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2.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읽고 답해요

D-29
세상은 복잡하고 사회 문제 해결에는 여러가지 고려사항이 필요하다는 말에 숨어서 손쉬운 양비론이나 보기에만 그럴듯한 중립을 지향해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의 질서에 도전하며 판에 균열을 만들어 낸 이들이 열어왔다."는 부분을 읽으며, 현재 만들어진 세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주변을 살피는 자세가 제게 부족하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네요.
2-1. 백화점 매장에서 직원들이 고객용 화장실을 못 쓴다는 것도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친구가 은행 직원이었는데, 은행 여직원들도 화장실을 제때 못 가서 방광염에 많이 걸리고 불임률, 유산율이 엄청 높다고 했습니다. 간호사가 직업이었던 지인’들’도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야 임신을 했고요. 예전에 요양원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선배가 "화장실부터 갔다 와."라고 해서 "저 지금 안 가고 싶은데요."라고 했더니 "화장실은 갈 수 있을 때 가는 거야."라고 했던 드라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 화장실까지 못 가면서 일해야 하는 건가요? ㅜ.ㅜ 원론적인 얘기는 워낙 많이 들었던지라, 이렇게 구체적인 예를 들어 논하는 책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근데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저도 이렇게 구체적인 예를 알 수 있어서 이 책이 참 좋았어요. 설명되지 않던 부당함들이 언어를 얻어서 실제로 '존재'하다는 걸 보여주니까요.
상아없는 코끼리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밀렵꾼이 누군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작게는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한 나부터라고... 그래서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삶의 가장 기본인 생리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는상황에 처해진 직업군의 사례가 충격이었습니다.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지 못했습니다. 화장실을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에 울컥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차별에 대한 저희 인식은 사막의 모래 알갱이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1 가장 인상적인 장은 '오줌권'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였습니다. 어떤 소설이었나 생각이 나지않지만 살기가 좋은지 아닌지는 자신이 원할 때 얼마나 자유롭게 배설을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오줌권'이라는 단어와 내용을 보니 많이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생리위생에 관한 여성노동자들의 불편함도 우리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리나, 배설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데 이 조차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과연 어떤 권리를 더 찾는다고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새로운 위협이 된 야간노동도 과거 로마제국 시대의 노예들이나 밤에 일하곤 했었는데 1879년 토마스 에디슨의 백열전구의 발명 후 야간노동이 아주 일상화되었다는 점도 슬퍼지더라구요. 오늘날은 야간 노동 뿐아니라 노동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자동화와 cctv 또는 AI에 의해 감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섬뜩해집니다. 예전 소작농들이 주인의 마름의 눈치를 보며 쉴 수 있었다면 오늘날은 감정없는 기계들에 의해 24시간 행동이 감시되는 것 같습니다.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의 행동패턴은 다양하게 분석되겠지요.
2-1. 성소수자에 대한 연구나, '생리대 미교체와 우울증' 같은 연구의 다양성과 확장성이 인상적이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차별이나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2.1 캐런 매싱과의 인터뷰가 가장 인상깊지 않았나 싶어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가정도 꾸리고, 직장도 다니는데, 매싱 교수와의 인터뷰가 여러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주더라구요.
오줌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고객과 같은 화장실을 쓰지 못하는 매장직원들의 고통을 읽다보니, 비서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비서는 여성의 직업으로 특징지워지고, 또 임원들의 온갖 개인적인 잡무까지도 신경써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고용유지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소리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어떤 통념이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당사자(여성)인 문제에 대해서도 그 문제를 인정받지 못하는데, 성적지향이나 장애 유무에 대한 이슈는 당사자도 아니라 더더욱 허무맹랑한 생각으로 치부되곤 해서 오히려 제가 이상한 건가 싶었는데요.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례들을 마주하면서 선명한 근거를 쥘 수 있다고 느껴서 좋았습니다. 주목 받지 못했고 언어화 되지 못한 타인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고, 제가 겪고 있는 인지하지 못한 고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만해도 PMS가 심해서 그 시기에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폭식을 하게 되는 등, 고통 받았으나 치료를 받거나 보조제를 먹는다는 생각도 못하고 여성이라면 이 정도는 당연한 고통이라며 참고 버텼는데요. 그 시기에 사람들한테 예민하다는 핀잔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일이 매달 불규칙적으로 반복해서 겪었네요. 생리대를 갈지 못하고 일을 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렸다던 일화들이 당연하게 나눴던 제 주변의 여성들과의 대화도 떠올랐고요. 또 여러 사람이 모인 공연장을 가면서 여자 화장실만 길게 줄이 있을 때 답답하곤 했는데, 이게 여성들이 느리다고 답답해 할 게 아니라 신체 구조 및 사회적인 옷 차림 등의 꾸밈으로 인한 남녀의 차이를 인지하고 그에 따라 차이를 두지 않는 구조는 생각을 아예 못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 화장실의 공간과 좌변기 수를 늘이면 된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고요.
