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3. <앨버트 허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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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세대 지식인 대부분이(일례로 허시먼보다 몇 살 많은 한나 아렌트만 보더라도) 희망보다는 우려, 기회보다는 재앙의 이유를 먼저 발견했다. (……) 대체로 사회과학은 주어진 조건들을 변수로 놓고 거기에서 확률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아보는 데 치중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의 연구는 대부분의 국가가 빈곤, 저개발, 독재 등의 당면 문제를 그 국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결론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이런 접근방법은 '상상력'에 많은 여지를 남겨 주지 않았고, 학자가 된다는 것이 학문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허시먼은 사건이 변칙적이거나 일탈적이거나 뒤집힌 순서로 전개될 가능성들을 생각해 보고 그것을 잠재적 경로로서 그려 볼 수 있도록 연구자의 상상력을 재설정해 줄 사회과학을 만들고 싶었다. 미래의 역사가 나아갈 수 있는 대안적 경로에 여지를 열어 줄 다양한 조합들을 탐색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28 들어가는 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그는 현대사회에서 공공 사안에 대한 주장들이 '어떤 형태로' 개진되고 있는지를 연구해 마지막 주요 저서인 《반동의 화법》[한국어판: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을 펴냈다. 이 책에서 허시먼은 경직적이고 비타협적인 형태의 주장들이 선택지와 대안의 범위를 좁혀버림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회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정치와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포착한 주장이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 31 들어가는 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허시먼의 저술에는 사회과학을 문학으로서 풀어내고자 한 노력이 드러나 있다. 그 결과, 문학과 사회과학이 점점 단절되던 추세 속에서 허시먼은 매우 독창적인 문체와 내용을 선보이는 저자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 38 들어가는 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과도하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것, 시야를 좁혀 버리는 것, 방법론적 기교와 전문용어에 통달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연구[엄정하게 증명하기]와 담론[말로 설파하기]사이를 가로지르며 얻을 수 있는 활력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20세기의 추세에 대해,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려 한 것이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 39 들어가는 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확실성을 의심하는 회의주의자로서, 허시먼은 이례적인 현상이나 예기치 못했던 일,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와 같이 학술 논문보다는 문학작품에서 더 쉽게 발견되는 요소들을 선호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45 들어가는 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 20세기를 극단의시대로 보는 견해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혁명 쪽이든 반동 쪽이든 가장 극단적인 사상과 사상가들에게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허시먼은 혁명과 반혁명 사이,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사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 또 다른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개혁'의 영역이었다. 유토피아적인 거대 담론들의 틈바구니에서 공격받고 부서지고 숨겨지곤 했던 '개혁의 영역'은, 목적과 지향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합의되어 있지는 않으며, 따라서 무성한 논쟁과 갈등 속에서 변화해 나가는 영역이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47 들어가는 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인간을 '완벽해질 수 있는 존재'로 보지 않고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면 어땠을까? 허시먼은 우리의 상상력이 전자에만 치중한 나머지 후자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기껏해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정도로 치부하는 것을 애석해했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48 들어가는 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앨버트 O. 허시먼의 삶을 읽으면 개혁의 영역이 20세기 지식인들을 지배했던 숭고한 유토피아의 부차적 공간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단적으로, 개혁의 영역은 그 자신도 걸출한 20세기 지식인이었던 허시먼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핵심 주제였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p.49 들어가는 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열여덟 살 생일을 닷새 앞둔 4월 2일, 오토 알베르트는 베를린을 떠났다. 그의 베를린 생활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허시먼은 1979년에야 여행자로서 베를린 땅을 다시 밟게 된다." (162쪽) 2장의 이 문장이 저는 그렇게 마음에 박히더라고요. 오늘 화요일(3월 5일) 읽을 3장에서는 살기 위해서 10대 중반에 가족을 떠나 프랑스로 건너간 오토의 프랑스 망명 생활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이곳에서 오토는 평생 자신에게 영향을 줄 중요한 인물 에우제니오 콜로르니와도 인연을 맺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에우제니오 콜로르니는 오토의 누나 우르줄라와 결혼합니다. 그렇게 둘 사이에 낳은 딸 가운데 에바는 나중에 경제학자가 되어서 우리가 1월 벽돌 책 『사람을 위한 경제학』에서 살폈던 아마르티아 센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에우제니오는 센의 장인이고, 허시먼에게 센은 조카사위가 되는 셈이죠. (허시먼과 센의 관계도 에피소드 중심으로 평전이 진행되면서 나옵니다.)
