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엽란을 날려라] 미리 읽기 모임

D-29
로즈메리가 임신에 대한 우려를 얘기하자 임신 여부를 운에 맡긴다는 고든의 말은 참으로 무책임하게 들립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돈이 많다면 로즈메리가 임신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고, 임신에 대비하지 않은 고든으로 인해 성관계를 거부하자 오히려 로즈메리가 죄인인 양 위축되는 모습은 읽고있자니 불편합니다. 고든이 생각해봐야 할 것은 나이가 서른이 다 되가도록 물리적으로 이룬 것이 없는 것보다 자기중심적인 스스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지 오웰의 가장 밑면까지 보여주는 솔직한 내용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계속드네요. 이전에 읽으신 분들이 느끼시는 불편함까지도 포함한 모든 내용이 자전적요소처럼 느껴지기도 하구요.
119쪽, [그는 영화를 싫어해서 여유가 있을 때도 영화관에 잘 가지 않았다. 언젠가 문학의 자리를 꿰찰 예술에 뭐하러 힘을 실어주겠는가?]
실제로 오웰 본인의 생각이 이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반가워서 옮겨 적어봤습니다. 저도 극장을 잘 안 가고 영화도 드라마도 잘 안 보거든요. 영상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게 주된 이유기는 하지만, 작가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줄줄 꿰는 모습을 보면 패배감도 들고, 아니꼬운 마음도 조금 듭니다.
147쪽,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같은 겁니다. 그다지 즐겁진 않아요.] 『1984』의 저자가 쓴 자전적 소설 주인공이 『멋진 신세계』를 언급하는 장면이 재미있네요.
149쪽, [고든은 잔을 비우고 고분고분 래블스턴에게 넘겼다. 이젠 래블스턴에게 얻어 마셔도 괜찮았다. 첫 잔을 샀으니 체면치레는 했다.] 영국 사람들도 이런 체면은 따지는군요. 아니면 고든이 예민해서 그런 걸까요? 저는 후배들에게 술을 꽤 잘 사주는 편인데, 어떤 녀석 하나가 매번 고마워하는 기색 없이 얻어먹기만 하면서 비싼 메뉴만 주문하기에 그냥 손절해버렸습니다.
150쪽, [“나는 런던이 죽은 자들의 도시다, 우리 문명은 죽어가고 있다, 전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신만이 안다, 이런 소리나 떠들어대고 있어요. 한마디로, 일주일에 2파운드 벌고 있는데 5파운드 벌었으면 좋겠다는 뜻이죠.”] 오웰 선생님, 야유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2
소설이 현대적이다 못해 어떤 면에서는 현대의 작가들보다 더 현대의 폐부를 찌르는 것 같습니다. 2022년에 “여자들이 말하는 아주 좋은 남자란 곧 돈이 많은 남자죠. 돈 없는 남자는 좋은 남자가 아닌 겁니다. 망신스러운 죄인이죠.”(156쪽) 같은 문장을 자기 소설에 태연하게 쓸 수 있는 작가는 흔하지는 않을 거예요.
167쪽, [그는 가난했고, 그래서 그들은 그를 모욕한 것이다. 가난하면 사람들에게 모욕당한다. 이것이 그의 신조였다. 흔들리지 말자!]
‘가난’ 대신에 넣어도 성립할 수 있는 다른 단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모욕을 당했다는 불쾌함, 혹은 모욕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높은 자존감? 깔끔한 복수? 그 심리가 인간에게 굉장히 중요한 행동의 동기이자 상처가 되고 어떤 경우에는 인격 전체를 잡아먹는데 해법을 잘 모르겠네요. 물론 저도 여러 가지 콤플렉스가 있고 피해의식을 지닌 사람입니다.
맞아요. 가난을 대신해서 성립하는 것들은 분명 있어요.. 하지만 그 대신한 것들이 가난하지 않으면 돈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168쪽 같은 경험 있으세요? 저는 분통 터지게 하는 단체 메일을 받고 거기에 반박하는 아주 날선 답장을 전체 답장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속은 시원하더라고요. 168쪽에서 고든의 대응은 많이 어리석은 것 같지만.
