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발췌, 수정, 요약 내용입니다.

D-29
예전에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에서 리뷰로 다뤘던 글을 이곳에 모아봅니다.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 민주화를 이루고, 세상이 놀라워 하는 경제 성장도 거두었는데, 불행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노 동 시간이 가장 길고, 불평등이 가장 심하고, 노동 자의 죽음이 가장 빈번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뿐 아니라, 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장 우울하고, 최저출산률, 모두가 모두를 가장 불신하는 나라이 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 특징을 네 가지 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 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이룬 이 엄청 난 정치적,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고 통스럽게 살아야하나요?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요? 이 책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작은 시도입니다. 저는 독일이라는 거울에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방식으로 답을 구해 보고자 했습니다. 독일은 미국 모델에 대한 '대안 모델'입니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 한국을 개혁하려면 미국에 대한 '안티테제(반대 의견)'로 평가받는 독일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독일이 유토피아는 결코 아닙니다. 독일도 우리처럼 나름의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죠. 그러나 독일은 이 문제들을 비교적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나라입니다.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 근대 사회의 '상식'을 헌법 제1조로 가진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헬조선'을 벗어나 유토피아로 진입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는 상식적인 나라 가 되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밖'의 세상 을 보는 건 사실 우리 '안'을 좀 더 잘 보기 위함이죠.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비추고, 일그러진 모습을 낯 설게 보여주는, 그런 '불편한 거울'이 우리에게 필 요한 것입니다. 독일에서 만난 것은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제가 우리 사회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아마도 이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한 게 아닐지도 몰라'라고 생각 하기 시작한 거지요. 우리가 당연시한 많은 것이 그 곳에선 잘못된 것, 부조리한 것, 정의롭지 못한 것 이라고 여겨지고 있었으니까요. 오랫동안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많은 것들이, 그러나 우리가 마치 '자연의 이치'인양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던 것 들이, 독일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선 경쟁 도, 등수도 없었고, 죽도록 매달리는 대학 입학시험 도, 학비도, 서열도 없었어요. 우리도 행복할 권리 가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정상이라 생각 해 온 많은 것들이 혹시 비정상이 아닌가'라는 근본 적인 회의를 갖게 된 것이죠. 너무도 병든 사회에서 아무런 일이 없다는듯 '정상'으로 사는 사람은 과연 정상인가요, 비정상인가요? 저는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과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중 첫 번째로 비추어 볼 대상은 바로 한국의 민주 주의입니다. '독일 거울'에 비추면 한국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요? 이를 제대로 살피기 위해 서는 우선 68혁명이란 세계사적 사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통일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통일문제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통일이 중요한 진짜 이유는 근본적인 데에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분단체제' 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주 볼품없는 국가로 만들 었고, 사회를 아주 병든 사회로 만들었으며, 한국 인을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아주 특이한 인간 유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1장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우리의 혁명은 도착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1등 선진국, 대한민국 한국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 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연구에 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민주 주의의 수준을 비교, 연구한 보고서가 201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거기서 한국은 12위를 차지했습 니다. 중요한 것은 이른바 '주요 국가' 혹은 '강대 국' 이라고 부르는 큰 나라 중에서 우리가 1등을 했다는 것입니다.(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중) 영국, 이탈리아, 독일이 우리 뒤를 이었습니다. 미국이 6위, 일곱 나라 중 일본이 꼴찌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최근의 정치 상황을 돌아보면 상당히 이해가 가는 결과입니다. 미국은 사실상 현대 민주주의의 막장을 보여주었다 는 평가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도널드 트럼 프라는 '위험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일본의 경우는 내놓고 군국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준(準)파시스트'아베가 장기 집권 중입니다. 우리를 1위로 이끈 것은 촛불집회가 결정적이었 습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고,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서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서 이에 항의하고,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부인 국회에 서 그것을 받아 탄핵을 결정하고, 사법부인 헌법재 판소에서 이를 받아들인, 즉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민주주의의 교과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죠. 어느 나라나 이런 삼권분립 체제가 법적으론 존재 하나, 이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 의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의 정석을 실천한 거죠. 근대 민주주의의 발원지는 유럽과 미국입니다.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미국독립선언 (1776년), 프랑스의 인권선언(1789년)을 기원 으로 삼지요. 그 민주주의의 발원지인 유럽과 미국 이 이젠 우리한테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4·19, 5·18, 6·10, 이렇게 이어져 온 민주주 의의 역사는 사실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가 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4·19혁명은 우리나라 최초 의 민주 혁명이지만, 1년 만에 박정희라는 육군 소 장의 군사 쿠데타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은 전두환 소장의 야만적인 학살 과 만행에 의해 또다시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6·10 민주항쟁은 비록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긴 했지만, 결국 그 선거를 통해 또다시 군 출신인 노태우에게 정권이 넘어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촛불혁명에 이른 것입니다. 심지어 전 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저 촛불 혁명도 기무사령관이 쿠데타적인 방식으로 진압 하려는 음모를 꾸몄단 문건이 나중에 발견되었죠. 다시 말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 이면으로 보면 군사 쿠데타의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이후 저는 '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취약할까' 생각하며 많은 궁리를 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번도 안정적으로 지속된 적이 없었 으며, 여전히 위태롭게 흔들리는 중입니다. 왜죠?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는 충분 히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제 나름의 진단을 말씀드리자면,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때문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가 엉켜져 있습 니다. 우리가 아직 민주주의자가 덜 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뒤떨어진 것은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겁니다. 특히 군사문화가 너무 뿌리 깊고, 널리 퍼져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쉬운 예로, 한국인들은 정치 의 광장에서는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자기를 거 침 없이 드러내지만, 일상의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정치의 민주화 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뜻입니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제 도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 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이런 심성 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제도 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독재자에 의해 추락할 수 있습니다. 