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화요일(3월 26일)은 17장 '건강한 신체가 내뿜는 우아한 매력'과 18장 '정치와 경제를 관통하는 집합행동 이론(1977~82)'를 읽습니다.
17장은 허시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소품 같은 장이라서 금세 읽을 수 있고요. 18장은 16장 만큼이나 밀도가 높은 장이지만, 또 중요한 장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인 집합행동의 몰락과 그에 대한 회의가 커지는 상황에서 허시먼의 노력은 오히려 현재적 의미가 크다는 생각입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3. <앨버트 허시먼>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소피아
@FiveJ @모시모시 @YG, 저는 17장을 저자 애덜먼이 주는 “막간 서비스”라고 이해했어요. 계속 휘몰아치는 밀도높은 챕터들 사이에서 독자가 나가 떨어질까봐 붙들어 두려는 의도? 정말이지 16장 다 읽을 무렵엔 와, 3월 한달동안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 소설 한 권도 안 읽었어, 이게 사는거냐? 막 이렇게 되더라구요? 뭐, 책 덥석덥석 안 사게 되니까 그건 좋은 건 같고.. (뭐라는 거임..)
허시먼이 물구나무 서는 이야기 계속 나오는 건 좀 웃겨요. 왜 자꾸 물구나무 섰다는 말 반복하시지? 요즘 유행하는 저속노화의 비책 중 하나로 물구나무 들어갑니까?
소피아
참참참, 14장에 나온 레온 페스팅거의 <When Prophecy Fails 예언이 끝났을 때> 이 책 찾아보신 분 계신가요? 설명보고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진짜 더 궁금해졌어요. 세상 종말을 외치는 컬트 집단에 연구자 직접 들어가 참여관찰 연구를 한 건데, 이걸 바탕으로 인지부조화 이론을 만들었다고.. 완전 궁금한데 출판된지 오래된 게 쫌 걸림 (1950년대).
예언이 끝났을 때 - 세상의 멸망을 예언했던 현대의 어느 집단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특정일에 홍수가 일어날 것이고, 자신들은 외계의 존재가 와서 안전하게 데려갈 것이라 예언했던 어느 종교 집단을 참여관찰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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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책에서도 언급한 대로 '인지 부조화' 개념을 끌어낸 사례 연구에 대한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고요. 저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미 주목하셨겠지만, 똑같이 김승진 선생님이 번역했어요.
소피아
아, 고전입니까? 어쩐지 딱 보는 순간 너무 재미있겠더라구요!
모시모시
다른 책에서 이 연구를 사례로 언급한 건 많이 봤는데 오리지널이라니(!) 저도 엄청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ㅋㅋㅋㅋ
소피아
고전은 오리지널로 봐야 제 맛이죠!
소피아
무임승차나 공공재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여기에 이론이 있었는지는 몰랐네요 — 올슨의 <집단행동 이론>— 와, 진짜 배움엔 끝이 없다..
YG
최근에 나온 신간을 살펴보다가 거기서 올슨의 이론을 아주 중요하게 취급하면서 우리 허시먼 옹은 아예 언급도 안 했더라고요.ㅠ. 괜히 속상함. 이렇게 '빠'가 되는 건가, 하고 잠시 웃었어요.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 - 분열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문제 제기‘정치는 왜 우리의 삶과 세상을 더 낫게 바꾸지 못했을까?’ 물론 냉소, 정치 혐오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그 반대다. 정치에 희망에 있기에, 정치가 실패해온 이유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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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오, 이 책 목차 보니 재미있겠는데요? (정신차려, 아직 앨버트 허시먼 안 끝났어!!)
소피아
18장은 <참여의 시계추 운동>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지껏 설명을 잘 해나가던 제레미 애덜먼도 여기에 와선 촛점을 잘 맞추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애덜먼이 “허시먼이 이러저러하게 이론을 만들어 놓았는데 일이 너어어어무 많고 바빠서 측정도구도 없고 검증된 사례도 별로 없답니다.” 이렇게 툭 던져주면서, 니들이 측정도구도 만들고 사례도 모아모아서 이 이론을 키워 볼래? 하는 듯한 분위기?
개인적으로는 18장을 읽으면서 그동안 암시적으로 파악했던 인간 허시먼의 약점이나 기질들이 (애덜먼이 그러한 방향으로 유도하기도 했고) 모두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좀 정리해 보자면 (프티 이데 모음인가..),
(1) 강의 스트레스 - 허시먼은 사적인 자리의 대화에서나 전 세계 곳곳에서 열렸던 대규모 강연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 유독 학생들 대상의 강의에서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는데요. 추측컨데, 허시먼은 자신의 지식을 수평적으로 전달하거나 전달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없었지 않나 싶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즐겼던 것 같고요. 문제는, 자신의 지식을 수직적으로 전달할 때, 복잡한 이론을 더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듯 합니다. 전문가가 입문자/초보자를 대할 때 겪는 어려움이 허시먼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일으킨 게 아닐까 합니다. 허시먼은 학생지도나 학생과의 교류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2) 자신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아픔, 상처, 죄책감 등을 밖으로 절대 드러내지 않는 면모를 보입니다. 마음 깊이 깊이 내려가 묻어두고 자물쇠로 봉인해버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에 소개된 2개 일화가 기억에 남는데요, 하나는 다른 사람들은 물론 새러에게도 마르세이유 시절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 —> 아마도 그 시절 어쩔 수 없이 저질렀던 불법 행위들에 대한 부끄러움 혹은 죄책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 번째는 16장에서 나온 훔친 자전거로 도망친 이야기 —> 절박한 상황인지라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텐데, (허시먼의 언어를 빌리자면)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신성한 이기주의의 발현”인 이 문제도 허시먼에게는 꽤나 큰 죄책감으로 남은 듯 합니다. 이런 부분을 자기자신이 “인식”하고 있었던 점은 대단합니다.
