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3. <앨버트 허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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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피아트의 자유' '아넬리의 자유' '박정희의 자유'는 "작은 자유"입니다. 그런 "작은 자유"는 현장 실습에 나선 고등학생이 프레스에 눌려서 죽고, 바다에 빠져 죽고, 모욕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막지 못합니다. <다음 소희> 같은 영화가, 조해진의 『환한 숨』(문학과지성)에 실린 슬픈 단편 「하나의 숨」 같은 소설이 끊임없이 나와야 합니다. 결정적으로 "작은 자유"는 20세기 초반 이탈리아가 파시즘의 득세를 막지 못했듯이, 개인과 그들이 연결된 공동체가 망가지는 일을 막지 못합니다. 그람시, 고베티, 레오네-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보비오 등 토리노 노동자와 지식인이 "또 다른 자유"를 외치면서 위기의 순간마다 목숨 걸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죠. 장문석은 "작은 자유"와 대조되는 토리노 노동자와 지식인이 말했던 다른 자유를 "큰 자유"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작은 덕'과 '큰 덕'의 메시지를 먼저 소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파심에 강조합니다. "큰 자유"가 "크다고 중요하고" "작은 자유"가 "작다고 사소한 것은" 아닙니다. 저자도 강조하듯이, 20세기 초반 독일,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는 이 작은 자유를 잃고 나서야 그 자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곤" 합니다. 저자는 "작은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노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큰 자유"는 우리가 노예로 빠지지 않도록 맞서는 "작은 자유의 파수꾼"입니다. 장문석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작은 자유에만 집착하는 것이 맹목적이라면, 작은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큰 자유는 공허할 것"이다. 토리노의 피아트와 아넬리는 (할 수 있는 한) "작은 자유"에만 집착하지 않았고, 토리노의 노동자와 그람시와 고베티와 레오네-나탈리아는 그 "작은 자유"를 지킴으로써 "큰 자유"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습니다. 『토리노 멜랑콜리』에서 저자는 현실 정치를 놓고서는 한마디도 안 합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자유'에만 가치를 두는 '윤석열의 자유'는 맹목적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작은 자유"를 무시하고 그것을 지킬 힘을 보여주지 못하는 "큰 자유"는 "공허"하고, 덧붙이면 지금 한국의 진보처럼 지리멸렬합니다.
다음 소희소희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터넷 회사 콜센터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직한다. 소녀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들뜨지만, 실상은 기대와 다르다. 노동 착취가 예사로 일어나는 콜센터는 그야말로 노동 지옥이다. 그곳의 잔인한 현실은 암울한 사고로 이어지고, 형사 유진은 악착같이 진실을 좇는다. 그러나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앞에서 그녀는 무력함을 절감한다
환한 숨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으로 대산문학상 수상한 이후 첫 책으로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조해진의 소설 속에선 모든 인물이 착하지만은 않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경우도 다반사지만 그럼에도 소설 속 인물들은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데에 이른다.
^^
잘 읽었습니다. 작은 자유의 소중함 그리고 작은 자유를 지킬 수 있는 큰 자유의 중요성. 작은 자유에만 집착하는 소극적 행동은 자칫 그 소중함을 잃어버릴 수 있는 근시안적 행동일 수 있다는 것.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롱기누스 저도 평소 고민하던 대목이었는데, 생각을 정리할 좋은 기회였어요. 감사합니다.
200쪽 조금 넘는 분량의 문고판 『토리노 멜랑콜리』는 말랑하고 간지러운, 요즘 유행하는 에세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에세이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나온 표현을 쓰자면 '작은 에세이'가 아니라 '큰 에세이'입니다. 이렇게 '큰 에세이'를 시도한(essayer) 문학과지성사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토리노 멜랑콜리』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같은 저자의 책이 있습니다. 장문석의 『파시즘』(책세상, 2010년), 『피아트와 파시즘』(2009년), 『자본주의 길들이기』(창비, 2016년)입니다. 『피아트와 파시즘』은 이 책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는데, 정작 절판이라서 서점에서 책을 구하기 어려운 사정입니다. 눈 밝은 출판사에서 얼른 재출간했으면 좋겠습니다. 참, 그런데 왜 제목이 '토리노 멜랑콜리'냐고요? 저는 2장('멜랑콜리여 안녕')과 220쪽을 읽고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파시즘<피아트와 파시즘>,<민족주의 길들이기>의 저자는 '파시즘'이 명확하게 분석되지 않아 모호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시공간적으로 광범위하게 남용된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종으로서의 파시즘’이라는 이상형을 제시함으로써 역사에 출현한 다양한 파시즘의 성격을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공한다.
