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기획전 기념... 왕가위 감독 수다

D-29
오리지널과 리덕스 차이 정말로 몰라서 여쭤본 거였어요. ^^ 저는 오리지널에서도 양조위가 마지막으로 했던 대사를 ‘마적 두목의 검이 빨라서 내 피가 예상치 못하게 바람소리를 내며 솟는다’로 이해했어요. 실제로 자막이 그렇게 나와서 그렇게 본 건지, 자막은 @siouxsie 님이 기억하시는 대로 읽었는데 해석을 제가 멋대로 했는지 모르겠네요. 무공이 높은 사람이라고 혈압이 높은 건 아닐 테니 솟아오르는 피의 소리를 바람처럼 내게 만드는 요인은 칼 휘두르는 속도에 있을 테고, 고로 여기서 말하는 무공이 높은 사람은 마적 두목을 가리키는 거겠지, 하고요. 제가 알레프를 1996년에 민음사에서 ‘알렙’이라고 나왔을 때 보르헤스 전집으로 읽었거든요. 그런데 당최 기억이 안 나네요. 한데 그 즈음에 공교롭게 그런 우로보로스식 구성을 한 서사물이 작게 유행했던 거 같아요. 보르헤스가 그때 번역된 건 우연이지만. 식당 강도 장면으로 시작해서 식당 강도 장면으로 끝나는 영화 《펄프 픽션》도 그때였고, 알렙을 낸 민음사에서 그 직전에 열심히 홍보하던 한국 소설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도 그런 구성이고요. 나중에 감우성 주연의 《거미숲》을 봤을 때 철 지난 유행을 써먹었네 하고 심드렁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사서독》은 등장인물들을 짧게 보여주는 신이 시작과 끝에 비슷하게 들어가 있어서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시작은 사막, 끝에서는 바다가 나와서 강렬하게 대비되는 거 같기도 했어요. 캐릭터들의 인연은 답답할 정도로 막혀 있는데 배경 장면은 굉장히 개방감이 있어서 오히려 더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장만옥이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볼 때 제 마음도 울렁거리는 거 같았어요.
저도 진짜 기억이 안 나서 여쭤 본 건데 ㅎㅎㅎ 저희는 기억을 못해서 행복한 걸까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도매금으로 저랑 같이 싸잡아 얘기해서....사실 거기에서 장학우가 맡은 북개 캐릭터 보고 딱 저같은 놈일세...하며 봤어요. 오! 그런 구성을 우로보로식 구성이라고 하는군요. 저런 구성을 좋아해서 간단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항상 장황해지더라고요. 하나 배우고 갑니다. 근데 저한테 알려주지도 않고 유행까지 했었군요. ㅎㅎ
아, 저도 저런 구성을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서 그냥 우로보로스식 구성이라고 쓴 거예요. 그런 말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 (우로보로스는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신화 속 뱀의 형상입니다.;;;;;) 한때 그런 내러티브의 소설이나 영화가 꽤 있었던 거 같은데 저한테만 유행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써놓고 보니 근거 없는 주장이었네요. 저는 북개처럼 쿨하지 못하고 구양봉처럼 과거 일 계속 곱씹으면서 딱히 행동도 안 하고 자존심 세우는 편입니다...
아니에요! 우로보로스 보자마자 바로 이거야! 했거든요. 써먹어도 될까요? 저도 원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꽁녀에 행동에도 못 옮기고 누구 원망만 하던 사람이었는데 35살 넘어가면서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지니 오늘만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누가 어제 일 물어보는 거 젤 싫어합니다. 취생몽사를 마시는 것도 아닌데 기억이 안 나서..... 그렇게 산 지 10년 넘으니까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어휴, 당연히 쓰셔도 됩니다! 저는 정신과 용어로 '반추'를 아주 많이 하는 인간인데 몸을 바삐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거 같아요. 고치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번에 극장서 보면서 역시 새삼 좋았던 것은 흑백-컬러의 연출이었습니다. 감독은 둘이 함께 다닐 때엔 총 천연색 - 헤어졌을 때엔 흑백 - 그 후에 다시 사귀면서 총천연색 - 이후 헤어졌는데도 총천연색으로 연출하는데요, 이것이 다시 봐도 역시 좋더라고요. 특히 마지막에 헤어져도 총천연색의 부분이 뭐랄까... 인생사로 따지면 인간으로서 살면서 반드시 지나야 할 그 부분을 통과하여 어른이 되었다,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각자 인물들이 좌우지장관 서로의 인생에서 오롯 서게 되니깐요. 뭐 아닌 닌겐도 1인 있지만 받아들여야할 뿐이지만요.
