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2부 같이 읽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비밀의 기적~] 하루 쉬고 다시 시작합니다😃 흘라딕은 죽음 직전에 신에게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희곡을 완성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신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만, 그가 마지막 성질 형용사를 떠올리는 순간, 그리하여 그것이 작품 형태를 갖춰서 사람들에게 읽히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게 만듭니다. 신은 작가로서 평생의 작품을 완성하고자 했던 흘라딕의 소원을 들어주긴 했지만 그의 욕망을 이뤄주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흘라딕이 완성했다는 희곡은 아무도 읽지 못합니다. 다만 그가 완성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텐데, 흘라딕의 작품을 논하는 것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쓰러진 나무가 어떤 소리를 냈는지 논하는 것만큼이나 아득한 일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작품을 완성하려는 작가의 욕망이 얼마나 끈질긴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그는 이렇게 씁니다. “다른 모든 작가들처럼, 그 또한 다른 작가들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그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에 근거해 평가하면서도, 다른 작가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거나 계획해 놓은 작품들을 가지고 평가해 주기를 바랐다(like every writer, he measured other men's virtues by what they had accomplished, yet asked that other men measure him by what he planned someday to do)." 독자에게 기존의 작품을 통해서 앞으로 있게 될 작품까지 보아주기를 바라는 작가의 태도는, 이렇듯 역사적 시간과 전혀 다르게 흐르는 문학적 시간 안에서만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명이 틀 무렵, 그는 클레멘티눔 도서관의 한 서고에 숨어 있는 꿈을 꾸었다. 검은 색안경을 낀 사서가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찾으시지요?” 흘라딕이 대답했다. “하느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서가 말했다. “하느님은 클레멘티눔 도서관이 소장한 사십 만 권 중의 한 책에 있는 한 페이지의 글자들 중의 하나에 있어요. 내 부모들과 내 부모들의 부모들은 그 글자를 찾았지요. 나도 그것을 찾느라 눈이 멀어 버렸소.”
픽션들 비밀의 기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클레멘티눔 도서관은 프라하에 있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사진으로 보니 신비한 느낌 가득하네요.
이 부분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보르헤스가 이 작품을 발표한 시기는 1943년이라고 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보르헤스스가 40대 중반 정도였습니다. 보르헤스 자체가 좀 특이한 시기에 태어난 인물입니다. 1899년, 그러니까 19세기의 마지막이자 20세기의 초입에 태어났는데요, 가족력 때문인지 태어나면서부터 시력이 점점 악화됐다고 해요. 그러다가 55세가 되던 해에 완전히 실명했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클레멘티눔 도서관의 검은 색안경을 낀(시력을 잃은 것으로 추측되는) 사서는 후일 아르헨티나 국립공공도서관 관장이 될 자신을 예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 거의 10년도 전에 쓰여진 예언적인 작품이네요.
그것은 후대를 위한 작업도, 어떤 문학적 취향의 소유자인지 모를 하느님을 위한 작업도 아니었다. 그는 시간 속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세심하고 비밀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고상한 미로를 만들었다.
픽션들 비밀의 기적,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비밀의 기적] 흘라딕이 헤르 발쉬도르 출판사를 통해 번역가로 활동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여러 작가들의 책을 번역하면서 그간 "출판했던 모든 책들"에서 "복잡미묘한 허탈감을" 느낍니다. 근원적으로 자신이 생각한 기준에 작품들이 조금씩 못 미치는 것을 알고, 이내 자신이 직접 시곡을 쓰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시곡의 내용도 주목할 만합니다. 흘라딕은 야로슬라브 쿠빈이라는 등장인물을 내세우는데, 그는 자신이 흠모하는 부인의 남편이 되었다는 망상에 빠져있는 인물입니다. 번역자는 원작자는 아니나 누구보다 원작자의 텍스트에 근접하여 그 텍스트를 도착어로 옮기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시곡 속의 내용은 현실의 흘라딕이 처한 상황을 조금씩 누설하고 있습니다. 한편,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죽음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한 그 사람은 살아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사람은 죽음에 가장 가까워지는 그 순간을 다만 무한히 인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단, 시간이 무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한 강연에서 어떤 철학자의 말을 빌려서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죽음도 엄밀한 의미에서 경험(인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죽음이 "모든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고 말하면서, 곧이어 "모든 가능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능성"이라고 부연합니다.
