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

D-29
맞아요 20대에는 항상 내일 없는 사람처럼 살았죠... 저는 실제로 바에서 일하기도 해서 매일 새벽 3시에 퇴근하고 같은 날 오후 5시에 다시 출근하다 보니 퇴근할 때 동료들과 "내일 봐"라고 말하지 않고 "이따가 봐"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도 정말 내일이 없는 현실이었죠 ㅎㅎ
1. 저는 대학교 OT 때 처음으로 소주를 마셔봤어요. 학업에 충실한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하지 말라는 규칙 같은 건 의외로 순응하며 잘 따르는 편이라 공식적으로 20살이 되고 난 후에야 소주를 마셨죠. 근데 그게 오히려 실수였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은 소주를 어느 정도 마실 줄 알더라고요(주량도 알고요). 저만 그걸 모르니 양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도, 안주를 섞어가며 먹어야 속이 괜찮다는 것도 몰랐죠. 술게임 같은 건 더더욱 몰랐고요. 덕분에 모두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제 주량을 처음 알았답니다. 빈속에 소주를 연거푸 마신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선배들이 군기를 잡고 싶었던 건지 안주를 안 주더라고요). 숙취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다음 날 몸살이 난 것처럼 상태가 메롱이었죠. 신입생 하나가 죽어가는 모습에 놀란 과대 오빠는 제가 술병이 아니라 진짜 아픈 줄 알고 약도 사 오고, 죽도 사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그렇게 환자가 되었죠). 덕분에 2박 3일 동안 아무도 저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말리더라고요(저 이걸 노린 걸지도요).
몰래 마신 소주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공식적으로 마신 소주는 저 또한 대학생 시절이 처음입니다. 선배들이 강권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죠. 제가 꽐라가 돼 거리에서 몇 번 춤을 추니 제게는 강권하지 않던 기억이 납니다. 강권하는 선배를 다스리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강권하는 술도 좋았는데 더는 강권하지 않아서 서운했습니다. 연해님은 숙취로 선배들을 한방 먹이셨군요 ㅎ 아무리 봐도 연해님이 저보다는 술의 고수십니다. 안주 없이 마시는 소주라니! 저 같은 쪼랩은 고개를 숙이겠습니다.
앞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안주를 맛있게 먹기 위해 술을 즐기시는 @꿀돼지 님과 달리 저는 소주를 안주 없이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이유는 맛있는 안주와 먹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마실 것 같아서(하하). 하지만 최애 조합은 있습니다. 저도 @술빚는소설가 님 말씀처럼 소주와 생선회의 조합을 가장 좋아했어요. 그렇게 먹으면 회의 신선함이 소주와 어우러져 꿀떡꿀떡 잘 들어가더라고요. 맑고 나른한 그 느낌을 참 좋아했죠. 그렇게 무적의 주량으로 신나게 마시다가 다음 날 지옥을...(왜 자꾸 결론이) 개인적으로 "술은 안주를 더 맛있게 만들어주는 요물"이라는 작가님 말씀이 너무 귀엽고 좋았습니다. 덕분에 돼지가 되었다...(죄송합니다)는 말씀도요.
그런 집필 배경과 달리 「징검다리」 너무 재미있습니다.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신문 서평에서도 「징검다리」를 꼭 언급하더라고요. 술을 빚거나 파는 사람들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주의 존재감은 아주 강렬하고요. 질문에 답을 하자면… 1.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고등학생 때 몰래 마신 게 처음일 텐데요. 그런데 소주가 저랑 안 맞는다는 사실은 대학교 1학년 때 바로 알았습니다. 2. 농담이 아니고 맥주입니다. 소주를 꼭 마셔야 하면 맥주를 주문해서 섞어 마십니다. 3. 별로 좋은 기억은 없네요. 여자친구 앞에서 객기 부린다고 3병 마셨다가 엄청 취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기자로 일하시던 시절에 소맥은 꽤 드셨을 듯합니다. 저는 가끔 기자 시절에 먹던 소맥이 생각나서 일부러 기자 선후배를 만날 때가 있어요. 이상하게 혼자 말아 먹으면 맛이 없더라고요. 저는 소주보다 맥주를 마실 때 더 취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분명히 맥주가 저도주인데도 말이죠. 그리고 위스키보다 소주를 마실 때 더 취하고요. 아무래도 저는 비싼 고도주 체질로 보이는데, 주머니 사정은 체질과 상관없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아... 멀고 먼 길...
