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3. <앨버트 허시먼>

D-29
오랫만에 Fortuna 상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감사합니다. Fortuna의 방향타가 저에게 향하길 바래봅니다.
포르투나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을 롱기누스 님은 ‘방향타’라고 부르시네요? 저게 영어로도 한글로도 부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뭐라고 부르는 지 헷갈려요. steering paddle? Ship’s rubber? 키? 방향키? 노?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풍요의 뿔 (cornucopia)’ 단어 통일이 되어서 괜찮은 데 말입니다. 메트로폴리탄의 포르투나는 다른 박물관의 포르투나 조각상들보다 더 전사적인 느낌이 들고 (처음엔 으잉? 했는데 자꾸보니 이게 더 좋더군요. 행운은 용기있게 붙잡아야…) 결정적으로 뒷머리가 보이지 않게 처리해서 (행운은 지나가고 나면 잡아챌 수 없음) 차별화되는 것 같아요. 다만 시선이 너무 멀리 향하고 있어서 그 앞에 서면 “여신님 나를 좀 봐줘요, 나를~ 나랑 눈 좀 맞춰줘요-” 아둥바둥 하게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 아, 이것도 계산된 배치인가? 인간의 초라한 아둥바둥?
사실 해군에서는 '키'라는 말로 쓰고 있는 것 같아요. 키 왼편 15도 또는 오른편 10도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그냥 저도 모르게 '방향타'라고 적고 말았네요. 그런데 '노'는 아닌 것 같아요. 노를 저어라. 할 때 '노'라면 말씀입니다만...ㅋㅋ 암튼 저는 fortuna의 상에서 먼 시선처리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를 한거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fortuna의 특성을 잘 설명하는 것도 같구요...
아! 포르투나를 그린 회화에서 종종 헝겊으로 눈을 가린 모습을 말씀하시는 거죠? 말씀듣고 보니, 그게 조각에서는 저렇게 묘사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모시모시 님, 콜롬비아의 어떤 면을 애정하시는 지 매우매우 궁금합니다. 저에게 콜롬비아는 계속 호기심이 생기는 나라거든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몹시 애정하고요, 페르난도 보테로가 그린 넉넉한 인물들도, 콜롬비아 커피도 좋아합니다.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콜롬비아 편도 나올 때마다 모두 챙겨서 봤었는데, 내가 여행가기는 아직까지 머뭇거려지는 곳입니다. 남미를 좀 아시는 분들께 치안 상태를 물어보면 상파울로보다 안전하다거나 멕시코시티보다 안전하다고 (비교 대상이 너무 ㅠㅠㅠㅠㅠ) 10장에서 나온 대통령 후보였던 가이탄 암살은 콜롬비아 현대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던데,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가 가이탄 암살을 소재로 <폐허의 형상>을 썼어요.(우리나라에 번역된 바스케스 소설 2권 모두 아주 좋다고 합니다). 재작년에 <폐허의 형상>이랑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살인자의 성모> 사두고, 청부살인자만 반 정도 읽다가 멈췄어요 (신문에서 잔인한 폭력 사건을 계속 읽는 기분이 들길래 기빨려서..) <폐허의 형상>을 먼저 읽었어야 했어요 ㅜㅜ 10장 읽으면서 엘버트 허시먼이 머물던 시기를 좀 가늠해봤는데 <나르코스>편에 나오는 시기보다는 훨씬 앞선 50년대 초더라구요. 이 시기는 콜롬비아가 한국전쟁에 파병한 시기와 겹치는 거 같아요. 라틴아메리카에서 딱 한 나라가 남한에 파병했는데 그게 콜롬비아였다고 하더라구요. 모시모시님이 애정하시는 콜롬비아 이야기도 들려 주세요!
폐허의 형상소설의 화자는 다름 아닌 작가 본인,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카를로스 카르바요라는 남자를 만난다. 카르바요는 정치가 가이탄이 암살된 사건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하며, 바스케스에게 이 음모에 대한 책을 쓰라고 요구한다.