저는 1996년 초부터 1998년 여름까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해피 투게더》를 개봉 당시 보지 못했어요. 10년이 훨씬 지나 낙원상가 허리우드극장에서 왕가위 특별전이었나 장국영 특별전이었나를 할 때 봤습니다. 다 허물어져가는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는데 그야말로 주변 세계의 색상과 채도가 달라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우중충하게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경험을 『표백』의 한 장면으로 녹이기도 했어요.) 어른이 되는 기분까지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왕가위 영화 속 시간대와 나의 시간대는 다르다, 저 시기는 이미 내게 지나버렸다’는 생각은 했던 거 같아요. 2044년쯤에, 혹은 2046년에 왕가위 영화 회고전이 열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때까지 허리우드극장이 있고 거기서 회고전을 한다면 한번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정말 실버영화관에 실버로서 가겠군요.
《해피 투게더》 관련 사소하게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왜 다른 왕가위 영화들은 네 글자짜리 한자단어로 제목이 번역되었는데 이 영화만 ‘춘광사설’이 아니라 ‘해피 투게더’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들어왔을까요?
미풍양속을 해치는 말이라? 검열? 공식이던 셀프던요...
글쎄 동명의 영화를 그만의 방식으로 남남버전으로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 영화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 양조위 배우는 설정도 모르고 아르헨티나인가 촬영지에 갔다가 한달이 되도록 영화를 안찍었다가 그제야 나온 작품이라는 썰을 들은듯 한데요
@CTL @느려터진달팽이 ‘춘광사설’이라는 말의 중의적 의미나 영화 《욕망》의 중국어 제목을 몰랐는데 두 분 말씀 듣고 겨우 알았네요. ^^ 대부분의 한국인 관객은 저처럼 바로 그런 생각들을 하지는 못할 텐데요...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나네요. 처음에 상영이 금지되어 대학 축제 때 어디서 누가 구해온 엄청 구리고 안들리는 필름인지 뭘로 봤던 생각 납니다.
저도 대학축제 전에 학관지하에선가 비가 엄청내리던 화면으로 봤었어요. 무슨 내용인가 대체 싶었는데, 그 유명한 "우리 다시 시작하자."만 남았던.
우어. 저도 이거 아직도 가지고 있는뎅. 반갑습니다. 씨네코아.
최고의 퀴어 영화, 가장 인상적인 동성간의 사랑 영화를 떠올려 보니 <해피 투게더> , <브로크백 마운틴> , <콜미 바이 유어 네임>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 줄을 잇네요 <동사서독>과 <듄>의 사막 비교에서, <듄>의 티모시 살라메를 떠올리고, 다시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살라메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
Call me by your name은 정말 강렬했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만만찮았지만 미장센이 하나하나가 그림이네! 화가와 그 모델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작품 아니랄까봐~ 그렇게 감탄하며 봤습니다. 제가 본 최초의 퀴어무비는 이안의 <결혼피로연>이었는데요. 한국 영화로 황정민이 마초로, 그의 연인으로 요새는 잘 안 나오던 20세기 배우와 그 사이에 끼어든 여인이라는 비슷한 설정의 영화 <로드무비>가 있었네요. 잘 보았던 영화로는 <나의 아름다운 이브>였나 재미있었고, 시네큐브에서 지금은 미국 가 있는 친구와 보았던 남미영화가 있었는데~ 어떤 밀림에서 언어를 연구하는 남자의 이야기였는데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제목이 기억나질 않네요.
수북강녕님 이야기 남겨주시는 것 보는데, 진짜 레퍼런스가 너무 풍부하신 것 같아요. 콜바넴부터 여인초상까지 다 이어지네요 정말!
콜바넴 보고 집에가는 길에 너무 울어서 1호선 사연 있는 여자 되었자네요. 🤣 그가 정말 사랑을 했을까에는 전 그 순간에는 그도 사랑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해요.
<해피 투게더>의 후반부에는 대만 배우 장첸이 등장하죠 (영화 <범죄도시 1>에서 나 장첸이야!를 외친 윤계상 배우 말고, 실명 장첸인 바로 그) <와호장룡>에서 장쯔이를 꼬여내는? 연인으로도 나오고, 브라운 아이즈의 띵곡 '벌써 일년' 뮤직 비디오에도 풋풋했던 김현주 배우와 함께 나오고, <수리남>에도 나오고, <듄>의 유에 박사로도 나왔던 바로 그요 ^^ <아비정전>의 마지막에 난데없이 양조위 배우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어넘기는 한 장면이 나왔지만 그 외 다른 부분이 없어 아쉬웠는데, <해피 투게더>에서는 장첸 배우가 그래도 서브 남주 느낌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서 반가웠습니다 <해피 투게더>에는 (<타락천사>의 주제곡 '망기타'를 부른> 홍콩 가수 겸 배우 관숙의도 나왔는데 실제로는 등장 장면이 통편집되었다고 하죠 나왔으면 <타락천사>의 막문위급 신선함을 안겨 주었을 건데, 아쉬워요
《해피 투게더》에서 장첸의 미모가 너무 뛰어나서 장국영과 헤어진 아픔도 장첸 덕분에 치유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듄》에서 반가웠는데 좀 더 오래 나왔다면 좋았겠다 싶었어요. 저는 집에 CD는 많은데 매번 이사갈 때마다 이거 버려야 하나 고민해요. 최근 10년 사이에 CD 플레이어에 손을 대 본 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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