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드경성]을 함께 읽어요.

D-29
쌓아놓은 책 처리하려고 한 달에 두 권씩 읽어갑니다.
살롱 드 경성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표지의 중앙을 장식한 그림 때문이다. 이쾌대의 자화상. 2014년 무렵이었던가, 이쾌대의 그림을 테마로 해서 짧은 소설을 적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세계문학상을 타기 전이라 여러모로 돈에 궁했다. 이때 마침, 칠곡 어쩌구 공모전이라는 걸 발견했다. 무려 1등 상금이 천만원이라니! 도저히 지나칠 수 없어서 도전했다. 칠곡 인물이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으면 된다는 이야기에 나름 잔머리를 잔뜩 굴려서 고른 게 이쾌대였다. 그렇게 이쾌대의 이야기로 적은 짧은 소설은 가작에 올랐다. 상금은 60만원이었던가. 당시엔 1등 못했다고 창피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즐거운 기억이다. 덕분에 칠곡도 다녀왔으니까.
나는 내 마음 깊이 존경하는 사람이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든, 돌아가신 분이든 매우 많아. 어쩌면 내 공부의 목적, 내 인생의 가치는 그런 존경할 만한 분들을 찾는 과정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P.4~5, 김인혜 지음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기도 힘든 삶 속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예술'에 사활을 걸었던 사람들이라니! 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책 없이 이런 일을 했던 걸까?
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P.5, 김인혜 지음
나는 예술가들이 특별히 위대한 존재라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박수근이나 문신처럼 초인적으로 의지력이 강했다든지, 나혜석이나 장욱진처럼 누구도 못 말리는 ‘깡’이 있었다든지, 김향안이나 박래현처럼 특히 지혜로웠다든지 하는 얘기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예술가들이 우리와 다른 대단히 초월적이고 완벽한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들은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내면적 결핍도 많은 존재이다. 세상의 시련을 더 섬세하게 느끼는 경우도 많다. 다만 예술가들의 대단한 점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시련 앞에서도 이들이 그것에 대응한 방식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기본과 본성에 충실하고자 했던 이들이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들여다보기 때문에,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가장 순수하게 간직한 채 이를 표현해 낼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지켜내지 못하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그 어떤 세속적 이해관계에도 굴복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들은 솔직하고 떳떳하게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존재들이다. -------------- 음청나게 공감되는 말이다.
