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전 작가님도 언급했지만 <하이랜더>란 옛날 영화가 떠오르더라구요. 자신만 젊은 영생을 얻고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노후와 죽음을 겪는 모습을 본다면 과연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전 사양하고 싶으네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단군과 추영랑이라 불리우는 사람은 계속 환생하는 건가요?
사랑이 영원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르겠지만 가족이나 친한 친구 사이의 사랑은 그래도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요? 쉽게 실리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또 이렇게 유지되는 사랑이 그 기한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네요.
<웅녀가 돌아왔다>보다는 <사랑의 유통기한>란 제목이 더 로맨틱하게 느껴집니다. ^^
작가님이 사랑의 유통기한은 얼마라고 생각하세요?
작가님이 연애경험이 여러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느낌이 드네요. <다시, 밸런타인데이><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사랑의 유통기한>등등.
[장맥주북클럽] 2.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함께 읽어요
D-29

거북별85

꿀돼지
오래전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황정민 배우가 친한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슬퍼하고 울면서도 그 순간에 느낀 감정을 언젠가 영화에서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보고 자괴감을 느꼈다는 고백을 했죠. 저는 일상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할 때마다 "오! 이거 나중에 소설로 쓰면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특히 슬픈 일일 때 더 그래요. 그래서 소설가라는 직업은 실패하고 슬퍼하는 일이 많을 수록 좋은 직업 같습니다.

여름섬
실패하고 슬퍼하는 일이 많을 수록 좋은 직업이라니 ㅜㅜ 그래서 독자들이 이렇게 재밌는 책을 읽을 수 있군요~
저에게 사춘기종합세트를 선물해준 아이가 있습니다(아직도 계속 진행중이죠~)
지랄 총량의 법칙 이라는 말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전 그 말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 아이가 영화 연출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있다하면 주변에서 그러더군요
나중에 다 소재로 쓰려고 그런다~ 예술가적 감성이다~
그런데 작가님 말씀을 들으니 참~ 웃을수도 울 수도 없군요~^^

꿀돼지
그렇게 생각하면 일종의 정신승리(?)가 가 능해지더라고요.
지금은 슬프고 실패가 괴롭겠지만, 나중에 다 써먹을 일이 생길 거라고 말이죠.
그리고 나중에 소설이나 글로 과거를 정리하는 기회가 올 때, 제가 놓쳤던 부분을 뒤늦게 파악해 상황을 다시 정리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대화를 나눴던 경험도 언젠가 다 써먹을 기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연해
유명한 맛집을 찾아갔을 때 맛이 좋으면 성공하는 것이고, 맛이 없어 실패하면 글로 남기면 된다는 김영하 작가님의 말씀도 떠오르네요.
인생이 즐거우면 그 자체로 즐기고, 인생이 힘들면 그 자체로 하나의 글감이 되는 것은 작가의 숙명인 걸까요(그래서 더 고귀한 직업이 아닐까 싶기도).
저도 실패의 경험이 쌓일수록 저만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인다는 생각으로(이렇게 또 긍정 회로를) 낙관해 야겠어요.

SooHey
예전에 일본 사소설 작가들은 작품 소재가 떨어지면 바람을 피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작가님들의 이처럼 치열한 직업정신 덕분에 저희가 즐겁고, 감동적이고, 또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꿀돼지
소재가 떨어지면 바람을 피운다... 이거 범죄를 소재로 소설을 쓰면 범죄를 저지르겠군요 ㅎ

거북별85
ㅎㅎ 칭찬으로 들어야 하는 거겠지요~^^;; 저도 너무 실감나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살짝 의심하게 되긴 하더라구요 작가님보고 들은 소재로 그렇게 풀어나가시는게 대단하세요
배우분들께서 악역 연기를 너무 잘할 때마다 아주머니 팬들한테 등짝 스매싱 당하시는 것처럼요~~^^

꿀돼지
실제로 몇 년 전 제 아내가 일일드라마에서 얄미운 역할을 했을 때 길에서 할머니들이 등짝 스매싱(장난이 반쯤 섞인)을 하시더군요. 말로만 들은 이야기를 직접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내는 이미 몇 번 겪어봤는지 웃으며 넘기더라고요.

장맥주
정말 그런 분들이 계시군요. 가상현실 기기가 필요 없네요. ^^

선경서재
17. 영생하는 사람과의 사 랑이라... 드라마 <구미호뎐>의 이동욱이 생각나네요. ^^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싶은 것은 욕심일까요? "당신이 죽을 때까지 당신과 함께하기보다는 당신과 잠시 스치는 인연으로 만나는 게 가슴이 덜 아프다는 사실을요. 저는 이미 제 앞에서 죽어가는 당신의 모습을 여러 번 지켜봤어요. 당신이 가졌던 많은 이름을 모두 기억하진 못하지만, 이별의 순간에 관한 기억만큼은 아직도 제 가슴에 전부 깊게 남아 있어요. 마치 나무에 박힌 못을 뽑아내도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듯이 말이죠. 저는 당신과 짧게 만나되 영원히 만나는 길을 선택했어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지금과 또 다른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저는 늘 당신에게 새로운 여자이고 당신은 제게 새로운 남자일 테니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요? " p176 웅녀의 말이 답이 되어주는 듯 합니다.

