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2> 함께 읽기

D-29
Book 8에는 남편이 관련된 추문에 대응하는 레이디 불스트로드의 자세가 놀라웠습니다. 반평생 같이 살면 영광과 허물을 기꺼이 같이 나누는 사이가 되는건가 싶기도 하고요... 만약에 저라면 남편이 잘난 과거사든 못난 과거사든 몇십년 동안이나 나에게 감춘것에 대해 굉장히 배신감을 느꼈을 것 같거든요... (아직 반평생 안 살아봐서 그런가....;;;) 윌이 로자먼드랑 있을 때 도러시아와 마주치고 나서 로자먼드에게 화풀이(?) 하는 모습은 꽤나 못나보였습니다.
먼저, 불스트로드 부인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마 다른 대안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그 시대에는 이혼이 거의 사회적 매장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도로시아나, 로자문드나, 불스트로이드 부인이 저마다 결혼생활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에도, 심지어는 리드게이트 마저도 애정없는 결혼 생활이 지속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결혼을 스스로 깨는 결정은 거의 고려하지 않잖아요. 어쨌든 불스트로드 부인이 차분하게 대처하고 인간적으로 저버리지 않는 모습은 그녀 자신의 종교적, 성격성 성실성을 반영한다고 봤어요. 대단하지요. 윌의 그런 미성숙하고 찌질한 모습에 대해서 이 소설의 결말을 비판하는 의견이 많다고 읽었어요. 도로시아가 너무 아깝고 그녀가 왜 윌에게 끌리는지에 대한 수긍이 잘 안 간다고요. 물론, 이 소설의 남자들이 모두 다 저마다의 찌질한 모습을 가지고 있긴하지만 프레드는 어차피 메리의 현명함이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 나약한 모습이 강조되기도 하고, 리드게이트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야망이라도 있지만, 윌은 성격도 그다지이고 능력도 썩 별로인데 도로시아가 끌리는 건 카소본이 유산을 나눠주지 않은데 대한 부채의식이나 불스트로이드와 연관된 개인사에 대한 연민이 오히려 더 컸던 거 아닌가 싶거든요. 물론, 도로시아가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자기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성이기 때문에 그게 큰 끌림이 있었던 거 같긴 합니다. 대화가 되는 상대와 사는 것, 쉽게 오지않는 기회잖아요? 저는 로자문드가 결국에는 그녀의 방식대로 원하는 삶을 쟁취하게 된 거에 대해서 - 감정적으로 충만한가는 아닌가는 별개로 - 좀 의외였어요. 제일 불쌍한 건 리드게이트 였던 것 같고요.
저는 도러시아가 캐소본에게 끌렸듯(…) 불완전한 인간인 래디슬로 역시 사랑하게 되었구나, 안타까웠네요. 700파운드만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결혼은 다른 결혼들처럼(리드게이트와 로저문드가 최악이죠) 불완전할 수 밖에 없었을텐데 결말이 너무 급작스러웠어요. 윌도 후반부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남편으로 경멸스러울 때가 있을것 같은데요. 아이만 줄줄 낳는다고 행복할리 없을텐데… 아 그래도 윌이 캐소본보단 나은 삶을 줬을것 같아요. 적어도 로저문드도 반할만한 젊은 미남이니까…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프렐류드'의 테레사 성녀 이야기 챕터로 돌아가서 도러시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것 같아요. "열정적이고 이상적인 성격"을 지니고 "스스로에 대한 절망을 달래 줄 어떤 목적을 추구"하지만, 현실적인 장벽(가정, 남성중심주의)들로 "널리 공명을 일으킬 행위가 꾸준히 펼쳐질 서사시적 삶(epic life)"을 찾아내지는 못하는 당시의 테레사'들'에 대한 프렐류드의 묘사가 새삼 와 닿습니다. 엘리엇은 도러시아를 안타깝게 생각했고 "그네들을 칭송해 줄 경건한 시인이 없었기에 애도받지 못하고 망각으로 사라졌을"(unsung stories) 테레사들 중의 하나인 도러시아의 인생을 작가로서 우리에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저 개인적으로 도러시아 캐릭터가 썩 마음에 들진않고, '만성적인 희생추구자... 이것도 병이다...' 이런 생각입니다. 😅 아마도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요..
