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발췌, 수정, 요약 내용입니다.

D-29
예전에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에서 리뷰로 다뤘던 글을 이곳에 모아봅니다.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 민주화를 이루고, 세상이 놀라워 하는 경제 성장도 거두었는데, 불행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노 동 시간이 가장 길고, 불평등이 가장 심하고, 노동 자의 죽음이 가장 빈번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뿐 아니라, 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장 우울하고, 최저출산률, 모두가 모두를 가장 불신하는 나라이 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 특징을 네 가지 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 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이룬 이 엄청 난 정치적,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고 통스럽게 살아야하나요?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요? 이 책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작은 시도입니다. 저는 독일이라는 거울에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방식으로 답을 구해 보고자 했습니다. 독일은 미국 모델에 대한 '대안 모델'입니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 한국을 개혁하려면 미국에 대한 '안티테제(반대 의견)'로 평가받는 독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독일이 유토피아는 결코 아닙니다. 독일도 우리처럼 나름의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죠. 그러나 독일은 이 문제들을 비교적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나라입니다.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 근대 사회의 '상식'을 헌법 제1조로 가진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헬조선'을 벗어나 유토피아로 진입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는 상식적인 나라 가 되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밖'의 세상 을 보는 건 사실 우리 '안'을 좀 더 잘 보기 위함이죠.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비추고, 일그러진 모습을 낯 설게 보여주는, 그런 '불편한 거울'이 우리에게 필 요한 것입니다. 독일에서 만난 것은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제가 우리 사회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아마도 이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한 게 아닐지도 몰라'라고 생각 하기 시작한 거지요. 우리가 당연시한 많은 것이 그 곳에선 잘못된 것, 부조리한 것, 정의롭지 못한 것 이라고 여겨지고 있었으니까요. 오랫동안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많은 것들이, 그러나 우리가 마치 '자연의 이치'인양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던 것 들이, 독일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선 경쟁 도, 등수도 없었고, 죽도록 매달리는 대학 입학시험 도, 학비도, 서열도 없었어요. 우리도 행복할 권리 가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정상이라 생각 해 온 많은 것들이 혹시 비정상이 아닌가'라는 근본 적인 회의를 갖게 된 것이죠. 너무도 병든 사회에서 아무런 일이 없다는듯 '정상'으로 사는 사람은 과연 정상인가요, 비정상인가요? 저는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과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중 첫 번째로 비추어 볼 대상은 바로 한국의 민주 주의입니다. '독일 거울'에 비추면 한국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요? 이를 제대로 살피기 위해 서는 우선 68혁명이란 세계사적 사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통일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통일문제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통일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근본적인 데에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분단체제' 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주 볼품없는 국가로 만들 었고, 사회를 아주 병든 사회로 만들었으며, 한국 인을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아주 특이한 인간 유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1장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우리의 혁명은 도착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1등 선진국, 대한민국 한국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 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연구에 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민주 주의의 수준을 비교, 연구한 보고서가 201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거기서 한국은 12위를 차지했습 니다. 중요한 것은 이른바 '주요 국가' 혹은 '강대 국' 이라고 부르는 큰 나라 중에서 우리가 1등을 했다는 것입니다.(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중) 영국, 이탈리아, 독일이 우리 뒤를 이었습니다. 미국이 6위, 일곱 나라 중 일본이 꼴찌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최근의 정치 상황을 돌아보면 상당히 이해가 가는 결과입니다. 미국은 사실상 현대 민주주의의 막장을 보여주었다 는 평가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도널드 트럼 프라는 '위험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일본의 경우는 내놓고 군국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준(準)파시스트'아베가 장기 집권 중입니다. 우리를 1위로 이끈 것은 촛불집회가 결정적이었 습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고,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서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서 이에 항의하고,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부인 국회에 서 그것을 받아 탄핵을 결정하고, 사법부인 헌법재 판소에서 이를 받아들인, 즉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민주주의의 교과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죠. 