책의 23페이지에 박태원이 이상을 주인공으로 적었다는 '단 한 문장으로 완성된' 단편소설 <방랑장 주인>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방란장 주인 芳蘭莊主人 - 박 태 원 朴 泰 遠 그야 주인의 직업이 직업이라 결코 팔리지 않는 유화(油畵) 나부랭이는 제법 넉넉하게 사면 벽에가 걸려 있어도, 소위 실내장식이라고는 오직 그뿐으로, 원래가 삼백 원 남짓한 돈을 가지고 시작한 장사라, 무어 찻집답게 꾸며 보려야 꾸며질 턱도 없이, 다탁과 의자와 그러한 다방에서의 필수품들가지도 전혀 소박한 것을 취지로, 축음기는 자작(子爵)이 기부한 포터블을 사용하기로 하는 등 모든 것이 그러하였으므로, 물론 그러한 간략한 장치로 무어 어떻게 한밑천 잡아 보겠다든지 하는 그러한 엉뚱한 생각은 꿈에도 먹어 본 일 없었고, 한 동리에 사는 같은 불우한 예술가들에게도, 장사로 하느니보다는 오히려 우리들의 구락부와 같이 이용하고 싶다고 그러한 말을 하여, 그들을 감격시켜 주었던 것이요, 그렇기에 자작은 자기가 수삼 년간 애용하여 온 수제형 축음기와 이십여 매의 흑반 레코드를 자진하여 이 다방에 기부하였던 것이요, 만성(晩成)이는 또 만성이대로 어디서 어떻게 수집하여 두었던 것인지 대소 칠팔 개의 재떨이를 들고 왔던 것이요, 또 한편 수경(水鏡) 선생은 아직도 이 다방의 옥호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 그의 조그만 정원에서 한 분의 난초를 손수 운반하여 가지고 와서 다점의 이름은 방란장(芳蘭莊)이라든 그러한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의하여 주는 등, 이 다방의 탄생에는 그 이면에 이러한 유의 가화미담이 적지 않으나, 그러한 것이야 어떻든, 미술가는 별로 이 장사에 아무러한 자신도 있을 턱 없이, 그저 차 한 잔 팔아 담배 한 갑 사먹고 술 한 잔 팔아 쌀 한 되 사먹고 어떻게 그렇게라도 지낼 수 있었으면 하고, 일종 비장한 생각으로 개업을 하였던 것이, 바로 개업한 그날부터 그것은 참말 너무나 뜻밖의 일로, 낮으로 밤으로 찾아드는 객들이 결코 적지 않아, 대체 이곳의 주민들은 방란장의 무엇을 보고 반해서들 오는 것인지, 아무렇기로서니 그 조금도 어여쁘지 않은, 그리고 또 품도 애교도 없는 미사에 하나를 보러 온다든 그러할 리가 만무하여, 참말 그들의 속을 알 수 없다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새삼스러이 너무나 간소한 점 안을 둘러보기조차 하였던 것이나, 그것은 어쩌면 자작이 지적하였던 바와 같이, 이 지나치게 소박한 다방의 분위기가 도리어 적지않이 이 시외 주민들의 호상(好尙)에 맞았는지도 모르겠다고, 그것도 분명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모두들 그럴 법하게 고개를 끄떡이었고, 하여튼 무엇 때문에 객이 이 다방을 찾아오는 것이든, 한 사람이라도 더 차를 팔아 주는 데는 아무러한 불평이나 불만이 있을 턱 없이, 만약 참으로 이 동리의 주민들이 질박한 기풍을 애호하는 것이라면 결코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를 털어서 상보 한 가지라도 장만한다든 할 필요는 없다고, 그래 화가는 첫달에 남은 돈으로 전부터 은근히 생각하엿던 것과 같이 다탁(茶卓)에 올려놓을 몇 개의 전기 스탠드를 산다든 그러지는 않고, 그날 밤은 다 늦게 가난한 친구들을 이끌어 신주쿠로 스키야키를 먹으러 갔던 것이나, 그것도 이제 와서 생각하여 보면 역시 한때의 덧없는 꿈으로, 어이 된 까닭인지 그 다음달 들어서부터는 날이 지날수록에 영업 성적이 점점 불량하여, 장사에 익숙하지 못한 예술가들은 새삼스러이 당황하여 가지고, 어쩌면 이 근처에 끽다점이라고는 없다가, 하나 처음으로 생긴 통에 이를테면, 일종 호기심에서들 찾아왔던 것이, 인제는 이미 물리고 만 것인지도 모르겟다고, 만약 그러하다면 장차 어떻게 하여야 좋을지, 그들이 채 그 대책을 강구할 수 있기 전에, 그곳에서 상거(相距)가 이삼십 칸이나 그밖에 더 안되는 철로 둑 너머에가, 일금 일천칠백 원여를 들였다는 동업 '모나미'가 생기자 방란장이 받은 타격은 자못 큰 바가 있어, 그 뒤부터는 어떻게 한때의 농담이 그만 진담으로, 그것은 참말 한 개의 끽다점이기보다는 완연 몇 명 불우한 예술가들의 전용 구락부인 것과 같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돈 없는 몸으로서 모나미와 호화로움을 다툴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래 세상 일이란 결국 되는 대로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라고, 그대로 그래도 이래저래 끌어 