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

D-29
안녕하세요? 내일부터 시작되는 보들레르 시집 <악의 꽃> 읽기. 첫 주. 분량은. 2/18-2/24일까지는. 첫 시 <독자에게>부터 15번째 시 <지옥의 동 쥐앙>까지 인데요, 하루에 2-3편씩. 꾸준히 읽으시면 될듯 싶습니다. 하루에 읽은 2-3편 중에서. 여러분께서 좋았던 시행, 시의 느낌, 궁금한 점을 자유롭게 올리시고 덧글도 서로 달아주셔요~ 물론. 자기소개도 편하게 해주시면 더 좋습니다^^
해당 챕터를 읽어도 쉽게 다가오지 않아서 필사를 했더니 그나마 시 안에서 오래 머물며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1 축복]' 권태로운 세상의 조롱거리'인 시인이 '바람과 놀고 구름과 이야기하는' 존재로서 천사들의 잔치에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내용이 좋았어요. 정작 신을 믿지도 천국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신과 천국이 있다면 죄 짓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시인 아닐까 , 그렇다면 천국은 시인이 놀러갈 수 있겠다고 평소 생각했거든요.
처음 나오는 시 몇 편을 읽고 난 소감은 '아직 잘 모르겠다'입니다. ^^ 시를 읽지 않던 독자가 곧바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마도 조급함 때문이 아닐까 싶어 꾸준히 읽어보는 것이라도 목표삼아 봅니다. 어쩌면 시인의 시대와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일까요. 막막한 느낌을 받습니다. 혹은 이렇게 떠돌다가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요 ^^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독자에게]라는 시와 [3.상승]에서 시인이 '권태'를 이야기하고 있는 정황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시나 혹은 시인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을까해서요.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악랄하고, 가장 더러운 놈이 하나 있다!"(19) 라고 하면서 '권태'를 지목하는 대목에서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3.상승]이란 제목의 시에서도 또다시 '권태'를 이야기하거든요. "안개 낀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권태와 망망한 근심 걱정에 등돌리고,"(29) 하는 대목에서 시인이 줄곧 이야기하는 이 '권태'란 어떤 것이었을까 혹은 무엇에 관한 '권태'일까가 궁금해졌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시 한편의 전체 그림 중에 일부라도 볼 수 있는 단서는 아닐까요.
@ICE9 시에 대한 느낌과 해석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 잘 모르겠다>가 정답입니다^^ 님께서는 벌써 시집 <악의 꽃>의 한 모티프, '권태'를 알아내셨습니다!^^ 그 권태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저의 의견을 즉시 제시하기 보다는 그 물음을 계속 견지하시는 것, 그것이 시 읽기,의 방법일듯 합니다. 참고로 보들레르는 프랑스 제2제정시대에 시집 <악의 꽃>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는 공화정 대혁명(1789년)-나폴레옹의 (황)제1제정시대(1804~1815)-1848년 2월 (공화정) 혁명-나폴레옹의 조카의 (황)제2제정시대(1852년 12월 2일-1870년 9월 4일).프랑스 혁명과 반혁명 시대. 그리고 세계 최초 백화점. 프랑스 백화점. 1852년 파리.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é) 개점. 본격적인 상품 자본주의 시대의 개막. 오스망 파리 시장의 도시 정비 사업. 지금의 개선문 중심으로 8각형의 대로, 상하수도 정비, 대규모 파리 도시 재개발 사업 전개를 배경으로 <악의 꽃>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혁명은 실패하고 상품 자본주의 시대의 번성. 그것이 보들레르의 <악의 꽃> 배경입니다. 2020년대 서울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제 읽다가 뭔가 계속 헛돌고 머릿속만 복잡해져서.. ㅎㅎ 그런데 두 분의 대화를 읽으니 눈앞이 조금 밝아진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국정 교과서 세대라 시를 읽고 정답으로 답해야한다는 잘못된 강박 탓에.. 오늘 밤 다시 한 번 잘 들여다보겠습니다.