광장의 촛불이 내 마음 속과 우리 삶 속에서 다시 타올라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68혁명, 모든 형태의 억압을 거부하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라고 하면 한 사회구성체의 작동원리 전체를 포괄한다고 생각하지만, 세분화 해서 보면 민주주의를 더 의미 있게 분석할 수 있 습니다. 즉 정치 민주화,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 화, 문화 민주화 이렇게 네 영역으로 구분해서 살 펴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정치 민주화가 상 당히 잘 이루어진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찬탄할 정도로 훌륭한 민주화를 이뤘습 니다. 이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 2016 년 촛불시위이고요. 그러나 사회 민주화는 어떨까 요? 사회 민주화를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회 각 영역에서 개별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까지 자치적인 운영을 하고, 자율적인 결정을 하 는지의 정도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회 민주화의 기본 원리는 '구성원들의 자치'입니다. 독일도 사실 1968년 이전까지는 사회 민주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68혁명 이전의 독일 대학은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대학 에 속했으나, 그런 대학이 68혁명 이후, 완전 바뀌 게 됩니다. 68혁명을 통해서 학생들은 대학의 급 진적인 민주화를 요구했습니다. 독일은 98%의 대학이 국립대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사립대학 이 기형적으로 많습니다. 무려 87%로 세계에서 사립대학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이처럼 68혁명 이후의 독일은 많은 사회 영역에서 사회 민주화가 이뤄졌습니다. 경제 민주화는 기본적으로 경제 기구, 특히 기업 안에서 과연 어느 정도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 루어지는가를 경제 민주화의 기준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관들(교육, 공공, 언론 기관 등) 중에서 가장 민주화가 안 된 곳이 어딜까요? 바로 기업입니다. 한국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10% 밖에 안됩니다. 그러니 기업 내에서 노동자는 대단히 열악한 상황 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 기업에서는 그 소유자가 그야말로 전제 군주처럼 행동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에서 갑질이 자주 이슈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 갑 질을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한국 의 갑질은 그 개개인의 인성이 잘못돼서 그런면도 물론 있겠으나, 제도적으로 그걸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권력을 쥐어줬으니 행사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하는 것을 보면 경제 민주화는 곧장 사회 민주화와도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화 민주화란 바로 이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하는 것이지요.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 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68혁명을 통 해 이런 문화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우 리에게는 아득히 먼 일이지요. 이제 문화 민주화, 나아가 문화혁명의 핵심적 사례 인 '코뮌' 운동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코뮌주의라 고 하는 것은 '코뮌', 즉 자치 공동체의 삶을 중시 하는 생활 방식, 거기 동의하는 사람들의 결사체, 연합, 이런 것들을 뜻합니다. '코뮌'이란 넓은 의 미에서 모든 종류의 공동체적 삶을 뜻하는 말입니 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코뮤니즘'이 경제적인 공동 체를 중시하는 사회구성체를 의미한다면, 68혁명 시기에 활발하게 조직되었던 코뮌은 성(性) 공동 체를 의미했습니다. 68혁명 전후로 독일에서는 많은 코뮌들이 생겨납니다. 이들이 부정한 건 무엇보다도 일부일처제입니다. 68세대는 일부일처제야말로 재산권을 영원히 계 승시키기 위한 자본주의의 사회적 전제라고 봤어 요. 이러한 '코뮌' 운동에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은 바로 빌헬름 라이히의 사상이었어요. (한편으로 성 교육을 통해 높은 성 의식을 키우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성에 대한 범죄를 아주 엄격히 처벌.) 문화혁명의 또다른 중요한 단면은 소비주의와 물질 문명에 저항하는 탈물질주의의 흐름입니다. '히피'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히피들은 물질문명, 소비사회에서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삶 의 가능성을 급진적으로 실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탈물질주의적 삶에 대한 경험이나 실험 은 말할 것도 없고, 상상력 자체가 부족합니다. 최근에 와서야 조금씩 그런 인식과 각성이 싹트고 있죠. 이것들은 68혁명의 부재와 관련 깊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죠.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는 정치 민주화를 이룬 것입니다.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 문화 민주화의 실현은 여전히 먼 길입니다. 그것이 바 로 우리의 현실이 암울한 이유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한국 에 68혁명과 같은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 합니다. 실은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68혁명에 대 해 제대로 모릅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그것이 조 금씩 알려지고 있습니다. 1968년 5월, 프랑스의 파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변혁 운동이 일어나기 시 작했습니다. 이 변혁 운동은 빠른 속도로 전세계 에 파급됩니다. 이 운동의 핵심적인 구호는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여기서 중요 한 말은 바로 '모든'이라는 말입니다. 유교적 윤 리의 억압, 부모로부터의 억압, 여성에게 강제된 육아를 포함한 것들. 또한 자본주의로부터 비롯된 억압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요. 나의 행동을 알 게 모르게 통제하는 사회적인 시선 그 자체도 억 압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든 종류의 억압으 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운동이 1968년에 폭발 한 것이고 그 폭발의 지점이 파리였습니다. 파리 에서 시작된 68혁명의 불길은 베를린, 로마, 바르 셀로나, 마드리드 등 서구 세계를 휩쓸더니 당시 냉전체제하에서 '철의 장막'이라고 불리던 거대 한 이념의 장벽까지 뚫고 동유럽으로 번져갔습니 다. 왜 갑자기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 는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터져 나온 것일까요?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는 바로 베트남 전쟁입니다. 베트남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4년 경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도 시작되었는데, 이 반전운동이 확산될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요인은 다름 아닌 매체의 변화였습니다. 1965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TV가 보급됩니다. 그러자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쟁의 참 상을 TV를 통해서 눈으로 보기 시작했던 거지요.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이란 나라는 자유세계를 지 켜주는 수호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베트 남전쟁을 보도하는 뉴스를 보며 미국도 일개 제국 주의 국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을 보며 굉장히 깊은 도덕적인 분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결정적인 요인은 미국과 소련 간에 벌어 진 군비 경쟁입니다. 특히 핵무기 경쟁이 이 시기 에 이르면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이미 1965년 무렵에 인류를 수백 번 절멸할 정도의 핵무기를 비축해 놓고 있었는데도 더 우위를 점하겠다고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으니까요. 60년대 중반부터 '부조리'라는 말이 정말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부조리한 세상. 어떻게 이렇게 까지 터무니없을 수 있는가. 인간을 그렇게 무수 히 죽인 것도 모자라, 더 많은 인간을 죽일 수 있 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경 쟁을 벌이다니. 요컨대 베트남전쟁을 보며 도덕 적 충격을 느끼고, 미소 간의 핵무기 경쟁을 보며 부조리한 세계를 체험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 전체를 부정하고 기성 가치 전체를 회의하는 상 황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치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 작합니다. 결국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은 거대한 억압의 체제이고,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 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68혁명의 핵심 구호가 탄생하게 됩니다.
2022. 6. 28. 덧붙임 글. 살아가면서.. 비판적 사고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절실히 느낍니다. 68혁명은 .. 비판적 사고로 도달한 최선의 결론이 아니었을까도 싶습니다.