온 것이 어언간 2년이나 되어, 속무(俗務)에 어두운 자작 같은 사람은, 하여튼 2년이나 그대로 어떻게 유지하여 온 것이 신통하다고 이제 그대로만 붙들고 앉았으면 당장 아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러한 말을 하기조차 하였던 것이나, 근래에 이르러서 이 다방에 빚쟁이들의 내방은 자못 빈번하여, 자기의 그 동안의 부채라는 것이, 자기 자신 막연하게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금액이라는 것을 새삼스러이 깨닫고, 비로소 아연한 요즈음의 그는, 아무러한 낙천가로서도 어찌하는 수 없이, 곧잘 자리에 누워 있는 채, 혼자 속으로 모나미의 하루 수입이 평균 이십 원이나 그렇게는 되었던 것으로 미루어 사실일 것이나, 자기는 물론 그렇게 많은 수입을 바라는 것은 아니요, 더도 말고 하루에 오 원씩만 들어온 다면 삼오는 십오, 달에 일백오십 원만 있다면, 그야 물론 옹색은 한 대로, 그래도 어떻게 이대로 장사는 하여 가며, 자기와 미사에와 두 식구 입에 풀칠은 하겠구만서도, 아무리 한산한 시외이기로 그래도 명색이 다방이라 하여 놓고, 하루 매상고가 이삼 원이나 그밖에 더 안되니, 그걸 가지고 대체 무슨 수로 반년이나 밀린 집세며, 식료품점 기타에 갚을 빛이며, 거기다 전깃값에, 와사(瓦斯)값에, 또 미사에의 월급에, 하고, 그러한 것들을 모조리 속으로 꼽아 보노라면 다음은 으레 쓰디쓰게 다시는 입맛으로, 참말이지 아무러한 방도라도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방란장의 젊은 주인은 저 모르게 엄숙한 표정을 지어도 보는 것이나, 그러면 방도는 대체 무슨 방돈고 하고, 늘 하는 모양으로 잠깐 동안은 숨도 쉬지 않고 물끄러미 천장만 쳐다보아도, 물론 이제 이르러 새삼스러이 머리에 떠오를 제법 방도라 할 방도가 있을 턱 없이, 문득 뜻하지 않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온갖 빚쟁이들의 천속한 얼굴에, 그는 거의 순간에 눈살을 찌푸리고서, 누구보다도 제일에 그 집주인놈 아니꼬워 볼 수 없다고, 바로 어제도 아침부터 찾아와서는 남의 점에가 버티고 앉아, 무슨 수속을 하겠느니 어쩌느니 하고, 불손한 언사를 희롱하던 것이 생각나서, 무어 밤낮 밑지는 장사를 언제까지든 붙잡고 앉아 무어니무어니 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아주 시원하게 찻집이고 무어고 모두 떠엎어 버리고서 내 알몸 하나만 들고 나선다면, 참말이지 만성이 말마따나, 하다못해 시나소바(중국식 국수) 장수를 하기로서니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느냐고, 그는 거의 흥분이 되어 가지고 얼마 동안은 그러한 생각을 하기에 골몰이었으나, 사실은 말이 그렇지, 그 것도 역시 어려운 노릇이, 혹 자기 혼자라면 어떻게 그렇게라도 길을 찾는 수가 없지 않겠지만, 그러면 그렇게 한 그 뒤에, 돌아갈 집도, 부모도, 형제도, 무엇 하나 가지지 않은 미사에를 대체 자기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 것인고, 하고, 그러한 것에 생각이 미치면, 그는 그만 제풀에 풀이 죽어, 사실이지 이 미사에 문제를 해결하여 놓은 뒤가 아니면, 아무러한 방도도 자기에게는 결코 방도일 수가 없다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만한 한숨조차 그의 입술을 새어 나오는 것도 결코 까닭없는 일이 아닌 것으로, 원래가 수경 선생집 하녀로 있던 미사에를, 어차피 다방에 젊은 여자가 한 명은 필요하였고, 기왕 쓰는 바에는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역시 지내 보아 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좋을 게라고, 그래 사실은 어느 모로 뜯어보든 다방의 여급으로는 적당치 않은 것을, 그 늙은 벗이 천거하는 그대로, 십 원 월급을 정하고 데려다 둔 것이 정작 다방의 사무라는 것은 분망치 않아, 그렇다고 주인 편에서는 아무러한 암시도 한 일은 없었던 것을, 주부도, 하녀도, 있지 않은 집안에, 어느 틈엔가, 저 혼자서 모든 소임을 도맡아 가지고, 아직 독신인 젊은 주인의 신변을 정성껏 돌보아 주는 데는, 정말 미안스러운 일이라고도, 또 고마운 일이라고도, 