피아트와 파시즘 - 기업은 국가를 어떻게 활용했는가이탈리아 자동차 대기업 ‘피아트’의 정치사이자 기업사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를 소재로 삼아 파시즘 집권기에 기업과 국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살피면서 경제 발전의 동학을 보다 균형 있게 분석해 간다.
자본주의 길들이기 - 자본과 자본 아닌 것의 역사20세기 초 이딸리아 근현대사의 장면들을 통해 자본주의 본연의 공정함과 도덕성을 복원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문제제기를 담은 역사서다. 저자 장문석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요소들이 동원되고 활용된 사례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아 치즈와 구더기! 정말 재밌게 읽었던 책이었어요. YG님의 글로 또 다른 세계가 열린 기분이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허시먼이 독일, 프랑스, 영국이 아니라 왜 이탈리아 지식인과의 교류에 자신의 사상적 기원을 빚졌다고 강조했는지 앞에서 소개한 책들을 읽으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번 언급해 봤어요.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요즘 직장일이 너무 바빠서 3장까지밖에 못 읽었네요. 토요일 일요일도 12시간이상 책을 읽어야지 싶어서 다짐을 했는데도 잘 안되었어요. 3장까지 읽으면서 오토 알베르트가 레닌의 저작을 읽고 좌익소아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반가웠고 무엇을 할 것인가 저작도 등장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특히 렌초 기아와 우르줄라가 등장하는 장에서 뭔가 툭 치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옛날 좌파동지들과 언쟁을 한 추억이 떠올랐거든요. 시간 나는대로 읽으면서 정리도 하려고 합니다.
우르줄라는 친구들을 통해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의 패기만만하고 대담한 좌파 렌초 기아를 알게 되었고 오토 알베르트도 곧 그를 알게 되었다. 기아가 알려준 것은 이탈리아 언어만이 아니었다. 기아는 유머와 약간 불경스러운듯한 언행으로 우르줄라의 신념을 놀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한 태도는 우르줄라에게도 전염되어 그 이후로 우르줄라는 조직모임에서 진지함과 확실성, 그리고 의례적인 절차들을 볼 때면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었다. 우르줄라가 기아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놀랄정도로 진지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토 알베르트는 기아에게서 유머를 발견했다. 그것은 엄격한 도덕주의적 좌파 전통과 '거짓 행동주의' 그리고 무용할뿐인 극단적 토론을 모두 거부하는 유머였고 오토 알베르트는 이런 태도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한 번은 우르줄라가 개인적인 저항행동은 "전체 운동에 유용해야 한다"는 규범에 부합하지 않으며 '객관적 조건'이 성숙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자 기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에게는 너의 언어가 어느 정도나 중요성을 갖는 거야? 자기 말을 하지는 못하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나 귓속말로 우물우물 전할 뿐인 너의 그 똑똑한 불법체류자들 모임보다는 스스로 일어나서 말하는 사람이 더 가치 있다고." 또 우르줄라가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행동의 전제들을 마련해 가고 있다고 말하자 기아는 좌파가 이론에 꽁꽁 싸매져서 수동적이고 무력하기만 했던 과거를 상기시키며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너의 그 노동자계급은 지에 지옥에나 가라고 해! 내가 보기에는 신념을 버려야 할 때야....독일에는 1200만명의 조직된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있었고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자계급운동이 있었는데 히틀러가 부상할 때 왜 모두들 가만히 있었지? 그게 네가 말하는 이론적 원칙이야? 그게 무슨 가치가 있지?" 오토 알베르트는 이렇게 직접적인 도발 없이도 기아가 말하는 행동지향적 철학에 동조할 수 있었다.(이후 기아는 이러한 '의지론'적 태도에 걸맞게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지만 안타깝게도 팔랑해 당원의 폭탄에 사망한다) p.206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주말 동안 열심히 진도를 따라잡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7장 허시먼이 미군에 입대해서 지루한 삶을 보내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지루한 시간들을 책을 읽고, 지식인과 예술인들을 만나면서 의미?