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닮은 점
주체성
- 환경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음의 소리를 따라 선택 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결과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개방성
-소외된 약자나 인종에 대한 편견없이 옳다고 믿는 것을 하는 것, 그리고 모든 편견과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이 선택하는 바를 밀고 나가는 것
다른 점
- 잉가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 빅토리아는 자연으로부터 배운 사람. 하지만 이 둘은 정말 많이 닮아 있다. 그 시대 사회가 여성에게 씌운 굴레가 교육 받은 여성이든, 아니든. 각각의 방식대로 엄청난 족쇄를 여성들에게 채웠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믐북클럽] 13. <흐르는 강물처럼> 읽고 사랑해요
D-29
팥앙금
J레터
둘 다 사랑에 대한 연습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빅토리아가 많은 상실(윌, 엄마, 아버지,이모, 사촌,루이스)을 겪었던 것처럼 잉가도 아들 맥스를 잃고 또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결혼을 한 상황이 닯아보입니다. 안정적인 삶 속에서 남편의 고집대로, 자기 주장대로 결정을 따라야 하는 잉가와는 다르게 빅토리아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달라 보입니다. 한 예로 '내가 간다면 가는거야'라고 말하는 폴의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남성 우월적인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poiein
4-3
삶을 그저 흘러보내지 않고 일상에서 삶에 전력투구했다는 점이 닮았어요. 빅토리아는 과수원 농사에, 잉가는 두 아들의 양육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요.
빅토리아가 윌의 죽음과 아들을 버린 자신을 용서하지 않느라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면, 잉가는 무심한 남편과 양육의 고됨 사이에서 산책에서 위안을 찾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갔'(p.358)지요.
1950~60년대 여성의 삶이 일상에서 어떤 한계와 제재를 가했는지 어림짐작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결혼과 출산으로 사회적 진출 을 포기하는 잉가, 젤다가 요약해서 브리핑해주는 내용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빅토리아,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아의 소유자이지만 자식을 갖지 못한 상실감을 지닌 젤다. 그녀들의 모습이 지금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어요. '세상 좋아졌다'는 세간의 말에 여성의 삶은 살짝 비켜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혜
우선 저에게는 잉가가 두 아들을 상실한 후 글쓰기로 자신의 삶을 지속해나간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잉가에게 글쓰기가 빅토리아에게 복숭아 나무 가꾸기와 같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상실을 경험한 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지속해나가는 강인함을 빅토리아에게서 뿐만 아니라 잉가에게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삶이 너무 다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연결감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강인함에 감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시대적 한계에 갑갑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한계란 예컨대 돌봄 영역은 여성에게 국한되어 있다와 같은 통념이죠. 또한 빅토리아가 집을 떠나 홀로 출산을 해야할 만큼 자신의 임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잉가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삶을 택해야 하는 조건 등은 시대가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작동되기에 씁쓸합니다.
호디에
@지혜 잉가의 글쓰기와 빅토리아의 복숭아 나무 재건을 동일하게 보신 것에 동감합니다. 저 역시 빅토리아와 잉가, 두 사람 모두 용기있고 강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팥앙금
@지혜 저도 글쓰기와 복숭아 나무 재건을 함께 보신 점이 대단히 흥미롭네요😆
호디에
4-3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가장이 곧 법이다시피한 부부 간 서열의 폐해는 잉가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성이 갖는 한계성(비혼 여성의 임신, 전업주부로의 전환 등)은 두 여성 모두에게서 볼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은 인식적인 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여겨집니다. 애초에 비혼 여성의 임신이 수치로 여겨지는 사회가 아니었다면 빅토리아가 가출을 하는 일은 벌어지 않았을테니(혹은 아버지가 아기를 받아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라도 있었다면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테고요), 적어도 두 여성이 죄책감에 고통받는 일은 없었겠지요(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루카스고요). 무엇보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두 아들을 모두 잃었다며 후회하는 잉가가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얼마나 두 아이를 사랑했던가를 생각해보면 안타깝습니다.
메이플레이
4-3
잉가와 빅토리아는 결국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에 충실했던 것이 같습니다. 그리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너무도 똑같더라구요.
차이라면 잉가는 두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햄복도 함께 했던 것죠. 함께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햄복이 있어지만 빅토리아는 평생 아이를 버렸다는 죄책감으로 살게되었죠.