2장 까지 읽었습니다. 들어가는 말에서 허시만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알수있었고 1,2장에서 그의 어린시절을 알수 있었네요. 1,2월 벽돌책 읽으면서 케인즈나 프리드먼을 섞을순 없나? 서로 조심씩 양도 하면 한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허시먼이 약간 그런? 인물인거 같아서 뒤로 갈수록 기대가 됩니다. 1,2장에선 저도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육아에 관한 생각이 많아 졌습니다. 이건 어떤 책을 읽어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어쩔수 없나 봅니다. 5세 남아 인데 중고딩은 되야 그런 생각이 덜날까 생각해봅니다. 2장에선 히틀러가 권력잡는 과정을 그 시대 살았던 사람의 눈으로 보니 더 실감나게 알수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 그때 시대상이 운이 없기도 하고 히틀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도 있는거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키신저관련 영상을 보았는데 그분도 딱 이시기에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어린시절의 혼란이 성장할때 영향을 미치는거 같고 이시기 유대인의 삶에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관련 책이 있을거 같은데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는 3장 읽으면서 정말 신나는 경험을 했어요. 글을 한 편 쓰고 싶을 정도로. (아마 쓸 듯합니다.) 아르헨티나 작가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가 이런 말을 했거든요. 이런 경험을 한 것이죠. (그 경험의 정체는 나중에.)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 이 인용문은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에 나오는데요. 참고로 망구엘은 10대 때 시력을 잃어가던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약 4년간 책을 읽어주는 특별한 경험을 했던 작가로 유명합니다. 『은유가 된 독자』를 포함한 몇 권의 책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어요. 『독서의 역사』는 1996년에 나온 원서를 번역한 망구엘의 책 가운데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 그의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해요.
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독서를 다룬 책 중 가장 빼어난 이야기." 언어의 파수꾼이자 책의 수호자, 세계 최고의 독서가라 불리는 알베르토 망구엘. 그를 움베르토 에코 이래로 문학계 최고 지성의 반열에 오르게 한 기념비적인 역작이다.
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알베르토 망구엘은 서구의 지성 사회에서 '세계 최고의 독서가'로 불린다. 자신도 '나의 직업은 독서가'라고 할 만큼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 책 3만여 권을 소장한 개인도서관을 짓고 서가 사이를 거닐면서 명상하고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세계 최고의 독서가가 전하는 책과 세상에 관한 지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신화, 정리, 공간, 힘, 그림자, 형상, 우연, 일터, 정신, 섬, 생존, 망각, 상상, 정체성, 집이라는 열다섯 가지의 주제를 통해 그는 도서관에 대한 역사와 일화를 낭만적으로 풀어나간다.
독서일기작가, 번역자, 편집자이자 열정적인 독서가인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일기이다. 2002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1년간 매달 한 권씩 총 열두 권을 읽은 기록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놓았다. 흔한 줄거리 소개나 인상 비평 대신 일기의 형식에 걸맞게 각지를 옮겨다니는 역동적인 일상 속에서 지은이의 사색을 가감없이 자유분방하게 보여준다.
나의 그림 읽기 - 알베르토 망구엘의위대한 작가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그림 속에서 읽어낸다. 고대 그리스의 필록세누스에서부터 피카소, 아이젠만 등 동시대의 대표 화가, 건축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예술작품과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엮어낸다.