세계를 뒤엎은 68혁명 68혁명은 좁게 보면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발 생한 사건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일련의 변혁 운동 을 말하지만, 넓게 보면 6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나 70년대 초반까지 계속된 거대한 변혁의 흐름을 뜻하기도 합니다. 나라마다 조금씩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1968년 파리 시위를 기점으로 혁명의 열기는 전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은 구 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된 억압의 형태 는 나라마다 달랐습니다. 억압의 양상이 각 나라 의 상황에 따라 달랐던 것이지요. 1968년을 전후 한 시기에 미국은 반전(전쟁에 반대)이 가장 중요 한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흑인 운동 이 거세게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백인의 지배로 부터 흑인을 해방해야 한다는 운동이 미국에선 굉장히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됩니다. 블랙 팬서 (1965년 결성된 미국의 급진적 흑인 운동 단체) 도 그즈음에 생겼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이 벌어진 것도 1968년 이었습니다. 이 해에 흑백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았고, 흑인해방 운동이 상 당한 성과를 거뒀지요. 프랑스에선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68운동은 학생과 노동자의 연대, 즉 '노학 연대'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방향으로 전개됐습니다. 독일의 경우는 68세대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새로운 독일' 을 만들었습니다. 독일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던 나라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분배 구조가 매우 나빠졌습니다. 그런데 1969년 이후, 빌리 브란트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복지국가 체제 를 확충하게 됩니다. 독일은 1946년부터 없애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대학 등록금이 없습니다. 물론 그냥 없앤 것은 아닙니다. 당시 프랑크푸르 트 대학을 다니던 칼 하인츠 코흐라는 학생이 위 헌 소송을 제기합니다.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는 독일 기본법 규정을 들어 헌법소원을 낸 것이지요. 우리나라에도 헌법 제 31조에 교육권 조항이 있 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처럼 잘 사는 나라 에서 이렇게 엄청난 액수의 대학 등록금은 이해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에겐 아직까지 그런 권리 의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학비에 이어 생활 비까지 주어야 한다고 주장을 펼친 이가 빌리 브 란트입니다. 1969년 선거에서 그거 내세웠던 것 은 바로 '교육 사회'입니다. '교양 사회'라고도 옮 길 수 있습니다. 모든 독일인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 교양인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이지요. 그러려면 고등교육을 확충해야 하고, 나 아가 누구나 부담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생 활비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면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교육을 방임하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학의 87%가 사립대학이고, 중·고등학교 역시 사립학교가 많습니다. 물론 한국의 이런 기형적인 교육 체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데, 우리 현대 사의 비극 때문이지요. 식민 지배에서 갓 독립한 국가로서 대한민국은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 출발 했고, 나라가 가난하다 보니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역의 유지들이 교육 사업을 떠맡게 되었고, 정부는 이들에게 토 지개혁 과정 등에서 많은 혜택을 주었지요. 그래 서 해방 직후 사립학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났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일 곱 번째로 '30-50 클럽'에 들어간 나라이고,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드는 나라입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가 교육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채 사립학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직무유기입니다. 독일은 전쟁 배상금 지불을 포함해서 그야말로 재정적으로 파산이 난 나라였습니다. 의지만 있으면 대학까지 무상교육 을 실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인 것입니다. (저자는 수많은 국가 중 한국은 68혁명 을 거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주목하며, 안타 까워 합니다. 저 역시 공감했습니다.) 아우슈비츠와 비판 교육 독일에서는 학교 역사 시간의 절반을 히틀러 시대 (나치 시대)에 할애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못했 고, 인류에게 이런 재앙을 몰고 왔다. 정말이지 다 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가 르치는 것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68세대가 빌리 브란트를 통해서 독일을 '과거청산의 나라' 로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이 오늘날 성공적인 과거청산을 이룬 나라로 인정받게 된것 은 무엇보다도 브란트 정부 시기부터 시작된 교육 개혁 덕분입니다. 70년대 독일 교육은 과거청산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테오도르 아도 르노 라는 사상가가 이를 '아우슈비츠 이후 교육' 이라는 말로 정식화했습니다. 독일 교육은 아우슈 비츠 '이후'의 교육으로서 '더 이상 아우슈비츠가 반복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표를 가진 교육이어 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목표 아래 독일의 교육개혁은 진행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이후 교육'으로서 독일 교육의 독특한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비판 교육'입니다. 정말 특 이한 교육이지요. 세계에서 비판 교육을 교육의 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 밖에 없을 것 입니다. 어느 나라든 교육의 중점은 '적응'에 있 는 법입니다. 기존의 질서와 규범을 익혀 잘 적응 하도록 하는 것, 보통 '사회화'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교육의 목표이지요. 그러나 독일 교육 에선 '적응' 보다 '비판'을 더 중시합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기르는 것,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이 독일 의 비판 교육입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청소년 들이 굉장히 비판 의식이 강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내 말을 믿지 말고, 왜 그 말을 하는 지 그 배후를 의심해.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성숙 한 민주시민이야." 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비판 의식이 한국 교육에는 매우 결여되어 있습니다. 또한 독일의 개그, 코미디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 이 권력 비판입니다. TV 코미디의 대부분은 정치 비판 내용입니다. 주요 소재는 트럼프와 김정은, 가끔 메르켈도 등장합니다. 권력자들의 터무니없 는 행태들이 개그,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이죠. 권력의 이중성과 기만성을 고도의 지적 통찰로 폭 로하는 것, 그것이 개그의 정수인 것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권력을 비판하는 개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비판 교육에선 사지 선다. 오지선다 하는 '선다형' 문제는 전혀 없고, 단순한 지식을 묻은 '단답형' 문제도 거의 없습니 다. 이런 식의 평가 방식 자체가 반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선다형 문제는 모르고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이라기보다는 '사기'에 가깝다고 봅니다. 단순 주관식도 마찬가지입니 다. 그것은 주입식 교육에 상응하는 평가 방식이 고, 주입식 교육은 파시스트(*전체주의자) 교육 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일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자기 생각을 글로 쓰는 교육 을 받습니다. 정답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지요. 글을 쓴 작가가 어떤 시대, 어떤 환경, 어떤 의도로 그런 작품을 썼는지 텍스트를 둘러싼 '콘 텍스트' 즉 맥락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 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이에 대해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표명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한국 정치인들은 '경쟁력' 만을 강조하지만, 독일 정치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적 정의'를 중시 하고, 사회적 정의를 이루기 위해 경쟁 합니다.