여자에 대한 제약이 많았어요. 집안일, 양육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한다는 것은 잉가가 학업에 대한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야하는 이유였죠. 아이올라를 떠나기 전의 빅토리아도 똑같은 처지였죠. 어린 나이부터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대신 집안일을 당연시 했던것은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보이지 않는 제약은 여전한 듯해요.
리브
빅토리아와 잉가는 여성에 대한 편견, 사회적 압박, 가부장적 분위기,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현실에 순응하고 산다면 그 나름대로 살만하겠지만 이 두 여성은 깨어있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에 삶이 가혹하게 받아들여졌을 것 같습니다. 차이라면 빅토리아는 자연에서 나고 자라 자연의 방식대로 흐르는 강물처럼 자신의 역경을 풀어나간 것 같습니다. 잉가는 교육을 받았기에 오히려 관습에 순응하고 자신을 억제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빅토리아에게 '부디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남긴 편지를 보내다니 잉가라는 인물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여인 모두 멋집니다.
오늘도
빅토리아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인듯 살아왔습니다. 잉가 테이트는 대자연이 자기 분신인 듯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존재하는 강과 나무 등 자연의 모습을 보며 생각의 그물을 촘촘히 해나갔다고 생각합니다. 펜과 공책 역시 그녀 곁에 늘 함께 했던 것 같고요.
빅토리아에게서는 윌과 베이비 블루가, 잉가에게서는 '작가'라는 자신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졌지만 둘은 자신의 삶이 사라지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자신들의 삶이 흘러가도록 했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는 내내 '이것은 여성의 이야기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에서는 윌도(윌은 계속 중요하게 다뤄지지만요) 세스도 젤다의 남편도 빅토리아의 이모부도 그리니 교수도 그다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빅토리아, 젤다, 잉카. 이 세 여성의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죠. 때문에 그 당시에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좀 더 상세하고 생생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빅토리아는 산막에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잉가는 '간다면 가는 거야'라는 남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가꾸는(빅토리아), 맥스와 루카스를 키워내고 빅토리아에게 연락을 취하는(잉가), 진취적인 여성(젤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런 이들이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왔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솔로몽북스
4-3
잉가와 빅토리아는 전혀 다른 인생이었지만 그들은 같은 운명을 타고난 운명공동체라고나 할까요. 둘다 사랑에 서툴렀고 사랑의 결실을 지켜내기엔 너무 이른 나이었습니다. 당시의 사회상이 아니라 지금도 이른나이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잉가나 빅토리아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듯합니다. 하지만 둘은 잘 성장해 주었고 그렇게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시호
두 인물 모두 준비되지 않은 상실을 경험했고 그 속에서 각자 '복숭아'와 '루카스'라는 존재가 삶을 지탱할 이유라는 점이 참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복숭아는 물리적으로 떠나지 않는 존재라면 루카스는 마음은 연결되어있되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가는 글을 쓰는 행위로 빅토리아는 복숭아 농장을 꾸려나감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지탱해나가는 저력을 발휘합니다. 그 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보답하려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깊게 연결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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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와 이혼이 여성에게 매우 부당하게 다가오던 시기에 두 여성은 스스로 힘든 선택했고 그 시기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단단하게 헤쳐왔습니다. 돌봄의 영역을 여성에게 국한시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잉가의 모습이 현 시대의 많은 (여성 및 남성) 주부들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아 보이는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전히 많은 워킹맘들이 일과 육아, 가사 의 영역을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는 점, 전업주부가 집이라는 영역을 벗어나 사회적 전문 영역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현실 등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윈도우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여자들은 여전히 순종적이고, 아이와 가사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존재였을텐데요, 자식과 관련해 빅토리아는 잉가에 비해 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힘들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빅토리아는 루카스를 버렸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루카스만을 위해서 그랬다기 보다는 둘 다 살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빅토리아는 이후에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잘 꾸려냅니다. 버린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야 왜 없었겠습니까? 저는 여전히 그 때 애를 버려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반면 잉가는 힘들지만 두 아들을 차별없이 잘 키웠습니다. 루카스의 다른 외모 때문에 여러 일들 겪으면서도 잘 키웠습니다. 아이들로부터 힘을 받으면서 살아왔던 것이죠. 아마 앞으로도 계속 루카스로부터 기운을 받아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주먼지밍
4-3.