지호림
저는 당신과 짧게 만나되 영원히 만나는 길을 선택했어요.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 정진영 소설집』 234쪽, 정진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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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soop
사랑의 유통기한은 장편으로 다시 써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대로 끝내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담겨 있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장맥주
@모임
18. 웅녀는 사랑하는 이가 나이 들어 고생하다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신은 건강하게 지내며 그걸 지켜봐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그러다 보니 ‘죽을 때까지 함께하기보다는 잠시 스치는 인연으로 만나는 게 가슴이 덜 아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저는 이 단편을 읽으며 조금 엉뚱하게 반려동물의 운명들에 생각했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수명이 짧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생의 마지막에 많은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과 달리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 못합니다. 너무 나이 들고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린 반려동물에 대해 안락사라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있지요. 여러분은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고 통스러운 불치병에 걸리거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쇠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함께 하기’를 선택하실 건가요, 아니면 신은 아니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신과 같은 존재인 여러분이 그들의 운명을 거두어가는 게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보시나요?

마키아벨리1
어려서는 반려동물 특히 강아지를 정말 좋아했지만 다양한 종류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반려동물과 같이 하는 것을 이제는 피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과 사는 생활을 오랜 기간 하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제 생각으로는 고통스러운 불치병에 걸린 경우는 고통을 덜어주는 쪽으로, 하지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쇠한 경우는 끝까지 함께 하는 길을 택할 것 같습니다.

장맥주
제가 이별하는 게 너무 슬플 거 같아 개를 키우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키우시는 개가 요즘은 삶의 커다란 낙이에요. 부모님이 당신들도 연로해지시고 그 개도 나이 들면 저더러 데리고 가라고 하시는데 그럴 생각입니다. 저는 제 개가 말은 하지 못해도 정말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는 것 같다고 판단되면 안락사를 시키게 될 거 같습니다(확신은 없네요). 그것까지도 그 아이에 대한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서요.
쩡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있는 것에 인간이 멋대로 개입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태어날 때 우리가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이 죽음도 죽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남에게 죽음을 의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삶이 나의 선택이 아니듯이 죽음 또한 그렇다고 생각해요. 삶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장맥주
‘죽음보다 못한 삶’이 있느냐는 문제에 답하기 늘 조심스러워요. 제 경우에는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끔찍한 고문을 받고 있다면 그 고통을 이어가기보다 죽음을 택할 거 같거든요. 누가 죽여주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고통을 강인한 의지와 희망으로 이겨내시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지요.

로미
정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 같아요. 가족처럼 지낸 반려동물의 목숨을 사람이란 이유로 좌지우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죠.
스위스나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들의 사례를 참고로 반려동물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안락사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생길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연해
어릴 때 반려동물을 키웠던 적이 있는데, 너무 수명이 짧았던 아이들(올챙이, 병아리, 햄스터 등)이라 깊이 정들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해 땅에 묻어줬던 기억이 납니다. 그나마 오래(?) 키웠던 거북이도 지방으로 이사가던 때에 다른 분에게 부탁드렸었고요.
근데 만약 지금 나이에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불치병에 걸리거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노쇠한다면... 과연 제가 그 아이의 죽음을 선택할 자격이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고통스러워도 연명하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바라는지 그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요. 제 욕심만 생각하면 계속 함께 있고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욕심일 뿐이라 더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다만 저는 안락사 자체에는 어느 정도 찬성하는 편입니다. 어디까지나 제 목숨에 한해서는요(합법화는 악용될 수 있어 반대하는 편). 전에 장작가님 블로그에도 죽음에 대해 비슷한 댓글을 달았던 적이 있는데, 가령 삶이 힘들어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을 때, 과연 우리가 그 사람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있느냐는 글을 남겼었죠. 언젠가 좋은 때가 올 거라는 책임 없는 공수표나 생명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근거 없는 말 외에 어떤 말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죠. 과학적인 이유로 그 사람을 설득하고 싶은 욕심도 없고요.
이 글을 써 내려갈수록 글이 어두워질까 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인생을 고작 34년 밖에 살아보지 않은 제가 감히 건방지게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떠들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저는 지금 제 삶이 충분히 즐겁거든요). 다만,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할 때, 우울함이 급속도로 심해졌을 때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태어난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닌 것처럼 죽음에 대해서도 선택할 권리가 없다면 좀 억울할 것 같아서요. 특히나 고통까지 안고 있다면 더더욱 안락사에 대해 생각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질문으로 돌아가 반려동물의 운명을 거두어가는 게 책임 있는 자세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키울 자신이 없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은 늘 아픈 것 같습니다. 사람이 오고 가는 것에 꽤 무던한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쉬움이 없는 관계일 때나 가능한 일이고, 좋았던 관계는 작별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아린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쌓여야 만나고 헤어지는 일들에 일일이 마음 쓰지않고 덤덤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을지 여전히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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