를 찾으며 생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이에크의 <예속의 길> 에서 집단 문화에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인사이트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이에크의 책도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히르슈만은 무솔리니가 추진한 고립주의적 경제 모델이 다른 곳(특히 식민지)에서 잉여를 만들도록 강제한 뒤 그것을 가져다가 수입의존도를 해소해야만 유지되는 모델임을 지적하면서, 경제를 정치체제라는 배경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시경제'정책은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우익 독재냐, 사회주의 정부냐, 다윈적 자유주의 정부냐 등)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그의 경제학은 기저의 정치적 문제들과 분리되지 않았다. 그가 특정한 정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제 분석에서는 흔히 간과되곤 하지만) 정치 이데올로기가 경제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 297 ch.5 유대인 구출 활동의 수완꾼 '비미시'(1938~40),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주말에는 쉬시면서 다른 책도 읽으셨나요? @FiveJ 님, 열심히 따라오신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주말에는 이렇게 쉬는 일정을 두려고 합니다. 오늘 월요일(3월 11일)에는 7장 '다시 총을 잡은 행동하는 지식인(1943~45)'을 읽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어판의 장 제목이 너무 촌스러워요. 원서의 7장 제목은 'The Last Battle'이랍니다. :) 원서 7장 제목처럼 제2차 세계 대전에 미국이 참전하자 허시먼은 자원 입대합니다(1943년 4월 30일). 그리고 1942년 6월에 설립한 CIA의 전신 OSS 요원으로 차출되어서 북아프리카 전선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로 배치됩니다. 7장은 알제리와 이탈리아에서 종전까지 OSS 통역병으로 복무하는 허시먼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지리멸렬한 통역병 복무 기간의 후반부에는 반전이라고 할 만한 뜻밖의 역사적 이벤트도 있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6장과 7장에서는 현존하는 국제기구들과 EU, 그리고 유로존등의 사상적 토태가 어떻게 싹트게 되었는 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당시 앨버트 허시먼과 에우제니오같은 사람들이 전쟁통 속에서도 어떤 희망을 품고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 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가 어느 정도나마 실현된 지금에 사는 21세기 인간으로 (오늘날의 UN이나 브렉시트 등을 생각할 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요. 특히, 유럽통합을 상상하던 허시먼은 유럽을 너무 좁게 인식했거나, 유럽 안에 있는 수많은 국가, 민족, 종교 등을 간과했거나, 아니면 그도 어쩔 수 없이 (태생적인 한계로) 서유럽 중심에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저자도 유토피아적이었다고 덧붙이더군요.
허시먼은 사람들의 선택에 지침을 주는 것은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기로 마음먹느냐라고 주장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허시먼은 우리가 역사의 흐름 중에서 단지 하나의 순간만을 살고 있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내가 운전을 너무 잘해서 말야. 혼자 운전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꼭 새러에게 전화를 해야 해. 길가에 한 줄로 서 있는 차 두 대 사이에 내 차를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병렬주차/일렬주차는 앨버트 허시먼같은 사기 캐릭터에게도 힘든 것이었습니다!
험한 세상이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한 마디도 그 자신이 한 말은 아니었지만 법정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한 사람은 바로 허시먼이었다. 여기 성인이 된 이래 인생 전체를 이 냉혈한 같은 독일인 장교가 상징한 것과 맞서 싸운 청년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파시즘을 상징하는 인물 옆에 앉아 그 인물의 권리를 언어로 지켜 주고 있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7장 마지막 부분에서 허시먼이 도슈틀러의 통역을 맡게 된 상황이 너무 아이러니하고도 운명의 장난같아서 멍하게 되었네요. (제러미 애덜먼 씨, 저 세 문장 너무 훌륭합니다!). 사진도 한참을 쳐다봤어요. 도슈틀러가 사형을 선고받을 때 허시먼이 하얗게 질린 모습은 정말 많은 생각이 들게 했고요. 인간이란 어떤 동물인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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