사람은 죽지요. 일개 인간은 죽습니다. 그런데 내가 죽는 것은 확실합니까? 죽을 수 있습니까? (···) 자, 죽기로 결심합니다. 목을 매든 방아쇠를 당기든 본인 마음입니다. 그런데 죽으려는 내게 이상한 사태가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그 행위를 하고 있는 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니 영원한 슬로모션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내내 죽어갑니다.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계속해서 죽어갑니다. 죽음은 끝나지 않습니다. 본인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 괴상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비트겐슈타인이 멋지게 한마디로 정의했거든요. “이제껏 머리뼈를 열어본 인간에게는 모두 뇌가 있었다. 정말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본인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물론 본인이 죽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습니다. 본인이 죽은 것을 아는 망자는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이 죽은 것을 모릅니다. 자신의 시체를 본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시체와 가장 흡사한 것을 보고 싶으면 거울을 보면 됩니다. 그것이 거울의 매력입니다. (···) 어째서 모두 거울을 좋아하냐면 거기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시체,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시체와 가장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종교에서 천국이나 극락, 불성이나 신성은 여러분의 손이 닿지 않는 저편에 있는 동시에 여러분의 자신 속에, 여러분 가까이에 있다고 말하죠. 그러나 자신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머나먼 장소이자 절대적으로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성스러운 장소는 자신의 시체입니다.
제자리걸음을 멈추고 111-112쪽, 사사키 아타루 지음, 김소운 옮김
제자리걸음을 멈추고자기주장과 색깔이 분명한 일본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의 또 다른 신간. <야전과 영원> 출간 이전부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대성공에 이르기까지 힘차고 거침없이 춤추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 시기를 관통해온 약동하는 사유의 흐름을 돌아본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이 이야기는 유다 이스카리옷을 둘러싼 신학적 사변을 다룹니다. 먼저 사족을 달자면, 저는 비신도의 입장에서 성서를 경전이 아닌 하나의 텍스트로 보고 서사적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간혹 사실 관계가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너그럽게 지적해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유다는 성서 속에 등장하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다가, 후일 예수를 '작은 은 30'을 받고 배반한 죄로 버려지고 제명되어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인물입니다. 보르헤스는 이 논증 형식의 소설에서, 루네베리라는 독실한 종교인을 내세워서 그가 당대의 학자들과 주고 받은 세 번의 신학적 공박 과정을 소개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제목에 나오는 이 '셋'이라는 숫자도 성서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상징적인 숫자이긴 합니다.
루네베리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해명을 제시한다. 그는 능란하게 유다가 한 불필요한 행동에 대한 강조로 자신의 논지를 시작한다. 그는 (마치 로버트슨처럼) 단지 성전 안에서 설교를 하고 수천 명의 군중이 보는 앞에서 기적을 행했던 스승의 참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라면 제자가 스승을 배반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은 일어났다. 성경에 실수가 개입되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에 우연이 게재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다의 배반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경제학에 있어 신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리 예정된 사건이다.
픽션들 247-24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전 이 작품이 좀 어려워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신형철 평론가님이 한겨례21에 기고한 글을 발견했는데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되었어요.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1706.html
이런 모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루네베리는 거의 기적적인 것이 확인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하느님이 그런 무관심을 명하셨으며,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가공할 만한 비밀이 이 땅 위에 유포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이었다.
