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르헤스 읽기] 『픽션들』 같이 읽어요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알모따심에로의 접근] 마지막 각주에 이르면 『알무타심에로의 접근』이 다양한 영미 소설과 페르시아의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았음이 드러납니다. '알모타심(Al-motásim)'이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도움을 구하는 자'라는 의미가 밝혀지고, 바하두르 알리의 소설 속 법대생이 찾고 있던 대상이 그 자신이었음이 암시됩니다. 이 자체는 천일야화에 나올 법한 교훈적인 서사입니다. 고향을 떠나 먼 여정을 떠나지만 결국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서 자기가 딛고 섰던 자리를 파서 보물을 발견하는 유의 이야기 말입니다. 이 자체는 그다지 놀랍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보르헤스의 허구적인 비평이 덧붙여지면서 이 단편이 형성되는 과정은 매우 놀랍습니다. 바로 이야기 안쪽의 자기 반영성이 이 단편을 구성하는 형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액자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 『알무타심에로의 접근』이라는 장편 소설에 대한 비평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알모따심에로의 접근」이라는 제목이 보입니다. 허구의 장편 소설을 다룸으로써 그 자신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내용과 형식이 아름답게 맞물려 있는 것을 보여주는 탁월한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짧은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확장되고 심오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보르헤스의 소설답게 묘한 느낌이 듭니다. 바하두르 알리의 소설을 평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야기는 '알무타심에로의 접근'이라는 소설이 판본을 거듭하며 변형되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찾는 대상이 자신'라는 것을 암시하는 '탐정소설'이라고 하네요. 갖은 모험을 통해 찾는 대상이 자신인 이야기. 찾음을 당하는 사람이 찾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신비주의 ... 법대생이 힌두인을 죽임으로서 순례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죽은 힌두인이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알모타심)이라는 느낌도 받게 되네요. 이 소설의 내용은 50번 각주에 나오는 시 '새들의 대화'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새들이 찾고 있던 것들이 자신들이고, 자신들이 각기 한 사람이면서 또한 모두라는 것. 인도인이 쓴 소설이 이 시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작중 화자인 평론가가 말합니다. 하지만 보르헤스 스스로 이 소설을 쓸 때 그 시에서 시작한 것 아닌가 싶네요. 새들의 대화(아타르) --> 알모타심에로의 접근(인도인) --> 알모따심에로의 접근(보르헤스)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야기. 죽은 영혼이 환생하여 미완성된 영혼을 구한다는 내용도 예전 책들(혹은 작가)이 이후 책들(이후 작가)에게 영향을 주거나 신비주의적으로는 환생시킨다는 은유로 읽혔습니다. 내용과 형식이 일치한다는 말씀 흥미로웠습니다. 역시 짧아도 밀도가 매우 높네요.
저는 이걸 읽으면서 앞의 단편과 함께 보르헤스란 사람이 굉장히 익살스럽고 재간을 부리는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다시 읽는다면 하하 호호 킄킄하며 읽을 준비를 할 것 같네요. 책을 구해 읽는 사람으로서 얻을 수 없는 책에 대한 괴로움과 고통, 그리고 딱히 구해도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신포도성 등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정말 큭큭거렸던건 초판본이 없지만 판본 두 개를 비교한 부록을 가져다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19장의 요약에서는 참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지 않으려는 꿀만 먹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어쩜 이렇게 얄미운데 재미있는 사람이 있는지. (그 사이 제임스 조이스에게도 꿀밤을 한 대 먹이고...)
화제로 지정된 대화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하루 늦었지만 올립니다! 20세기에 삐에르 메나르(피에르 메나르)는 17세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불완전한 발췌본과 같은 작품을 씁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삐에르 메나르의 작품이 매우 계획된 시대착오라는 점에서 독창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보르헤스는 일견 궤변에 가까운 전복적인 문학관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불완전한(미완성의) 발췌본이라고 할지라도 그 저자가 다르고 그것이 읽혀지는 시대가 다르다면 독해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이는 한 작품에 고정불변한 가치가 있고 시대를 아우르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과 배치됩니다. 그 가치와 의미라는 것도 한 작품이 읽혀지고 쓰여진 맥락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르헤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갑니다. 과거가 현재나 미래에 일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는 선형적인 문학관을 정반대로 뒤집어서, 현재가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늬앙스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메나르는 내게 『돈키호테』가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애국주의의 축배이며 문법적 오만함이고, 호화롭고 요란한 판본을 낼 기회일 뿐이다. 영광이란 것은 일종의 몰이해이며, 어쩌면 최악의 몰이해일지도 모른다.