마음 속에 참말 감사는 하면서도, 지나치게 가난한 몸에 뜻 같이 안 되는 장사는, 아무렇게도 하는 수 없어, 그래 정한 월급을 세 갑절 하여 미사에의 노역에 사례하리라고는 오직 그의 마음속에서뿐으로, 그도 그만두고 그나마 십 원씩이나 어쨋든 치러 준 것도 다방을 시작한 뒤 겨우 서너 달이나 그 동안만의 일이요, 그 뒤로는 그저 형편 되는 대로 혹 이 원도 집어 주고 또 혹 삼 원도 쥐어 주고, 그리고 나머지는 새 달에, 새 달에, 하고 온 것이, 그것도 어느 틈엔가 이 년이나 되고 보니, 그것들만 셈쳐 본다더라도 거의 이백 원 돈은 착실히 될 거이나,대체 아무리 순박한 시골 처녀라고는 하지만서도, 어떻게 생겨난 여자기에, 그래도 금전 문제는 부자지간에도 어떻다고 일러 오는 것을, 이제까지 그것을 입밖에 내어 단 한 번 말하여 보기는 커녕, 참말 마음속으로라도 언제 잠시 생각하여 보는 일조차 없는 듯싶어, 그저 한결같이 주인 한 사람만을 위하여 진심으로 일하는 것이, 젊은 예술가에게는 일종 송구스럽기조차 하여 언젠가는 이내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어디 다른 데 일자리를 구하여 볼 마음은 없느냐고, 그러면 자기도, 또 수경 선생도, 힘껏 주선은 하여 보겠노라고, 마주 대하여 앉아서도 거의 외면을 하다시피 하여 간신히 한 말을, 우직한 시골 색시는 어쩌면 자기에게 무슨 크나큰 잘못이라도 있어, 그래 주인의 눈에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어떻게 그렇게라도 잘못 알아들었던 것인지, 순간에 얼굴이 새빨개져 가지고, 원래 구변이라고는 없는 여자가, 금방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준비 아래, 한참을 더듬거리며,그저 뜻모를 사과를 하여, 경력 적은 화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놓았으므로, 그래, 그는 다시 그러한 유의 말을 미사에 앞에서 꺼내어 보지 못하고, 생각 끝에 무슨 묘책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마침 목욕탕에서 그와 만났을 때, 그 일을 상세히 보고하고서, 나이 많은 이의 의견을 물었더니, 그는 또 어떻게 생각을 하고 하는 말인지, 무어니무어니 할 것이 아니라, 아주 이 기회에 둘이서 결혼을 하라고, 자기는 애초부터 그러한 것을 생각하였었고, 그리고 또 그것은 아름다운 인연에 틀림없다고, 만약 그기 직접 말을 꺼내는 것이 거북하기라도 하다면, 자기가 아주 이 길로라도 미사에를 만나 보고 작정을 하여 주마고, 혼자서 모든 일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그렇게 한 바탕을 서두르는 통에, 젊은 미술가는 거의 소녀와 같이 얼굴조차 붉히고, 그것만은 한사하고 말리면서, 문득 어쩌면 수경 선생이 자기와 미사에와 사이에, 무슨 의혹이라도 가지고 그러는 것이나 아닐까 하고, 그러한 것에 새삼스러이 생각이 미치자, 그는 그제야 다 늦게 당황하여 가지고, 만약 인격이 원만한 수경 선생으로서도, 자기들에게 그러한 유의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동리의 경박한 무리들의 입에는, 어쩌면 이미 오래 전부터 별의별 소리가 모두 오르내렸을지도 모르겠다고, 또다시 얼굴이 귓바퀴가지 빨개졌던 것이나, 이제 돌이켜 생각하여 보면, 설혹 그러한 말들이 생겨 났다더라도 그것은 어쩌는 수 없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 사실 젊은 남녀만 단둘이 그렇게도 오랜 동안을 한집안에가 맞붙어 살아오면서 그들의 순결이 그래도 유지되었으리라고는, 그러한 것을 믿는 사람이 어쩌면 도리어 괴이할지도 모르나 역시 사실이란 어찌하는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혹은 자기가 미사에에게 애정이라든, 욕정이라든,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기 전에, 우선 그렇게 쉽사리는 갚아질 듯싶지 않은 너무나 큰 부챌ㄹ 그에게 졌던 까닭에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를 대하는 때마다 마음 속의 짐은 무거워, 그래 무슨 다른 잡스러운 생각을 먹어 볼 여지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나, 