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피아트의 자유' '아넬리의 자유' '박정희의 자유'는 "작은 자유"입니다. 그런 "작은 자유"는 현장 실습에 나선 고등학생이 프레스에 눌려서 죽고, 바다에 빠져 죽고, 모욕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막지 못합니다. <다음 소희> 같은 영화가, 조해진의 『환한 숨』(문학과지성)에 실린 슬픈 단편 「하나의 숨」 같은 소설이 끊임없이 나와야 합니다.
결정적으로 "작은 자유"는 20세기 초반 이탈리아가 파시즘의 득세를 막지 못했듯이, 개인과 그들이 연결된 공동체가 망가지는 일을 막지 못합니다. 그람시, 고베티, 레오네-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보비오 등 토리노 노동자와 지식인이 "또 다른 자유"를 외치면서 위기의 순간마다 목숨 걸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죠.
장문석은 "작은 자유"와 대조되는 토리노 노동자와 지식인이 말했던 다른 자유를 "큰 자유"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작은 덕'과 '큰 덕'의 메시지를 먼저 소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파심에 강조합니다. "큰 자유"가 "크다고 중요하고" "작은 자유"가 "작다고 사소한 것은" 아닙니다.
저자도 강조하듯이, 20세기 초반 독일,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는 이 작은 자유를 잃고 나서야 그 자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곤" 합니다. 저자는 "작은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노예"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큰 자유"는 우리가 노예로 빠지지 않도록 맞서는 "작은 자유의 파수꾼"입니다.
장문석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작은 자유에만 집착하는 것이 맹목적이라면, 작은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큰 자유는 공허할 것"이다. 토리노의 피아트와 아넬리는 (할 수 있는 한) "작은 자유"에만 집착하지 않았고, 토리노의 노동자와 그람시와 고베티와 레오네-나탈리아는 그 "작은 자유"를 지킴으로써 "큰 자유"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습니다.
『토리노 멜랑콜리』에서 저자는 현실 정치를 놓고서는 한마디도 안 합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자유'에만 가치를 두는 '윤석열의 자유'는 맹목적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작은 자유"를 무시하고 그것을 지킬 힘을 보여주지 못하는 "큰 자유"는 "공허"하고, 덧붙이면 지금 한국의 진보처럼 지리멸렬합니다.
다음 소희소희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터넷 회사 콜센터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직한다. 소녀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들뜨지만, 실상은 기대와 다르다. 노동 착취가 예사로 일어나는 콜센터는 그야말로 노동 지옥이다. 그곳의 잔인한 현실은 암울한 사고로 이어지고, 형사 유진은 악착같이 진실을 좇는다. 그러나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앞에서 그녀는 무력함을 절감한다
환한 숨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으로 대산문학상 수상한 이후 첫 책으로 총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조해진의 소설 속에선 모든 인물이 착하지만은 않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경우도 다반사지만 그럼에도 소설 속 인물들은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데에 이른다.
책장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