소맥은 아마 천 잔 넘게 마셨을 거 같은데... 혼자서는 절대 안 마시지만 소맥 분위기는 좋아요. 그래서 기자 선후배 만나면 은근히 기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기자들이 별로 술을 안 마시고 술잔 돌리기 같은 건 완전히 사라진 거 같더라고요. 저는 도수 높은 술을 마시면 취한다기보다는 맛이 가버리는 느낌이에요. 식도랑 위장도 타는 거 같고... 맥주가 딱 알딸딸하고 좋아요. ^^
저도 혼자서는 소맥 안 마시지만, 모임에서 먹는 소맥은 좋아합니다. 잔을 쫘악 늘어놓고 착착 말아서 배분해주는 그 분위기 좋아합니다. 그리고 잔 돌리는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게 잔을 공유한다는게 서로 피는 못 나누지만 세균총(요새 유행하는 말로는 마이크로바이옴)을 공유하는 거니까요. 입댄 술잔을 통해 구강 세균총만 공유하면 아쉬우니까 손으로 한번 쓰윽 닦아서 피부 세균총도 공유하고(때로는 장내 세균총도…). 목숨을 걸고 균을 나눈 사이가 되는거죠…
@챠우챠우 @꿀돼지 비슷한 정서를 가지신 분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잔 돌리는 건 비위생적이라서 싫은데요(장내 세균총 공유하게 되는 상황은 음... 장→손→입으로 공유하게 되는 건가요 윽), 잔 쫙 늘어놓고 소맥 만들어서 다들 원샷 한 다음 또 모아서 또 각자 잔에 소맥 만들어 넣고 다시 원샷하는 그걸 싫어하면서 은근히 좋아합니다. 제가 제안하지는 않지만 그런 분위기가 되어서 다 같이 그렇게 마시면 ‘에라, 오늘 죽는 날이구나’ 하고 체념하면서 즐거워합니다. 저는 술 마시면서 대화하는 게 솔직히 고역인데 소폭 먹으면 별로 말도 안 해도 되고 다들 빨리 빨리 마시니까 그것도 좋고요. 저렇게 마시면 10잔 마시는데 한 시간도 안 걸리죠. 그런데 저는 김삿갓 소주는 오늘 처음 들어봅니다. 그런 소주도 있었군요.
IMF 전에 잠시 프리미엄 소주 열풍이 분 적이 있어요. 아버지께서 술을 좋아하셔서 그때 김삿갓을 비롯해 이런저런 프리미엄 소주 구경을 많이 했었습니다. 저도 몰래 훔쳐 마셨고요. IMF 이후 일제히 싹 사라지더라고요.
맞아요 그 시기에 저희 아버지도 김삿갓 좋아하셨어요 ㅋㅋㅋ 참나무통맑은소주랑 김삿갓소주랑 은근 경쟁이 있었는데 외환위기로 프리미엄소주 시장이 사라지며 단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나무통맑은소주 원액은 창고에서 악성재고로 쌓여 있다가 20년이 지나 맛을 보니 너무 훌륭해 일품진로로 재탄생 되었죠. 김삿갓은 어디로 갔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요즘 분위기 들어보니 그렇더라고요. 특히 코로나 이후로 정말 많이 바뀐 모양입니다. 그래도 저는 가끔 예전의 술자리가 은근히 그립습니다. 마감 후 낮부터 부어라 마시던 술. 낭만이라고 해야 할지 야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말이죠.
아, 작가님. 낭만이라고 해야 할지 야만이라고 해야 할지라니요. 푸핫, 읽다가 또 빵 터졌네요. 저는 대학생 때, 선배들이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자리를 펴놓고 계속 술을 마시던 게 생각나요. 흥미로웠던 건, 중간중간 수업을 다 듣고 다시 내려가도 이상해, 갈 때마다 계속 있어, 집에 갈 생각들을 안... 멤버만 살짝씩 바뀌고 그 자리는 대낮부터 밤까지 이어졌다죠. 그 잔디밭 앞을 지날 때마다 그분들의 잔상이 한동안 남아있었죠. 더불어 술냄새도요(크).
