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2. <경제학자의 시대>

D-29
비용 편익 분석은 경제학자의 판단을 정치인의 판단보다 상위에 올려놓으면서 민주주의를 변질시켰다.
경제학자의 시대 -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7장, 354쪽 ,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김진원 옮김
참, 5장에서는 『사람을 위한 경제학』에서 짧게 언급되었던 경제학자 이름이 나오는데 혹시 기억하셨나요? 조앤 로빈슨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기업 독점의 폐해를 경제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할 때,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경쟁자가 있었다고 나왔죠. 네, 5장에서 조지 스티글러가 기업 독점을 옹호하면서 강하게 비판했던 에드워드 체임벌린이죠(243쪽). 5장의 뒷 부분에는 2017년에 반독점법 시행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법학도 리나 칸이 등장합니다. @소피아 님 혹시 기억하셨나요? 2017년의 법학도 리나 칸은 현재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 되어 있어요. 칸은 1989년생입니다!
저는 사실 이 책 전체에서 반독점과 규제에 대한 내용에 가장 궁금증이 있어서, 리나 칸 뉴스도 뜨문뜨문 업데이트 하고 있어요. “미국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제퍼슨주의자들의 국가”라고만 생각하다가 불현듯 반독점 소송 뉴스가 나오는 걸 보면, 헉 연방 정부가 저런 규모의 규제도 가능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궁금해지거든요. 현재 바이든 정부의 방향도 그렇고, 빅테크 기업 규제 문제도 요즘 이슈고 해서, 5, 6, 7장까지 다 읽은 후에 좀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만 정리가 될 지는 미지수).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금요일(2월 16일)은 7장 '경제학이 계산한 생명의 가치'를 읽습니다. 주말에는 평소대로 뒤따라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쉬는 시간으로 하겠습니다. 어제도 언급했듯이 6장, 7장은 함께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7장에서는 경제학의 비용 편익 분석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를 따지게 된 것, 그렇게 인간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책정할지 놓고서 벌어지는 힘 겨루기와 꼭 지켜야 할 규제와의 관계 등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인간 목숨 값 얼마면 돼!'에 어떤 액수로 답하는 일이 각종 규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7장에서 살펴보세요. 7장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 토머스 셸링은 200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 킵 비스쿠시도 자주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오르는 경제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장맥주 @소피아 @시어러 조세 회피 말씀을 하시니까, 한 가지 일화가 생각나서 공유해요. 한창 취재하면서 다양한 분들 만날 때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대기업의 기자 출신 임원과 식사를 할 일이 있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얘기가 나왔죠. 저는 그 기업에 비판적이었는데. 그 분이 아주 진지하게 애플, 구글(알파벳), 페이스북(메타) 등과 국내 대기업 사이의 조세 부담율과 자국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율을 따져보라고 권하더라고요. :) 그러고 나서, 우연히 국내 연구자가 비슷한 비교 연구를 했던 사실을 언론에서 보기도 했어요. 다시 찾아보니, 아래 기사였던 것 같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92289.html
복잡한 문제인 거 같아요. 한국 대기업들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음으로 양으로 받은 수많은 혜택들도 있었고요. 그런가 하면 지금 한국 재벌 총수들 입장에서는 여론 안 좋아지면 교도소 문도 그만큼 가까워지는 거 같고요(외국 대기업 CEO들도 이 정도의 사법 리스크들을 지고 사는지 궁금합니다). 가끔은 한국이 여전히 국가자본주의 사회라는 생각을 합니다. 부산엑스포 유치하는 데에도 총수들이 따라다니고 유치 실패해서 부산 시민 위로하는 자리에도 따라다니고 하는 걸 보면서 헛웃음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몇 년 전에는 평양에 따라갔었죠.
컴퓨터 혁명의 신화나 실리콘밸리 창고에서 사상을 키운 자유지상주의의 신화에서는 대개 정부가 해낸 역할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여러 발상을 꽃 피울 수 있었던 건 반독점 규제 덕분이었다.
