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

D-29
제가 인상 깊게 봤던 영화 중에 <인생후르츠>라는 영화가 있어요. 90대 노부부의 전원생활기를 담고 있는 일본 다큐인데, 느리게 흘러가는 그분들의 삶에서 지혜와 연륜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게 참 좋더라고요(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힐링 영화를 기대하고 보게 된다면 다소 지루하고,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요). 실제로 그 영화 촬영 중에 할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고, 홀로 남겨진 할머니는 다시 또 자신의 삶을 묵묵히 이어가십니다. 저는 그게 그냥 인생 같더라고요. 나이가 드는 것도 저물어가는 게 아니라 여물어 간다고 표현하는 영화 속 대사가 정말 좋았어요. 그런 의미로 작가님도 부패되는 게 아니라 숙성되어가시는 중일 거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잊지 않기 위해 관심 영화를 담아둡니다. 맛있게 영글고 싶습니다. 추천 감사해요! ^^
인생 후르츠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 못 하는 게 없는 슈퍼 할머니 ‘츠바타 히데코’, 둘이 합쳐 177살, 혼자 산 날보다 함께 산 날이 더 긴 부부는 50년 살아온 집에서 과일 70종과 채소 50종을 키우며 살아간다. 어느 날 슈이치는 설계 의뢰를 받고 늘 꿈꾸던 자연과 공존하는 이상적인 건축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데… 90세의 건축가 쓰바타 슈이치와 그의 아내 히데코는 나무들로 둘러싸인 단층집에 살고 있다. 매 계절마다 70종의 채소와 50종의 과일이 히데코의 손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태어난다. 한때 일본 주택 공단의 에이스였던 슈이치는 자연과의 공생을 목표로 한 뉴타운을 계획했지만 60년대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슈이치는 그 일에서 손을 떼고 교외 개발지역에 땅을 구매해 지난 50년 동안 숲을 가꿔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설계 의뢰를 받게 된 슈이치. 자연과 공존하는 이상적인 건축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국내에는 등의 책을 통해서도 알려진 노건축가 부부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진짜 풍요에 대한 사색의 여행을 선사하는 작품. 최근 별세한 일본의 국민배우 기키 기린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2018년 제4회 서울국제음식영화제)
어랏 작가님, 뜬금없는 얘기지만 책 꽂기 기능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영화도 가능하군요! 순간 작가님의 댓글을 읽고 책이 원작인 줄 알았답니다. 덕분에 새로운 기능을 알아가요. 작가님에게도 좋은 영화로 닿을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얼마 전에 추가한 기능이에요. 책이 우선인 공간이지만 영화 모임이 열려도 좋겠다 싶어서요. 좋은 영화 많이 추천 부탁드립니다. ^^
네, 너무 좋은 기능 같아요. 더욱더 다채로운 대화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나날이 새로운 기능을 도입해가는 그믐의 미래가 반짝 거리는 느낌이에요. 다만 말이 나와서 말인데, 작가님께 그믐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이 하나 있습니다...(만 이곳은 너무 오픈된 공간이라 조심스럽네요) 간간이 작가님 댓글에서 발견되는 주제인데요. 나중에 또 비슷한 댓글을 읽게 된다면 그때는 조심스럽게 질문 드려보겠습니다(물론 괜찮으시다면요). 그때 놀라실까 봐 예고편 먼저 살포시...
헛... 네. 그런데 사실 그믐은 저는 별로 간여 안 합니다. ^^;;;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잘 모르고요. 김새섬 대표의 사이트예요. ^^
음, 결이 살짝 다른 질문이긴 한데, 저의 설명이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들고...(저의 필력 부족입니다) 일단은 고이 넣어두었다가(ㅋ) 다시 꺼낼 날을 기다려보겠습니다(?).
저 글을 쓰고 나서는 이 나이 먹도록 여태 그것도 모르나 하고 한심한 기분이 들었는데, 연해님께 그런 위안을 선사했다니, 그래도 다행이네요. 저는 저의 앞 세대들이 살았던 삶이 궁금해요. 평범한 사람들도 연륜이 쌓이면서 인생에 대해 통찰을 얻었을까 하고요. 아니면 모든 사람이 길 잃은 기분으로 사는 게 현대의 한 특징일까요.
살면서 느끼는 불안과 혼란은 왠지 그림자처럼 같이 가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점은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불안과 혼란을 느끼는 내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힘들지만 어쩌면 잘 살아나간다는 증거라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이렇게 비유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학창시절 때 공부를 하나도 안하면 오히려 불안하지 않잖아요. 그냥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고 오히려 치열하게 공부할 수록 해일처럼 밀려드는 불안속에서 힘들었던거 같아요. 매번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불안과 혼란의 파도속에서 허우적거리지만 그럴 때마다 잘 살고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발한발 나아가는 중입니다. @장맥주님이 올린 문장이 참 좋네요.