2-1. 1장에서는 노동자와 장애인의 고통이 기억에 남았다면, 2장에서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습니다. 교수님의 다른 책들에서도 그랬는데,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 내용들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쓰시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 역시 글쓰시는 단계에서 많은 고민과 애를 쓰신 흔적이겠지요. 보건학, 사회과학 등에 대한 이해와 필요도 절감하게 되었고, 약자들의 싸움에 대해 연대의 마음으로 읽으려 노력하다보니 무심코 지나치거나, 그런 장면들이 있었을까? 감히 상상도 못하는 아픔들이 곳곳에 있구나 싶어 너무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보스턴 파인아트뮤지엄의 화장실 표지판은 그런면에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의외로 간단하고 명확하게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는 힌트 같았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2-2. 나누고 싶은 문장을 적어 주세요.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낳지 않는다. 세상은 복잡하나, 사회 문제 해결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푸는 대신, 큰 칼을 휘둘러 자르는 것은 칼을 휘두른 이를 영웅처럼 보이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영웅적 결정은 종종 상황을 악화시킨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161, 김승섭 지음
한 사회가 인간에 대한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면 살아남을수있었던 목숨이 계속 부당하게 죽어나가고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목격자인 우리는 게속 질문해야한다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은상아없는 코끼리는 누구인지 이부조리한 생존경쟁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밀렵꾼은 누구인지...
성폭력은 개개인의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비대칭적 권력관계와 폭력적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민주주의의 최전선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148, 김승섭 지음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대해 고용주에게 물어보면 그건 과학적인 연구가 되는데, 일하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면 정치적인 행위가 되는 식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153, 김승섭 지음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는 비극의 연쇄를 막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언적이고 성급한 대책 발표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정책으로 생겨날 영향력을 면밀히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난한 협의 과정이고, 그 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의지와 인내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162, 김승섭 지음
어떤 이들은 노동자들과 함께 연구하는 것을 두고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하지 않나.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대해 고용주에게 물어보면 그건 과학적인 연구가 되는데, 일하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면 정치적인 행위가 되는 식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153, 김승섭 지음
모든 고통이 동등하게 주목받지는 않는다. 2015년 해고 노동자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던 당시, 나는 해고 노동자의 아내가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했다.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었던 ‘와락’에서 아내분들을 만나 인사하면서도 그분들을 고통의 ‘당사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까지 같은 아파트에서 언니, 동생 하며 함께 다니던 이들이 남편의 ‘생존’ 여부가 갈리자 길에서 마주쳐도 눈맞춤을 피했던 것이다. 그 인간적 배신감이 때로는 남편의 정리해고 자체보다 더 아팠다. 남편들이 투쟁하는 동안 집안을 감정적*경제적으로 돌보는 것은 아내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정리해고와 그 이후 투쟁 과정에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돌보며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시댁에서는 “너라도 남편 마음 편안하게 해줘야 되지 않겠냐?”라며 격려 아닌 격려를 했고, 친한 친구들은 “그렇게 힘들면 남편과 이혼을 하든지 해라”라며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결국 이들은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상처는 안에서 곪아 터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들에게 “당신은 괜찮은가요?”라고 묻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111, 112, 김승섭 지음
오늘날 한국 사회의 ‘고롱고사’는 어디인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은 ‘상아 없는 코끼리’는 누구인지, 이 부조리한 생존경쟁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 밀렵꾼은 누구인지 말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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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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