경제학자의 시대 -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p. 232-233 ch.5 우리가 믿는 기업 품 안에서,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김진원 옮김
19세기 미국인은 스스로를 자작농과 숙련공과 상공인의 나라 국민이라고 여겼다. 모두가 스스로를 자작농과 숙련공과 상공인의 나라 국민이라고 여겼다. 모두가 스스로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아니면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다. 허황한 공상이 아니었다. 경제적 자치권이라는 이 이상에는 흑인과 여성과 상당수 백인 남성을 배제했지만 미국 안에서, 특히 북동부와 중서부에서의 토지와 자본 소유권은 유럽에 비해 훨씬 광범위하고 고르게 배분되었다. 19세기 후반 철도와 여타 대기업이 부상하면서 미국인들 다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규모 그 자체가 문제였다. 거대 기업이 더 작은 경쟁자를 집어삼키고 공급업자를 쥐어짜고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웠기 때문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막대한 수익을 긁어 가고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떨쳐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독립이라는 꿈이 차츰 사라지는 듯했다. 미국은 불평등한 사회가 되어 갔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생산 제품의 3분의 2를 대기업에서 생산했으며 임금 노동자의 3분의 2가 대기업에서 일했다. 정치적 반발은 1890년에 셔면 독점금지법을 낳았다. 이는 미국의 첫 반독점법으로 시장 지배력의 남용을 법률로 금한 것이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존 셔먼 오하이오주 공화당 의원은 "우리가 왕을 정치권력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면 의식주에 필요한 일용품의 생산과 운송과 판매 위에 군림하는 왕도 인정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머지 않아 이 법은 미국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때 이른, 나아가 그릇된 시도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대로 쓰인 역사가 아니었다. 이 법은 경제적 효율성을 정치 아래에 두려는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소규모 자영업자의 자립권을 지키려는 의도였다. 아니 그보다는 민주 정부의 생존력을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경제학자의 시대 -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p. 233-234 ch.5,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김진원 옮김
경제학이 부상함에 따라 미국인의 삶에서 반독점법이 맡은 역할도 바뀌었다. 20세기 후반기 동안 경제학자는 연방 법원과 사법부가 반독점법의 본래 목적은 제쳐 놓고 대신에 가능한 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단 한 가지 목적에만 집중하도록 차츰 설득해 나갔다.
경제학자의 시대 -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p. 237 ch.5,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김진원 옮김
시장은 완전하게 경쟁하는 곳이 아니었지만 스티글러는 경제학자나 정책 입안자나 시장 대부분을 완전경쟁하는 곳으로 가정해야 보다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학자의 시대 -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p. 244 ch.5,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김진원 옮김
정부의 강제로 AT&T는 IBM에 길을 터주었고, 다시 정부의 강제로 IBM은 마이크로소프트에 길을 내주었다. 다시 정부의 강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에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연방 정부는 구글이 다른 누구에게 길을 내주도록 더 이상 강제하지 않는다.
경제학자의 시대 -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Pp. 275 ch.5,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김진원 옮김
@푸름 @롱기누스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6장에서 예를 들었던 항공 산업처럼 특정 산업의 규제 완화는 몇몇 기업과 그에 소속된 노동자가 누리던 독점적 지위를 흔들게 되고, 그렇게 경쟁에 노출된 기업은 노동자의 급여 삭감 같은 비용 절감을 모색하게 되겠죠. 해당 산업의 노동자의 급여는 낮아지게 되고요. 대체로 그런 상황에서 (특히 경영진 대우가 후한 미국의 특수성까지 감안하면) 경영진 급여는 안 낮아지거나 오히려 높아지면서 생기는 상황을 통계가 보여주죠.
@YG 님의 명료한 해석이 훨씬 이해가 잘 되네요.. 감사합니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져서 기업이 비용 절감을 모색할 때 경영진 임금이 줄지 않거나 높아지는 이유는 기업 내 임금 재조정 작업을 경영진이 하기 때문일까요? (즉 임금 재조정 작업을 경영진이 악용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장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더 유능한 경영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연이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까요? 혹은 1980~2017년 사이 미국의 경영진 평균 보수가 올라갔고 항공업계 경영진의 보수도 그 때문에 올라간 것이지 항공업계 규제 완화와는 별 관계가 없는 걸까요?