픽션들 64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읽혀지는 시대가 다르다면 독해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이는 한 작품에 고정불변한 가치가 있고 시대를 아우르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과 배치됩니다. 그 가치와 의미라는 것도 한 작품이 읽혀지고 쓰여진 맥락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더 나아가 해석이나 이해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번역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쓰기의 문학 행위로써의 번역이 본 작품의 단어이면에 내포되는 감정이나 심리적 표현도 가능하다고 상상해 보면 번역도 좀 달라져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나 심리적 표현의 형용사나 부사의 사용에 많이 민감한 작가인 듯 해서요.
번역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현실에서는 그러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드는 작업인 반면, 제대로 한다고 해도 누가 알아주기나 할까 싶은 일이기도 하니까요. 학자들도 연구에 더 매진하느라 선뜻 나서지 않는 분위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 개인이 원서를 읽을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과 별개로 한국어로 된 좋은 번역서를 가지는 것은 학문적 토대로나 일반 독자들로서나 정말 중요한 일인데도 그에 대한 처우나 번역하는 환경이 좋지 못한 점은 늘 아쉽습니다. 번역가나 출판사의 선의나 희생에 가까운 노고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죠. 그래도 한국에도 아직까지 좋은 번역가분들이 많이 계시는 것 같아요. 감히 제가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황병하 선생님이나 송병선 선생님의 번역도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지적 활동은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하나의 철학 이론은 처음에는 세상을 그럴듯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것은 철학사의 한 장 - 만일 한 단락이나 하나의 고유 명사로 변하지 않는다면-으로만 남게 된다. 문학에서 이런 소멸 현상, 즉 적절성의 상실은 더욱 잘 알려져 있다. - p. 64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3.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아, 인간이 지닌 가능성이란 얼마나 무한한가! P.55 그가 쓰려고 했던 것은 [돈키호테] 그 자체였다. “나의 목표는 놀라움 그 자체야.“…”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증거-외부 세계, 하느님, 우연성, 보편적 형식들 같은-가 지향하는 최종점은 내가 공표한 소설보다 더 이전의 것도 아니고 더 일반적인 것도 아니냐,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철학자들은 자기 작업의 중간 단계들을 멋진 책으로 출판하는 반면에, 나는 그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정했다는 거지.“ 실제로 수 년에 걸친 그의 작업을 증명해 줄 초고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p.57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보르헤스는 초고를 남겼는지 궁금하네요.