드디어 완독. 남은 기간은 되새김질 하면서 정리해 보려고합니다. BBC radio4 dramatized Middlemarch를 웹에서 들을 수 있던데, 이제 책을 다 읽었으니 운전할 때, 자기 전에 야금야금 들어봐야겠습니다. (전 영상보다 소리가 편해서 영상은 너무 많은 집중이 필요해서 못보겠더라구요 :)) https://www.bbc.co.uk/programmes/m000bm7l
우와! 완독 축하드립니다. 쉽지않은 책이라, 더 뿌듯하지요? 드라마화한 미들마치라니... 잠 안 올 때, 나중에 복습하고 싶지만 책을 처음부터 읽기는 부담스러울때 요긴하겠군요. 영국식 영어 듣기에도 도움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시모시 BBC 링크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워낙 긴 책이라 첫부분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각 장마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들이 구별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맥락은 기억에 의존해서 제 머리 속에서만 재구성해야하는데 축약된 버전이긴 하지만 이렇게 극으로 또 목소리로 들으니 뭔가 흩어진 조각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보게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듣다가 잠 들었는데 마치 미들마치 속에 들어가서 자는 기분이었습니다 하하. 이렇게 긴 책 완독한 허전함을 또 달랠 수 있어서 좋구요. 정말 좋은 추천이예요~
오. 잘 듣고계시다니 너무 기뻐요. 저도 운전할 때마다 듣고있는데, 주인공들의 운명을 다 알고 들으니 놓쳤던 복선도 다시 들리더라구요... (영국 영어로 귀가 정화되는 느낌과 함께 ㅎㅎ..) 재독(?!)의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드디어 마지막 주, Book 8과 피날레에서 인상적인 문장을 '문장수집' 기능을 이용하여 답글로 나누어 주세요.
둘이 함께 나누는 치욕이나 그들에게 치욕을 가져온 행위에 대해서 아직은 서로 언급할 수 없었다. 그는 말없이 고백했고, 그녀는 말없이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미들마치 2 74장, 조지 엘리엇 지음, 이미애 옮김
이 부분 묘사가 참 멋있어요. 삶을 오래한 두 사람이 말없이 고백과 용서를 주고받는 과정이 숭고하게 그려져있죠. 불스트로드의 약점까지 다 파악하고 그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불스트로드는 아내에게는 스스로에게 하던 변명마저 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그대로 솔직히 내보인 모습이 그래도 두 사람을 함께 가게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를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저도 불스트로드 부인의 태도가 좋았어요. 모두에게 비난받는 남편을 고요히 용서하는 장면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핏줄들을 챙기는 모습도 현명했어요. 비슷한 대목에서 CTL 님과 모시모시님도 깊은 인상을 받으셨다니 신기해요!
“이보게, 우리는 어떤 행동이 우리에게 불쾌하기 때문에 그릇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목사가 조용히 말했다.
미들마치 2 84장, 조지 엘리엇 지음, 이미애 옮김
인생의 단편이 아무리 전형적이더라도 일정한 거미집의 표본은 아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 있고, 열성적인 시도가 탈선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잠재된 힘이 오래 기다려 온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과거의 과오가 원대한 복구를 촉구할 수도 있다.
미들마치 2 피날레, 조지 엘리엇 지음, 이미애 옮김
섬세하게 조각된 그녀의 정신은 널리 눈에 띄지는 않아도 섬세한 결실을 거두었다. 키루스가 그 힘을 꺾어 버린 강물처럼 그녀의 충일한 성품은 지상에서 위대한 이름이 붙지 못한 여러 물줄기로 흘러 들어가 소진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가 주위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세상의 점진적 개선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행위 덕분이기도 하고, 당신이나 내가 처한 상황이 대단히 나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충실히 무명의 삶을 살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많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미들마치 2 피날레, 조지 엘리엇 지음, 이미애 옮김
수많은 이야기의 도달점이었던 결혼은 아담과 하와에게 그랬듯이 지금도 위대한 시작이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신혼을 보냈지만 황야의 가시밭과 엉겅퀴 덤불에서 첫아이를 낳았다. 결혼은 지금도 가정 서사시의 시작이니 다가오는 세월을 절정으로 이끌고 노년이 되어 함께 나눈 다정한 기억들을 수확하는 완벽한 결합을 차차 이루어 내거나 아니면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리고 만다.
