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는 자기 자신이 또 다른 곳에 또 있을 것 같다는 말이 더러 나온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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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기생충들
『살인자 ㅇ난감』 에서 듣기 거북하게 부하한테 존댓말하고
생긴 건 멀쩡해서 극히 가식적인 형사 새끼와
프로파일러 여형사의 모습은
사람이 먹은 음식을 모두 게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것들은 대개 사회에서 무난하게 코스를
밟아온 인간들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거의 완벽하게 따르며
산 개돼지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우러르고 모범으로 삼는 걸 무기로 삼아
시건방지게 그게 최고일 줄 알고
사회에서 빗나가 소외되어 사는 사람들을 멋대로 재단하고
함부로 진단해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오직 자기 기준으로만 언론에 대고 화장을
고치며 논평한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출세에 도움이 되는 것만
취사선택하는 약삭빠름을 보인다.
야비한 기생충들이다.
이런 인간들이 대개는 보수 꼴통들이다.
이런 인간들의 역겨운 모습과 나불거리는 입을 보고
있노라면 먹은 걸 다 게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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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남자,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건 반칙
작품에도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의 냄새를 맡고 잘 타는 게 여자다.
이건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라 여자가 더 유행이나
주변 변화에 민감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자 작가의 소리는 잘 안 들리고
나, 엄마, 할머니 소리만 들린다.
이것도 흐름이다.
그게 엄청 중요하면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흐름에 따라 움직이니 절대 또 안 그렇다.
그건 그게 그냥 흐름이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이야기가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다뤄 줘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원래 다른 성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비감으로 끌리기도 하고, 그래서
서로 혐오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리 파도 모르겠고 자기를 공감하지 못한다고.
다른 성은 자기와 다르니까 이해하기 힘들고
이상하기 때문에 동성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꼭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이 두 성이 골고루 자기 이야기를 해야
공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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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대개 요즘 너무나 변화가 빠른 문명의 이기에 대해 안 배우려 하고 그러면서 일상에선 그것에 대한 열등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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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악은 자기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일부러 강한 척하는, 가진 게 별로 없어 그 마음을 들킬까 일부러 나쁜 척하는 것이고 위선적이라는 건 가진 게 많은 인간들이 자기 것을 지키려고 착한 척하는 것이다. 그래야 더 잘 자신이 원하는 게 굴러들어오고 착하니까 자기 것을 함부로 탐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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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대놓고 말한다. 남자 없인 살아도 여자 없인 못 산다고. 그리고 그들의 글을 보면 여자에 대한 글이 80이면 남자에 대한 글은 20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 걸 굳이 거론하면 남자가 쪼잔하게 그런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걸 여자들은 웃으면서 그러니까 아주 자유롭게 말하는데 남자들이 그런 말을 하면 그 뒤끝이 두려워 힘부로 웃으면서 말을 못 한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내가 보기엔 여자가 아직은 약자 입장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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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한창 공부할 때 엘리베이터는 없고
계단만 있는 도서관인데, 계단이 무척 넓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계단 바닥이 반질반질하다.
겨울엔 주변 공기를 건조하게 해 코를 훌쩍거리게 하고
눈을 따갑게 하는 건조하기만 한 난방이 아니라
칙칙 쉬~하는 소리를 내는 라디에이터 스팀 보일러가 있는
그런 도서관이 지금 와서 그립다.
칙칙거리는 증기 소리가 뜨거운 열공 모드를
격려하는 듯하다.
만약 그런 도서관이 지금도 있다면
굳이 그곳을 방문해
공부에 다시 전념할 것 같다.
그 분위기에 젖어, 취해
여름엔 공부하다 지루하면 널찍하고
시원한 복도에 나와 같이 공부하는 낯익은 단골들과
도서관 구석의 자판기 커피를 쫙쫙 뽑아 먹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사하던 곳.
이런 곳은, 지금의 도서관처럼 너무 화려해
위화감이 들게 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서늘하고 그늘져 아는 사람 안 만났으면 하는,
몸을 숨기고 싶어 하는 도서관 개근생들을 가려준다.
아직 그들에게 떳떳하지 않다.
자금은 내가 등장할 때가 아니다.
겨울엔 또 따뜻하다.
정이 든 것 같다.
그런 곳엔 꼭 죽돌이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과 매일 만난다.
공부는 안 되고 개나리 진달래 피는
화사한 봄-젊은 피로-싱숭생숭하면
의기투합해 주변 허름한 술집으로 우르르 향한다.
“먹고 죽자!”