어느 나라나 이런 삼권분립 체제가 법적으론 존재 하나, 이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 의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의 정석을 실천한 거죠. 근대 민주주의의 발원지는 유럽과 미국입니다.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미국독립선언 (1776년), 프랑스의 인권선언(1789년)을 기원 으로 삼지요. 그 민주주의의 발원지인 유럽과 미국 이 이젠 우리한테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4·19, 5·18, 6·10, 이렇게 이어져 온 민주주 의의 역사는 사실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가 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4·19혁명은 우리나라 최초 의 민주 혁명이지만, 1년 만에 박정희라는 육군 소 장의 군사 쿠데타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전두환 소장의 야만적인 학살 과 만행에 의해 또다시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6·10 민주항쟁은 비록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긴 했지만, 결국 그 선거를 통해 또다시 군 출신인 노태우에게 정권이 넘어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촛불혁명에 이른 것입니다. 심지어 전 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저 촛불 혁명도 기무사령관이 쿠데타적인 방식으로 진압 하려는 음모를 꾸몄단 문건이 나중에 발견되었죠. 다시 말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 이면으로 보면 군사 쿠데타의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이후 저는 '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취약할까' 생각하며 많은 궁리를 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번도 안정적으로 지속된 적이 없었 으며, 여전히 위태롭게 흔들리는 중입니다. 왜죠?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는 충분 히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제 나름의 진단을 말씀드리자면,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때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가 엉켜져 있습 니다. 우리가 아직 민주주의자가 덜 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뒤떨어진 것은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겁니다. 특히 군사문화가 너무 뿌리 깊고, 널리 퍼져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쉬운 예로, 한국인들은 정치 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 침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정치의 민주화 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뜻입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제 도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 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이런 심성 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제도 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독재자에 의해 추락할 수 있습니다. 광장의 촛불이 내 마음 속과 우리 삶 속에서 다시 타올라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68혁명, 모든 형태의 억압을 거부하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라고 하면 한 사회구성체의 작동원리 전체를 포괄한다고 생각하지만, 세분화 해서 보면 민주주의를 더 의미 있게 분석할 수 있 습니다. 즉 정치 민주화,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 화, 문화 민주화 이렇게 네 영역으로 구분해서 살 펴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정치 민주화가 상 당히 잘 이루어진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찬탄할 정도로 훌륭한 민주화를 이뤘습 니다. 이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 2016 년 촛불시위이고요. 그러나 사회 민주화는 어떨까 요? 사회 민주화를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회 각 영역에서 개별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까지 자치적인 운영을 하고, 자율적인 결정을 하 는지의 정도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회 민주화의 기본 원리는 '구성원들의 자치'입니다. 독일도 사실 1968년 이전까지는 사회 민주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68혁명 이전의 독일 대학은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대학 에 속했으나, 그런 대학이 68혁명 이후, 완전 바뀌 게 됩니다. 68혁명을 통해서 학생들은 대학의 급 진적인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독일은 98%의 대학이 국립대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사립대학 이 기형적으로 많습니다. 무려 87%로 세계에서 사립대학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이처럼 68혁명 이후의 독일은 많은 사회 영역에서 사회 민주화가 이뤄졌습니다. 경제 민주화는 기본적으로 경제 기구, 특히 기업 안에서 과연 어느 정도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 루어지는가를 경제 민주화의 기준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관들(교육, 공공, 언론 기관 등) 중에서 가장 민주화가 안 된 곳이 어딜까요? 바로 기업입니다. 한국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10% 밖에 안됩니다. 그러니 기업 내에서 노동자는 대단히 열악한 상황 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 기업에서는 그 소유자가 그야말로 전제 군주처럼 행동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에서 갑질이 자주 이슈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 갑 질을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한국 의 갑질은 그 개개인의 인성이 잘못돼서 그런면도 물론 있겠으나, 제도적으로 그걸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권력을 쥐어줬으니 행사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경제 민주화는 곧장 사회 민주화와도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화 민주화란 바로 이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지요.