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2.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읽고 답해요

D-29
2-3.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다들 의도와 달리 남에게 쉽게 혹은 쉽지않지망 건넨 말이나 행동이 상대에게 상처로 받아들여지거나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말이죠. 반대로 내가 그런 선의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구요. 저는 시어머니께서 본인은 선한 의도로 하신 말씀에 결혼초 십년 가까이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거든요.
선한 의도의 대표적인 실패는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2년으로 정한 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로 인해 비정규직으로 여기저기 떠도는 고용불안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또 이를 해결하려고 무기계약직 제도를 도입했지만, 정규직과의 차별, 갈등이 사회문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차선의 선택"이 늘 좋은 결과가 아닌 "차악"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2-3. 어쩌면 세상을 채운 거의 대부분의 의미들이 선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시대나 통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요. 많은 분들이 언급하신 법, 제도, 정의 등등부터요. 그런 것들이 관용적이고 허용가능할 때는 선한 의도 그대로 혹은 그 이상의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통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나 지점이 있을 때, 그런 때가 나타날때, 그때, 의도와 다른 진행과 결과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충분히 기대할만한 융통성이 발휘되지 않고 반복해서 의도에 반하는 결과가 나타난다면 그때는 의도에 맞게끔 수정과 개정이 이루어져야 옳겠지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주 걸어오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길을 피해 주는 쪽이었다. 실험을 해 본 건 《비바, 제인》속 한 장면 때문이었다.    소설 속에서 루비는 웨딩플래너인 엄마 제인과 엄마의 고객 프래니와 함께 팔짱을 끼고 걷는 중이었다. 세 사람이 나란히 대형을 유지한 채 걷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비켜 주곤 했기 때문이다. 루비는 이렇게 말한다. "그거 알아요? 남자 90퍼센트가-사람의 90퍼센트인가? 기억이 안 난다-마주 걸어올 때 길을 비키지 않는데요. (....) 어쨌든, 난 언제나 사람들이 오면 길을 비키는데, 지금 보니 프래니와 엄마도 그러네요. 근데 궁금해요. 내가 안 비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프래니가 '어떻게 될지' 실험을 해 보기로 한다. 허리를 쭉 펴고 당당하게 걷기 시작한 지 채 1분도 안 되어 비즈니스 정장 차림의 남자가 프래니를 마주보며 걸어왔다. 남자가 코앞 30cm까지 다가온 순간 결국 길을 비킨 건 프래니 쪽이었다. 루비는 울상 짓는 프래니를 위로했다. 세상엔 "길을 비키는 사람이 몇 퍼센트는 있어야 할 거예요."* 길을 비키는 사람이 약한 건 아닐 거라고, 그저 다른 사람들이 무신경한 거라고 셋은 애써 서로를 위로한다.   소설 속 루비, 제인, 프래니 그리고 현실의 나는 왜 조심하거나 배려하는 사람이 됐을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건 우연일까.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조심하라'는 당부를 듣고 자랐다. 그 결과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다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됐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 때문일까" 먼저 자책했다. "좀 조심하지"라는 타인의 말에 담긴 염려를 모르지 않지만 그건 따져 보면 '내 잘못'이라는 소리였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사고는 생겼고, 살아갈수록 '살아남았다'는 감각만 자꾸 선명해졌다. 그저 운이 좋아서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삶에 쌓였다. 강화길의 소설 《다른 사람》을 읽다가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떠날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자애들이었다. 해도 되는 것보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더 많이 배운 여자애들. 된다는 말보다 안 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자란 여자애들** * 개브리얼 제빈, 《비바, 제인》, 엄일녀 옮김, 문학동네, 2018 **강화길, 《다른 사람》, 한겨레출판, 2017
슬픔의 방문 p.129~, 장일호 지음
슬픔의 방문굵직한 탐사보도와 깊이 있는 기사들로 ‘바이라인’을 각인시킨 <시사IN> 기자 장일호의 첫 책을 선보인다. 에세이 <슬픔의 방문>은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꿈꾸며 “슬픔”에게 건네는 온기 어린 마침표이다.
위에서 제가 여성으로서 일상에서 겪은 차별을 언급했는데요. 관련해서 <슬픔의 방문> 시사in 장일호 기자님의 책에서 메모해둔 부분도 공유합니다.
이 책? 요새 핫한가 봐요! 제 지인도 이 책 추천했는데 도리님 생각이 났어요 ^^
우와 제가 매우 사랑하는 책이고 그 책이 핫하다니 너무 기쁜데요! (근데 왜 제 주변엔 없는지 몰라요 크흑흑)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책과 책으로 연결되는 점이 저는 참 신기하고 좋더라고요. 더불어서 제 생각도 해주셨다니 영광이고요 흐흐.
화제로 지정된 대화
■■■■ 3. 한국 사회의 ‘주삿바늘’은 무엇인가 ■■■■ 2월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책도 어느덧 절반을 함께 읽었네요. 이번 장에서는 특히 성소수자들에 관해 알아봅니다.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갈 길이 멀지요. 저 클럽지기는 책에 나온 기프티콘 사례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또 한 가지 더, 저는 이 책의 제목도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고통’이라는 단어 뒤에 의례히 세트처럼 등장하는 것이 ‘공감’ 또는 ‘치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책은 익숙한 그 단어들 대신 ‘응답’과 ‘공부’를 얘기합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이 단순히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만은 아닐 거에요. 공부의 첫 번째 시작은 내가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아는지, 내 자리를 확인하는 데 있겠지요. 이 책은 그래서 우리들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냐고? 우리가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냐고, 이러한 고통을 사회가 외면했다는 것을 인정하느냐고.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의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라도 계속 질문하고 응답하면서 우리들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3-1. 어떻게 읽으셨나요? 인상 깊었던 지점 등을 적어주세요.
