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3. <앨버트 허시먼>

D-29
나이지리아 비아프르 내전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절반의 태양> 읽을 때 많이 찾아봤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세 부족 이름뿐이고요 - 이보족, 요루바족, 하우시족 ㅠㅠ 하지만 보르누 철도가 내전을 촉발시켰다는 건 이 책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근대적인 교통 시스템을 도입하여 국가 통합을 도모하려는 노력이 끔찍한 내전으로 이어진 것은 너무 기가 막힌 사례네요. 물론 나이지리아에서는 허시먼 본인도 자책했듯이 다가올 재앙을 예측하지 못했지만, 여기서도 허시먼 특유의 불안이나 위기를 동력삼아 해결책을 찾는 방식이 돋보였습니다. 그 방식이 대책없는 무분별한 무사안일주의나 근거없는 낙관주의, 또는 구호로만 남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어서 더 인상적이었구요.
[세트] 절반의 태양 1~2 세트 - 전2권1960년대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일꾼 으그우, 유학파 지식인 올란나, 영국인 리처드, 이 세 사람의 눈을 통해 대학살과 쿠데타, 내전으로 이어지는 나이지리아 현대사를 보여 주는 이 소설은 사랑, 배신, 질투와 같은 인간 본연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14장 읽으면서 나이지리아 철도 프로젝트와 내전이 허시먼의 사상과 연구에 작용하는 경로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허시먼이 이 건으로 매우 괴로워했다는 점도요. 소피아님 말씀대로 허시먼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도치 않은 결과를 재앙적인 결과가 되게 만드는 행동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밀고나가서, 경제학의 경계를 넘어선 연구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이런 좋은 책이 있었군요. 저는 서사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편이라, 역사책 보다는 소설책이 기억에 훨씬 더 많이 남더라구요. :)
아디치에 소설 중 2권을 읽었는데요, <절반의 태양>이랑 <숨통>. 아디치에 글 잘써요. 절반의 태양에서는 비아프라 내전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지금은 머리속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숨통을 (단편집)읽으면서 좀 놀랐어요. 단편을 너무 잘써서. 미국에서는 셀럽들이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를 많이 언급해서 아메리카나가 가장 대표작 취급받는 것 같던데, 그건 아직 안 읽어봤어요.
숨통아프리카 현대 문학을 이끄는 대표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숨통』이 새로운 장정으로 재출간되었다. 2002년부터 6년간 《프로스펙트》, 《그란타》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 발표했던 열두 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모든 것이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미국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전통을 지키려 애쓰며 자신만의 삶의 양식을 개척해 가는 나이지리아인들의 지난한 여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좋다는 얘기만 많이 듣고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태생 작가(사실은 미국 작가죠)는 낯설어서 선뜻 손이 안 가는데, 말씀처럼 이 작가는 여러 셀럽이 추천하더라고요. 저는 2022년인가 나이지리아 위에 있는 서아프리카 국가 세네갈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의 2021년 공쿠르상 수상작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엘리)을 읽은 게 아주 색다른 독서 경험이었어요.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읽고서 좋다고 평하신 작품이라서 생각나서 메모를 남겨둡니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2021년 공쿠르 수상작. 1976년 파트리크 그랑빌 이후 역대 최연소 수상작이다. 천재로 추앙되었다가 처참하게 공격받고 사라진 작가 T.C. 엘리만과 그가 남긴 위대한 소설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쫓는 또 한 명의 작가 디에간의 여정을 그린 압도적인 작품이다.
세네갈 출신 작가의 소설은 한 번도 안 읽어봤어요. 세네갈 출신이어서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활동하는 군요. 아프리카 작가들은 대부분 나이지리아나, 케냐, 탄자니아처럼 영어권 출신들이라 (물론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다 포함하면 프랑스어 문학 범위가 넓어지지만) 그만큼 사하라 이남 프랑스어 작가는 드물어서 관심갑니다.