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 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68혁명을 통 해 이런 문화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우 리에게는 아득히 먼 일이지요. 이제 문화 민주화, 나아가 문화혁명의 핵심적 사례 인 '코뮌' 운동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코뮌주의라 고 하는 것은 '코뮌', 즉 자치 공동체의 삶을 중시 하는 생활 방식, 거기 동의하는 사람들의 결사체, 연합, 이런 것들을 뜻합니다. '코뮌'이란 넓은 의 미에서 모든 종류의 공동체적 삶을 뜻하는 말입니 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코뮤니즘'이 경제적인 공동 체를 중시하는 사회구성체를 의미한다면, 68혁명 시기에 활발하게 조직되었던 코뮌은 성(性) 공동 체를 의미했습니다. 68혁명 전후로 독일에서는 많은 코뮌들이 생겨납니다. 이들이 부정한 건 무엇보다도 일부일처제입니다. 68세대는 일부일처제야말로 재산권을 영원히 계 승시키기 위한 자본주의의 사회적 전제라고 봤어 요. 이러한 '코뮌' 운동에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은 바로 빌헬름 라이히의 사상이었어요. (한편으로 성 교육을 통해 높은 성 의식을 키우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성에 대한 범죄를 아주 엄격히 처벌.) 문화혁명의 또다른 중요한 단면은 소비주의와 물질 문명에 저항하는 탈물질주의의 흐름입니다. '히피'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히피들은 물질문명, 소비사회에서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삶 의 가능성을 급진적으로 실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탈물질주의적 삶에 대한 경험이나 실험 은 말할 것도 없고, 상상력 자체가 부족합니다. 최근에 와서야 조금씩 그런 인식과 각성이 싹트고 있죠. 이것들은 68혁명의 부재와 관련 깊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는 정치 민주화를 이룬 것입니다.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 문화 민주화의 실현은 여전히 먼 길입니다. 그것이 바 로 우리의 현실이 암울한 이유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한국 에 68혁명과 같은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 합니다. 실은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68혁명에 대 해 제대로 모릅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그것이 조 금씩 알려지고 있습니다. 1968년 5월, 프랑스의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변혁 운동이 일어나기 시 작했습니다. 이 변혁 운동은 빠른 속도로 전세계 에 파급됩니다. 이 운동의 핵심적인 구호는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여기서 중요 한 말은 바로 '모든'이라는 말입니다. 유교적 윤 리의 억압, 부모로부터의 억압, 여성에게 강제된 육아를 포함한 것들. 또한 자본주의로부터 비롯된 억압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요. 나의 행동을 알 게 모르게 통제하는 사회적인 시선 그 자체도 억 압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든 종류의 억압으 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운동이 1968년에 폭발 한 것이고 그 폭발의 지점이 파리였습니다. 파리 에서 시작된 68혁명의 불길은 베를린, 로마, 바르 셀로나, 마드리드 등 서구 세계를 휩쓸더니 당시 냉전체제하에서 '철의 장막'이라고 불리던 거대 한 이념의 장벽까지 뚫고 동유럽으로 번져갔습니 다. 왜 갑자기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 는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터져 나온 것일까요?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는 바로 베트남 전쟁입니다. 베트남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4년 경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도 시작되었는데, 이 반전운동이 확산될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요인은 다름 아닌 매체의 변화였습니다. 1965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TV가 보급됩니다. 그러자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쟁의 참 상을 TV를 통해서 눈으로 보기 시작했던 거지요.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이란 나라는 자유세계를 지 켜주는 수호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베트 남전쟁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며 미국도 일개 제국 주의 국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을 보며 굉장히 깊은 도덕적인 분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결정적인 요인은 미국과 소련 간에 벌어 진 군비 경쟁입니다. 특히 핵무기 경쟁이 이 시기 에 이르면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이미 1965년 무렵에 인류를 수백 번 절멸할 정도의 핵무기를 비축해 놓고 있었는데도 더 우위를 점하겠다고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으니까요. 60년대 중반부터 '부조리'라는 말이 정말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부조리한 세상. 어떻게 이렇게 까지 터무니없을 수 있는가. 인간을 그렇게 무수 히 죽인 것도 모자라, 더 많은 인간을 죽일 수 있 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경 쟁을 벌이다니. 요컨대 베트남전쟁을 보며 도덕 적 충격을 느끼고, 미소 간의 핵무기 경쟁을 보며 부조리한 세계를 체험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 전체를 부정하고 기성 가치 전체를 회의하는 상 황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치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 작합니다. 결국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은 거대한 억압의 체제이고,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 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68혁명의 핵심 구호가 탄생하게 됩니다.