다수가 지정한 관념에 갇히는것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 그렇게 되어가는 것 주사기가 꽂힌 후 약이 퍼져서 마취되어가는 것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지요 나는 아니야! 라고 자신하다가 모르는 사이 갇히게 되지않도록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든 '소수'에 포함된다는 것은 힘든 상황입니다. 더욱이 포함됨을 널리 알린다는 것은 혼자 견디는 것에 상상할 수 없는 용기가 필요할테지요 어렵게 용기내어 목소리를 내었지만 그 용기만으로 감당하지 못할 결과로 몇배의 아픔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구요 그렇다보니 조용히 혼자서만 숨겨둔 채로 긴 세월을 지나왔으니 더더욱 '소수' 였을듯. 없는 존재가 아닌, 있지만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 어긋난사회적 의지에 분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좀더 잘 듣기위해 귀를 쫑긋 해야겠다는 올바른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행동하는 지구인!
말풍선 버튼을 잘못 누른 상태에서 댓글을 남겼습니다. 삭제할 수 없어 이렇게 흔적 남기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짐하신 '행동하는 지구인!' 저도 곱씹으며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아주 놀라웠습니다. 장애에 대한 차별이 없다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장애라는 개념이 없다는 사실, 따라서 장애 관련 통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 시설’이라고 이름지워지는 시설이 없다는 것이죠. 장애는 특정인에게 고정적인 특징이 아니라 물리적인 또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라는거죠. 따라서 장애라는 별도의 이름없이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반드시 경제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되지만, 경제만으로는 준비되기 힘든 중요한 인식의 변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너무 인상 깊고 생각할 거리를 주어서 페이지를 빨리 넘기고 싶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을 정도에요 저는 에이즈 보균자가 아니라 PL (People living with HIV infection)이라고 부르는 게 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Diabetic patient가 아닌 Patient with Diabetes Schizophrenic patient가 아닌 Patient with Schizophrenia 이렇게 용어부터 수정해야 인식도 바뀐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질병 이상의 존재이고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간 역시 잘라낼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지요"
3-1 일단 3장을 읽고 두 군데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동성애 혐오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열 살 무렵의 아이라니요. 성소수자의 건강 불평등에 대한 연구 논문을 왜곡해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교수의 작태는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번 장에서 사회역학에 대해서 좀더 정확하게 인지하는 기회가 되었고, 현재 규정하는 장애인의 정의와 장애의 범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에이즈와 PL(HIV 감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비교적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저 스스로 여전히 머리와 가슴의 간극이 많이 벌어져있다는 것을 깨달았고요. 차별금지법이 차별을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니라, 한 사회의 불평등한 역사와 구조가 만든 권력 관계의 자장 위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보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하며, 평등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미류 활동가의 말과 '의지의 부재'를 성찰해야 한다는 작가의 글에 공감합니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시각에 한 번 놀라고 보스턴 공립 초등학교에서 보낸 메일과 열린 회의에서 두 번 놀랐습니다. 그 나라들의 인식과 태도를 보며 우리는 얼마나 뒤쳐져 있는건지... 또 나는 왜 그걸 놀랍게 바라보게 되는지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구체적인 피해를 알 수 없다는 ‘근거의 부재’가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재의 근거’일 수는 없다."라는 문장이 인상깊었습니다. 눈과 귀를 가리고 차별에 대해 알려고하지 않는 사회에 맞서 가장 필요한 것이 차별을 드러내는 공부(연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그리고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차별과 혐오에 대해 새로이 알아가는 것도 미약하나마 이런 공부의 일환이 아닐까요...
'장애'라는 개념이 유동적일 수도 있다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이든 질병을 겪어서이든 혹은 사고로 인해서든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르는 고정관념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누구나 장애인이 될수도 있는게 아니라 누구나 장애를 겪을수도 있다는 그 생각이 모든걸 달라지게 하네요
몰랐다기 보다 모른척했다는 것이 맞겠지요.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반성하게 되네요. 잘 꾸며지고 각색된 것에 익숙해져서 그 본래의 모습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고, 내 안에 갖고 있는 벽이랄까 분류랄까 그런게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찬찬히 곱씹으며 봤습니다. PL의 이야기야말로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앞선 1, 2장만큼이나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나란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는 존재였구나! 내가 보지 않으면 그들은 잊혀지겠구나!’를 매번 상기하며 주변을 둘러보게되네요.
3-1. 아직도 에이즈가 옆에만 있어도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옮기지는 않아도 같이 있기 싫다겠지만요. 그리고 도대체 언제쯤 동성애에 대한 생각들이 바뀔까요...ㅜ.ㅜ 그 분들이 사귀어 달라고 스토킹한 것도 아니잖아요. 심지어 그걸 또 정치에까지 이용하다니....저도 전근대적인 세뇌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여성끼리, 남성끼리 사랑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 조금씩 놀라지만, 뭘 잘못했다고 그 분들을 욕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반대파는 목소리 높여 반대하지만, 진보쪽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게 비열하다고 느끼면서도, 용기없는 자들의 전형적인 행동이라 할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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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앨리슨 벡델 - 펀 홈시무라 타카코 - 방랑소년 1저메이카 킨케이드 - 루시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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