3장 읽으면서 아르헨티나 작가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의 다음 말을 인용한 적이 있었죠.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 그때의 경험을 짧은 글로 한 번 써봤어요. 모임 마무리하는 시간이니 공유합니다. <기획회의> '이 주의 큐레이션' 꼭지에 썼던 글입니다.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 "책을 읽으면서 그전에 다른 책을 읽었을 때를 회상하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독서야말로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간통이다." (『독서의 역사』, 37쪽) 아르헨티나 작가 에세키엘 마르티네스 에스트라다가 한 말입니다. 이 인용문은 알베르토 망겔의 『독서의 역사』(세종)를 읽다가 발견했습니다. 망겔은 10대 때 시력을 잃어가던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약 4년간 책을 읽어주는 특별한 경험을 했던 작가로 유명합니다. 그가 1996년에 펴낸 『독서의 역사』는 그의 책 가운데 처음 한국에 소개된 것이었죠. 이 책, 저 책 관심 가는 대로 정해진 목록 없이 책을 읽는 게 버릇이 되다 보니, 뜻밖에 '간통 같은 독서'를 체험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혼자서 괜히 뿌듯해하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넘어가곤 합니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 사이에 했던 경험은 꼭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왠지 그렇게 얽힌 책들이 예사롭지 않아서요.
시작은 튀르키예 작가 쥴퓌 리바넬리의 『세레나데』(문학과지성사)였습니다. 리바넬리는 이전에도 몇 차례 추천을 받았지만, 연이 닿지 않던 작가였죠. 1946년생 리바넬리는 튀르키예의 68 세대 작가입니다. 1971년 군사 쿠데타 이후 체포와 구금, 도피와 11년간의 망명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고 음악을 작곡했죠. 귀국하고 나서 40대와 50대 때는 좌파 진보 정당 후보로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도 나서고, 2002년 총선에는 중도좌파 성향 정당 국회의원으로 당선해서 활동하기도 했답니다. 정치를 은퇴하고 나서도 여전히 많은 튀르키예 시민이 그를 에르도안과 같은 이슬람 정치 세력에 대항하는 세속주의를 대표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세레나데』는 리바넬리가 만 65세가 되던 2011년에 펴낸 작품입니다. 튀르키예에서 나오자마자 3일 만에 5만 부가 팔리며 주목받았고 현재까지 약 130만 부가 판매된 화제작입니다. 이전부터 그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어서 작년(2023년) 가을 책이 번역되자마자 읽었습니다.
세레나데튀르키예의 행동하는 양심 쥴퓌 리바넬리의 대표작. 전쟁의 혼란 속에 국가와 정치 권력이 자행한 악행을 추적하면서 그간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주 독특한 소설이었어요. 2001년 이스탄불. 36세 주인공 마야는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외국인 손님 접대를 담당하는 직원입니다. 그에게 이스탄불을 오랜만에 방문하는 독일계 미국인 교수 막시밀리안 바그너를 수행하는 임무가 주어집니다. 바그너는 1914년생으로 만 86세 노인이죠. 1942년 이스탄불을 떠나고 나서 59년 만의 방문이었습니다. 고령과 건강만 빼놓고는 특별할 게 없어 보였던 바그너를 수행하고 나서부터 마야는 혼란에 빠집니다. 정보기관 요원처럼 보이는 수상한 이들이 마야와 바그너 일행을 미행하고, 심지어 그들이 그녀에게 접근해서 바그너의 행적을 보고하라며 회유까지 하죠. 10대의 아들을 혼자서 키우던, 고되지만 평범했던 그녀의 삶이 바그너와 얽히면서 깨지기 시작하죠. 이 과정에서 마야는 기가 막힌 바그너의 인생사를 하나씩 알아갑니다. 바그너는 1939년 독일을 떠나고 나서 한 번도 고국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가톨릭계 부잣집 아들이었던 바그너는 도대체 왜 나치가 집권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 튀르키예로 오게 된 것일까요? 1942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는 59년 만에 이스탄불을 찾은 것일까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장치로 등장하는 인물과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에리히 아우허바흐와 그가 1946년 펴낸 『미메시스』(민음사, 2012)입니다. 『미메시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까지 살피면서 현실과 재현 그리고 당대 사회, 문화가 예술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탐구한 문학 비평의 걸작으로 꼽히는 책이랍니다. 나도 제목만 들어본, 읽어볼 생각은 안 했던 고전이죠. 솔직히 말하면, 저자에게는 관심도 없었죠. 이 아우허바흐가 『미메시스』를 공들여서 완성한 곳이 바로 이스탄불입니다. 애초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 교수였던 그가 나치 독일에서 추방당하고 나서 1936년부터 1947년까지 11년간 이스탄불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메시스』를 썼으니까요. 『세레나데』의 바그너가 마야에게 아우허바흐와 이스탄불의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미메시스』 읽기와 번역을 권합니다. 마야는 독자와 함께 바그너를 둘러싼 비밀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나중에는 작중에서 『미메시스』를 튀르키예어로 번역하죠.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아우허바흐와 『미메시스』가 이스탄불과 함께 또렷하게 새겨졌습니다.
