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북클럽] 12.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읽고 답해요

D-29
장애인의 차별 경험을 측정하는 과정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전자제품 매장 접근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였다. 매장에서 일하는 대기업 직원분들은 친절했지만, 손가락으로 글자를 입력하면 음성이 재생되는 기계를 사용하는 뇌병변 장애인분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저 멀리서 바라보는 직원분들의 눈빛에서 '저분들이 가능하면 내게 오지 않았으면'하는 태도가 역력히 느껴졌다. 그 분위기가 동행한 비장애인 연구원에게는 숨이 막힐 만큼 답답했다. 그런데 현장 조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눌 때,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그 경험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당황하는 비장애인 연구원을 위로하며 "이 정도는 괜찮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며 알게 되었다. 일상에서 줄곧 그런 눈빛을 감당하며 살아야 했던, 그 모멸적 시선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상시적인 삶의 환경이었던 이들은 그것을 차별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20, 김승섭 지음
사회적 약자 집단의 차별 경험을 측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나 네팔 출신 이주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을 연구할 때였다. 연구자들은 차별 경험이나 우울 증상 같은 경험을 측정할 때, 문항의 타당성이 검증된 표준화된 설문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설문지를 이주 노동자들의 모국어로 정교하게 번역해서 제공한다 해도, 모든 설문 참여자 그 질문에 답하지는 못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본국에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 저숙련 노동자로 와서 일하는 이들은, 실은 가장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일하지만 부족한 문해력으로 인해 설문조사에 응하지 못했고, 이들의 차별 경험은 데이터가 될 수 없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20-21, 김승섭 지음
고용허가제 탓에 직장을 옮길 수 없던 이주 노동자들은 "너희들은 서로에게 안전하다"라고 말하며 함께 확진 통보를 받은 동료들을 모아 야간 노동을 시키는 사업주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선제적 코호트 격리라는 이름으로 아동양육시설의 아이들은 3개월 넘게 건물 앞 편의점에도 가지 못했고,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층간 이동조차 제한받았다. 감각이 예민해 종종 마스크를 찢곤 하던 자폐 아동들은 감염되거나 밀접접촉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혼자 방에서 지내는 일이 불가능한 자폐 아동을 돌보기 위해 부모는 함께 방에 들어가 지내야 했고,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부모들은 직장을 잃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집단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환자복을 입은 채 계속 일을 해야 했다.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상상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23, 김승섭 지음
휠체어를 사용하는 한 여성 장애인은 화장실에 가기가 두려워 식당에서 물을 최대한 마시지 않고 국물이 있는 음식은 피한다고 했다. 하지만 콩자반이나 멸치볶음 같은 짭조름한 반찬까지 피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나트륨 농도가 높은 짠 음식은 고혈압 발생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고혈압의 중요한 치료약 중 하나는 환자가 화장실에 가게 만드는 이뇨제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24, 김승섭 지음
언어장애를 함께 가진 뇌병변 장애인이 찾는 물건의 위치를 물어볼 때, 매장 직원은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직원은 '알아들은 척'을 하고 엉뚱한 답을 한다.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못 알아들은 게 민망하기도 하고 바쁘기도 할 테니까. 그런데 이 상황에서 뇌병변 장애인들은 종종 불편함을 넘어 모욕감을 느낀다. 그럴 때 다시 한번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25-26, 김승섭 지음
필요한 변화의 핵심은 노동이다. 모든 인간에게 그렇지만 특히 장애인에게 노동은 재정적 안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노동은 공동체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고 다른 사회적 활동으로 나아가기 위핸 교두보 역할을 한다. 지체장애인이 아침이면 직장에 출근해 일하고 저녁이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가 일상이 되는 사회에서 그들이 투표소와 극장과 병원에 가지 못할 리 없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28, 김승섭 지음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가장 큰 공포는 성인이 된 자녀가 살아갈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28, 김승섭 지음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았을 때 기업이 내는 고용부담금은 1990년 법이 제정될 당시 정한 최저임금의 60~100%에서 23년째 변하지 않고 있다. 이 금액은 장애인 노동의 가치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는 지를 반영한다. 많은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부담금을 내는 '합리적' 선택을 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29, 김승섭 지음
과학적 탐구란 무엇일까? 언젠가 한국의 트랜스젠더를 대표하는 인구 집단에 대한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다음 세대의 연구자들은 우리가 쓴 논문들의 대표성이 부족했다고 정확하게 비판할 것이고, 그때에는 2016년 연구비를 구할 수 없어 시민들의 돈을 모아 진행했던 347명 트랜스젠더가 참여한 우리의 연구는 과거의 유물처럼 서문에 인용될 것이다. 연구자로서 그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렇게 우리를 디딤돌 삼아 더 깊고 풍성한 연구가 세상에 나올 테니까. 과학이 절대적으로 옳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한 시대의 가용한 자원을 활용한 최선의 설명이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말하건데 우리의 연구는 과학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35-36, 김승섭 지음
