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2부 같이 읽어요

D-29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만 따로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비교하며 다시 보니 내용을 곱씹게 되네요. 부분을 정확하게 보지만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조합하지 못한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정말 그렇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여러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 어렴풋이 올리버 색스 책에서 관련된 내용 본것같다고 생각했는데 콕 집어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추상의 세계에서만 사는 것, 구체의 세계에서만 사는 것 둘 중에 선택해야만 한다면;;; 어떤게 더 나을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죠... 보르헤스의 ⟨기억의 천재 푸네스⟩와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추상화라는 인간 정신을 서로 다른 두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 같아요. 굳이 표현하자면 푸네스가 구체성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면, 올리버 색스의 글에 나오는 P선생은 추상성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같이 읽을 만한 재밌는 시가 있어서 공유합니다. 보르헤스전집판 표지를 디자인 하신 박상순 시인의 시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 번째는 전화기⟩입니다.
6은 나무 7은 돌고래박상순의 시는 우리 시의 새로운 방향을 암시하는 매우 전위적이고 따라서 낯선 느낌이 드는 시이다. 어느 시대에나 전위적인 예술가들은 당대의 미적 인식을 부정하는 자기 파괴성을 보여준다. ─이승훈
첫 번째는 나 2는 자동차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열 번째는 전화기 첫 번째의 내가 열 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놀이 장난감 아홉까지 배운 날 불어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 번째는 나 열 번째는 전화기
6은 나무 7은 돌고래 90-91쪽, 박상순 지음
잠깐 짚어두고 갑니다. 제가 갖고 있는 보르헤스전집판본(2019년 52쇄)에서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187쪽 중간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또한 그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14의 3에 있는 개와 (정면에서 보았을 때) 4의 3에 있는 개가 왜 똑같은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 골머리를 앓았다." 영어 판본과 스페인어 원문으로 해당 내용을 찾아보고 비교해본 결과(DeepL Pro를 활용했습니다), 이렇게 옮겨지는 게 좋을 듯합니다. "또한 그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3시 14분에 있던 개와 (정면에서 보았을 때) 3시 15분에 있는 개가 왜 똑같은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를 두고 골머리를 앓았다."
오. 파본인지 오타인지 오역인지 의도인지 뭔가 이상하네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송병선)에는 제대로 되어있어요. "그는 ‘개’라는 속(屬)적 상징이 형태와 크기가 상이한 서로 다른 개체들을 포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또한 3시 14분에 측면에서 보았던 개가 3시 15분에 정면에서 보았던 개와 동일한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곤 했다."
한국일보에 기획 기사 [AI시대, 노동의 지각변동] 시리즈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올립니다. 존 로크가 17세기에 모든 사물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가 현재에 와서 다시 시도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차이점이 있다면 그 작업이 단 한 사람의 광오한 의지로 실행되고 있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위 말하는 '데이터 라벨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인데요, '디지털 인형 눈알 붙이기'라고도 불리우는 이 작업은 AI가 학습하기 쉬운 형태로 데이터를 가공합니다.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이해하고 스스로 진화한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AI 기술 발달은 역설적이게도 제삼세계 데이터 라벨러들의 손을 빌려 학습되고 있습니다. 구글에서 reCAPTCHA라는 튜링테스트를 이용해서 특정 사이트에 접근하는 사용자의 학습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과 같습니다(9개나 12개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횡단보도가 있는 이미지를 모두 고르라거나, 자전거 이미지가 들어간 타일을 모두 고르라거나 하는 식의 튜링테스트입니다). 요약하면, 오늘날 우리가 ChatGPT나 Bing을 이용해서 손쉽게 자료를 찾아보고 의견을 구할 수 있었던 데는 무수한 제삼세계 데이터 라벨러들의 온라인 인형눈알붙이기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죠... 지난 세기 푸네스가 기획했던 허무맹랑한 시도는 오늘에 이르러서 고도로 체계화된 방식으로 재시도되고 있습니다. 이걸 흥미롭다고 해야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특집 기사 시리즈를 보세요. [한국일보-AI시대, 노동의 지각변동]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4020611470003739
