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22일까지는 《해피 투게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화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 감상과 비평, 명대사, 명장면, 배우 이야기, 연출 이야기, 제작 뒷이야기, 모두 환영합니다. 다른 영화 이야기하셔도 물론 좋습니다. ^^
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기획전 기념... 왕가위 감독 수다
D-29

장맥주

siouxsie
악...오늘 겨우 동사서독 다 보고, 와~할 말 많아...이러고 배불러 하고 있었는데 ㅎㅎㅎ
해피 투게더도 기억이 안 나니 낼부터 볼게요!

장맥주
동사서독 오리지널과 리덕스 비교도 부탁드려도 되나요? ^^

siouxsie
오리지널이랑 리덕스는 뭐가 다른 건가요? ㅎㅎ
오리지널이 원래 버전이고 리덕스가 넷플에서 2013년이라고 표기한 버전이라면, 오리지널은 90년대에 봐서 기억이 안 납니다. ㅎㅎ 근데 자막 해석이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제 기억의 오류일 수는 있겠지만...
90년대 버전에서는 양조위가 죽을 때 '무공이 강한 자가 목이 베여 피가 솟구치면 바람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내 목에서 피가 솟구칠 때 바람 소리가 들렸다'(정확한 워딩은 아닙니다)로 '베이는 사람이 주'가 되는 말이었는데, 리덕스로 볼 때는 '검의 속도가 빠르면 피가 솟구칠 때 바람 소리가 들린다던데 내 피로 그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로 '베는 사람이 주'가 되는 것으로 나와서 으잉? 했습니다. 허나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90년대 버전 해석이 더 멋져서 기억하는 거 같아요.
장국영이 유가령 찾아갔을 때의 복사꽃 부분도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은 '그 곳엔 복사꽃이 아니라 복사꽃 같은 여인이 있었다.'였는데, 리덕스에서는 '그 곳에서는 복사꽃이 피지 않았다.'로 나오더라고요. (제 뇌피셜이니 믿지는 마세요.)
그때도 지금도 영화 보며 생각한 건데, 10년 동안 찍었다는데 방부제들을 드신 건지 왜 외모 변화가 하나도 없을까요? 장만옥이랑 장국영은 미세하게 어렸을 때 모습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장국영은 양가휘랑 첫 장면에서 싸울 때 앳되고(수염도 없지만), 장만옥은 꽃들고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이 다른 장면에 비해 어려 보입니다.)
서양 배우들과 찍었으면 배우 전부 교체해야 했을 것 같습니다만....
저는 몇 달 전과 이번에 다시 보면서 보르헤스의 알레프가 떠올라 좋았습니다.(아님 말고요 ㅎㅎㅎ 어렸을 땐 정말 퉤하면서 봤거든요)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계속 반복되는 영겁의 저주 같은...서로에게 적절한 타이밍에 다가가지 못해 회한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모습요.
중경삼림에서도 에로스에서도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느낌이었고요. 왕가위 감독에겐 시간의 서사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아비정전에선 장국영이 장만옥한테 우리가 같이 있는 이 1분이었나 뭐였나...그 오글거리는 장면까지요....그래도 역시 최고봉은 <동사서독>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서타일....
참고로 화양연화 OST도 처음에 나오는 02번 트랙Yumejis Theme은 오디오로 들으면 음폭도 넓고 풍부한 사운드가 깊고 입체적으로 들립니다. 우리가 아는 그 음악 맞습니다. 그런데, 24번 마지막 두번째 트랙에서 다시 반복되는 Yumejis Theme은 같은 음악이지만, 작고 초라한 음폭으로 들리고요(음악가 이름도 다르네요?). 꼭 넓은 공간에서 오디오 CD로 들어야 돼요. 핸드폰이나 이런 건 아니되어요~
OST도 보면 시작과 끝이 연결되는 것 같은 건 저뿐인가요?