2022. 6. 30. 덧붙임 글. 오늘은.. 지난 번 내용만으로는 많이 부족했었던 '68혁명' 을 추가로 다뤄보겠습니다. 저는 사실 '세계를 뒤엎었다'라고 까지 평가받는 68혁명을 김 누리 교수님을 매체로 접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하긴.. 4.19 , 5. 18 , 6.10 역시 의도적으로 나중에 찾아보며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요. 나중에라도 관심 갖고 찾아보며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는 결코 과거를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역사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역사가 담고 있는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됩니다. (아직 수준은 낮지만요..ㅎㅎ;;) 그러다 보면.. 이상한 점들을 많이 발견합니다. '이상하다'라는 말이 적당할 것 같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왜 저런 과정을 겪었는데 지금은 이 모양이지?" 그런데 이 '상식' 이란 단어가 중요한 단서 같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온 상식의 사전적인 정의는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일반인'은 무슨 기준을 따를까요? 사실 저에게는.. 추상적인 개념 쯤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했던 "왜 저런 과정을 겪었는데 지금은 이 모양이지?" 라는 생각은.. 매우 당연해질 수 있게 됩니다. '정상적인 일반인'의 범위가 잘못 지정 되었다는 가정을 하면요...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느꼈던 저마다의 깨달음을 전하고자 노력한다고 저는 느낍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을겁니다. 그런데 비판의식을 얼만큼 가진 작가인지에 따라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울림이 얼만큼 다른지를 체감하곤 합니다. 해당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가와 같은 지식인들이 적지 않게 소리를 내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한국에만 68혁명이 없었던 이유 ('서울의 봄'이 오지 않은 이유) 한국은 전 세계가 반대하는 베트남전쟁에 지상병 을 파병한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대만이 매우 적은 병사를 파병) 다른 여러 나라들이 미국의 압 력하에 베트남전쟁에 참여했지만 모두 지상병이 아닌 소수의 비전투병을 파병했을 뿐입니다. 한국은 1964년부터 1968년까지 5년 동안 32만 명의 지상군을 파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 을 잡았습니다. 당시 미국에선 박정희의 쿠데타를 공산주의 쿠데타로 의심했습니다. 박정희가 당시 군부 내에서 남조선노동당(남로당) 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미국의 정보기관 CIA에서는 박정희의 쿠데타를 경계 한 것입니다. 한국의 반공주의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하게 형성 된 결정적인 이유 역시 박정희의 영향입니다. 미국이 60년대 중반까지도 박정희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박정희는 자신의 '전향'을 증명하기 위해서 유례가 없는 극단적인 반공주의 를 펼쳤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베트 남 전쟁 초기에 백인과 베트남인이 싸우는 모습이 전 세계에 중계되는 상황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인종 간의 전쟁으로 보이니까요. 박정희는 이 일로 미국의 확실한 신임을 얻게 됩니다. 박정희는 전투 병을 파병하면서 자유세계를 지킨다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었 던 것입니다. 이 전쟁이 자유세계를 지키는 문제와 는 별로 상관 없었다는 것은 실제 자유세계의 나라 에서 파병을 하지 않은 사례들만 봐도 객관적으로 알 수 있죠. 심지어 당시 프랑스의, 독일 등 유럽의 저명한 신문들에서는 한국군을 대놓고 '미국 용병' 이라고 부르거나,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라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파병으로 인한 이득 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베트남전을 통해 상당한 양의 외화를 벌어들였고, 그것이 경제 발전 에 토대가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젊은이들의 피 로 돈을 벌어들인거지요. 이 무렵 베트남과 사이가 가까웠던 북한은 베트남으로부터 병력 지원 요청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안보문제로 거절을 하죠. 지속 적인 병력 지원을 거절하다가 병력 지원 대신 남한 의 안보를 위협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남 한에 김 신조를 포함한 정예부대를 박 정희 암살을 목적으로 보냅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할게요. 실미도와 관련 깊은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미도 부대가 김일성 암살이 목표였던 이유죠.) 더 중요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1968년 부터 한반도가 일종의 게릴라전 상태로 접어들며 박정희는 이를 명분으로 남한 사회를 본격적으로 '병영사회'로 재편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 처 음으로 한 일이 바로 주민등록증을 만든 것입니다. '간첩 색출'이 목적이었습니다. 전쟁 상황이기 때 문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식이었지요. 현재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영락없이 박정희와 만나게 됩니다. 지역감 정도 박정희가 만든 것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지역감정이 없었습니다. 박정희가 대선에서 상대 방 후보와 맞붙었을 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하여 1970년대 초부터 지역감정을 의도적으로 조장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박정희는 베트남 전쟁 파병을 통해 한국을 68혁명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예외 국가'로 만든 장본인일 뿐만 아니라,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한국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왜곡시킨 인물입니다. 그 밖에도 그는 강남 개발을 통해 정치 자금을 축적하여 한국을 '부동산 공화국'으로 만든 원조 투기꾼이자, 일본 군 장교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름으로써 한국을 '과거 청산이 없는 나라'로 만든 친일파이고, 민주 주의를 유린한 군사 쿠데타를 통해 30년간 지속된 군사 독재 시대의 문을 연 독재자였습니다. 박정희 가 한국 현대사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이처럼 막대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점에서 돌아볼 때 그가 남긴 최악의 유산은 바로 그가 68혁명이 추구한 사회와 정반대되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86세대'가 독일의 68세대 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화가 본격화 되기 시작한 시기가 86년, 당시 대학생들이 주축) 86세대는 쉽게 말하면 현재 정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정치 엘리트 그룹을 말합니다. 그들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이들이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는 군사독재 시대로, 전두환이라는 희대의 독재자가 그야말로 야만적인 폭력을 자행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들은 그런 폭력 정권에 용감하게 맞섰던 것입니다. 그 용기와 희생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정말로 이 땅의 민주주 의를 위해서 내 한 몸을 기꺼이 바치겠다는 의식을 젊은 세대가 폭넓게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렇지 않은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들까지 86세대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인권 감수성과 소비 감수성의 부재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겐 시대에 상당히 뒤떨어진 현상들이 참 많습니다. 첫 번째는 인권 감수성의 부재입니다. 한국 사회는 인권 감수성이 대단히 모자라는 사회입니다. 기본 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정말 부족합니다. 특히 난민이나 장애인, 문화적·성적 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현상은 소비주의 문화입니다. 한국처럼 소비주의가 이렇게 전면적으로 아무런 비판 없이 번창하는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미국이 우리와 비슷하지만, 거기엔 그래도 반소비주의 문화가 나름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피 문화의 유산 덕분이겠지요. 독일에선 소비 포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탈(脫)물질주의 문화는 이처럼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실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태 교육이 매우 중요시되기 때문에 환경 의식, 생태적 감수성이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불러일으킨 청소년의 '생태 반란'은 모두 이런 철저한 생태 교육을 바탕 으로 생겨난 것이지요. 반면 한국에서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끼는 청소년은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소비주의는 도 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온통 소비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비를 해야 일자리 가 생기고, 경제가 발전하고 잘사는 나라가 된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를 전일적으로 지배하고 있어요. 어디에서도 생태적 상상력, 환경 윤리 의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논리만이 전면 적으로 지배하는 참으로 놀라운 사회입니다. 성에 대한 죄책감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독일 아이들이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끼는 반면 한국 아이들은 대다수가 성(性)과 관련해서 죄책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을 나쁜 것, 비도덕적인 것으로 악마화하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은폐하기 때문이지요. 독일의 성교육은 우리의 이러한 성 교육과 전혀 다릅니다. 성의 영역도 68혁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죠. 68혁명은 일종 의 '성 혁명'이었으니까요. 독일은 성과 관련해서 죄책감을 갖는 아이들이 거의 없습니다. 독일에서 는 아주 이른 시기(초등학교 3학년)부터 성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교육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성과 관련해서 절대 윤리적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원칙입니다.