그러게 말이에요. 그 시절엔 잔디밭이 주점도 아니고. 왜 다들 거기 모여 취해서 난리부르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콘칩 하나에 소주 한잔, 숏다리는 고급 안주 취급을 받고. 술을 못 마셔 죽은 귀신이 들린 것 아닌데, 뭘 그리 부어라 마셨는지. 그러다가 똥물로 가득 찬 연못에 뛰어들고, 수초를 헤치며 나오는데 손에 붉은귀거북이가 걸려 나오고. 그래도 재미있었네요. 이렇게 추억할 거리가 있는 걸 보니 말입니다.
1. 소주를 처음 마신 건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였는데요. 처음엔 과학실 알코올램프 맛(을 본 적은 없지만..)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2. 매콤한 국물이요. 3. 잊지 못할 기억보다는 잊고 싶은 기억들이 더 많은 점 반성합니다. <징검다리>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야기에서 정말 소주 냄새 나는 느낌 :)
오호! 맞아요. 저도 처음에 소주 냄새 맡았을 때 과학실 알코올램프 생각을 했습니다. 램프에 담긴 알코올을 손에 발라 불을 붙이고 허세를 부렸던 일도 기억납니다. 그러면 불이 손에 붙는데 하나도 안 뜨거웠거든요. 저도 돌이켜 보니 잊지 못할 기억보다는 잊고 싶은 기억이 더 많구먼요.
소주 향기가 나는 이야기. 딱 들어맞는 표현 같아요!
징검다리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당근에서 가품을 샀던 적이 있는데 (정품 확인 안됨) 이라는 문구를 써 놓았더라고요. 얼마나 열이 받던지. 1. 저는 고등학고 2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처음 먹어봤습니다. 그 때가 막 대나무통 맑은소주, 김삿갓, 참이슬 등이 나오던 때라 그런거를 하나씩 먹어보고 진로를 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한 두번 먼저 먹어본 친구가 ‘소주는 원래 진탕 먹고 토하고 자면 깔끔하다’고 해서 그런 버릇을 한동안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래서 술은 처음에 제대로 배워야… 2. 저는 모든 음식과 소주를 먹는 거를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반찬이랑 먹을 때 입니다. 배추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멸치볶음, 오징어채볶음, 오징어젓갈 등등요. 가장 좋아하는 지역소주는 전남의 잎새주 입니다. 수도권에서는 마시기 힘들죠. 한라산은 그래도 흔하지만. 3. 저도… 잊지 못 할 기억보다는 잊고 싶은 기억이 대부분이네요. 소주와 연관되어서는.
김삿갓 소주 기억납니다. 근 30년은 됐죠? 병 모양이 독특해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나저나 진탕 먹고 토하면 된다는 친구분은 식도가 멀쩡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낭만의 시대였군요 ㅎ 저도 챠우챠우님과 비슷하게 맛있는 반찬을 보면 술 생각이 납니다. 생각해 보면 맛있는 반찬이 곧 맛있는 안주인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저는 젓갈류를 안주로 즐기는 편입니다. 그리고 잎새주는 요즘 대형마트에 자주 보입니다. 희석식소주를 블라인드로 구별하는 건 정말 어려운데, 잎새주는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넘김이 확실히 다른 지역 소주보다 부드러워요. 그 정반대 편에 한라산이 있네요. 한라산도 최근에 순한 녀석이 나오는데, 역시 한라산은 20도가 넘는 투명한 병이 좋습니다. 거기에 딱새우회나 갈치회를 더하면, 아흐.. 다롱디리..
반찬이 좋은 안주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난 저의 아주 사소한 일화가 있어요. 저는 원래 '반주'라는 개념을 참 이해 못 했었어요. 보통 남자 어르신들이 밥과 함께 술을 마시곤 하시잖아요. 술을 안주랑 같이 마셔야지 왜 밥 먹으면서 술을 곁들이는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서른 넘어서 어느 날 친구랑 둘이 퇴근하고 만나서 그냥 평범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둘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소주 한 병 시키자고 해서 형광등 환한 동네 식당에서 밥이랑 반찬 먹으면서 별로 대화도 없이 술을 마셨네요. 서로의 고단한 회사 생활을 조금 얘기하다 그냥 집에 갔던가 그랬는데, 그 날 조금 제가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느꼈어요. 결론은 밥에 술도 괜찮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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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의 누워서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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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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