미메시스오디세우스의 서사시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남긴 주요 작품들을 치밀하게 해석한 비평의 걸작. 이 책에서 저자는 '관습이 어떻게 역사를 통하여 예술적 표현을 제약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어떠한 사회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는가, 또 예술은 어떻게 이러한 것을 개조하고 새로운 표현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예술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다가 올해(2024년) 2월 제러미 애덜먼의 『앨버트 허시먼』(부키)을 읽을 때였습니다. 3월에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을 벽돌 책을 미리 예습하고 있었죠. 10년쯤 전에 원서로 더듬더듬 읽고 나서, 재독하던 중 갑자기 눈에 밟히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에리히 아우허바흐! 그가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가르친 제자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이탈리아 유학생 에우제니오 콜로르니입니다. 아우허바흐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에우제니오 콜로르니는 193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 생활 중인 독일 사회민주당 10대 청년의 멘토가 됩니다. 나중에는 그 청년의 누나와 결혼해서 자형-처남 사이가 되죠. 네, 맞습니다. 그 10대 청년이 바로 『앨버트 허시먼』의 주인공 허시먼입니다. 아우허바흐-콜로르니-허시먼으로 한 세계관이 이어진 것이죠. 애덜먼은 바로 이 기막힌 인연을 포착하고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렇게 인상적으로 정리합니다. "허시먼이 아우어바흐가 자신에게 간접적으로 미친 막대한 영향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20세기에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비자발적 이주와 단절이 야기한 아이러니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앨버트 허시먼』, 212쪽) 비자발적 이주! 아우허바흐는 튀르키예를 거쳐서 미국에 정착하죠. 콜로르니는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돌아가 반파시스트 운동을 하다 종전 직전에 피살당합니다. (그와 허시먼의 누나 사이에 난 딸 에바는 나중에 경제학자가 되죠. 그 에바가 결혼하고 영향을 준 경제학자가 바로 아마르티아 센입니다.) 허시먼은 어떻고요. 독일-프랑스-영국-프랑스-이탈리아-프랑스-미국-콜롬비아 등을 떠돌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경제사상을 발전시키죠. 튀르키예와 『세레나데』, 아우허바흐와 『미메시스』, 콜로르니와 허시먼으로 갑작스럽게 이어지면서 가슴에 공명을 느낀 이런 경험이야말로 '간통 같은 독서'의 한 사례 같았습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만 언급하죠. 이탈리아 반파시스트 운동의 선봉에 섰던 에우제니오 콜로르니와 뜻을 같이했던 토리노의 동지 가운데 역시 1944년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진 레오네 긴츠부르그가 있습니다. 혹시 1년쯤 전에 극찬하면서 소개했던 역사학자 장문석의 에세이 『토리노 멜랑콜리』(문학과지성사)가 기억나나요? 그 『토리노 멜랑콜리』의 중심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레오네 긴츠부르그입니다. 레오네의 동지이자 결혼해서 가족을 꾸렸던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돌베개)도 함께 소개했었죠. 둘 사이에서 난 첫째 아들이 『치즈와 구더기』(문학과지성)를 쓴 역사학자 카를로 긴츠부르그라는 사실도요. (허시먼은 긴츠부르그 가족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답니다.) 1년 전 쓴 그 글에서 '큰 덕'과 '작은 덕'을 대비하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지를 놓고서 답했던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짧은 인용문을 소개했습니다. 그 인용문이 담긴 나탈리아의 책 『작은 미덕들』(휴머니스트)도 작년(2023년) 국내에 소개된 사실을 이참에 알려드립니다. 이렇게 책들이 또 얽힙니다.