나의 자상한 선구자는 우연과의 협력을 거부하지 않았어. 그는 타성적인 언어와 상상에 이끌려 약간 마구잡이로 그 불멸의 작품을 써 내려갔어….. 나의 이 고독한 놀이는 서로 정반대의 두 가지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 첫 번째 법칙은 내게 형식적이거나 심리적인 변수들을 시험해 보게 만들어 주고 있어. 두 번째 법칙은 원래 작품을 위해 그 변수들을 희생시키고,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런 희생을 합리화시켜 주지. .. 17세기 초에 [돈키호테]를 쓴다는 것은 일리가 있었고 반드시 필요했으며, 거의 숙명적인 작업이었지. 하지만, 20세기 초에는 그런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 P.60-61 세르반테스의 작품과 피에르 메나르의 작품은 글자상으로는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 그러나 피에르 메나르의 작품은 세르반테스의 작품보다 거의 무한할 정도로 풍요롭다.(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더 ‘모호’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모호성은 풍요로움이다.) p.63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대한 자신의 평론과 해석들.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상상의 돈키호테 다시 쓰기의 목적이나 형식을 메나르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보르헤스의 상상력 중심이 우연성이나 보편성 보다 우위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이런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정말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기려는 사람은 표절 논란에 휩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삐에르 메나르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돈키호테』의 발췌본을 쓰고도 그 독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대상이 다름 아닌 『돈키호테』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가 온전히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라는 이가 아랍어로 남긴 기록을 그저 자신이 스페인어로 번역한 결과가 『돈키호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이 또한 당시 기사도 소설의 클리셰적인 설정이라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발언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미 『돈키호테』 자체도 '원전'으로서 지위가 애매모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발췌본은 비교적 표절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보르헤스가 가상의 저자인 삐에르 메나르를 내세워서 일견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설득력있게 전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돈키호테』라는 작품의 특수한 '설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궤변과 논리적인 논변은 한끗 차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삐에르 메나르의 창조성이란 그 창조성이 받아들여지고 해석되는 현실의 맥락까지 포함합니다. 그래서 과거를 현재에 '다시 한번' 복권시키려는 기획은 단순히 과거의 모사인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반복, 즉 오래된 나사의 새로운 회전이 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보르헤스는 삐에르 메나르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많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가장 먼저 작품의 길이가 다르고, 나아가 쓰여진 시기가 다를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저자와 그 국적이 다릅니다. 독서는 책의 내용만큼이나 저자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읽는 일이기도 한데요, 현재의 우리에게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불리우는 지금 시대에서 남성과 여성의 글은 달리 읽힙니다.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작품은 작품 자체로만 읽혀져야 하며 좋은 작품은 누구에게나 좋은 작품'이라는 말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남성 주인공이 지나가는 여성 행인을 죽이는 묘사를 했다고 할 때, 작가의 성별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따라서 독자들은 그 독법이나 비판의 각도를 달리 하기도 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이 자체의 윤리와 옮고 그름에 관한 논쟁은 차치하고서라도 현장에서는 이런 독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는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인 시간관에 근거한 일방통행의 영향 관계가 뒤집히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 17세기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는 니체의 탄생을 예견하고 있지만, 20세기 삐에르 메나르가 쓴 『돈키호테』는 니체에게서 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삐에르 메나르가 제시하는 문학에서 영향관계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곧은 일직선 위에 순서대로 놓이지 않습니다. 과거-현재-미래는 삼각형을 이루면서 빙글빙글 순환하는 식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보르헤스는 「카프카와 그의 선구자들」이라는 짧은 산문에서 카프카가 과거의 어떤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지를 추측한 적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논의 역설, 중국 문학 선집에 실린 일각수 이야기 따위의 사례를 듭니다. 카프카에게서 키르케고르나 브라우닝의 영향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짜 보르헤스가 해당 산문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카프카의 작품으로 인해 앞서 열거한 작가들을 다시 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가 과거를 발굴하고 풍부하게 한 사례에 속합니다. 보르헤스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실제로 모든 작가는 그들의 선구자를 창조한다." 이 내용을 깊게 알고 싶은 분들은 피에르 바야르의 『예상표절』을 보시면 됩니다. 내일은 쉬겠습니다. 저는 놀다 오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또 다른 심문들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논픽션 전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4권은 1952년 발간된 <또 다른 심문들>을 1부로, 1975년에 발간된 <프롤로그 중의 프롤로그를 위한 몇 편의 프롤로그>를 2부로 구성해 담았다.
예상 표절 - 문학과 예술의 전통적 연대기를 전복하여 무한히 확장된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다<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으로 독서의 근간을 뒤흔든 피에르 바야르가 이번에는 문학과 예술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표절’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주장을 펼친다. 이 책에서 문제 삼는 표절은 과거의 것을 후대에서 도용하는 전통적인 표절이 아니라, 미래의 작품이나 아이디어를 앞선 세대에서 도용하는 이른바 ‘예상 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후대에 카프카가 글을 써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선대의 그 글들 속에서 카프카적 특징을 감지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아예 그런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이 카프카의 작품을 예언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우리는 카프카를 읽음으로써 브라우닝의 시를 좀 더 정제된 시각으로 읽을 수 있고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브라우닝은 오늘날 우리가 읽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시를 읽었을 것이다. 비평 용어에서 '선구자'라는 용어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용어이지만, 논쟁이나 경쟁이라는 의미가 함축된 용어에서 탈피하여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실제로 모든 작가는 그들의 선구자를 창조한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바꾸어가듯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념도 수정한다. 이런 상호 관계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복수성은 하등의 중요성도 갖지 못한다.