2022. 7. 4. 덧붙임 글. 김누리 교수님은.. 정말 급진적이라는 표현이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명 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부모님 세대에서는 박 정희 전 대통령을 꽤나 찬양하는 분위기입니다. (참고로 저는 30대 후반이요.) 어쨌거나 한국 사회의 경제가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물론.. 경제는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경제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공한 쿠테타도 분명한 쿠테타 라고요.. 어떤 정치성향을 받아들일지는 각자가 선택할 몫입니다. 다만..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자세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 독일의 교육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옳다면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교육은 자아를 강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약하게 만드는 교육이었죠. 늘 학생을 야단치고 벌주고, 결국 깊은 열등감을 갖게 하는 방식이었지요.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웠습니다. 다른 학생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창의 적인 생각을 드러내면 비판을 받거나 조롱을 당하 는 경우도 허다했지요. 한국의 아이들은 이런 학 교에 다니면서 모멸감과 자괴감, 열등감을 일상적 으로 느끼고 내면화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의 자아가 약한 것은 자아를 유린하고 파 괴하는 교육 때문입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한 민주주의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학교에서 강한 자아를 가진 아이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민주주의 의 문제가 자아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은, 성교육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적 본능을 다루는 방식이 자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프로이트에 따르면 '에고(자아)'는 '슈퍼에고(초 자아)'와 '리비도(성적 에너지)' 혹은 '이드(본능 적인 충동)'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즉,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을 의미하는 초자아와 본능과 충동 의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고 동요하는 불안한 존재 가 바로 자아입니다. 즉,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는 곧 성적 에너지가 발현되는 시기입니다. 바로 이 때 인간은 처음으로 성적 에너지와 초자아 사이에 서 분열된 자아를 체험하게 되지요. 성적 에너지 는 자연적인 현상이므로, 인간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런 생물학적 충동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헌데 성에 대해 억압적인 사회 일수록 초자아가 성적 에너지를 윤리적으로 공격 하고, 이른바 '악마화'합니다. 성적 본능을 사회 적으로 억압하고, 윤리적으로 나쁜 것으로 치부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지요. 이러한 성적 본능은 나쁜 것이라고 공격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초자아가 성적 에너지를 공 격하면 할수록 성적 에너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 니라 자아가 점점 더 강한 죄의식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여기서 '죄의식'이라는 개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정치적 의미를 갖기 때문입 니다. 내 안에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을 악이라고 공격하면, 인간의 자아는 죄의식을 내면화할 수 밖에 없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일종의 '성 정치 학'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깊은 죄의식을 내면화 한 인간일수록 약한 자아를 갖게 되고, 약한 자아 를 가진 인간일수록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되 기 때문입니다. 즉 죄의식이라는 성적·심리적 문 제가 권위주의라는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지요. 이를 요약하면 인간의 성을 억압하면할수 록, 그 개인은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이라 고 합니다. 이른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학자들, 특히 테오도르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허버트 마 르쿠제 등의 이론이 바로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 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에 따르면 성교육은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강한 자아를 가진 개 인을 전제로 하는데, 그런 개인은 권위주의적 성 격을 극복한 개인이어야 하고, 그런 개인은 바로 올바른 자아 교육, 즉 성교육을 통해서 길러지기 때문이지요. 본래 교육, 즉 '에듀케이트(educate)'라는 말은 '밖으로(e-) 끌어낸다(duc)'는 뜻입니다. 고유한 재능은 사람 안에 이미 다 들어 있고, 그걸 끌어내 는 게 교육이지 '지식을 넣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는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국에 서 배운 교육은 사실 반교육(anti-education)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경쟁 교육을 하지 않는 것, 대학 입시를 폐지하는 것은 사실 비현실적인 구상 도, 이상적인 꿈도 아닙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에 서 그런 정신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입시 제도 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을 비롯해서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는 대학 입시가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아비투어라고 하는데 대학을 가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거의 대 부분 다 합격합니다. 아비투어에 붙은 학생은 모 두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권리를 갖습니다. 내 안의 노예 감독관(자기계발이 가진 속성) 지금 한국은 끔찍한 '자기착취' 사회입니다. 이걸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노예 감독관(주인)이 밖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착취를 했다면, 지금은 노예 감독관을 내 안에 심어놓고 스스로 알아서 착취하게 합니다. 그것이 자기 착 취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기착취가 가장 심한 나라입니다. 자기착취가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 으로 끝없이 자행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타인이 착취를 하는 경우에는 착취 당하는 자의 내면에 착취하는 자에 대한 저항 의식이 생기지만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는 경우에는 내면에 죄의식 이 생겨납니다. '내가 잘못해서 안되는구나' '내가 게을러서 실패하는 거지.' '내가 공부 안 해서 이 렇게 된 거야.' '내가 더 노력해야 해. 이렇게 끊임 없이 자기를 비난하고 착취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착취를 당하면서도 착취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입 니다. 우리 사회가 그 많은 자살과 자해의 지옥이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세 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살 사회'로 굳어진 건 바로 한국 사회가 '자기착취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사회적·심리학적 구조를 정확히 투시해야 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부단히 전가하는 지배자들의 기만적인 논리를 내 면화하고 신념화해서는 이 사회를 변혁할 수 없습 니다. 지금 한국인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 그러니까 행복감을 느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끊임없이 자기를 착취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착취의 결과로 생기는 온갖 불행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합니다. 정말 이상한 사회입니다. 개인을 억압하는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에 생긴 불 행의 책임을 개인에게 물으며, 다시 또 개인을 착 취 하도록 하는 이상한 사회인 것입니다. 우리 사 회가 이처럼 자기착취 사회가 된 것도 68혁명의 부재 때문입니다. 68혁명 당시 가장 유명한 구호 중 하나는 바로 '정치 투쟁의 최전선은 내 안에 있 다'라는 거였습니다. 만약 내 안의 사유, 감정, 감 수성, 욕망, 무의식이 나의 것이 아니라 나를 노예 로 만드는 자의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거기서 해 방될 수 있을까요? 내 안의 노예 감독관은 '물리 적 권위'에서 '윤리적 권위'로, 다시 '익명의 권위' 로 발전해 온 것입니다. 그 모두는 사실 나를 노예 로 부리는 지배자들이 나의 내면에 심어놓은 것이 고, 이것을 신념화하면서 나는 완벽한 노예로 길 들여지는 것이지요. 바로 여기에 '자기착취'라는 놀라운 전도 현상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68혁명의 부재와 관련하여 '소외'의 문제도 중요 한데, '소외'는 현대인을 이해하는 데 정말 중요한 개념입니다. 원래 소외의 의미는 '배제'라기 보단 '전복'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즉 흔히 '현대인의 소외'라고 말할 때는 현대인이 고립되고 배제된 삶을 산다는 의미보다는 현대인의 삶이 '뒤집어져 있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죠. 그래서 소외란 말이 중요합니다. 바로 우리의 삶이 뒤집어져 있으니까 요. 소외라는 개념은 원래 종교 분석에서 나왔습 니다. 루트비히포이어바흐는 소위 헤겔 좌파에 속 하는 사상가로서 종교를 일종의 '소외'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명제는 간명하고 분명합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다'라는 거지요. 기존의 지배적인 학설인 창 조설을 완전히 '전복'한 겁니다.