그러한 것이야 사실 어떻든, 이제 이르러서는 설사 그에게 지불할 그 동안의 급료 전액으 준비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치러 주었을 그뿐으루 어디로든 가라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고, 또 미사에도 그러면 그러겠노라고, 선선히 나가 버릴 듯도 싶지 않아, 생각이 어떻게 이러한 곳에까지 미치니까, 다음은 필연적으로, 그러면 대체 이 여자는, 그 자신, 자기 장래에 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것부터 밝힐 필요가 있다고, 그는 그러한 것을 생각하여 보았으나, 아무래도 미사에에게는 그러한 방침이니, 계획이니, 하는 거이 전혀 없는 듯도 싶어, 그러한 것은 마치 자기의 주인이나 또는 수경 선생이 가르쳐 줄 것으로, 자기는 그들이 하라는 그대로 하여 가기만 하면 그만일 것같이 어째 꼭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 그렇게 되고 보니 이것은 바로 어디 마땅한 곳이라도 있어, 그의 혼처를 정하여 준다든 그러기라도 하지 않으면, 혹은 한평생을 자기가 데리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될런지도 모르겠다고, 사태는 뜻밖으로 커지어 그는 얼마동안을 아연히 천장만 우러러보았던 것이나, 문득, 만약에 미사에로서 아무런 이의도 없는 것이라 하면, 무어 일을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주 이 기호에 둘이 결혼을 하여 버리는 것이 좋지나 않을까, 그래 가지고 새로이 자기으 나아갈 길을 개척한다든 하는 밖에는 아무 다른 도리가 없지나 낳을까 하고, 언젠가 목욕탕에서의 수경 선생 말이 생각나서, 그야 미사에는 오직 소학을 마쳤을 그뿐으로, 결코 총명하지도, 어여쁘지도 않았으나, 어쩌면 예술가에게는 도리어 그러한 여자가 아내로서 가장 적당한 것일지도 몰랐고, 남이야 어떻든간에 이 여자는 저어도 자기 한 사람을 능히 행복되게 하여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그는 어느 틈엔가, 미사에가 가지고 있는 온갖 미덕을 속으로 외쳐 보았던 것이나, 하지만, 그러면 자기도 그를 또한 행복되게 하여 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그러한 것을 돌이켜 생각하여 보았을 때, 그는 새삼스러이 그렇게도 경제적으로 무능한 자기 자신이 느껴졌고, 어제 왔던 집주인의 자못 강경하던 그 태도로 미루어, 어쩌면 내일로라도 집을 내어놓고, 갈 곳 없는 몸이 거리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그러한 자기가, 잠시라도 미사에와 결혼을 하느니, 그래 가지고 어쩌느니, 하고, 그러한 꿈 같은 생각을 하였던 것이, 스스로 어이없어 픽 자조에 가까운 웃음을 웃어 보고는, 어느 틈엔가 방안이 어두워 온 것에 새삼스러이 놀라, 그제야 자리를 떠나서 게으르게 아래로 내려와 보니, 점에는 미사에가 혼자 앉아 있을 뿐으로, 오늘은 밤에나 들를 생각인지 자작도, 만성이도, 와 있지 않은 점 안이 좀더 쓸쓸하여, 그는 세수도 안 한 채, 그대로, 미사에에게 단장을 내어 달래서, 그것을 휘저으며, 황혼의 그곳 벌판을 한참이나 산책하다가, 문득 일주일 이상이나 수경 선생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 생각나서 또 무어 소설이라도 시작한 것일까, 하고, 그의 집으로 발길을 향하며, 문득 자기가 그나마 찻집이라고 붙잡고 앉아 있는 동안, 마음은 이미 완전히 게으름에 익숙하고, 화필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아니하여, 이대로 가다가는 영영 그리다운 그림을 단 한 장이라도 그리지는 못할지도 모르겟다고, 그러한 자기 몸에 비겨, 무어니무어니 하여도, 우선 의식 걱정이 없이, 정돈된 방 안에 고요히 있어, 얼마든 자기 예술에 정진할 수 있는 수경 선생의 처지를 한없이 큰 행복인 거나 같이 부러워도 하였으나, 그가 정작 늙은 벗의 집 검은 판장 밖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또 어찌 된 까닭인지, 그의 부인이 히스테리라고 그것은 소문으로 그도 