주거니 받거니 몸이 떡이 될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
돈이 없어 안주는 부실, 책만 들여다보고
햇빛을 보지 못해 새하얀 얼굴에
체력도 저질, 빈속에 먹은 술은 금방 올라온다.
사회도 부모도, 이젠 자신조차 포기 상태라
술로 그 마음을 달래려 반드시 같이 술 먹으러 간
도서관 친구에게 드잡이하며 괜한 트집을 잡는다.
“그 착한 친구한테 내가 왜 그랬을까?
아, 나도 인간 말종(Vermin)이 다 되었구나!
앞으로 절대 술은 입에도 대지 말아야지.”
하지만, 이튿날 뼈저리게 후회하면서도
만만한 도서관 친구에게 술만 마시면 또 주정을 부린다.
그래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립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다른 광경으로는 절대 가기 싫지만,
그 장면만은 잠깐 멈춰 세우고 꼭 다시
그 장면 속으로 끼어들고 싶다.
가진 거 없고, 제대 직후라 아직은 느긋해
순수하게 설렜던 그때 그 시절로.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거기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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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기 마음 작용이다. 내가 한 말이 상대에게 대단히 미안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대개 남은 그렇게까지 상처를 안 받는다. 그러나 말한 사람이 그런 마음을 안 가졌을 때 상대는 상당히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때 그 말은 한 사람은 기억조차 대개는 못 한다. 내가 그랬냐고, 한다. 이게 다 사람의 마음은 자기 위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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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야, 칭찬이야
“그거 욕이야, 칭찬이야?”라고
물을 때, 그 말을 한 사람은 대개 칭찬이라고 한다.
그럼,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사람은 이미 칭찬인지, 욕인지
속으로 결정하고 한 말이다.
듣는 사람이 이게 욕인지 칭찬인지 진실을 아는 방법은
그가 요즘 어디에 관심을 두는지
알아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는 저녁이 있는 삶으로 워라밸을 추구하고 있고
나는 젊을 때 모범적으로 열심히 버는 갓생을 추구하는 거라면
그와 나는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가 한 말은 실은 칭찬이 아니라 욕일 확률이 더 높다.
대신 그가 나와 같은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한 말대로 칭찬인 경우가 거의 확실하다.
자기가 추구하는 걸 나도 같이 추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만큼 고상하지 않아 자기와 같은 사람을 칭찬하지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그 지역에 가서
자기가 거기에 조그마한 거라도 연고가 있다며
소울리스한 유체이탈(遺體離脫)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그 지역민과 자기가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공사가 통합된 지 7년이 넘어가는데도 아직도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같음과 다름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이 같음과 다름을 하루속히 희석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진정한 통합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더 크게는 MBTI를 보면 더 확실하다.
이게 작게는 T와 F에서 결정되고,
더 큰 범위에서 J와 P로 결정된다.
너는 T이기 때문에 F인 내 말에 공감을 못 하고
내 말과 감정에 맞게 적절히 리액션하지 못 하고
잔정 없이 냉정하다며 언짢아한다.
이런 T와 F의 대화에선 욕인 경우가 많고,
같은 F거나 T이면 칭찬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을 결정하는 J와 P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기존 것 안에서 자기 행동을 결정하느냐 아니면
기존 체제보단 자신의 자유로움을 더 중시하느냐인데
이것으로 정치적인 진영과 노선을 따져보면,
J 중엔 보수가 많고, P 중엔 진보가 많다.
J엔 공무원이 많고, P엔 아티스트가 많다.
행동에 체제를 의식하느냐, 의식하지 않느냐인 것이다.
이처럼 욕인지 칭찬인지는 그가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한 것이지,
그가 칭찬이라고, 듣기 좋게 접대성 용어로 한 말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말한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칭찬과 욕이 갈린다.
그러니까 그건 실은 칭찬도 욕도, 뭣도 아닌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만 반영된
상대적인 견해에 불과하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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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으라고 유령이 나타났다
요즘 인간들은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전에도 안 읽었지만 그게 점점 더 심하다.
다 그러니까 부끄러움도 모른다.
오히려 이젠 읽는 사람이 뭔가 뻘쭘하다.
그러니까 생각은 사라지고 단세포적인 것에
이끌려 동물적인 쾌락만 좇는 것이다.
나중을 생각하지 않는다.
기후 위기도 그렇고 몸에 분명히 안 좋은 건데
그냥 자극적인 것이면 무조건 입으로 가져간다.
어린 나이에 당뇨, 비만, 고혈압으로 고생하는 것이다.
젊은 치매도 오고.
그래 이 글은 그렇게 인간들이 책을 읽지 않으니까
뭔가 중요한 걸 전달하려고 죽고서도 다시
도서관에 관장이 나타난 것이다.