장맥주
오리지널과 리덕스 차이 정말로 몰라서 여쭤본 거였어요. ^^
저는 오리지널에서도 양조위가 마지막으로 했던 대사를 ‘마적 두목의 검이 빨라서 내 피가 예상치 못하게 바람소리를 내며 솟는다’로 이해했어요. 실제로 자막이 그렇게 나와서 그렇게 본 건지, 자막은 @siouxsie 님이 기억하시는 대로 읽었는데 해석을 제가 멋대로 했는지 모르겠네요. 무공이 높은 사람이라고 혈압이 높은 건 아닐 테니 솟아오르는 피의 소리를 바람처럼 내게 만드는 요인은 칼 휘두르는 속도에 있을 테고, 고로 여기서 말하는 무공이 높은 사람은 마적 두목을 가리키는 거겠지, 하고요.
제가 알레프를 1996년에 민음사에서 ‘알렙’이라고 나왔을 때 보르헤스 전집으로 읽었거든요. 그런데 당최 기억이 안 나네요. 한데 그 즈음에 공교롭게 그런 우로보로스식 구성을 한 서사물이 작게 유행했던 거 같아요. 보르헤스가 그때 번역된 건 우연이지만. 식당 강도 장면으로 시작해서 식당 강도 장면으로 끝나는 영화 《펄프 픽션》도 그때였고, 알렙을 낸 민음사에서 그 직전에 열심히 홍보하던 한국 소설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도 그런 구성이고요. 나중에 감우성 주연의 《거미숲》을 봤을 때 철 지난 유행을 써먹었네 하고 심드렁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사서독》은 등장인물들을 짧게 보여주는 신이 시작과 끝에 비슷하게 들어가 있어서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시작은 사막, 끝에서는 바다가 나와서 강렬하게 대비되는 거 같기도 했어요. 캐릭터들의 인연은 답답할 정도로 막혀 있는데 배경 장면은 굉장히 개방감이 있어서 오히려 더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장만옥이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볼 때 제 마음도 울렁거리는 거 같았어요.

siouxsie
저도 진짜 기억이 안 나서 여쭤 본 건데 ㅎㅎㅎ
저희는 기억을 못해서 행복한 걸까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도매금으로 저랑 같이 싸잡아 얘기해서....사실 거기에서 장학우가 맡은 북개 캐릭터 보고 딱 저같은 놈일세...하며 봤어요.
오! 그런 구성을 우로보로식 구성이라고 하는군요. 저런 구성을 좋아해서 간단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항상 장황해지더라고요. 하나 배우고 갑니다. 근데 저한테 알려주지도 않고 유행까지 했었군요. ㅎㅎ

장맥주
아, 저도 저런 구성을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서 그냥 우로보로스식 구성이라고 쓴 거예요. 그런 말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 (우로보로스는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신화 속 뱀의 형상입니다.;;;;;) 한때 그런 내러티브의 소설이나 영화가 꽤 있었던 거 같은데 저한테만 유행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써놓고 보니 근거 없는 주장이었네요.
저는 북개처럼 쿨하지 못하고 구양봉처럼 과거 일 계속 곱씹으면서 딱히 행동도 안 하고 자존심 세우는 편입니다...

siouxsie
아니에요! 우로보로스 보자마자 바로 이거야! 했거든요.
써먹어도 될까요?
저도 원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꽁녀에 행동에도 못 옮기고 누구 원망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35살 넘어가면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지니 오늘만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누가 어제 일 물어보는 거 젤 싫어합니다.
취생몽사를 마시는 것도 아닌데 기억이 안 나서.....
그렇게 산 지 10년 넘으니까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장맥주
어휴, 당연히 쓰셔도 됩니다!
저는 정신과 용어로 '반추'를 아주 많이 하는 인간인데 몸을 바삐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거 같아요. 고치려고 노력 중이에요.