들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실상 자기의 두 눈으로 본 그 광경이란 참으로 해괴하기 짝이 없어, 무엇이라 쉴 사이 없이 종알거리며, 무엇이든 손에 닿는 대로 팽개치고, 깨뜨리고, 찢고, 하는 중년 부인의 광태 앞에 수경 선생은 완전히 위축되어, 연해 무엇인지 사과를 하여 가며, 그 광란을 진정시키려 애쓰는 모양이, 장지는 닫히어 있어도 역시 여자의 소행인 듯싶은 그 찢어지고, 부러지고, 한 틈으로 너무나 역력히 보여, 방랑장의 젊은 주인은 좀 더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거의 달음질을 쳐서 그곳을 떠나며, 문득, 황혼의 가을 벌판 위에서 자기 혼자로서는 아무렇게도 할 수 없는 고독을 그는, 그의 전신에, 느꼈다...... [시와 소설 / 1936.3.]
ㅋㅋㅋㅋㅋㅋㅋㅋ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ㅋㅋㅋㅋ
박완서와 박수근이 파는 물건 나도 사보고 싶다...
https://youtu.be/1eRQG1c1kok?si=FbOEldyGLMsBcArI 김인혜 작가님 유투브 영상. 보면서 체크해야징.
자전거를 타며 책을 읽으면 평소보다 훨씬 집중이 잘된다. 스트레스 받던 일도 아주 오래 전 일어난 일처럼 가물거린다. 나중에 자전거타며 글쓰기도 도전해볼까?🤔
어떤 예술가가 오늘날 조금의 성공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행운이 아니라 과거에 불우하게 끝마친 모든 선인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한 철학가는 말했는데, 그것은 어느 세대에나 적용되는 원리 같다. P.120 미주에 따르면, 민병산의 책철학의 즐거움 중 챕터 예술가의 치부 499페이지에 적힌 말이라고 한다.
화가의 생애를 조사하다 보면, 대부분 예외 없이 화가만큼이나 그의 아내에게도 존경심이 들게 된다. 비록 시대가 화가를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헌신적으로 '화가의 생'을 지키는 이가 있기 마련인데, 대부분 아내가 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P.141
어제 오늘 잡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절필해야 하나까지 다녀왔다가 오늘 #살롱드경성 을 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와 그의 삶을 지지한 아내 #유영국 과 #김기순 144페이지에 아래와 같은 부분이 나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김기순은 유영국이 평생 화가로 살리라는 것을 결혼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영국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있다. "내 그림은 나 살아생전 팔리지 않는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팔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뭣하러 그림을 그린다는 걸까. 보통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김기순의 생각은 달랐다. '팔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저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아, 나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거구나! 앞으로도 혼신을 다해 쓰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언제나 책 안엔 길이 있다. #김인혜 #해냄
한챕터 읽고 쉬면서 아밀의 사랑편지를 들었는데 이 구절이 살롱 드 경성과 어울려 이 책의 메모도 함께 기록하기로 한다.
이책은, 좋은 소설 시 등과 관련한 이야기와 소설 내용을 인용한다. (저작권 처리하느라 골머리 쌓았을듯) 그 중 셰라 워터스의 게스트가 소개되는데 안 본 책인데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사랑편지, 즉 러브레터가 인용되어 있다.