저도 소피아님과 비슷한 이유로 콜롬비아를 애정해요. 마르케스(저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원픽! 물론 백년의 고독도), 보테로 좋아하구요. <청부살인자의 성모>는 저도 정신 피폐해질것 같아 못 읽고 있었는데 <폐허의 형상>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구입합니다. :) 콜롬비아 역사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참 기구하죠(내전 희생자가 진짜 많았고 아직 지방에 정부 공권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지역도 있대요) 저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2년 산 적이 있어서 일상적인 기억이 많아요. 저에게 콜롬비아는 신선한 커피, 길거리 음식(아레파), 벽돌색 건물, 주말 오전이면 자전거 전용으로 바뀌는 7번가에서 남녀노소 할것없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사이클 인기가 많아요), 친절하고 근면한 사람들, 뉴욕처럼(^^) 가로세로 숫자로 구분되는 도로명, 교통체증과 끼어들기, 도로에 갑자기 등장하는 (영원히 보수되지 않는) 움푹 팬 구멍들 뭐 이런 것들로 기억되요. (중구난방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보았습니다) 물론 치안이 안좋고 빈부격차가 심한것도 맞아요. 제가 외국인으로서 경험한 콜롬비아는 매우 일부지만.. 전체를 몰라도(또는 몰라서?) 사랑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아. 참고로 허시먼이 보고타에서 살았던 곳으로 나오는 카예 72번, 74번 등지는 (당시에는 잘 모르겠으나) 현재 전통적 부촌 동네며, 아이들이 다닌 콜레지오 누에바 그라나다는 CNG로 불리는 사립 국제학교로 지금도 있어요. 생각나는대로 적다보니 너무 길게 떠들었네요;;;
와아- 보고타에서 사셨다니.. 고산증세는 없으셨나요? 초반엔 힘드셨을텐데.. 달리기같은 건 하지 않으셨죠? ㅎㅎ 그리 높은 곳에 사는 콜롬비아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는 것도 신기 (고산병에 카페인과 긴 시간 목욕하는 게 쥐약이라고 들어서요). 모시모시 님 글을 읽으니, 내가 머문 장소는 내 추억으로 재탄생되어 나에게 의미있는 방식으로 기억 창고에 저장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 도로에 갑자기 등장하는 (영원히 보수되지 않는) 움푹 팬 구멍들” —> 이런 부분은 이방인의 눈으로 봤을 때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어서 미소짓게 되네요. 현지인들은 원래 패인 것인 갑다 하고 신경 안 쓸듯. 콜롬비아가 모시모시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덕에 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네요. 특히 모시모시 님만이 간직한 보고타에서의 일상적인 기억들 들려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잠깐! 개발 경제학 수업도 들으셨고 보고타 거주 경험도 있으시다니.. 10장 이후 이야기를 제가 천천히 읽으며 소처럼 되새김질 반복하며 느릿느릿 이해하는 동안, 모시모시님은 책의 내용을 대왕 보아뱀처럼 꿀떡 바로 삼켜버리시며 초고속직진독서하고 계신 거였습니까? 이건 내 분야로군, 이러시면서!!
근근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허허.
한 사람의 인생을 보면, 수많은 기획 오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리기도 하고 기대했던 많은 기회들이 무르익지 못한 채 사그라지기도 한다. 또 대부분의 기회는 나중에 되돌아볼 때에야 의미를 갖는다. 당시에는 몰랐다가 나중에서야 그것이 전환점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579.,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허시먼이 예일대로 가게 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fortuna는 다른 사람의 virtu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1장 이후를 읽으면서 일전에 @YG 님이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허시먼이 티칭에 정말 힘들어했구나. 가르치는 일은 영 소질이 없었구나... 왜 그럴까... '모 쥐스트'에 너무 집착한 것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도 강의를 하면서 그런 걸 느껴요. 강의 잘하는 한 선배(JYP)가 저한테 "자꾸 청중한테 함께 고민해보자"라고 제안하지 말라고. 강의를 듣는 청중은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원한다고. :) 허시먼은 어떤 문제에 대한 완전하고 유일한 해법은 불가능하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사상가잖아요. 당연히 명쾌한 해법을 원하는 카리스마 교수를 원하는 학생과는 궁합이 안 맞았겠죠.
이 포스트 읽으면서 장면이 그려져서 잠시 (약간 크게) 웃었어요 (죄송). YG: 여러분 함께 고민해 봅시다! 청중: (동공지진) 내가? 고민을? 여기서? 왜? (어리둥절) 장내 고요 - 청중들 경직 - YG님은 허시먼과는 다른 상황인 것 같아요. 일단 말씀은 잘하시니까. 허시먼은 강의 중에 웅얼거리거나 멍하니 있거나 무슨 말 하는 지 모르게 혼자 내적으로 방황했던 상황. 신은 공평하다 ㅋ
아이고, 저는 @소피아 님 글 보면서 빵 터졌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또 사석에서 허시먼은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었다잖아요, 이 언밸런스라니! (새러는 완전히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듯하고.)
저도 동감합니다. 특히 학부생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이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경우에는 어떨까? 라는 식으로 그들의 의견을 듣고 나누길 원했는데... 참 잘 안되더라구요. 요즘 학생들은 특히 학원강의에 익숙해져인지 말씀하신 명쾌한 답을 원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진전되어 가는 것 중에 원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598.,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급히 해결하고 서둘러 바로잡고 빠르게 고치고자 하는 충동은 사람들이 대안을 고려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되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599.,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기존의 개혁의 개념, 즉 변화를 가로막는 긴장을 제거하는 것을 개혁의 목표라는 개념에서 나아가 변화를 강제하고 추동해낼 수 있는 긴장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허시먼의 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변화는 결국 긴장에 의해 동력을 얻게되고 이것이 없으면 정체상태에 빠지는 것을 현장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었지 않을까요. 긴장도 갈등도 부채가 아니라 변화에 있어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 존경합니다.
(주류 이론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개발이란 모든 장애를 일거에 제거하는 과정이며 그렇게 하고나면 그 경제가 '발달된' 새 균형점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리라 보는 견해였다. 허시먼은 이것이 허황된 생각이며 인과관계가 거꾸로 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압력', 긴장, 불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운동을 추동하는 기본 동력이 되어야 했고, 그 다음에는 그것이 더 많은 마찰과 긴장을 내놓을 수 있어야 했다. 긴장을 만드는 장애와 제약들에는 '숨겨진 합리성'이 있었다. 그러한 장애와 제약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것들을 해결하려는 쪽으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이란 개념으로 앨버트 허시먼은 '숨겨진'이란 개념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또는 매우 어려운) 현상을 설명하고 있네요. 어쩌면 사회과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모 쥐스트'를 추구하는 것을 몸소 보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p. 608-609.,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알 수 없는 것에 의미가 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609.,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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