인간의 자격을 박탈당한 이들은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쓴, 흑인이자 여성이며 동성애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오드리 로드가 "나는 당신이 두려워하는 얼굴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그 때문이겠지요. 꼭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명백히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폭력만이 어떤 얼굴을 인간의 범주에서 밀어내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적어도 그런 폭력은 어떤 몸을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지워버릴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모인 '합리적인' 사회만이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지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47, 김승섭 지음
한 사회가 표준이라고 여기던 몸은 항상 기득권의 것이었습니다.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던 기득권은 소수자의 몸을 두고 매번 인간의 자격을 따져 물었지요. 그렇게 백인은 흑인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 물었고, 남성은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아도 되는지 따졌고, 이성애자는 동성애자의 존재가 질병인지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질문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향해 던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나는 정상인가? 그렇다면 정상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48, 김승섭 지음
이처럼 더 자주 감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몸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54 ​, 김승섭 지음
내가 하는 일에서 작은 잘못이라도 찾아내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혈압, 우울증, 심장병을 비롯한 수많은 질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가장 크게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55, 김승섭 지음
기존 연구들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시간에 쫓기고, 피곤한 상태에서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 특히 암묵적 편견이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요인들을 두루 갖춘 한국 사회의 일터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소수자에 대한 암묵적 편견이 차별적 행동으로 드러나기 매우 쉬운 장소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57, 김승섭 지음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과 한국인은 인종차별 성향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검열과 긴장이 부족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58, 김승섭 지음
사건은 고착화된 시스템과 축적된 역사 위에서 발생합니다. 모든 변수가 통제된 실험실에서 일하는 사람의 눈으로 사건을 대하면, 우리는 사건을 탈맥락화·탈역사화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렇게 개별화된 사건은 실제로 그 사건을 만들어 낸 시스템과 분리되지요. 그런 관점으로는 문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효과적인 해결책이 만들어질 리도 없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59, 김승섭 지음
이 사건을 두고 교사의 노동권과 학생의 인권이 대립하는 것인 양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시각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문제가 교사와 학생의 충돌로 드러난다 할지라도,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스템입니다.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교사가 학생이나 학부모의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학교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그 원인이지요. 모든 교사가 선하지는 않고 모든 학생이 선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이 모인 공동체가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스템의 문제점을 상세히 따져보지 않고 교사 개인과 학생 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직관적이고 쉬운 일입니다. 그만큼 폭력적이고, 또 그만큼 문제 해결로부터 멀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62, 김승섭 지음
그런데 그렇게 분리와 격리를 통해 이룩한 평화가 온전한 평화일 수 있을까요. 자폐인들을 배제한 공동체에서는 '정상적인 몸'에서 벗어난 인간은 누구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63, 김승섭 지음
"한 인간이 이상을 좇아 떨쳐 일어날 때마다, 다른 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불의에 맞서 싸울 때마다, 희망의 작은 물결이 세상에 보내진다. 그렇게 쌓인 물결들은 억압과 차별이라는 가장 강력한 장벽조차 무너뜨리는 파도를 만들어 낸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67, 김승섭 지음
사람들은 보통 차별을 두고 특정한 경험이나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설문지를 이용한 연구로 차별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따로 떨어진 사건들이 아니라 연속적인 상태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소수자들은 차별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행위와 무관하게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하고 그 긴장은 삶을 지배한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p.72, 김승섭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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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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