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독서를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읽은 역사소설 중 진심으로 손꼽을 만한 작품이었어요. 읽는 동안 아내에게도 “『여우의 계절』 되게 재미있어” 하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한국사를 배경으로 이런 질감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줄 몰랐습니다. 그간 보거나 읽은 한국사 배경 픽션들이 거의 조선시대 한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구나, 그게 한국사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역사 현장이 아니라 굉장히 실감 나고 낯선 판타지 세계의 전쟁터를 다녀온 기분이네요.
심윤경 작가님의 『서라벌 사람들』도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판타지가 펼쳐져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작품은 『여우의 계절』보다 훨씬 평화롭고 몽환적이거든요. 저는 『여우의 계절』의 처절한 폭력성과 현실과 주술이 섞인 세상의 변경이라는 배경이 너무 좋습니다. 좋은 작품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라벌 사람들‘연제태후’, ‘준랑의 혼인’, ‘변신’, ‘혜성가’, ‘천관사’, 다섯 개의 개별 이야기가 모자이크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 떠들썩한 연애를 좋아하고, 별과 짐승으로 점을 치며, 춤과 섹스를 즐긴 서라벌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이성으로 본성을 억누르지 않았던 태초의 사회와 제도에 구속받기 전의 인간 원형의 모습이 깊이 있게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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