제발 책 좀 읽으라고.
그래야 진정한 인간으로 살고
제대로 된 인간 세상이 만들어질 희망이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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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버틸 수 있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쓴다.
물론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작가는 세상이 허무하다는 걸 잘 안다.
염세주의자가 많아 덧없고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책을 통해, 일반인보다 그걸 너무나 더
자주 생생히 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자신은 글로 자기 생각을 기록하고
그게-유명해지건 아니건 그래도-후대에
남는다는 것에 대해.
물론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기쁨과
자기 글이 한 독자에게라도 힘을 줄 가능성에 대한
기쁨도 있지만 역시 자기 기록이 남는다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길 것 같다.
아마 작가 중엔 그걸 자신이 선택한 것 중
가장 잘한 것이고 자기 뜻에 따른 것이고,
그걸 하며 행복하고 후대에 남아 그나마 잠시 잠깐인
한 인생을 버틴다고 생각하는 게 거의 분명하다.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유전적, 물리적인 유산을 남기는 것이고,
작품을 남긴다면 정신적인 유산과 자기만의 단독자적인 세계를
온전히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의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한 육체는 사라져도 그 정신만은
설령 누가 알아주지 않고 무시하고 하찮게 취급해도
이 세계 그 어디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품은 채
살아 숨 쉴 것이기 때문이다.
한평생 쏟아부은 온전한 자기 정신만은.
이생에서 생을 마감해 이미 육체는 태워지고 흙의
일부가 되었어도 아쉬움, 미련, 후회가 남아 영혼이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 수 있지만,
작가는 그런 것 없이 엄연히 자기의 혼에 해당하는
정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런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육체는 가고 없지만,
자기 정신만은 엄연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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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 살아있는 사람으로 회복 하려고 꿈을 읽는 사람을 고용하고 오래된 꿈을 읽어내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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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중엔 그냥 다수가 쓰는 언중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 다. 대개 언중은 그냥 편한 대로 쓴다. 다른 일 하느라 말에 별 신경을 못 쓰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반대되는 말이 같은 뜻으로 쓰일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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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주이고 우주는 나다. 그래 나를 알면 안방에 앉아서도 우주를 알 수 있다. 내 마음을 분석하는 것은 우주인 뭇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는 것하고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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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은 여자가 남자에게 너무한다
한국 드라마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제 남편이나 중년 남자는 사람 취급도 안 한다.
일본은 남자가 더 사랑하고 아름다운 아내인데도
그녀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그 남편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그럴 경우, 남자는 같이 힘든데도
남자만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남자는 동네북이고 여자의 만만한 감정 쓰레기 처리장이다.
한국 여자는 남자에게 함부로 하고 구박한다.
남자도 사람이고 상처받아 힘들다.
한없이 마음이 너그럽기만 한 게 아니다.
남자이기 이전에 같은 사람이다.
드라마도 그러니까 현실에서도 여자들은
그런 게 맞다, 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혹시 이들이 일본에 가거나 일본 드라마를 접하면
자기들만 남자들에게 너무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은 똑같이 다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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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이 내 중심
뭔가 중심이 되는 게 있는 사람은 인생을
무난하게 사는 것 같다.
아닌 사람은 흔들리고 상처받고 열등감을 지닌 채 살아간다.
남의 눈치를 보며 그가 자기를 공격하면 어쩌나 하고
방어 위주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는 먼저 공격하는-나를 먼저 공격하지 말라는 뜻으로-
위악적인 행동을 일부러 한다.
한편, 또 완벽하게 중심을 잡고 자기가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작든 크든 굴곡이 있고-뾰족한 등성이가 있으면 반드시
깊은 골짜기가 있는 것처럼-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그 굴곡이 인생의 진실한 모습이다.
그 중심이 크냐 작으냐이고, 그건 또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를 믿었지만,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
충격이 너무 크고 중심도 마구 흔들린다.
내가 타인에게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타인이 내 중심이라도 생각했지만
그의 움직임에 따라 나는 하릴없이 흔들릴 수도 있다.
인생은 기대와 실망, 희망과 좌절,
믿음과 배신의 역사이므로 그게 마냥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중심은 흔들리고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고정되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중심을
끝없이 만드는 과정이 또 인생인지도 모른다.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는 대상을 내 가슴에 담아두는 작업.
그 대상이 내겐 유일하게 당신인 것 같다.
당신의 움직임에 따라 나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겪는다.
당신이 내 행복의 척도다.
나는, 내 안에서 고정되고 움직이지 않는 당신을 원한다.