너무 길어서 컴터 켜고 필사해놔야지 😑
아아, 왜 너는 여기 없는 거야! 집에 돌아갔을 때 네가 나를 잊어버렸을까봐 무서워. 아니면 네가 딴 여자를 좋아하게 됐을까봐. 예전에 너한테 들은 말 하나가 좀처럼 잊혀지지 않아. 내가 숭배받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던 말. 기억나? 나는 나를 숭배해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거라고, 네가 그렇게 말했었잖아. 그런데 말이야, 지금부터 내가 이런 말 한다고 미워하지 말아줘. 나는 가끔, 너야말로 누구든 사랑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네가 하필이면 나를 사랑하게 됐다는 게 가끔은 너무 신기해서, 너는 단지 너무 많은 걸 잃었기 때문에 나를 원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게 돼. 그런 것만은 아니지? 그치? (pp.45~6, 아밀, 「게스트」, 『사랑,편지』, 버터북스)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을 영원히 못 갈 것이오.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우리 자손들을 무엇을 주어 살리잔 말이오? 우리가 비난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의 역사를 무엇으로 꾸미잔 말이오?” p.183
전공은 동물학, 본업은 뮌헨대학교 동양학부의 한국학 및 동양철학 강사였지만, 그의 이름이 유명해진 계기는 1946년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가 독일어로 출간되면서였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해 독일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정신적 상태에 빠져 있던 독일 사회의 지식인 대부분이 이 책을 읽었다. 대한민국의 존재도 몰랐던 이들이 이미륵을 통해 한국의 풍습과 문화 그리고 아픈 역사까지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나중에 독일의 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pp.193~4) 처음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교과서에 실린 헤르만 헷세의 단편 「나비」에 상당히 큰 감명을 받고는 “나도 언젠가 이렇게 교과서에 실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바로 혼자 조용히 노트에 소설을 적었다. 대략 노트 서너 장 분량이었던 것 같지만 확실치는 않다. 그건 물론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헤르만 헷세를 따라한 느낌의 소설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젯밤 우연히 하워드 가드너의 유투브 강연을 발견했다. 망막박리가 일어난 후로는 일상이 찌그러져 보이기 때문에 최대한 눈을 쉬게 해주려 노력한다. 하루 평균 열두 시간은 눈을 감고 있다. 잠을 자기도 하고, 그저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오디오북을 듣기도 한다. 어젯밤 하워드 가드너의 유투브 강연을 발견한 것은 그런 순간이었다. 『망내인』을 완독하가도 뭔가 아쉬웠다. 하지만 새벽 한 시가 되었는데 또 읽는 건 눈에게 무리였다. 이럴 때 유투브에 접속해서 뭔가를 듣는다. 하워드 가드너의 강연도 흥미로워서 들으려고 했는데 영어라서 포기했다. 마침 댓글에 뜬 “왜 음성지원은 안되냐”는 말에 격렬하게 동의하고는 오디오북을 들었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하워드 가드너의 유투브 강연을 보았다. 하워드 가드너의 강연은 총 두 개의 유투브 동영상으로 연결된다. 그 중 두 번째 동영상에서, 아인슈타인 등을 빌어 하워드 가드너는 “재능의 정도”를 나눠 이야기한다.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재능의 정도를 들으며 내 수준은 아무리 해도 백 년 후까지 사람들이 기억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더불어 생각한 것은, 과연 그렇다면 백 년 후까지 사람들이 날 기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하워드 가드너의 책들을 하나 둘 읽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다. 궁금증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숭실대 문창과 1학년 시절, 지금은 돌아가신 학과장 이반(이명수) 교수님은 관찰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그 모든 것을 늘 문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 뇌에 강하게 박힌 후 나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또 문장으로 바꾸는 연습을 반복해 왔다. 어쩌면 그 덕에 나는 지금 아주 조금이나마 글을 쓰고 또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19일부터 하워드 가드너를 묵묵히 읽다 보면 언젠가는 백년 후에 남을 재능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안 되더라도 그 반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반 교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목표는 높게 잡으라고, 못 되어도 그 반은 이루지 않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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