또 다른 심문들 185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정경원 외 옮김
또 다른 심문들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논픽션 전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4권은 1952년 발간된 <또 다른 심문들>을 1부로, 1975년에 발간된 <프롤로그 중의 프롤로그를 위한 몇 편의 프롤로그>를 2부로 구성해 담았다.
메나르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테크닉을 통해 그때까지 여전히 초보적이고 불완전했던 읽기라는 예술을 풍요하게 만들었다. 고의적인 시대 교란과, 잘못된 원저자 설정의 테크닉을 통해서 말이다. 이러한 무한적용과 테크닉은 우리로 하여금 마치 『오딧세이』가 『아에네이드』보다 후의 작품이고, 앙리 바슐리에 부인의 『켄타우로스의 정원』이 정말로 앙리 바슐리에 부인의 작품인 것처럼 여기도록 만든다. 이러한 테크닉은 가장 잔잔한 작품들조차 모험들로 가득 차도록 만든다. 『예수의 모방』이라는 책을 루이 페르디낭 셀린, 또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이러한 보잘것없는 정신적 낌새가 이룬 최대치의 혁신이 아닐까?
픽션들 88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저는 이 단편을 읽으면서는 계속 코딩과 프로그램 개발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조금 과장된 설명이긴 하지만 아주 크고 복잡한 코드로 이루어진 설계가 공개된 프로그램에서 좋은 코드 몇 몇 부분만을 따와 아주 간결하고 범용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한다면 그 제작자는 전자인가 후자인가 싶은 거죠. 심지어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바퀴를 다시 발명하지 마라'는 격언까지 존재합니다. 아주 잘 굴러가는 바퀴 외 많은 부품들이 여기 저기 있는데... 까지 생각한다면 표절과 가까워지니 되돌아와서... 다른 의미로는 장편을 멀리하고 단편을 제조하는 보르헤스의 마음이 더더욱 느껴지는 글이었는데, 원문은 어디가고 부분 발췌로만 유명한 문구들이 떠올랐습니다. 식당에 걸려있는 성경 문구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은 대부분 읽지 않았지만 모두들 상실을 경험할 때 떠올리곤 하는 다섯 단계, 당사자는 자아 실현을 해낸 사람을 두 사람, 가능성 있는 사람은 일곱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누구나 자아실현을 생각하게 하는 매슬로우 이론의 날렵한 축약 등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베토벤과 프로이트는 매슬로우가 생각하기에 결점은 있지만 연구에 인용할 수는 있는 정도로 구분!) 현대 인터넷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다시 축약해서 날렵하게 쓰기로 원작자 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면 더 '재미있게' 써서 원작자(소재 제공자?)는 존재하기나 하나 할 정도로 희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어 더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과거 현재 미래 서로 간의 틈입이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언제나 있었다는걸 고증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출발 비디오 여행]과 함께 .. 일단 읽은 내용은 여기까지고, 이번 주말에 나머지 진도를 따라가봐야겠습니다. 다행히(?) [픽션들]을 1부와 2부로 나눠 읽어주셔서 따라가 볼만 하네요.