2022. 7. 6. 덧붙임 글. 자존감의 원래 뜻을 아시나요? 워낙 많이 쓰이니까 많이들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 번 더 짚으면서 시작해보겠습니다. 원래 단어는 자아존중감이고.. 줄여서 자존감이라고 부르는 단어입니다. 요즘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단어죠. 자아존중감의 일상적 활용으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뒤의 존중감은 떼고 '자아'만 놓고 본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이라고 국어사전에는 나와있습니다. 쉽게 풀자면 '내가 느끼는 나' 혹은 '내가 생각하는 나' 라고.. 저는 단순하게 이해합니다. 그러면.. '내가 느끼는 나' 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일단 태어났을테고, 성장했겠죠. 진화론에 가장 깊은 관심을 두다 보니 이쯤 되면 다시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결정적 차이는 '함께 보기' 능력이라고 알고 있어요. 인간에게 학습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준 놀라운 능력이죠. (함께 보며 가르치는 능력) 물론 얼마 전.. 책 《개는 천재다》 에서 다뤘듯이 개 역시도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학습 가능한 똑똑한 동물임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개가 인간을 넘을 수 없는 결정적인 차이는 문화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개의 경우 배움은 가능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오늘도 시간이 남는 탓에.. 멀리 돌아왔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자아' 에 대해 적으면서 이렇게나 멀리 돌아온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나' 또는 '내가 생각하는 나' 는.. 스스로 만드는 것보다 문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저의 삶을 돌아본다 해도..)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정치민주화와 경제 기적을 이루었다고 하는 한국 사회는 왜 '헬조선'이 되었을까요? 우리가 정치 민주화를 이룬 부분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우 리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잘사는 나라 가 된 지 오래입니다. 한국은 정치 민주화를 이룬 동시에 급속히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룬 보기 드문 나라입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같은 나라 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하자면, 한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큼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남한 인구 5천 2백만 명, 만약 북한까지 합치면 대략 7천8백만 명)이 정도 인구 규모를 가진 나 라는 유럽에 가면 굉장히 큰 나라라고도 할 수 있 습니다. (유럽의 가장 나라는 독일이고 인구는 대략 8천4백만 명) 그러니 인구만 놓고 보자면.. 한국은 상당히 큰 나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는 스스로 작은 나라라고 여깁니다. 그 이유는 우 리가 작은 게 아니라 우리 주변 나라들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먼저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군사 적으로나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경 제적으로 최강국에 들어가는 나라고요. 중국은 세 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습니다. 러시아 역시 어마 어마하게 큰 나라입니다. 국토 면적이 가장 큰 나 라지요. 그 4대국 사이에 절묘하게 우리나라가 있 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렇게 힘이 센 국가들 사이 에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자리 잡은 나라인 것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에게 커다란 시련의 조건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 습니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한다면 이것을 활용 할 수도 있을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또 다른 측면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나라는 벌써 15년 째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살은 사회적 문제이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너무 안이하게 대 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보건복지부가 발 표한 내용은 유명인들의 자살이 늘어서, 이에 따 른 모방 자살 증가로 그렇게 되었다는 식이었습 니다. 그리고 KBS 뉴스에서는 자살 충동을 극복 하는 방법으로 운동을 권유하는 보도를 내보내면 서 영상으로는 헬스장을 보여줬습니다. 이것은 너 무나도 안이한 태도이자,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살 수 없다면 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 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절망감입니다. 미 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는 특히 노인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통계에 따라서 는 세계 평균의 10배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노인 들은 이제 자연사를 눈 앞에 둔 분들입니다. 자기 의 삶을 의미 있게 정리하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 해야 할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너 무도 끔찍한 일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일상화되어 버린 노인자살의 첫번째 원인은 바로 노인 빈곤 입니다. 이건 분명한 사회 문제인 것입니다. 노인 자살뿐만 아니라 청년 자살 비율 역시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지표를 보면 우리의 청년 자살률은 세계 평균의 서너 배입니다. 10대에서 30대 사이 한국 청년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청년 자살 률의 원인은 바로 살인적인 경쟁 때문입니다. 경쟁 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정신적 질환을 일으 키고, 이것이 청년 자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3명중 1명이 자살 충동에 시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가 살기 너무 힘든 사회, 너무 도 고통이 큰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대부분 의 자살은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어서,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서 뛰어내린 경우들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자살이 아닙니다. 이는 명백 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들을 받 아줄 사회적 그물망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세 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가장'이라는 말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지구상에는 불평등한 나라가 많습니다. '불평등' 하면 어느 나라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미국이 떠오를 수도 있고, 멕시코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예상되는 나라들이 많 지만, 여러 지표를 비교해 보면 한국이 얼마나 급 속하게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지표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자산 불평등은 우리나라 상위 1%가 전체 자산 중 약 2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위 10%가 66%를 가지고 있지요. 반면 하위 50%가 2% 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의 절반이 전체 자산의 2%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한국 에서 자산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이 부 동산인데이 부동산 불평등은 더 심각합니다.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경제학과의 이강국 교수 가 쓴 칼럼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위 1%가 가지 고 있는 부동산이 면적으로 따지면 전체의 55% 라고 합니다. 또 10%가 97.6%를 가지고 있죠. 나머지 90%가 2%정도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 는 셈입니다. 이런 수치를 보면 한국의 경제적 불 평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 인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불평 등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경제학자 정태인씨는 우리나라 순자산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토마 피케 티의 베타 지수를 제시하며 이렇게 불평등한 나라 는 '자본주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합니 다. 정말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태 가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의도가 수상하다 사회적 관계의 해체, 세습 자본주의, 학벌 계급사 회 등이 한국사회를 '지옥'처럼 만들었다고 했는 데, 이런 요인들은 왜 생겨난 것일까요? 이 지옥 의 발원지는 '여의도'입니다. 그곳의 국회의원들 이 이런 사회 질서를 만든 장본인들이지요. 입법 부에 속해 있는 300명가량의 국회의원들이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규칙들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300명가량의 국회의원 중에서 290명 정도는 자 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정당들 중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반대하는 정당은 정의당 정도입 니다. 다른 정당들은 모두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 거나, 최소한 반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에도 이런 극단적인 의회 구성은 찾아볼 수 없습 니다.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의원이 우리처럼 98%에 달하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죠. 심지어 자유시장경제의 낙원이라는 미국도 이렇 게 극단적이지는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유시 장경제가 정확히 무엇이고, 그것이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을 예로 들자면, 독일의 자유민주 당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정당입니다. 지난 독일 연방의회(2013~2017년)의 사례를 보면.. 베를린에 있는 연방의회에 631명의 의원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서 자유시장 경제를 지지하 는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자유민주당이 의회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했죠. 독일은 정당지지율이 5%를 넘어야 의회에 진출할 수 있 는데, 자유민주당이 4.8%를 얻는 데 그쳐 의회 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자유시장경제체제 : 공급자와 소비자가 시장에 서 만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하도 록 하는 형태의 경제체제를 뜻합니다. 즉 경제활 동에 있어서 국가가 크게 터치를 하지 않는거죠.)