제가 많이 부족하여ㅜ 책을 읽고 나서도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었는데 적어주신 내용을 읽다 보니 제가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뇨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저도 시간을 길게 두고 틈틈이 짧은 단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이런저런 살을 덧붙이는 것 뿐이니까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저는 어떤 책을 이해해야 한다고 접근하기보다 풍경을 감상한다는 자세로 좀 느슨하게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전나무가 무성한 산길을 지나갈 때 전나무의 생애주기와 역사와 그 생식을 모두 이해해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소설로 넘어오면 좀 다르게 얘기할 순 있겠지만, 자세를 무너뜨린 채로 느긋하게 시간을 천천히 두고 여러번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칼의 형상~] 쭉 따라서 읽기에 별 무리가 없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20세기 초반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으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존 빈센트 문'의 내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가 왜 이러한 우회적인 이야기 형식을 택한 것인지 역시 이해할 수 있고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1. [아일랜드 역사④…굶어 죽거나 이민 떠나거나]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9 2. [아일랜드 역사⑤…민족주의 대두, 거센 독립운동]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2 3. [아일랜드 역사⑥…對英 전쟁. 내전, 그리고 독립]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5
이 작품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마지막의 '시점의 턴테이블'이라 불러야될까... 화자가 바꿔치기되고 이야기 시점이 반대로 탁 돌아서는 순간에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쾌감이 있었습니다. (사실 결말에 다가서기 조금 전부터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읽고 있었지만서도)
너무 재밌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단편이기도 합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1부보다는 2부에 수록된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이 좋습니다.
“내 흉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소.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 어떤 비난이나 경멸도 누그러뜨리지 말고, 그 어떤 불법적인 상황도 변호하려 하지 마시오."
픽션들 칼의 형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우리에게 아일랜드는 이상향에 가까운 미래였고, 참기 힘든 현재인 것만은 아니었다오. 그것은 하나의 씁쓸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신화였고, 원형의 탑들과 붉은 수렁이기도 했소. 그것은 파넬의 이혼 스캔들이었고, 전생에서는 영웅들이었고, 또 다른 전생에서는 물고기 떼와 산맥이었던 황소들을 도둑질하는 이야기를 노래하는 거대한 서사시였소…….
픽션들 칼의 형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셰익스피어도 어떤 관점에서보면 저 가엾은 존 빈센트 문이라오." 는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나온건지 잘 이해가 안갔어요 🤔 일부 지배층을 희화화하는 작품을 쓰긴 했지만 빈센트 문처럼 말뿐이고 행동에 나서진 않은 겁쟁이라고 암시하는걸까요? (동의하기 어려움), 일반적인 의미에서 앞의 논리에서 이어져서 누군가는 모든 사람이므로 훌륭한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도 어떻게 보면 빈센트 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뜻일까요? (그럼 왜 굳이 셰익스피어를 예로 들었는지? 잉글랜드인이라서?) 전체 줄거리 이해에는 별 지장이 없는 사소한 의문이긴 한데, 잘 몰라서 여기 남겨봅니다.
마치 빈센트 문이 아니라 내 쪽이 겁쟁이가 된 것 같았소.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면, 그건 마치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요. 그래서 어느 동산에서 있었던 단 한 번의 불복종이 모든 인류를 전염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부당하지 않소. 같은 이유로 한 사람의 유대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도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니오. 아마 쇼펜하우어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소. 나는 다른 사람들이고, 다른 누군가는 모든 사람이며, 셰익스피어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저 가엾은 존 빈센트 문이라오.
픽션들 칼의 형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추측컨대, '셰익스피어의 저자 논쟁'이라고 불리우는 오래된 학술적 논쟁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부터 셰익스피어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저자로 이뤄진 익명의 작가 집단이 아니냐는 의문 제기가 있었거든요. 일각에서는 이를 음모론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관련한 유명한 저서로는 제임스 샤피로의 책이 있습니다. 제임스 샤피로는 해당 논쟁을 음모론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라요!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 - 셰익스피어 희곡을 두고 벌어진 200년간의 논쟁과 추적25년 동안 컬럼비아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연구해온 저자가 "왜 셰익스피어의 원작자 여부에 대해 그렇게 많은 논의가 오갔던가?" 그리고 "음모론이 등장할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인가?" 에 대해서 파헤친다.
아! 그 '셰익스피어 사실 누군지 모른다'썰은 들어본 적 있어요. 이 맥락에서 이해하면 말이 좀 맞아들어가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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