답변을 읽고 용기가 좀 더 생깁니다. 예전에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란 책을 읽다가 덮은 적이 있는데요, 이 책에 언급되는 발자크 등의 작품들을 읽어본 것이 '하나도' 없다보니 이해가 안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런데 지금 말씀해주신 오스망의 파리 도시 정비 사업이나 8각형의 대로, 백화점으로 표현되는 상품 자본주의 시대의 분위기가 바로 이 책에서 언급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혁명의 실패'란 말씀에서도, 당대의 지식인들이 겪었을 법한 좌절과 허무함 같은 정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마치 반전 시위에 실패했던 미국의 히피들이나 전공투의 과정에서 패배감을 느꼈을 일본 청년들의 좌절감 혹은 방향 상실의 정서 같은 것처럼요. 자기 안의 작은 불씨 하나를 지키지 못하게 된 청년들은 반대로 급격하게 허무주의로 빠지기도 했을 테지요. 바로 이런 시대 한 가운데에 보들레르란 시인이 살았다는 상상을 해보며 다시 시읽기 도전해봅니다. 감사합니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자본이 만든 메트로폴리스 1830-1871현대의 고전 13권. 19세기 후반 파리라는 도시의 변화를 지리학자의 눈으로 관찰해 모더니티 성립의 정치경제학적 과정을 드러낸 책으로 건축, 도시학, 지리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문학 방면으로도 많은 영향을 미치며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아 왔다.
ICE9님, 안녕하세요? 저는 19세기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책을 구매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책인듯 하지만 제가 소화를 못하고 있었는데.... 반가워하시니 보람이 있네요^^
@ICE9 데이비드 하비의 책! 명저입니다! 저도 좋아하는 책입니다. 발자크와 위고가 혁명을 경험하고 지켜본 전기 낭만주의자(한국에서 1980년대 학번까지)라면 보들레르와 그 후예들(말라르메, 베를렌, 랭보)은(한국에서 1990년 학번 세대부터) 혁명의 실패와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임을 체감한 후기 낭만주의자(보들레르는 스스로를 낭만주의)였습니다. 후일. 상징주의로 명명되었습니다만. 그런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지금의 파리, 대도시 풍경은, 당시의 오스망 파리 시장이 모두 재개발사업을 통해 만든 것임을, 노동자들이 시외로 모두 쫓겨가고 바리케이트가 철거되었음을, 시집 <악의 꽃> 배경으로 읽으시면 좀더 이해가 되실듯 합니다.
우리의 80-90년대와 비교해주셔서 좀 더 실감나게 다가왔어요^^ 기회가 되면 하비의 책은 다시 도전해봐야 겠구요!
[6.등대]라는 시와 [8.돈에 팔리는 시신]에서 언급되는 '테 데움'이 볼드체로 되어 있는데요, 이 용어가 '찬가', '찬송가'라는 의미에서 사용된 듯 보이는데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여기서 데움deum으로 보이는 단어는 아마도 신, deus에서 온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각각의 시에서 이 '테 데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혹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인지 아직 연결짓지는 못하고 있네요.
오늘 읽은 시 중에서는 알쏭달쏭하긴 마찬가지이지만 눈길이 머무는 문장들을 꼽아본다면, [14.사람과 바다]의 문장이 있었습니다. "자유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바다를 사랑하리라!" (...) "그렇게도 너희들은 살육과 죽음을 사랑하는가." 라는 문장에서 좀더 머뭇거리며 읽었네요. 제국주의 프랑스의 역사 가운데 몇 가지 사건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노예제도 못지 않았던 프랑스의 노예제도(특히 아이티와 같은 곳에서)나 나폴레옹 전쟁이 바다 건너 세계에 미친 영향 같은 것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구요.