개인적으로 지금처럼 코딩붐이 일기 전에 전공 과제로 잠깐 공부한 적이 있는데요, 제 적성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만 그 사고방식은 지금도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인문 쪽에서는 논문 하나를 읽으려고 해도 저작권이니 뭐니 하면서 정보의 접근이 굉장히 제한돼 있는 반면에, 개발자 쪽에서는 깃헙 같은 플래폼이 있는 게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쪽도 제한된 정보가 있기는 할테지만,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다 까놓고 같이 해보자'는 태도가 깔려 있는 것 같더라고요. 당장 출판 쪽은 번역만 해도 더 나은 번역을 시도하려고 해도 기존 판권이 소멸되지 않는 한 현실적이 제약이 많습니다. 책 쪽은 뭐든 느린 게 장점이자 단점 같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원형의 폐허들~] 1부에서 눈에 익은 소설 형식으로 된 작품은 「원형의 폐허들」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두 편입니다. 두 편 다 정말 흥미로운 작품인데 그중 첫번째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이 단편 역시 돌고 돌아 자기 자신을 깨닫는 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비교적 다른 작품에 비해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첫 문장부터 비범하다고 느꼈습니다. 첫 문장은 '아무도 보지 못한' 사람이 배에서 내렸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 소설의 화자만큼은 '그'라고 지칭하면서 '아무도 보지 못한 사람'을 쓰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홀로 쓰러진 나무는 어떤 소리를 내었을까?" 하는 오래된 질문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분명 지금도 어디선가 홀로 나무들이 쓰러지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어쩐 일인지 우리는 쓰러진 나무를 보지 않아도 그런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압니다. 이 앎은 무엇일까요? 이 소설의 화자도 마찬가지여서, 목격되지 않고 사라져서 우리의 감각으로 포착되지 않았을 테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한번쯤은 존재했을 현실을 지면 위에 재현하고(상상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세 판본을 비교해보겠습니다.
⟨누구나 똑같은 마음을 가졌던⟩ 그날 밤 아무도 그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무도 그의 대나무 배가 진흙 수렁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그 과묵한 사람이 ⟨남쪽⟩에서 왔고, 그의 고국이 강 위쪽의 거친 산기슭에 자리잡은 셀 수 없이 많은 마을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의 언어인 젠드는 그리스어에 오염되어 있지 않았고, 문둥병 또한 드물었다.
픽션들 90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그날 밤, 아무도 그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아무도 대나무로 만든 카누가 성스러운 진흙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며칠 지나자 그 말없는 사람이 ‘남부’에서 왔고 그의 조국이 강의 상류에 위치한 험준한 산기슭에 자리 잡은 무수히 많은 마을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고국은 젠드어가 그리스어에 오염되지 않았으며, 도덕적 부패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픽션들 67쪽,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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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금) 소리산책 떠나요~
[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극단 피악과 함께 합니다.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그믐연뮤클럽] 2. 흡혈의 원조 x 고딕 호러의 고전 "카르밀라"
🏆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작품 함께 읽어요.
[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1탄) 작별하지 않는다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 성북구 비문학 최종후보도서 4권을 소개합니다.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① 『당신의 작업복 이야기』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② 『공감의 반경』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③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④ 『탄소로운 식탁』
국내외 불문, 그믐에서 재미있게 읽은 SF 를 소개합니다!
(책 나눔) [핏북] 조 메노스키 작가의 공상과학판타지 소설 <해태>! 함께 읽기.[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책증정] SF미스터리 스릴러 대작! 『아카식』 해원 작가가 말아주는 SF의 꽃, 시간여행[박소해의 장르살롱] 5. 고통에 관하여
버지니아 울프의 세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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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6.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5. 여행의 미래4. 담배와 영화
'하루키'라는 장르
[함께 읽기] 하루키 덕후 안온지기와 해변의 카프카 읽고 잡담![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마주>[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에이츠발 독서모임 16회차: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멀고도 가까운 나라, 중국.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5. <중국필패>[한길사 - 김명호 - 중국인 이야기 읽기] 제 1권[서울국제작가축제X푸른숲] 위화 작가님의 <인생> 함께읽기 챌린지
🎨 책으로 그림 읽기!
[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6기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저주받은 미술관》을 함께 읽으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매달 만나는 달달한 로맨스, 🍰 달달북다
[북다] 《횡단보도에서 수호천사를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달달북다04)》[북다] 《러브 누아르(달달북다03)》 함께 읽어요! [북다]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달달북다02)》 함께 읽어요! [북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달달북다01)》 함께 읽어요! (7/26 라이브 채팅)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입소문과 독서모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책, 대체 어떻길래?
독하다 토요일과 두 사람의 인터내셔날 읽기 [진주문고 서점친구들] 문학 독서모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함께 읽기<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읽으며 생각을 나눠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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