소비자후생 증대와 특정업계 종사자들의 지위 하락이 충돌할 때 논의의 기준이 되는 원칙 같은 게 있는지도 문득 궁금해집니다. 변호사 수가 늘어서 변호사의 수입이 낮아지는 대신 법률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접근이 쉬워지는 것, 수입 소고기 관세를 낮춰서 축산농가가 타격을 입는 대신 소고기 값이 낮아지는 것, 두 가지에 다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요? 그냥 국회 의석 수와 관계있는 문제일까요?
저도 댓글 달면서 잠시 고민을 했었는데요. 1980년대 이후에 미국 기업에서 노동자 평균 임금은 정체되는 반면 CEO를 포함한 경영자의 연봉이 올라가는 전반적인 경향이 있다는 연구는 다른 책에서도 여러 번 봤었어요. 그런 전체적인 경향이 특정 산업의 규제 완화와 맞물리면서 좀 더 극적으로 책에서 제시된 통계 결과로 나타난 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경영진 처지에서도 좀 더 유능한 경영 능력에 대한 보상은 높은 연봉을 요구할 아주 중요한 근거가 될 테고. 그들은 그 유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건비를 더욱더 가혹하게 삭감할 테고.
저는 이 대목에서 저자가 주장하려는 논지는 찬성하고 같은 문제의식을 품고 있는데, 승무원 평균 소득이 낮아졌다는 부분은 조금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승무원이 지상 승무원과 기내 승무원을 합한 개념인가, 기내 승무원만 가리키는 말이라면 조종 승무원도 포함하는 개념인가, 객실 승무원만 이야기하는 것인가, 항공업계의 총 고용은 늘었나 줄었나 등등. 1980년~2017년이면 기내 승무원 중 고소득 전문직이었던 항법사와 항공기관사가 GPS와 항공기기 자동화로 사라진 시기이기도 하거든요. 또 항공기가 대형화된 시기이기도 했는데 조종사 수 대비 객실 승무원의 수가 많아지면 전체 기내 승무원 평균 임금은 떨어질 테고요. 의사 수가 그대로인 상태로 간호사 수가 늘어나면 의사와 간호사 누구의 연봉도 줄지 않고 고용도 늘어났음에도 의료업계 종사자 평균 임금은 떨어지는 것처럼요.
@장맥주 말씀을 듣고 보니, 규제 완화로 항공 산업 규모가 커지고 총고용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을 가능성이 큰 서비스 종사 승무원의 비중이 늘어난 결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항공업계가 앞으로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이 산업계 전반에 도입되었을 때의 한 경향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참, 『권력과 진보』 서평 잘 읽었습니다. 9월에 함께 읽으실 걸 그랬어요. :)
오, 그럴듯한 분석입니다. 규제 완화→고용이 증가하기는 하되 상대적으로 저임금 노동에 대한 고용이 더 많이 증가→업계 평균 임금 하락. 실제로 미국 항공업계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경영진 보수가 과한 것 같지만요. AI 도입과 연관지어 생각해봐도 정말 의미심장하네요. 항법사, 항공관제사는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데 객실 승무원은 대체할 수 없고, 대형 호텔의 재무팀장은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는데 룸메이드는 남고... 덕분에 좋은 책 소개 받아 잘 읽었습니다. 저도 뒤늦게 "권력과 진보" 읽으면서 그믐에서 같이 읽었으면 좋았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가파도에 있어서 짐을 더 늘리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비공개 녹음 사료에서 알프레드 칸은) 저는 화물 운송 노동조합원이 더 궁색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자동차 산업 노동자가 더 가난해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몰인정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다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는 경쟁을 배제한 산업계에서 보호 받는 특정 노동자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자유 시장의 역할과 상관없이 평균보다 임금을 훨씬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상황을, 그리고 그렇게 임금을 올리면서 다른 노동자를 착취하는 상황을 일소하고 싶습니다
경제학자의 시대 -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308-309쪽, 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김진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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