2022. 6. 28. 덧붙임 글. 살아가면서.. 비판적 사고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절실히 느낍니다. 68혁명은 .. 비판적 사고로 도달한 최선의 결론이 아니었을까도 싶습니다.
세계를 뒤엎은 68혁명 68혁명은 좁게 보면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발 생한 사건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일련의 변혁 운동 을 말하지만, 넓게 보면 6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나 70년대 초반까지 계속된 거대한 변혁의 흐름을 뜻하기도 합니다. 나라마다 조금씩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1968년 파리 시위를 기점으로 혁명의 열기는 전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은 구 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된 억압의 형태 는 나라마다 달랐습니다. 억압의 양상이 각 나라 의 상황에 따라 달랐던 것이지요. 1968년을 전후 한 시기에 미국은 반전(전쟁에 반대)이 가장 중요 한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흑인 운동 이 거세게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백인의 지배로 부터 흑인을 해방해야 한다는 운동이 미국에선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됩니다. 블랙 팬서 (1965년 결성된 미국의 급진적 흑인 운동 단체) 도 그즈음에 생겼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이 벌어진 것도 1968년 이었습니다. 이 해에 흑백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았고, 흑인해방 운동이 상 당한 성과를 거뒀지요. 프랑스에선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68운동은 학생과 노동자의 연대, 즉 '노학 연대'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방향으로 전개됐습니다. 독일의 경우는 68세대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새로운 독일' 을 만들었습니다. 독일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던 나라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분배 구조가 매우 나빠졌습니다. 그런데 1969년 이후, 빌리 브란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복지국가 체제 를 확충하게 됩니다. 독일은 1946년부터 없애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대학 등록금이 없습니다. 물론 그냥 없앤 것은 아닙니다. 당시 프랑크푸르 트 대학을 다니던 칼 하인츠 코흐라는 학생이 위 헌 소송을 제기합니다.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는 독일 기본법 규정을 들어 헌법소원을 낸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도 헌법 제 31조에 교육권 조항이 있 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처럼 잘 사는 나라 에서 이렇게 엄청난 액수의 대학 등록금은 이해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에겐 아직까지 그런 권리 의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학비에 이어 생활 비까지 주어야 한다고 주장을 펼친 이가 빌리 브 란트입니다. 1969년 선거에서 그거 내세웠던 것 은 바로 '교육 사회'입니다. '교양 사회'라고도 옮 길 수 있습니다. 모든 독일인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 교양인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이지요. 그러려면 고등교육을 확충해야 하고, 나 아가 누구나 부담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생 활비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교육을 방임하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학의 87%가 사립대학이고, 중·고등학교 역시 사립학교가 많습니다. 물론 한국의 이런 기형적인 교육 체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 우리 현대 사의 비극 때문이지요. 식민 지배에서 갓 독립한 국가로서 대한민국은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 출발 했고, 나라가 가난하다 보니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역의 유지들이 교육 사업을 떠맡게 되었고, 정부는 이들에게 토 지개혁 과정 등에서 많은 혜택을 주었지요. 그래 서 해방 직후 사립학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일 곱 번째로 '30-50 클럽'에 들어간 나라이고,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나라입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가 교육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채 사립학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직무유기입니다. 독일은 전쟁 배상금 지불을 포함해서 그야말로 재정적으로 파산이 난 나라였습니다. 의지만 있으면 대학까지 무상교육 을 실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인 것입니다. (저자는 수많은 국가 중 한국은 68혁명 을 거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주목하며, 안타 까워 합니다. 저 역시 공감했습니다.) 아우슈비츠와 비판 교육 독일에서는 학교 역사 시간의 절반을 히틀러 시대 (나치 시대)에 할애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못했 고, 인류에게 이런 재앙을 몰고 왔다. 정말이지 다 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가 르치는 것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68세대가 빌리 브란트를 통해서 독일을 '과거청산의 나라' 로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이 오늘날 성공적인 과거청산을 이룬 나라로 인정받게 된것 은 무엇보다도 브란트 정부 시기부터 시작된 교육 개혁 덕분입니다. 