픽션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전 신학적 내용에 대한 해석과 반박보다는 루네베리가 자신의 이론이 외면받자 보인 마지막 반응 ㅡ 하느님이 자신의 비밀이 유포되기 원하지 않으셔서 사람들의 무관심을 명하셨다고;;;; ㅡ 이 흥미로웠어요. 일종의 확증편향이랄까요 정신승리랄까요... 그런데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람들 가끔 있지 않나요? 내가 틀린게 아니라 세상이 틀린거고... 모든 현상을 자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어떻게든 해석하는 사람들?... 😅
그렇군요! 누군가에겐 정신승리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오독처럼 보일수도 있고요. 신형철 평론가님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네요. "물론 신학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오독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이 오독의 빛에 의지해 인간이라는 심해로 내려간다." 제 생각을 덧붙이자면, 오독이라고 해서 다 같은 오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오독은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관철시키고 텍스트를 깔고 앉아서 자기 스피커를 키우기 위한 것인 반면, 또 어떤 오독은 고정적인 해석에 반기를 들고 텍스트 자체를 열어젖히고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저는 루네베리의 논증이 후자 쪽에 더 가깝다고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독자로서 우리는 어떤 텍스트의 권위적인 해석을 좇기보다는 자기만의 오독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 독창적인 오독이 아집이 되지 않으려면, 논쟁에 더 열려 있는 자세여야 할 테고요. 반대로 생각하면 루네베리는 세 번의 논증이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계속 얘기해보면, 루네베리는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성서의 인물에 대한 이설(異說)을 제기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를 팔아넘긴 데다가 금기시되는 자살까지 행한 인물로서 타락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יהודה(Yehudá)'라고 쓰며, 원래는 '하느님을 찬양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만, 성서가 번역된 대다수 문화권에서는 유다라는 이름은 배신자의 대명사입니다. 표면적으로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이유는 물욕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일각에서는 이런 이유가 일차원적 교훈성만 부각하는데다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인지 유다는 다양한 작품에서 2차 창작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보르헤스 역시 이러한 성서의 공백, '석연치 않은 부분'에서 시작하여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흔히 종교적 교훈을 말하는 사람들은 유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습니다. 유다의 행동은 종종 베드로에 비견되기도 하는데요,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을 앞두고 첫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후일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회복의 길로 나아간 반면, 유다는 후회의 늪에 빠져 더 큰 죄악인 자살에 이르고 말았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루네베리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설을 폅니다. (1) 먼저, 루네베리는 유다가 상위질서의 거울인 '하위질서의 예수'를 표방한다고 주장합니다. '말씀'이 자신을 낮추어 인간으로 육화한 것처럼, '말씀'의 제자인 유다도 자신을 낮추어 밀고자를 자처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신학자들은 즉각 루네베리의 논증을 공박합니다. 그러나 루네베리는 유다가 "하늘의 왕국을 알리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문둥병을 낫게 해주고,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고, 악마들을 쫓아내기 위해"(마태 10:7-8, 루카 9:1) 발탁된 사람 중의 하나이며, 유다는 단순히 물욕에 눈이 먼 배신자가 아니라며 두 번째 논증을 폅니다. (2) 유다는 오히려 기독교의 금욕주의를 저만의 방식으로 실행했다는 것입니다. 금욕주의자들이 신의 영광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스스로 육체를 비하하고 삶을 고통에 처하는 것처럼, 유다 역시 "명예와, 안락과, 평온과, 천국을 거부"하는 식으로 금욕주의를 철저히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루네베리는 유다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유다는 영혼을 비하하며 고행했다. 좀 덜 영웅적으로 쾌락을 거부했던 사람들처럼, 그는 명예와 안락, 평화와 천국을 포기했다." 시간이 흘러 루네베리는 세 번째 논증을 폅니다. (3) 바로 하느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인간으로 낮추었고, 이에 따라 낮추어진 인간은 '완전무결함/무죄성(impeccabilitas)'과 '인간성(humanitas)'을 동시에 가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고통을 십자가에서 겪은 고뇌로 한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불경스럽다고 루네베리는 주장합니다. 하느님은 "부정한 인간, 영원한 벌을 받아 끝없이 깊은 구렁에 빠질 정도"가 되어야 하며, 알렉산더나 피타고라스, 루릭이나 예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유다가 되기를 택했다는 것(He was Judas)입니다. 다시 한번 루네베리의 주장은 불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업신여김 당합니다. 이 공박을 끝으로 루네베리는 더 이상 논증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하느님이 그런 무관심을 명령하셨으며, 하느님께서 자신의 가공할 만한 비밀이 이 땅 위에 유포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루네베리는 노년이 되어 쓸쓸히 병환으로 죽습니다. 여기서부터 제 생각입니다. 총 세 번에 걸친 루네베리의 논증은 성서의 맥락과 꼭 맞물립니다. 왜냐면 루네베리가 논증을 세 번으로 끝맺음으로써, '유다가 바로 하느님'이라는 주장을 부인한 신학자와 세인들의 위치가 (예수를 세 번에 걸쳐 부인한) 베드로의 위치로 역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이런 구성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오. 베드로의 세 번의 부정과 연관지을 생각은 못했는데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작품에 대한 해석의 폭이 넓고 깊이가 깊으셔서 같이 읽으면서 문학을 독해하는 법에 대해 많이 배웁니다. 너무 즐거워요!
