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엽란을 날려라] 미리 읽기 모임

D-29
책을 읽어갈수록 고든 콤스톡의 내면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넌더리를 내게 되고, 또 거기에서 저나 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놀라기도 합니다. 고든 콤스톡을 무작정 옹호하는 게 오웰의 의도가 아님은 분명하고요. 오웰이 그리는 이 인물은 분명 내면이 뒤틀려 있고 가까이 하기에 불쾌합니다. 재산, 외모, 장애, 출신 학교, 피부색, 성적 지향성, 고용 형태 등 사람들은 별의별 이유로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차별 대우합니다. 그리고 그런 차별을 오래 당한 사람은 성인군자가 아닌 한 마음이 조금씩 일그러져 갑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학대처럼 원인을 남들이 잘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요. 슬픈 일이지만 그렇게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피해의식이 주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이신가요? 가족이나 연인이 아니라 그저 직장 동료 정도나 지인 정도의 거리라면? 고든 콤스톡이 실제로 살아 있는 인물이고, 일 때문이든 학교 동창이어서든 가끔 만나야 하는 사이라면 어떤 관계를 꾸려가려 하십니까?
너무 공감이에요. 오웰이 그리는 인물에 대한 감정이 저와 비슷하신 것 같아요.. 피해의식이 가득한 인간의 모습이 불쾌하게 보일 때가 많은 것 같아요.
p403 엽란이라니! 그렇게 우울한 걸 우리집에 가져오겠다고? 그리고 어디 둘데도 없잖아. 여긴 안 돼. 침실은 더더욱 안 되고. 침실에 엽란이라니, 절대 안 되지! 이토록 로즈메리가 싫어하는데 고든은 고집을 피우며 엽란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엽란을 키우면 돈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소설에서 엽란이 수시로 보이는데요, 잘 살펴보면 중산층 혹은 중산층에 가까운 사람들이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참 아이러니한 게 강제된 규범이나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글로써 중산층에 진입하겠다는 나름의 포부가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저는 아직 언급하신 부분까지 읽지는 않았으나 발췌하신 문장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더 크게 드네요.
2022.9. 13. 화 (읽은 부분 121-140) p. 137. 부에 따르는 고약한 타락은 그를 비껴갔다. 아니 그것은 래블스턴의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그의 인생자체가 타락에서 달아나기 위한 투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연유로 래블스턴은 사회주의 성향의 인기없는 월간지를 편집하는 데 수입의 대부분과 많은 시간르 쏟아 부었다. p.138. 그리고 요즘 누가 시를 읽습니까? 차라리 벼룩한테 곡예를 가르치는 게 낫지요. p. 139. 내가 죽었기 때문에 시도 죽은 겁니다. 당신도 죽었어요. 우리 모두 죽었어요. 죽은 세상의 죽은 사람들이죠. *단상) 시를 읽기 좋은 시대는 언제 일까? 그시절이든 지금이든. 여전히 시를 읽기에 좋은 시절은 아닌 것 같은데...
예나 지금이나 시를 읽는 사람이 적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요즘 더 적지 않나 싶어요. 저만 해도 10대에는 시를 꽤 읽었고, 20대에는 최영미, 유하 이런 시인들의 시를 그래도 따라갔던 거 같은데 요즘은 통...
척 클로스터먼의 『하지만 우리가 틀렸다면』에서 읽은 이야기인데요, 1936년에 《콜로폰》이라는 잡지가 구독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고 합니다. ‘2000년 즈음에 1930년대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으리라 예상되는 작가는 누구일까?’를 물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1~10위까지 뽑힌 작가 10명 중 3명이 시인이었다고 합니다. 클로스터먼은 1930년대 문학 독자에게는 시의 위상이 이 정도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장르가 통째로 쇠퇴한다는 게 실감이 안 날 때마다 록 음악의 운명을 생각해봅니다. 제가 20대였던 1990년대에 ‘록은 죽었어’ 어쩌고 외치는 사람 많았거든요. 그런 제목의 노래도 있었고. 그런데 그때 록은 아주 펄펄 잘 살아 있었고, 지금은 정말로 죽었습니다. ‘문학의 죽음’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사사키 아타루가 아주 신랄한 비판을 가한 적이 있어요. 저는 아타루의 주장에 동의하는데, 그러면서도 저는 진짜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 문학이 록 음악 신세가 되는 날을 보게 되지 않을까 진지하게 걱정도 합니다.