2022. 7. 9. 덧붙임 글. 저는 법을 잘 모릅니다. 다만..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은 분명하게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만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다수가 더 잘살게 되었지만.. 그와 더불어 더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죠.. 많은 국민이 불행하다면 그 국가에도 분명 일정 부분의 책임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각자의 생각은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작은 미국, 대한민국 현재 한국은 미국의 복사판입니다. 한국 근대화 는 결국 서구화를 의미했고, 이때 서구화의 내용 은 미국화를 뜻했습니다. 서구화의 두 갈래 길 중 한국은 유럽화가 아닌 미국화를 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죠. 한국은 작은 미국입니다. 우선 한국의 거의 모든 제도는 미국식입니다. 엘리트 대학 시 스템과 과열된 입시 경쟁에서부터 엄청나게 비싼 학비와 과도한 사립대학체제까지 모두 미국 제도 와 관행을 그대로 따릅니다. 심지어 미국을 능가 하는 것도 많습니다. (사립대학의 비율이 87%, 대학의 학비는 1인당 소득 대비로 따져보면 미국 보다도 높으며, 살인적인 입시 경쟁도 마찬가지) 이런 특징들은 유럽 대학과는 무척 대비됩니다. 유럽의 대다수 나라에서는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 고, 대학 입학의 기회는 폭넓게 열려 있으며, 대부 분 국립대학이 고등교육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대학의 학비는 저렴하거나 무료입니다. 우리가 당 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미국식인 것 입니다. 유럽은 그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 고요. 정치 지형도 미국과 빼닮아 있습니다. 미국 은 보수양당제라고하는 아주 '예외적인' 정치 형 태를 가진 나라입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보수정당이고,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아주 특이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선 정권 교체가 되어도 사회적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국 정치사상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이라고 평가받은 버락 오바마가 시행했었던 '오바마케어'의 실패입니다. 미국에 서는 높은 의료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파도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치료도 받지 못 하고 죽거나, 치료를 받은 후 파산하는 일이 빈번 합니다. 오바마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가 오바마케어였지요. 허나 의료개혁에 반대해 온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 령이 되면서 오바마케어는 거의 누더기가 되었고, 그 본래의 정신도 사라졌습니다. 이같이 미국은 가장 진보적인 대통령조차 의료개혁 하나 제대로 성공시킬 수 없을 정도로 보수적인 사회입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보수양당제의 왜 곡된 변형인 수구보수 과두 지배체제로 되어 있 으니까요. 보수양당제에서는 어느 정당이 집권한 다 해도 본질적인 사회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 다. 그러니 경제적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 고용 불안, 사회적 차별 등의 문제는 풀리지 않고, 사회 복지 수준도 개선되기 어렵습니다. 정권이 바뀌어 도 사회가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의 정서가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좌절감과 절망감의 표현입니다. 미국 과 한국에서 나타나는 낮은 투표율은 정치의 위 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치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이성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장치가 마비된 사회에서 그 많은 사회적 좌절과 절망을 해소해 주는 것은 종교입니다. 미국의 경우 이런 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죠. 정치적 무능과 사회적 비참이 팽배한 현실에서 기독교가 국가를 통합하고 좌절을 위무하는 역할 을 하는 겁니다. 미국은 사실상 종교 국가에 가깝 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습 니다. 대통령이 선서를 할 때도 법전 위에다가 손 을 얹는 게 아니라 성서 위에 얹는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한 상징성을 갖습니다. 통치권은 법전이 아니라 성서에서 나온다는 뜻 이지요. 그 정도로 기독교는 미국을 움직이는 강 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에 서 기독교가 사회를 통합하는 힘이 없었다면 아 마도 그토록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내뿜는 원심 력을 버텨내지 못했을것입니다. 한국에서 기독교 가 엄청난 세력을 얻은 이유도 미국과 다르지 않 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절망과 좌절 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 에 생겨난 현상입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놀라 울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기독교 선교사상 유례 가 없는 '선교의 기적'을 이룬 것은 한국인이 지 닌'종교적 심성' 보다는 한국 사회에 각인된 왜곡 된 정치사회적 구조와 관련이 깊습니다. 이처럼 종교의 경우도 한국은 미국과 닮아 있습니다. 미국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미국화에 대해서 조희연 교수는 '과 잉 미국화'라는 개념으로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총체적 미국화'라는 개념을 씁 니다. 한국의 문제는 '많이' 미국화된 것에 있다 기보단 '전면적으로' 미국화된 것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앞서 제도의 미국화에 대해 몇 가지 사 례를 들었지만, 더 심각한 것은 '영혼의 미국화' 입니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미 국인에 가깝습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 감정, 감수성, 욕망, 심지어 무의식까지도 거의 미국인의 그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 은 미국인과 너무나 유사하고, 유럽인과 너무나 다릅니다. 한국인의 꿈은 미국인의 꿈과 같으며, 유럽인의 꿈과 다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영혼 의 미국화'라고 부릅니다. 한국이 미국화되었다는 것이 뭐가 문제냐, 미국이 야말로 선진국이고 그것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 즉 세계적 표준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과 정치가들 사이에서 미국은 대체로 사회적 지옥으로 여겨집 니다. 미국은 실로 세계적 차원에서 보자면 표준 적인 국가라기보다는 예외적인 국가입니다. 우리 가 알고 있는 수많은 '상식'들이 국제적인 표준에 비추어보면 맞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들은 대개 '미국식' 상식인거지요. 그래서 지금의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헬조선'이 됐느냐를 살펴볼 때, 우리가 미국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그리고 미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객관적 관점 을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평화가 시급하다 대한민국은 2019년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나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이른바 '30-50클럽'에 들어간 일곱 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 대단한 나라가 아직도 남의 나라에 군사작전권을 내맡기 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75년, 한국전쟁 발발 70 년을 맞는 지금까지도 근대국가의 기본 원리인 민 족자결과 국민주권마저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형 편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군사작전권을 맡겨놨다 고 하는 그 나라의 대통령은 수많은 정신의학자들 에 의해 '정신이상자'로 의심받던 사람이었죠. (트럼프..) 미국 상황도 기형적이기는 마찬가지입 니다. 극단적인 자유시장경제로 인해 세계에서 가 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고, 살아남기 위해 매일 무한 경쟁을 치러야 합니다. 여기선 연대도, 교감 도 이미 찾아볼 수 없습니다. 승자독식의 싸늘한 논리만이 존재합니다. 이건 사회가 아니라 정글입 니다. 한국은 약육강식의 정글 자본주의 사회고, 시장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 자본주의 사회가 되 었습니다. 이 기형적인 국가, 이 부조리한 사회를 만든 것은 남한과 북한의 냉전체제입니다. 그러므 로 이러한 기형적이고 부조리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냉전체제가 시급히 해소되어야합니다. 즉,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냉 전체제 극복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러한 기형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냉전체제와 그로 인한 분단체 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지금의 정전체제를 빠른 시일 안에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당장 통 일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적대하지 말아야 하 며, 교류도 활성화 해야 합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가운데 교류가 지속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입니다.