증류주를 영어로는 spirits 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나서 술이 일종의 연금술 같다는 생각이 왕왕 들었습니다 ㅎㅎ 부족한 글인데 이렇게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가 쓰는 소설은 대부분 명확한 결말 없이 결말을 맞는 경향이 있는데요. 취향이긴 합니다만 제가 워낙 해답 없이 끝나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ㅎㅎ 이런 종류의 소설이 진짜 현실처럼 다가와 저에게는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많은 일들에 해답도 결말도 딱히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현실의 이야기를 소설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계속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ㅎㅎㅎ
저는 아마존에서 술잔 사다가 spirits이 증류주인 걸 알게 됐어요 ㅎㅎ
어떤 술잔인지 궁금하네요 ㅎㅎ
저는 예전에 코엑스에서 술 박람회 할 때 입구에 크게 내걸린 "wines & spirits"라는 문구를 보고, 술을 마시겠다는 스피릿인가...하며 입장 전에 저의 스피릿을 점검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코엑스 주류박람회가 국내 주류 행사 중 가장 규모가 크죠! 근데 사람이 정말 어마무시하게 많아서, 사람 많은 곳 꺼리는 저는 도저히 가볼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ㅠㅠ '술을 마시겠다는 스피릿'도 말이 되니까 재밌네요 ㅎㅎ
저는 낯을 많이 가려서, 술친구를 고르라면 혼자 책 읽으며 위스키 마시는 지수가 좋을 것 같아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 각자 술잔 놓고 책 읽기. 고양이처럼 서로의 존재가 약간 편안해지면 슬쩍 눈맞춤을 하고 웃거나, 술김에 용기가 생기면 읽고 있는 책 얘기를 아주 잠깐 나눌 수도 있겠죠. 술 마시며 읽을 책은 각종 안주가 등장하는 (쳐다보고 입맛 다실, 천장에 매단 굴비 대용품...) 이야기가 좋을지, 술 없이는 못 읽을 르포르타주 쪽이 좋을지 고민 되네요. 위스키는 많이 안 마셔봐서 누구에게 맞춰 뭘 권할 능력은 없고요. 마셔본 것 중에서는 발베니가 맛있었어요. 저는 위스키 마시고 다음날 새벽에 숲을 산책하면 흙과 나무에서 어제 마신 위스키 향이 나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대학 다닐 때 좌석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그 노선에 늘 보이는 커다란 글렌피딕 광고판이 있었거든요. 하루에 두 번씩 그 사슴 녀석(글렌피딕이 게일어로 사슴의 계곡이라는 뜻이라죠) 눈을 마주치면서 약간 파블로프의 개처럼 세뇌당한 느낌... 저는 뿔 멋있게 달린 사슴 보면 술 생각 나요. 돈 많이 벌어서 (쿨럭) 글렌피딕 꼭 한 번 마셔보고 싶습니다. 소설에도 비슷한 느낌으로 나와서 반가웠어요!
낯 가리는 두 사람이 바에서 서로가 읽고 있는 책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고 대화를 시작한다.... 어떤 책 이야기를 나눌지 궁금하네요. 저는 발베니 때문에 위스키가 좋아져서 그런지 아직도 그 첫 마음이 사라지지 않네요. 위스키 한 병이 시간과 함께 서서히 사라지는 그때 그때 그 기분이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새벽에 숲을 산책하면서 흙과 나무에서 어제 마신 위스키 향이 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도 같은데, 기억해뒀다가 진짜 느껴보고 싶네요. 위스키와 숲과 새벽의 조합이 필요하니까요.
저는 위스키는 잘 모르지만 잔 안에 들어있는 그 동그랗고 엄청 큰 얼음이 참 멋지더라고요. 위스키를 마시며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왠지 (겉으로 보기에) '어른'의 고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참 멋져보입니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작가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위스키는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위스키가 도수가 세다 보니 고민이 길어지진 않더라고요. 저는 온더락보다 니트로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위스키가 물이나 얼음과 만나 변화하는 맛과 향도 좋지만 저는 뭔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좋아서요. 소설에 나오는 위스키는 전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특히 발베니를 좋아합니다.
발베니 참 은은하게 달면서도 부드러운 맛이라 좋더라고요! 얼핏 요즘 젊은 세대 최애 위스키라는 말을 들은 것도 같은데 출처는 모르겠습니다 ㅎㅎ 뿔 달린 사슴은 유난히 술 브랜드 로고에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제 기억에 달모어 위스키도 그랬던 것 같고, 캐나다맥주 '무스헤드'라는 술에도 커다란 뿔 달린 무스 그림이 있는데 다 좀 비슷비슷해 보였습니다. 술과 사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 문득 궁금해지네요.
살아 있는 것은 축복도 저주도 아니고 일상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일상이 멈추는 것이 죽음이다.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57, 김혜나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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