문학 전체는 아니더라도, ‘제가 아는 문학’은 그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웹소설을 보면 제가 아는 문학은 아닌 거 같더라고요. 좋게 본 웹소설도 있지만...
인터넷 연재소설은 거의 읽지 않아서 확신 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으로 따지자면 한국 라이트노벨계의 쇠퇴와 웹소설의 흥행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르소설' 부분에만 한정하자면 웹소설에도 나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콤스톡이 작중에 있는 셜록 홈즈도 아닌 말로 코난 도일이 살아있을때에는 웹소설 비슷한 정도밖에 되지 않았겠나 감히 말해봅니다. 장르문학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지러라고요.
네, 저도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웹소설 시장이 라노베 독자들을 다 흡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거 무협 독자들도 그렇다고 보고요. 40~50대 남성 웹소설 독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다소 의아했는데, 옛 무협 독자들을 떠올리니 바로 이해가 가더라고요. 옛 할리퀸 장르, 여성향 성인소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BL물 독자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실제 이 ‘언더그라운드 문학’ 부문 과거 독자들의 총합에 비해 현재 웹소설 독자의 수가 훨씬 많은 건지는 궁금합니다. 무협지를 예로 들면 대본소는 출판사와 작가에게 큰 수익을 안기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인 플랫폼이었습니다. 지금 웹소설 산업의 대성공이 과금 구조에 있는 건지, 아니면 실제로 독자가 늘어났는지 궁금해요.
이런 논의를 할 때 ‘장르소설’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은데, 시장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용어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칸막이가 대강 이렇게 있는 것 같거든요. ⓐ 문단문학 ⓑ 종이책 기반의 SF, 미스터리 장르 ⓒ 웹소설
ⓐ와 ⓑ 사이의 거리보다 ⓑ와 ⓒ 사이의 거리가 훨씬 크고, 장벽도 높은 거 같습니다. 게다가 ⓐ와 ⓑ 사이의 칸막이는 거의 사라진 거 같고요. 그런데 ⓑ와 ⓒ를 묶어서 ‘장르소설’이라고 부르고 ⓐ와 대립하는 분야인 것처럼 말하는 게 온당할까, 그런 분석이 실용적일까, 그런 의문이 듭니다.
전건우 작가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건우 작가님은 ‘장르소설’을 ‘오버그라운드 장르소설’과 ‘언더그라운드 장르소설’로 구분하시더군요. 얼추 전자가 ⓑ, 후자가 ⓒ에 대응하는 개념입니다.
덧붙이자면 ⓑ의 작가와 독자들은 ⓐ를 상대로 인정투쟁을 격하게 벌입니다(특히 SF가 그렇습니다. 그런 때 ‘장르소설’이라는 용어를 쓰면 독자 수가 더 많지만 그런 인정투쟁에 관심이 덜한 판타지나 로맨스 분야를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의 작가와 독자들은 ⓐ의 인정에 별 관심도 없는 거 같아요.
획일화할 수는 없지만 SF와 같은 장르들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은유하는 경우도 있으니만큼 어느 정도 사회와의 대화를 전제하는 반면, 웹소설은 철저하게 빙의, 환생, 판타지 등등 일상에서 없을법하고 비현실적인 전제와 클리셰를 더 선호하는 것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일일연속극과 교육적인 방송과의 차이점이라고 할까요.
조지 오웰을 함께 읽은 적은 없었는데 꼭 참여해보고 싶네요 :)
안녕하세요. 이 읽기모임은 출간 전 사전읽기 이벤트를 통해 이미 선정된 분들이 가제본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취지로 개설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가제본 증정 이벤트는 끝났지만 다른 판본 등으로 참여하신다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현암사의 책은 11월에 출간 예정입니다.
172쪽, [꼭 그래야 한다면 간통을 저질러라, 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간통이라 부를 만한 품위는 갖추어라. 영혼의 벗이니 뭐니 하는 미국식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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