다른 그 누가 그걸 대신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 당신이 내 중심에 반드시 고정된 채 있기만을
오늘도 바라고 또 바란다.
나는 당신이 있는 자리가 마비되고 고장 나 다른 것으로
대신이 안 되는데, 당신도 나처럼 나를 고정시키라고.
당신은 내 행불행의 원천이다.
그걸 감히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는 걸
불행히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움직이는 당신이 내 중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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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는 죽은 저자의 책도 있다. 그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자기 세계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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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살기를 원하나? 아니면 자기가 끔꿔온 이상세계에서 살기를 원하나? 극락이나 천국 같은 곳.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사길 원할 것 같다. 왜냐면 인간은 현실에서 살아야 하니까. 인간은 현실과 떨어져서는 그 존재이유를 모르니까. 그리고 이상은 인간적인 재미도 없고 너무나 완전하고 완벽한 세계이므로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 인간과 현실이 맞는 조합이고 인간이 잠시 현실이라는 세상에서 사는 게 고해이으로 잠시잠깐 이상세계를 꿈꾸는데 실은 그것을 인간과 어울리는 세계가 아닌 것이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불완전하고 불안해서 이상 세계를 만든 것인데, 현실적인 인간-즉 꿈을 꾸는 인간-이 없다면 그 이상세계도 있을 필요가 아니,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실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인 것이다. 다른 세계는 인간이 아니라 귀신이거나 육체가 없는 영혼뿐이거나 하여간 인간에게 적합한 곳은 아닐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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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잔말 말고 현실에서 살아야
인간은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살기를 원하나?
아니면 자기가 꿈꿔온 이상세계에서 살기를 원하나?
극락이나 천국 같은 곳.
그러나 결국 현실 세계에서 살기를 원할 것 같다.
왜냐면 인간은 현실의 자식이고, 서로 궁합이 맞으니까.
인간은 현실과 떨어져서는 그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이상은 인간적인 재미도 없고, 흠결 없고
너무나 완벽한 세계이므로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
실수하는 인간이 인간의 본질이다.
이상과 절대자의 탄생도 이런 인간 결함의 소산이다.
인간과 현실이 맞는 조합이고, 인간이 잠시 현실이라는
세계에서 사는 게 고해이므로 잠시 잠깐 이상세계를
꿈꾸는데, 그곳은 사실 살 곳이 못 되는 공상의 세계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냥 꿈속의 용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불완전하고 불안해서
이상세계를 만든 것인데,
현실적인 인간-즉 꿈을 꾸는 인간-이 없다면
그 이상세계도 있을 필요가 아니,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 인간이 탄생시킨 가도 가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물안개가 형성한 무지개의 세계다.
인간은 현실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이다.
다른 세계는 인간이 살 곳이 못 된다.
그곳의 인간은 귀신이거나 육체가 없는 영혼뿐이거나
하여간 인간에게 적합한 곳은 아닐 게 분명하다.
현실과 인간은 서로 맞는 조합이고 찰떡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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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잔말 말고 현실에서 살아야
인간은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살기를 원하나?
아니면 자기가 꿈꿔온 이상세계에서 살기를 원하나?
극락이나 천국 같은 곳.
그러나 결국 현실 세계에서 살기를 원할 것 같다.
왜냐면 인간은 현실의 자식이고, 서로 궁합이 맞으니까.
인간은 현실과 떨어져서는 그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이상은 인간적인 재미도 없고, 흠결 없고
너무나 완벽한 세계이므로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
실수가 인간의 본질이다.
이상과 절대자의 탄생도 이런 인간 결함의 소산이다.
이 부족한 현실에서 지지고 볶고 사는 게
인간 삶의 본질이다.
인간과 현실이 맞는 조합이고, 인간이 잠시 현실이라는
세계에서 사는 게 고해이므로 잠시 잠깐 이상세계를
꿈꾸는데, 그곳은 사실 살 곳이 못 되는 공상의 세계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다.
허상이다.
그냥 꿈속의 용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불완전하고 불안해서
이상세계를 만든 것인데,
현실적인 인간-즉 꿈을 꾸는 인간-이 없다면
그 이상세계도 있을 필요가 아니,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 인간이 탄생시킨, 가도 가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물안개로 만들어진 무지개의 세계다.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 결국 움켜쥐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현실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이다.
둘은 깐부다.
다른 세계는 인간이 살 곳이 못 된다.
그곳의 인간은 귀신이거나 육체가 없는 영혼뿐이거나
하여간 인간에게 적합한 곳은 아닐 게 분명하다.
현실과 인간은 서로 맞는 조합이고 찰떡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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