이제는 거울 앞에서 당당해집시다(에필로그) 1919년 타국에서 임시정부를 세운 이후 100년 이 지난 최근,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가 되었습 니다. 식민 지배와 분단, 냉전과 내전, 군사 독재 라는 참혹한 역사의 질곡을 거치고도 이런 반듯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데 우리는 충분히 자긍심을 가 질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 습니다. 우리는 보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절대로 경험해선 안 되는 것은 전쟁입니다. 한반도에서 영원히 전 쟁 가능성을 불식시키는 것, 한반도에 영구 평화 를 정착시키는 것-이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민주 주의가 얼마나 위대한지 더듬어 보았고,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여전히 아직도 멀 다는 사실도 짚어보았습니다.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자신이 민주주의자가 되지 않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결코 안정적으로 뿌리 내리지 못하리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민주 주의는 정치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삼권분립과 대의민 주주의를 신봉한다고 다 민주주의자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자는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강한 자아'를 가진 자입니다. 우리는 또한 한국 정치의 본질은 수구와 보수가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과두정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기울어진 운동장은 여당과 야당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 기존 과두 지배 세력과 미래 개혁세력의 사이에 있습니다. 지난 70년간 지배해 온 수구- 보수 과두지배체제를 타파하지 못하는 한 한국 사회의 질적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지금 '50년 지각한 68혁명'의 현실을 눈 으로 직접 보고 있습니다. 지극히 취약한 여성 인 권과 페미니즘, '가면 쓴 민주주의'의 현실, 사회 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의 부족, 성 해방 의식과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 반권위주의 교육 의 부재 등 그 사례는 다 손꼽기도 어렵습니다. 68혁명의 부재로 인해 한국은 현대사에서 유례 가 없는 부조리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소외, 자율, 탈물질주의, 반권위주의의 개념이 아직도 도착하 지 못한 사회, 페미니즘과 생태주의, 평화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빈약한 사회, 군사 문화가 생활 구 석구석에 배어 있는 병영사회가 된 것입니다. 68혁명은 세계 어디에서나 해방의 시작을 알렸지 만, 한국에서만은 억압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이제라도 이 뒤집힌 역사를 바로잡아 68혁명이 꿈꾸던 사회,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헬조선을 넘어 서야 합니다. 86세대의 실패는 이 세대의 비극을 넘어 우리 사회의 비극입니다. 지금이 86세대에 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재벌개혁, 정치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사법개 혁을 결연히 감행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후세대에게 '지옥'을 넘겨 주지 않는 것이야말로 86세대에게 남겨진 마지막 시대적 소명입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도 여러 시각에서 새롭게 성찰해 보고, 좋은 통일의 모습 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가능하면 통일 문제를 자신의 삶과 가까이 있는 문제로 인식해 주길 바랍니다. 분단으로 인해 '나' 의 성격 구조가 왜곡되고, 한국 사회가 기형화 되 고, 한국이라는 국가가 불구화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장 통일이 되지 않더 라도 분단체제만큼은 하루속히 해체해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민족 이성'의 관점에 서는 것입니다. 냉전의 광기에서 벗어나는 것, 강대국의 대리인 구실에서 탈피하는 것, 진영 논리보다 민족의 현실을 중시하는 것, 이것이 민 족 이성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제 냉 전의 광기에 눈먼 기나긴 적대의 시대를 마감하 고, 민족 이성에 눈뜬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함께 열어가야 합니다.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도 독자노선을 걸어 온 독일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브란 트 총리의 '동방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 에도 독일은 줄곧 자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슈 뢰더 총리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 '독일의 길'을 선언했고,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유럽의 길'을 선언 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분명하게 '한국의 길'을 선언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 동아시아 평화, 세계 평화로 이어지는 길이며, 인권과 정의, 인류애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현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한국인의 높은 정치 의식을 믿고 미국을 상대해야 합니다.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면서 당당하게 우리의 입장을 관철해야 합니다. 우리 가 독립변수로서 움직여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도 온전히 굴러갈 수 있습니다. 현 정부는 보다 담대하게 통일 문제에 임하고, 보다 용기 있게 미국을 상대해야 합니다.
2022. 7. 15. 덧붙임 글. 이 책을 처음 다루기로 결정했을 때.. 해당 내용들을 강의로 평소 꽤 오랜 시간을 들여가며 들어왔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텍스트가 주는 내용은 강연에서 주는 내용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물론 강연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디테일까지 느낄 수는 없었지만.. 내용의 디테일이 다름을 느꼈어요. 지금은.. 책을 읽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영상과 텍스트 중 한쪽이 더 좋다고 말할 마음은 없습니다. 각자의 장단점이 분명하니까요. 다름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김 누리 교수님 강의는 왜 그리 시간이 유독 긴지를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비판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평소에 해왔었지만.. 그동안 만족할만한 비판의식을 지녔다고 생각은 못했었거든요. 하지만.. 이 번 기회를 통해 조금은 비판의식이 성장했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처음.. 김 누리 교수님을 유튜브로 접했을 당시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저런 말을.. (민감한 내용들) 저정도의 수위로.. (빨간 맛으론 부족..) 논리정연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책은 다른 책들과 달리 조금 더 길게 다뤄봤습니다.
저는 가끔.. 김누리 교수님이 교육부 장관인 대한민국을 상상하곤 합니다. 이 분 정도는 되야.. 뒤집어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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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같이 읽고 싶은 이야기_텍스티의 네버엔딩 스토리
[책증정] 텍스티의 첫 코믹 추적 활극 『추리의 민족』 함께 읽어요🏍️[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박소해의 장르살롱] 11. 수상한 한의원 [책증정] SF미스터리 스릴러 대작! 『아카식』 해원 작가가 말아주는 SF의 꽃, 시간여행
🍷 애주가를 위한 큐레이션
[그믐밤] 30. 올해의 <술 맛 멋> 이야기해요. [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서강도서관 x 그믐] ④우리동네 초대석_김혼비 <아무튼, 술>
남들보다 한 발짝 먼저 읽기, 가제본 북클럽
[바람의아이들] "고독한 문장공유" 함께 고독하실 분을 찾습니다. 💀《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조지 오웰 [엽란을 날려라] 미리 읽기 모임[선착순 도서나눔] 중국 대표 작가 위화의 8년 만의 신작 《원청》! 출간 전 같이 읽어요
혼자 읽기 어려운 보르헤스, russist 님과 함께라면?
(9) [보르헤스 읽기]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1부 같이 읽어요(1) [보르헤스 읽기] 『불한당들의 세계사』 같이 읽어요(2)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같이 읽어요
일본 장르소설을 모았습니다
[박소해의 장르살롱] 21. 모든 예측은 무의미하다! <엘리펀트 헤드>[박소해의 장르살롱] 10. 7인 1역 [박소해의 장르살롱] 7. 가을비 이야기 [일본미스터리/클로즈드서클] 같이 읽어요!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어요.
스토리 탐험단의 첫 번째 여정 [이야기의 탄생][작법서 읽기] Story :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함께 읽기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함께 읽으실래요?
하금, 그믐, 지금
딱히 이번이라고 뭔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희망할 근거는 없었다.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어느 여성도 셰익스피어의 비범한 재능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겨울에는 러시아 문학이 제 맛
[문예세계문학선] #01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함께 읽기[그믐밤] 8. 도박사 1탄, 죄와 벌@수북강녕[브릭스 북클럽]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1, 2권 함께 읽기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내셔널 갤러리 VS 메트로폴리탄
[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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