70년대 독일 교육은 과거청산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테오도르 아도 르노 라는 사상가가 이를 '아우슈비츠 이후 교육' 이라는 말로 정식화했습니다. 독일 교육은 아우슈 비츠 '이후'의 교육으로서 '더 이상 아우슈비츠가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표를 가진 교육이어 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목표 아래 독일의 교육개혁은 진행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이후 교육'으로서 독일 교육의 독특한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비판 교육'입니다. 정말 특 이한 교육이지요. 세계에서 비판 교육을 교육의 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어느 나라든 교육의 중점은 '적응'에 있 는 법입니다. 기존의 질서와 규범을 익혀 잘 적응 하도록 하는 것, 보통 '사회화'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교육의 목표이지요. 그러나 독일 교육 에선 '적응' 보다 '비판'을 더 중시합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는 것,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이 독일 의 비판 교육입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청소년 들이 굉장히 비판 의식이 강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내 말을 믿지 말고, 왜 그 말을 하는 지 그 배후를 의심해.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성숙 한 민주시민이야." 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비판 의식이 한국 교육에는 매우 결여되어 있습니다. 또한 독일의 개그, 코미디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 이 권력 비판입니다. TV 코미디의 대부분은 정치 비판 내용입니다. 주요 소재는 트럼프와 김정은, 가끔 메르켈도 등장합니다. 권력자들의 터무니없 는 행태들이 개그,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이죠. 권력의 이중성과 기만성을 고도의 지적 통찰로 폭 로하는 것, 그것이 개그의 정수인 것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권력을 비판하는 개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비판 교육에선 사지 선다. 오지선다 하는 '선다형' 문제는 전혀 없고, 단순한 지식을 묻은 '단답형' 문제도 거의 없습니 다. 이런 식의 평가 방식 자체가 반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선다형 문제는 모르고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이라기보다는 '사기'에 가깝다고 봅니다. 단순 주관식도 마찬가지입니 다. 그것은 주입식 교육에 상응하는 평가 방식이 고, 주입식 교육은 파시스트(*전체주의자) 교육 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교육 을 받습니다. 정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지요. 글을 쓴 작가가 어떤 시대, 어떤 환경, 어떤 의도로 그런 작품을 썼는지 텍스트를 둘러싼 '콘 텍스트' 즉 맥락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 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이에 대해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표명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한국 정치인들은 '경쟁력' 만을 강조하지만, 독일 정치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적 정의'를 중시 하고, 사회적 정의를 이루기 위해 경쟁 합니다.
2022. 6. 30. 덧붙임 글. 오늘은.. 지난 번 내용만으로는 많이 부족했었던 '68혁명' 을 추가로 다뤄보겠습니다. 저는 사실 '세계를 뒤엎었다'라고 까지 평가받는 68혁명을 김 누리 교수님을 매체로 접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하긴.. 4.19 , 5. 18 , 6.10 역시 의도적으로 나중에 찾아보며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요. 나중에라도 관심 갖고 찾아보며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는 결코 과거를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역사가 담고 있는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됩니다. (아직 수준은 낮지만요..ㅎㅎ;;) 그러다 보면.. 이상한 점들을 많이 발견합니다. '이상하다'라는 말이 적당할 것 같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왜 저런 과정을 겪었는데 지금은 이 모양이지?" 그런데 이 '상식' 이란 단어가 중요한 단서 같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온 상식의 사전적인 정의는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일반인'은 무슨 기준을 따를까요? 사실 저에게는.. 추상적인 개념 쯤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했던 "왜 저런 과정을 겪었는데 지금은 이 모양이지?" 라는 생각은.. 매우 당연해질 수 있게 됩니다. '정상적인 일반인'의 범위가 잘못 지정 되었다는 가정을 하면요...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느꼈던 저마다의 깨달음을 전하고자 노력한다고 저는 느낍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을겁니다. 그런데 비판의식을 얼만큼 가진 작가인지에 따라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울림이 얼만큼 다른지를 체감하곤 합니다. 해당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가와 같은 지식인들이 적지 않게 소리를 내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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