미들마치 2 피날레, 조지 엘리엇 지음, 이미애 옮김
저도 오늘 끝장까지 갔습니다. 저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케일럽 가스의 처신이 참 좋았어요. 불스트로드의 추문을 알고 자신의 모든 이익은 포기하지만, 그 소문을 가십으로 사용하지 않는. 그리고 굳이 따져묻지 않는 가스 부인도 대단했고 말이죠. 1권에서 프레드 빚 갚아줄때만 해도 답답해서 죽을뻔 했지만, 자신만의 원칙이 있는 삶의 성실함이 주는 감동이 있었어요. 가장 가여운 사람은 리드게이트임에는 동감하네요. 결혼의 굴레가 이렇게도 참담하며, 아마 모든 기혼자들이 한번쯤은 경험했을 감정을 처절하게 보여줬어요. 아, 미들마치는 결국 극사실주의결혼소설이었더랍니다!
완독 축하드려요!!! 우리 이제 미들마치 다 읽은 사람들이예요. 내적 친밀감 상승.. :) 저도 케일럽 가스가 이 작품에서 가장 성숙한 어른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부자이거나 신분이 높은 등장인물들이 아니라 성실히 일한만큼 인정받고 사는 케일럽 가스의 성격을 이렇게 설정한 데도 저자의 의도가 있을 것 같아요. :) 뒤에 해설에서 비슷한 말이 나왔던 것 같은데, 연애해서 결혼 골인! 이렇게 끝나는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의 실상과 각자의 심리에 대해 쓴게 차별성인 것 같습니다. (극사실주의 결혼소설이라는 데 동감! 비혼장려소설 아닌가 싶기도 ㅋㅋㅋㅋ) 게다가 런던이 아닌 시골을 배경으로 당대 시대를 알 수 있는 요소들도 책읽기를 즐겁게 해주었어요.(선거권 개혁, 철도 도입, 시골 유지들의 세력다툼, 의술의 세대교체, 유산 상속 등등)
꾸준히 오셔서 드디어 완독하신 거 축하드려요~ 가스 패밀리들이 참 대단하죠~ 메리 아빠는 특히 프레드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믿어주고 잘 이끌어주는데에 보람을 느끼며 보듬어주고 나가서 자기 딸이 잘 살 수 있는 베필로 만들어주는 면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참 존경스러웠어요. 실제로도 저런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프레드로써는 정말 귀인을 만나 인생이 풀린 셈이죠. 유산만 바라보고 있던 페더스톤의 대저택을 자기 스스로 일해서 갖게 되었을때 얼마나 뿌듯하고 꿈같았을까요? 그런데, 이 글의 주요 등장 인물들의 삶을 보면 이 소설이 '극사실주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극사실주의이려면 중간중간 잠깐씩 나오는 소작인들이나 식료품점 주인, 래플즈의 인생들도 더 자세히 다루었겠지요. 그런 점에서 레미제라블이 더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미들마치에서는 영국 지방 도시의 "중상류 사회"의 생활상을 주로 다루었죠. 그래서 중간에 독자들에게 하는 "이런 하층의 저급한 면까지 다루는 걸 이해해주길 바란다"라는 취지의 언급도 살짝 나오고요. 리드게이트가 돈 때문에 겪는 고통 중에 잠깐 나오고, 도로시아가 "나는 돈이 너무 많은게 싫어요"라는 말을 철없이 여러번 언급하는 데에서 나오듯, <미들마치>는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상류층과 신분상승을 바라는 중류층 젊은이들의 결혼 과정에서 드러나보이는 영국지방도시에서의 생활상을 깊이 있게 잘 관조한 작품 정도로 저에게는 남을 것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미들마치> 대장정이 드디어 마무리가 되어갑니다. 아직 끝내지 못하신 분들도 열심히 읽으시고, 이미 끝내신 분들도 다시 되짚어보며 감상을 나누고 싶으시면 4월 12일까지 저희 모임은 열려있으니 언제든지 자유로이 글을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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