14장에 나온 허시먼의 저작들 제목이 특히 더 캐치하고 멋있는 것 같아요. <<이탈, 발언, 충성심 (exit, voice, and loyalty)>> (떠날 것인가 남을것인가)는 제목이 굉장히 직관적이어서 느낌이 팍! 제일 읽어보고싶은 작품입니다. (사실 에델만이 설명을 너무 잘해서 반쯤 읽은것같은 느낌...) 논문집 제목이라는 <<희망으로의 편향 (A bias for hope)>> 도 멋지지 않습니까? 언젠가 써먹고 싶은 말입니다. :) 이 안에 서문으로 들어있다는 <정치경제학과 가능주의>도 에델만의 설명*을 들으니 읽어보고싶네요. *"허시먼의 <정치경제학과 가능주의>도 남미에 대한 논문집의 서문으로 숨어있지 않았더라면 사회과학의 기념비적 저술 중 하나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저 14장 읽으면서 너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이탈, 발언, 충성심 (exit, voice, and loyalty)> 원문은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더라구요? 필요하신 분 여기로 - https://www.uzh.ch/cmsssl/rwi/dam/jcr:ffffffff-a9a1-300b-ffff-ffff9023d189/HirschmanExitVoiceLoyalty.pdf
잘 읽을게요 ㅎㅎ
장애물에 대한 '인식'이 때로는 장애물 자체보다 더 해로울 수 있었다. 장애를 너무 거대하게 '인식'하면 그 장애가 결코 변화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잠재적인 대안들이 억눌리고 개혁의 길이 놓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장애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면 그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14장,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모시모시 『세계화의 덫』은 1997년 외환 위기를 전후로 대학가에서도 필수였죠. 아, 그때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걱정하고, 외국 자본에게 헐값에 팔려나갈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다가 군대 끌려간 기억이 나네요. (군대 가서는 내가 왜 영어 공부라도 하나 더 해서 카투사라도 가지 않았나, 왜 더 놀지 않았나, 그런 후회를 했었죠.ㅠ.)
이건 왠지 <세계화의 덫>을 고민(!)하다가 <군대의 덫>에 걸린 형국이 아닙니까! 어딘가 모르게 이기호 소설 주인공이 겪는 에피소드 분위기..
김 박사는 누구인가?이기호 소설집. 제11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을 비롯한 여덟 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기억과 기억 사이의 공백을 '이야기'로 보수해가면서 삶과 '이야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규명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기호의 신작 소설집.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유머리스트’라는 그간의 평가를 뛰어넘어 웃음기를 조금 거두고, 이 세계에서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란 왜 어려워져버린 것인지 특유의 속도감 있고 재기 넘치는 문장으로 들여다보았다.
혁명주의자들은 거대한 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었고,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변화가 구조적인 변화라고 보고 있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14장,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세대 차이 때문에 긴장이 있었다고 해서 하나의 명백한 사실을 덮어 버리면 안된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754.,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협소한 학과주의를 극복하려면 경제학, 정치학, 사회심리학, 도덕윤리학 사이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과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분화와 전문화 추세는 사회 문제가 점점 많아지는 현대 시기에 도리어 사회과학자들에게 눈가리개를 씌우는 시대의 역설로 보였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764.,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단순한 모든 것은 틀렸고 단순하지 않은 모든 것은 유용하지 않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768.,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이탈과 발언... 조직에 20년 넘게 있다가 나온 저에게는 매우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 책으로는 저의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아. 결국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를 질렀습니다. ^^;;
사람들은 완고한 이탈자도 아니고 순수한 항의자도 아니다.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들은 때로는 서로를 대신하고 때로는 서로를 보완하며 때로는 서로를 잠식한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781.,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이번 장을 읽는 내내 이탈과 발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의료대란'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허시먼은 사회과학자들이 자신이 만든 예언이 완벽해야 한다는 것에 너무 집착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늘 변화를 예측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측'은 확률적으로 '발생할 법한'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허시먼은 확률적으로 발생할 법한probable이라는 단어를 잠재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possible이라는 단어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795.,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이와 관련해, 허시먼은 전에 읽은 키르케고르를 떠올렸다. 키르케고르는 '가능한 것'과 '있을 법한 것'을 구분했다. "우리는 있을 법한 것에만 관심을 두고 (미약하게라도) 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지 않은가?" 또 사회과학계에서 보이는 확실성과 예측력에 대한 집착과 관련해서는 "결론을 내려는 열망에 반대하라"는 플로베르의 언명을 떠올렸다. 그런 열망은 우리를 '가짜 통찰'의 세계, 잃어버린 길과 막다른 결과들의 세계로 이끌 뿐이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795쪽,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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