토리노 멜랑콜리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이탈리아사 및 유럽 현대사를 연구해온 서울대 서양사학과 장문석 교수의 신작으로, 멜랑콜리의 도시, 혹은 “이탈리아의 디트로이트/이탈리아의 페트로그라드”라고 불렸던 토리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족어 사전이탈리아 작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소설. 1963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 스트레가 상 수상작으로,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현대의 고전'이다.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자전적 이야기다.
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20세기 역사학의 흐름을 바꿔놓은 미시사 및 미시사 방법론의 선구적 업적이자 교과서로 불리는 책. 저자 진즈부르그는 16세기 이탈리아의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를 통해 당대의 이데올로기와 심성, 문화, 사회 변동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작은 미덕들나탈리아 긴츠부르그는 현대 이탈리아 문학의 가장 눈부신 불빛이자 움베르토 에코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가로 꼽힌다. 《작은 미덕들》은 1944년부터 1962년까지 그가 발표한 에세이 11편을 묶은 것이다.
저 <세레나데> 장바구니에 있는데 결제 대기 모드 들어갑니다- (전에 추천해주신 듯). 그리고 지금 <미메시스> 미리보기로 “오디세우스의 흉터” 좀 읽어봤는데, 오호 흥미롭네요. 하지만, 742페이지-전자책 없음. 출판사여, 400페이지 넘는 책은 독자의 손목과 어깨 보호를 위해 웬만하면 전자책 좀 내주셔요- <토리노 멜랑코리>는 이미 구매했어요. 시작하자마자 긴츠부르그의 작은 덕, 큰 덕이 나오데요?
에우제니오와 대화를 나누면서 오토 알베르트는 지식의 작은 조각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이것을 ‘작은 생각들’이라고 불렀다. “이것들은 어떤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세계에 대해 전체적인 지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것들은 이전의 모든 이데올로기가 했던 주장을 뒤흔들 것이다.” 이러한 ‘프티 이데petit idée[‘작은 생각’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는 허시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앨버트 허시먼 -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3장,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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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세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
2025년을 위해 그믐이 고른 고전 12권!
[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 한강 작가의 책 읽기는 계속됩니다!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2탄)흰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한강 작가님 책 읽기] '소년이 온다'를 함께 읽으실 분을 구합니다.
현대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을 작가, 평론가와 함께 읽습니다.
[📕수북탐독] 4. 콜센터⭐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3. 로메리고 주식회사⭐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빅토리아 시대 덕후, 박산호 번역가가 고른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3!
[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① <위대한 유산>[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② <올리버 트위스트>[박산호의 빅토리아 시대 읽기] 찰스 디킨스 ③ <두 도시 이야기>
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지금 읽기 좋은 뇌과학 책 by 신아
[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3. 도둑맞은 뇌[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2.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1.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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