제가 아는 사람이 어느 회사 인사채용 담당자로 일했는데 면접에서 탈락한 응시자에게 ‘아쉽지만 낙방하셨습니다’라는 (전형적인 형식의) 메일을 발송했거든요. 응시자가 성깔 있는 분이었는지 그 메일에 답장을 보냈는데 딱 한 글자, ‘ㅗ’였습니다. 그런데 채용 담당자인 제 지인도 한 성깔 하는 분이어서, 자기가 아는 모든 채용 담당자 지인들에게 그 메일을 포워딩하며 “이 응시자 주의해라”라고 알렸어요. 문득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아마 그 부분이 도링씨에게서 편지가 온 부분이었죠? 비슷한 경험은 한 적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모임이 열린다고해서 여러번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커뮤니티에서 인기 있는 분들이나 재주가 많으신 분들이 주인공이 되고 나머지들은 그냥 병풍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씁쓸하게 차비하고 식비만 버리고 돌아온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인터넷이란 평등한 공간이지만 어떤 이들에게 더욱 평등한 공간이더라고요.
네, 도링 씨가 보낸 편지에 답장하는 대목 맞습니다. 그리고 씁쓸한 경험이셨겠습니다. 저는 세상을 좀 어둡게 보는 사람이라 어떤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함을 그냥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그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우울하게 받아들일 뿐입니다). 저는 그런 현실 앞에서 그게 아닌 척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슬로건을 계속 고집하는 위선이 더 싫습니다. 인터넷은 그런 구호가 아주 잘 퍼지는 공간이어서 제 눈에는 전반적으로 그로테스크해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구호를 퍼뜨리는 힘조차 평등하지 않은 것 같네요. 그러니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나오겠지요.
SNS에 가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러니까 ‘인플루언서’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을 시절인데, 유명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무명도 아닌 분들의 연락을 자주 받았어요. 언론에서는 ‘스몰 스타’라는 말을 썼고, 네티즌들은 ‘네임드’라는 용어 정도를 사용한 거 같습니다. 이런저런 메시지들 요약하자면 ‘너도 끼워줄게’ 하는 내용이었고요. 팔로워들 몰래 자기들끼리 DM 보내면서 끈끈하게 영향력 품앗이를 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어떤 오프라인 모임 같은 경우 네임드들끼리 모여서 사진 찍어서 올리고 보는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가 너무 삐딱하게 본 건지도 모르겠지만...
최근에 지인(이라 하기에도 뭣하고 그냥 아는 사람)과 손절하는 과정에서 너무 어이없는 말을 들어서 (유치하지만) sns상으로 저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지성인(?)으로서 의식의 끈을 놓지 않고 차단하는 것으로 마무리 한 적이 있어요ㅎㅎ 할 말을 다 못한게 분해서 며칠동안은 씩씩 거렸지만요🤣
이런 건 인정해드려야죠! a. 자신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하셨고 b. 쉽지 않지만 가장 효율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을 선택해서 실행하셨고 c.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충동을 발견하고 억누르셨으며 d. 교양인으로서 품격도 지키셨습니다. 정말 잘하셨어요. 통쾌한 마음은 얻지 못했지만 a~d의 반대 옵션들이 불러일으켰을 결과들을 생각해보면 최선의 행동을 하신 게 맞습니다. 제가 저 a~d 중 잘 실천 못하는 게 한두 개 있어서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왜 그런 일을 겪어야 하느냐, 왜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거지같은 인간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 누군가 제가 이유를 묻는다면 저는 그게 삶의 대가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으으.
169쪽, 아, 꿩이 이런가요... 저는 청둥오리들이 이 방면에서 아주 지독하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 얘기 들은 다음 청둥오리를 전처럼 정답게 바라보기 어렵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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