[2 상승] '꽃들과 말없는 것들의 말을 애쓰지 않고 알아듣는 자'야말로 시인이겠지요? 『회남자』 「원도훈」편에 정신의 작용에 대해 눈과 귀가 청명하고 밝은 의미는 빛과 소리에 유혹당하지 않음이라고 하더라구요. 보들레르가 빛과 소리에 유혹당하지 않는, 자연에 감응하는 영혼이었다는 느낌이 들면서 오래전에 밑줄 그었던 『회남자』의 문장이 떠올랐어요. '꽃들과 말없는 것들의 말을 애쓰지 않고 알아듣는 자'가 써 내려간 시집이 매우 귀하다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6 등대] 위대한 시인에게 호명 받는 화가들은 참 좋갰어요. 루벤스, 다빈치, 렘브란트, 미켈란젤로, 퓌제, 와토, 고야, 들라크루아. 퓌제를 처음 알게 되어 찾아보기도 했구요. 악의 꽃의 꽃잎을 한 장 한 장 펼치면 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더할 수 없이 신기합니다.
그것은 수천 성채 위에 불을 밝힌 하나의 등대, 깊은 숲에서 길 잃은 사냥꾼들이 외치는 하나의 부름!
악의 꽃 p.36,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악랄하고, 가장 더러운 놈이 하나 있다! 이렇다 할 몸짓도 없이 야단스러운 고함소리도 없이, 지구를 거뜬히 산산조각 박살내고, 하품 한 번에 온 세상을 삼킬지니, 그놈이 바로 권태! ㅡ 눈에는 본의 아닌 눈물 머금고, 물담뱃대 피워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알고 있지,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ㅡ 위선자 독자여, ㅡ 내 동류, ㅡ 내 형제여!
악의 꽃 독자에게, 19쪽,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나는 압니다, 고뇌야말로 이 땅도 지옥도 물어뜯지 못할 단 하나의 고귀한 것이며, 내 신비로운 왕관을 엮으려면, 모든 시대와 온 누리가 울력해야 함을.
악의 꽃 축복, 27쪽,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생각이 종달새처럼, 하늘을 향해 아침마다 자유 비상을 하는 자, - 삶 위로 날며, 꽃들과 말없는 것들의 말을 애쓰지 않고 알아듣는 자 복 되도다!
악의 꽃 상승,30쪽,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왜냐하면, 주여,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존엄에 대해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증거이기에 시대에서 시대로 흘러내려 그대 영원의 기슭에 닿아 스러지는 것은 이 뜨거운 흐느낌이기에!
악의 꽃 등대, 36쪽,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지음, 황현산 옮김
두 세 번 집중해서 읽고 나서야 그 다음 읽을 때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아요. 우선 그런 와중에 표시해둔 부분 문장 수집했습니다. 생소한 단어들, 또 인물들 검색하는 재미도 있네요. 저는 이번주 읽은 부분 중에서 <3 상승>이 가장 좋았습니다. “못을 넘어, 골짜기를 넘어, 산을, 숲을, 구름을, 바다를 넘어, 태양을 지나, 에테르를 지나, 별박힌 천구의 경계를 지나” “삶 위로 날며, 꽃들과 말없는 것들의 말을 애쓰지 않고 알아 듣는 자” 를 상상하다가 어린왕자가 생각났어요. 생텍쥐 페리도 생각나고요. 실제 비행하며 삶을 조망했을 모습과 장미, 여우 등 말없는 것들의 말을 알아들었을 모습이 혼자 상상되더라구요. 보들레르도 그런 삶의 태도를 열망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런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썼을까요? <4 만물조응>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poiein님이 악의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만물조응에서도 그렇고, < 5 (포이보스가 조각상에게)> 마지막 연과, <7 병든 시신> 등 다양한 향들이 내뿜어져 나오고 확산되는 이미지들이 곳곳에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요. 소설과 다르게 시집은 읽어가다보면 시인이 나름의 이미지로 내 안에 자리잡게 되는데, 악의 꽃을 읽으면서도 역시 보들레르를 그려보게 됩니다(보들레르라는 이름만 알고 시는 처음 읽어봅니다). 지금까지 읽은 것에서 1861년 마흔의 보들레르는 부유하고 교육을 많이 받았으나 어떤 가정사가 있고 우울하지만 에너지가 있는 나르시스트? 같은 느낌이네요^^ 시인에 대한 자료나 글, 시대배경 같은 참고자료도 함께 읽는 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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