경험한 콜롬비아는 매우 일부지만.. 전체를 몰라도(또는 몰라서?) 사랑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아. 참고로 허시먼이 보고타에서 살았던 곳으로 나오는 카예 72번, 74번 등지는 (당시에는 잘 모르겠으나) 현재 전통적 부촌 동네며, 아이들이 다닌 콜레지오 누에바 그라나다는 CNG로 불리는 사립 국제학교로 지금도 있어요. 생각나는대로 적다보니 너무 길게 떠들었네요;;;
와아- 보고타에서 사셨다니.. 고산증세는 없으셨나요? 초반엔 힘드셨을텐데.. 달리기같은 건 하지 않으셨죠? ㅎㅎ 그리 높은 곳에 사는 콜롬비아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는 것도 신기 (고산병에 카페인과 긴 시간 목욕하는 게 쥐약이라고 들어서요). 모시모시 님 글을 읽으니, 내가 머문 장소는 내 추억으로 재탄생되어 나에게 의미있는 방식으로 기억 창고에 저장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 도로에 갑자기 등장하는 (영원히 보수되지 않는) 움푹 팬 구멍들” —> 이런 부분은 이방인의 눈으로 봤을 때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어서 미소짓게 되네요. 현지인들은 원래 패인 것인 갑다 하고 신경 안 쓸듯. 콜롬비아가 모시모시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덕에 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네요. 특히 모시모시 님만이 간직한 보고타에서의 일상적인 기억들 들려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잠깐! 개발 경제학 수업도 들으셨고 보고타 거주 경험도 있으시다니.. 10장 이후 이야기를 제가 천천히 읽으며 소처럼 되새김질 반복하며 느릿느릿 이해하는 동안, 모시모시님은 책의 내용을 대왕 보아뱀처럼 꿀떡 바로 삼켜버리시며 초고속직진독서하고 계신 거였습니까? 이건 내 분야로군, 이러시면서!!
근근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허허.
한 사람의 인생을 보면, 수많은 기획 오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리기도 하고 기대했던 많은 기회들이 무르익지 못한 채 사그라지기도 한다. 또 대부분의 기회는 나중에 되돌아볼 때에야 의미를 갖는다. 당시에는 몰랐다가 나중에서야 그것이 전환점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579.,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허시먼이 예일대로 가게 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fortuna는 다른 사람의 virtu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1장 이후를 읽으면서 일전에 @YG 님이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허시먼이 티칭에 정말 힘들어했구나. 가르치는 일은 영 소질이 없었구나... 왜 그럴까... '모 쥐스트'에 너무 집착한 것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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