즐거우셨으면 다행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끝~] 문화적인 배경을 모르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간단한 작품처럼 여겨집니다. 저는 솔직히 처음 읽었을 때 지나치게 간단해서(?) 보르헤스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였지만, 문화적인 맥락을 알고, 또 보르헤스가 마르띤 피에로라는 동명의 에세이까지 썼다는 사실을 알면 조금은 소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세계문학강의』, 「마르틴 피에로」 참고). 먼저 말하면 소설에 등장하는 마르띤 피에로는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서사시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가우초입니다. 이 가우초라는 직업도 아르헨티나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합니다만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오늘은 작품 내적으로 제가 의문을 가지고 읽었던 부분만 공유하려 합니다. 제가 처음 읽었을 때 의아하게 느꼈던 부분은 바로 주막의 주인인 '레까바렌'입니다. 가우초 마르띤 피에로와 흑인 사내가 결투를 벌이는 내용과 일견 무관해 보이는 주막 주인의 시선이 소설 전반에 나옵니다. 레까바렌이 반신불구가 된 사연도 설명하고 있고, 실제로 소설 초반은 3인칭 초점 화자로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또 결투 장면에서는 시선이 사라집니다. 하나 더 특이한 점은 주막 주인인 레까바렌이 창문 너머로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창문이라는 프레임이 소설에 영화적인 분위기를 부여하고 있긴 합니다. 그렇다면 레까바렌은 살아있는 카메라 렌즈로서 시선을 대변하는 걸까요? 그럼 보르헤스는 왜 이런 결투 장면을 레까바렌의 1인칭으로 서술하지 않았을까요? 처음 읽었을 때 저로선 여러 모로 궁금증이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세계문학 강의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논픽션 전집이 민음사에서 전권 출간되었다. 6권인 <세계문학 강의>는 말 그대로 세계문학사의 지평을 보르헤스의 친절한 안내를 통해 짚어보는 책이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끝]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조금 늦게 올립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가우초 문화와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서사시 『마르틴 피에로』를 알아야 해당 작품을 면밀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르헤스가 『세계문학강의』의 2부 전체를 '마르틴 피에로'에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제가 자세하게 부연할 필요는 없어서, 간단히만 설명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보르헤스의 단편 「끝」은 호세 에르난데스의 『마르틴 피에로』라는 작품에서 종반부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를 보르헤스식으로 각색한 작품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정확히 들어맞는 예시는 아닙니다만, 우리로 치면 조선 시대의 문인 김만중의 『구운몽』을 최인훈 소설가께서 「구운몽」으로 쓴 것과 비슷하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꼭 들어맞는 예시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마르틴 피에로』에서는 흑인과 마르틴 피에로가 끝끝내 싸우지 않고 서로 화해하고 각자 갈길을 가면서 끝나지만, 보르헤스는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이 결투를 벌이고 한쪽이 죽는 결말을 쓰고 있긴 합니다. 말 그대로 '끝'인 것입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기사도 소설을 풍자하고자 쓰여졌지만 풍자를 넘어는 의미를 획득했던 것처럼 호세 에르난데스의 『마르틴 피에로』 또한 가우초들이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기 위해서 쓰여졌지만 애당초 목표한 바를 넘어서서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서사시가 되었습니다. 보르헤스 역시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보르헤스는 역사의 모사인 서사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패로디함으로써 「끝」을 통해서, 역사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틈입시키고자 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가우초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의 대평원이나 팜파스에 살던 유목생활을 하던 목동들로서,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번성했습니다. 가우초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독립에 커다란 역할을 했고 또 강력한 군벌의 일부로 활동했지만 이후 가우초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하층 계급의 부랑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마르틴 피에로』에서는 동명의 가우초를 내세워, 이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한 인물의 삶을 노래합니다. 다시 한번 가우초와 아르헨티나의 역사에 대해 논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세계문학강의』의 2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세계문학 강의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논픽션 전집이 민음사에서 전권 출간되었다. 6권인 <세계문학 강의>는 말 그대로 세계문학사의 지평을 보르헤스의 친절한 안내를 통해 짚어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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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교파~] '불사조'라고 불리우는 피닉스는 수많은 2차 창작물에서 등장한 소재입니다. 