닮은 점으로는 두 사람 다 가부장적 사회 규범 내에서 극히 좁은 선택지를 가졌다는 것이요. 당시 여성이 삶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역할을 매우 좁게 제한되었어요. 여성으로 태어났으면 착한 딸에서 좋은 엄마와 좋은 아내로 살아가야 했겠지요. 이 경로에서 이탈하면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간 ‘여성의 삶’에 대하여 관심이 있어서 이런 저런 책을 기웃거려 왔는데 읽다보면 숨이 막혀 옵니다. 지금 여성들의 삶은 선배 여성들의 슬픔과 아픔과 강인함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닮은 점으로는 두 여성 모두 어떻게든 삶을 책임지고 그들 삶에서 마주한 전재들을 끊임없이 돌보는 강인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요. 삶의 중심축이 "돌봄"이라는 것이 닮았습니다. 본인의 삶보다는 돌보고 지켜야할 존재들을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다른 점은 잉가는 빅토리아에 비해 훨씬 좋은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약 잉가가 대학을 졸업했어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고 봅니다. 잉가에게 기대되는 것이라곤 아마도 대학 나온 교양 있는 여성으로 좋은 남자를 만나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었겠지요. 임신과 동시에 대학교육을 중단하는 잉가의 삶은 당대의 가부장적 규범으로 어쩔 수 없는 강요된 선택이었겠지요.
팥앙금
@우주먼지밍 삶의 중심축이 돌봄이라는 것에 극히 공감합니다. 오늘날 여아가 선호되는 이유도 제사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일수도 있겠네요
지니
여성에게 부여되는 암묵적인 역할 속에서 자랐고, 본인이 선택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받아들여야 했다는 점에서는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빅토리아는 큰 고통 후에 강인한 깨달음을 얻었고 홀로 자립하며 나아갈 수 있었지만, 잉가에게는 아이들이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기로 선택했지요.
siouxsie
4-3. 둘 다 준비없이 어머니가 되어 버린 것, 다른 방식이지만 육아에 홀로 던져져 버렸다는 점이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둘 모두 아이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아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키우죠. 빅토리아가 아이를 버렸다고 단순히 규정하기 어려운 점도 자기와 같은 아기 엄마에게 아이를 맡겼다는 점이고요.
또한, 빅토리아도 꿋꿋이 자기 인생을 살아갑니다. 잉가도 폴에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두 아들을 키우고요. 더 이상 지난 날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성장했을 때 본인이 잃었던 것들을 다시 찾고요. 두 사람 모두 인생에서 시기적으로 다르지만, 잃었던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는다는 점에서는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선경서재
4-3.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지만, 상대를 바로 보지 못했던거 같아요. 잉가는 폴의 진짜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을텐데 외면해버렸던거 같기도 하고요. 빅토리아는 너무 이른 이별에 윌슨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했지요.
잉가는 두 아들을 키우는 것에 삶에 의미를 두었고, 빅토리아는 복숭아나무를 키우는 일에 의미를 두었죠. 둘은 다른 인생을 살고 다른 선택을 해왔지만 묵묵히 할수있는 자신들의 인생의 역할을 해내왔네요. 흐르는 강물처럼.
매일그대와
4-3. 빅토리아와 잉가는 자신의 선택보다 더 큰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사랑했습니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마르지 않았지요. 다른점이 있다면 그건 혼자 오롯이 감내하느냐 주변에 누군가가 있음에도 감내해야만했느냐 하는 외로움의 종류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잉가가 비로소 혼자가 되고나서야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빅토리아가 열일곱살에 받아들인 고독과 닿아있는 듯해요.
아린
빅토리아와 잉가의 가장 다른 점은 고등교육을 배울 기회가 있었는가 아닌가 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잉가 또한 결국, 학업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결혼하고 임신하고 남편이 원 하는 곳으로 따라가서 한 가정을 꾸리는 주부와 엄마로 남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시대에 여자들은 얼만큼 배운지와는 별개로 한 가정의 주부로 남편의 삶에 순응하는 역할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빅토리아는 아들을 두고왔지만, 자신만의 과수원을 일구었고, 잉가는 자신의 아들과 또 다른 아들 루카스를 (남편의 육아 도움 없이) 키워나갔습니다.
흐르는 강물 처럼 시대에 순응하며 살았지만 자신의 고유한 색깔은 드러내며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빅토라이가 윌슨을 편견없이 사랑 한 것, 그리고 잉가가 루카스를 맥스와 차별없이 키웠다는 것은 둘의 닮은점 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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