조영주
이번에 극장서 보면서 역시 새삼 좋았던 것은 흑백-컬러의 연출이었습니다. 감독은 둘이 함께 다닐 때엔 총 천연색 - 헤어졌을 때엔 흑백 - 그 후에 다시 사귀면서 총천연색 - 이후 헤어졌는데도 총천연색으로 연출하는데요, 이것이 다시 봐도 역시 좋더라고요. 특히 마지막에 헤어져도 총천연색의 부분이 뭐랄까... 인생사로 따지면 인간으로서 살면서 반드시 지나야 할 그 부분을 통과하여 어른이 되었다,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각자 인물들이 좌우지장관 서로의 인생에서 오롯 서게 되니깐요. 뭐 아닌 닌겐도 1인 있지만 받아들여야할 뿐이지만요.

장맥주
저는 1996년 초부터 1998년 여름까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해피 투게더》를 개봉 당시 보지 못했어요. 10년이 훨씬 지나 낙원상가 허리우드극장에서 왕가위 특별전이었나 장국영 특별전이었나를 할 때 봤습니다. 다 허물어져가는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는데 그야말로 주변 세계의 색상과 채도가 달라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우중충하게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경험을 『표백』의 한 장면으로 녹이기도 했어요.) 어른이 되는 기분까지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왕가위 영화 속 시간대와 나의 시간대는 다르다, 저 시기는 이미 내게 지나버렸다’는 생각은 했던 거 같아요.
2044년쯤에, 혹은 2046년에 왕가위 영화 회고전이 열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때까지 허리우드극장이 있고 거기서 회고전을 한다면 한번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정말 실버영화관에 실버로서 가겠군요.

장맥주
《해피 투게더》 관련 사소하게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왜 다른 왕가위 영화들은 네 글자짜리 한자단어로 제목이 번역되었는데 이 영화만 ‘춘광사설’이 아니라 ‘해피 투게더’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들어왔을까요?

CTL
미풍양속을 해치는 말이라? 검열? 공식이던 셀프던요...

느려터진달팽이
글쎄 동명의 영화를 그만의 방식으로 남남버전으로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 영화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
양조위 배우는 설정도 모르고 아르헨티나인가 촬영지에 갔다가 한달이 되도록 영화를 안찍었다가 그제야 나온 작품이라는 썰을 들은듯 한데요

미스와플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나네요. 처음에 상영이 금지되어 대학 축제 때 어디서 누가 구해온 엄청 구리고 안들리는 필름인지 뭘로 봤던 생각 납니다.


느려터진달팽이
저도 대학축제 전에 학관지하에선가 비가 엄청내리던 화면으로 봤었어요. 무슨 내용인가 대체 싶었는데, 그 유명한 "우리 다시 시작하자."만 남았던.
이히
우어. 저도 이거 아직도 가지고 있는뎅. 반갑습니다. 씨네코아.

수북강녕
최고의 퀴어 영화, 가장 인상적인 동성간의 사랑 영화를 떠올려 보니 <해피 투게더> , <브로크백 마운틴> , <콜미 바이 유어 네임>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 줄을 잇네요 <동사서독>과 <듄>의 사막 비교에서, <듄>의 티모시 살라메를 떠올리고, 다시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살라메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

느려터진달팽이
Call me by your name은 정말 강렬했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만만찮았지만 미장센이 하나하나가 그림이네! 화가와 그 모델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작품 아니랄까봐~ 그렇게 감탄하며 봤습니다.
제가 본 최초의 퀴어무비는 이안의 <결혼피로연>이었는데요. 한국 영화로 황정민이 마초로, 그의 연인으로 요새는 잘 안 나오던 20세기 배우와 그 사이에 끼어든 여인이라는 비슷한 설정의 영화 <로드무비>가 있었네요.
잘 보았던 영화로는 <나의 아름다운 이브>였나 재미있었고, 시네큐브에서 지금은 미국 가 있는 친구와 보았던 남미영화가 있었는데~ 어떤 밀림에서 언어를 연구하는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제목이 기억나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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