(3) 외골수/옹고집 학자의 면모 - 이건 약간 의외이긴 한데, (특히 학계의) 비판에 유연성이 부족한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라는 자세를 줄곧 유지하시더군요. 그런 성격도 있겠고, 아무래도 경제학계에서 주류가 아니다 보니 오랜 기간 방어적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심지어 상대방의 비판이 타당하다고 인정할 때마저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지 않는 뚝심을 발휘하십니다?!
(4) 왜 주류 경제학자들과는 협업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 학제간의 협업에는 오픈되어 있었고 비슷한 방향을 지향하는 학자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인 반면, 다른 연구 방법론을 구사하는 학자들 혹은 주류 경제학자들과의 협업에는 인색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경제학계의 손실이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요, 허시먼의 이론 중 어떤 것들은 서로 다른 연구방법론을 결합시켰을 때 (통계적 접근법 + 참여관찰법), 더 단단해질 여지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예를 들면, 이탈, 발언, 충성심같은 이론). 만나면 대판 싸우고 철전지 원수로 남을까봐 서로 피했을 수도..
YG
와! (1) (2) (3) (4) 모두 정확합니다. 특히 (1)은 저는 생각 못했었던 접근인데, @소피아 님 말씀 듣고 보니 정확히 그랬던 것 같아요.
(2) 관련해서 저는 허시먼이 스페인 내전 체험(정황상 대규모 전투에 참여해서 살아남았음이 분명해 보이는데도)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대의로 포장한 전쟁이라도 실제 전투 현장에서는 살인, 기만, 배신 등 온갖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야 생존이 가능했을 테고 허시먼에게 그건 정말 큰 도덕적 상처가 아니었을까?
(3) (4) 관련해서는 말씀대로 학계의 변방에 있으면서 생긴 방어 정서가 큰 원인으로 보여요. 뒷 부분에 애덜먼이 '허시먼이 노벨 경제학 상을 받았더라면' 하고 탄식하는 부분(20장)이 나옵니다('왜 허시먼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까?'). 만약 허시먼이 노벨상을 받았더라면 학계의 원로로서 훨씬 유연하게 그런 협업에 나서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20장 엄청 웃기는 대목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명예 박사 수집가 허시먼 등.)
소피아
1200페이지짜리 벽돌책 읽고 있자니, A4용지 서너장짜리 감상이나 메모, 끄적거림등등이 나오는군요 (웃고 있지만 눙물이 ^^;;)
명예박사 수집가 ㅎㅎ
YG
@소피아 님 말씀("1200페이지짜리 벽돌 책 읽고 있자니") 듣고 나니, 괜히 찔리는 건;;;
소피아
아, 아닙니다. 그냥 300페이지 책을 일주일에 한 권씩 3월 한달 간 모두 4권 읽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앨버트 허시먼>을 읽고 낙관주의의 화신으로 거듭나고 있는 나.. 하지만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고ㅠㅠ)
모시모시
이렇게 생각을 조리있게 정리하시다니 멋지고 부러워요~
제 머릿속에서는 막 엉켜서 뿌연 느낌이었는데 소피아님 말씀을 읽으니 좀 명확해지는 느낌이예요.
소피아
저는 경제학 이론 설명 나오는 부분이 뿌옇답니다? 아주 어두워요.
그나저나 다음달엔 과학책이라 더 어두워 질 것 같아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암전..
다음 책 시작하기 전에 심호흡 크게 10회하고 들어가야겠습니다. 후와- 뭐, @YG 님이 과학 전문가이시니까 뒤처지는 자에게 과외해주겠죠.(뻔뻔)
바나나
약간 진도가 늦어서 대화에는 참여 못하고 댓글만 읽고 있는데, 소피아님이 제 독서에 큰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정리가 확확 되네요! 그간 말씀못드렸지만 감사해요!
소피아
이 책이 너어어무 길고 중반 이후 이야기가 점점 밀도있게 전개되어서 내 머리 속 생각들을 좀 정리해봐야겠다고 끄적인게 다정하신 바나나님 독서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허시먼 선생님처럼 기록정신이 투철하지 못해서 정리하려면 힘이 들어요 ㅠㅜ
FiveJ
(2)이 항상 궁금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보통은 자신의 겸험을 빗대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싫어했던 허시먼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가혹한? 기준을 설정해서 그랬을까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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