빨강과 황금색의 불길에 휩싸여 있다고 묘사되며, 약 500년을 살다가 불에 타 죽고나서 새로 태어나는 신화적 존재입니다. 황병하 선생님의 해설에 따르면 불사조는 훗날 기독교 신앙에 접목되어 부활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얘기를 좀 해보면, 불사조 교파(The cult)는 종교적 집단처럼 불려지고 있기는 하나 종교적인 색채는 지극히 옅습니다. 화자는 집시들과 비교하고 있는데요, 자신들만의 존재감 넘치는 외형과 문화적 정체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집시들과는 판이합니다. 불사조 교파는 존재감이 거의 없으며 심지어는 종교처럼 보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특별히 박해 받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성경이 없고, 기억의 공동체이자 망각의 산물로서 특정한 민족에 국한되지도 않으며, 공통의 기억으로서 언어도 없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을 지구상의 어떤 나라의 국민으로 간주하는 일에 거의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보르헤스전집판, 269쪽)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의 정의를 규명하는 일에 무심하기 때문에, 또 공기처럼 그 존재 자체가 투명하기 때문에 불사조 교파들은 논란에 휩싸이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비밀'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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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눔][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버터북스/책증정]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 담당 편집자와 읽으며 2025년을 맞아요[책증정] 연소민 장편소설 <고양이를 산책시키던 날> 함께 읽기[📕수북탐독] 7. 이 별이 마음에 들⭐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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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금) 이번 그믐밤엔 소리산책 떠나요~
[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극단 피악과 함께 합니다.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그믐연뮤클럽] 2. 흡혈의 원조 x 고딕 호러의 고전 "카르밀라"
"동물"을 읽습니다 🐋🐕🦍
[현암사/책증정]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를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그믐북클럽] 14.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읽고 실천해요[진공상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 모여주세요![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③ 『동물권력』 함께 읽기 [그믐북클럽Xsam]19.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읽고 답해요 [그믐북클럽] 4. <유인원과의 산책> 읽고 생각해요
🏆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작품 함께 읽어요.
[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1탄) 작별하지 않는다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
국내외 불문, 그믐에서 재미있게 읽은 SF 를 소개합니다!
(책 나눔) [핏북] 조 메노스키 작가의 공상과학판타지 소설 <해태>! 함께 읽기.[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책증정] SF미스터리 스릴러 대작! 『아카식』 해원 작가가 말아주는 SF의 꽃, 시간여행[박소해의 장르살롱] 5. 고통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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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라는 장르
[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마주>[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에이츠발 독서모임 16회차: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오늘의 문장 - 은화
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7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1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3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0월 31일
현대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을 작가, 평론가와 함께 읽습니다.
[📕수북탐독] 4. 콜센터⭐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3. 로메리고 주식회사⭐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멀고도 가까운 나라, 중국.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5. <중국필패>[한길사 - 김명호 - 중국인 이야기 읽기] 제 1권[서울국제작가축제X푸른숲] 위화 작가님의 <인생> 함께읽기 챌린지
🎨 책으로 그림 읽기!
[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6기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저주받은 미술관》을 함께 읽으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지금 읽기 좋은 뇌과학 책 by 신아
[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3. 도둑맞은 뇌[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2.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1.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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