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저만치 혼자서>

D-29
김 훈의 <저만치 혼자서>를 읽기로 합니다. 장편소설에 최적화된 작가의 단편을 읽는 건..... 깊은 숲으로 들어가 잔디 위에 누워 밤하늘을 보는데 천문학자가 제 옆에 누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별은 이름이 뭐고 얽힌 이야기가 뭐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고 나이가 몇 살이고 그 옆에서 추위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별은 언제 태어났고 밝기가 얼마이고.... 조잔조잔 설명해주는 그런 느낌입니다. 장편이 크루즈 유람선이라면 단편은 노 젓는 나뭇배라고 생각하는데, 김훈 작가의 단편은 나뭇배에 우선 발코니 넣고 24시간 열려 있는 식당 두어 개, New Year 파티를 위한 높은 기둥과 알록달록 예쁜 카펫을 깔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야기는 짧고 전문 지식이 넘쳐나는 까닭에 단편으로는 너무도 과하고 또 과하지만 그런 그의 글솜씨가 저는 좋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고 나서 시작된 그의 글잔치에 실시간으로 초대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글이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기도 하고 가만히 물 속에 가라앉아 있기도 하는 지라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재작년 여름 친구가 책선물을 준다길래 얼른 골라 얻은 종이책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싱글챌린지는 자신이 직접 정한 책으로 29일간 완독에 도전하는 과정입니다. 그믐의 안내자인 제가 앞으로 29일 동안 10개의 질문을 던질게요. 책을 성실히 읽고 모든 질문에 답하면 싱글챌린지 성공이에요. 29일간의 독서 마라톤, 저 도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 같이 뛰면서 함께 합니다. 그믐의 모든 회원들도 완독을 응원할거에요. 계속 미뤄 두기만 했던 책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싱글챌린지! 자신만의 싱글챌린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로 접속해 주세요. https://www.gmeum.com/gather/create/solo/template
싱글챌린지로 왜 이 책을 왜 선택했나요?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에 읽지 않은 걸 골라 읽고 있습니다. 김훈 작가의 <저만치 혼자서>는 재작년 선물을 받았는데 그 해에 선물 받은 책이 제법 있어 읽기를 미뤄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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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와 고래> 1. 차가운 물속에서 명태, 가자미, 도루묵, 양미리가 우글거렸는데, 명태, 가자미.... 는 그것들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본래 이름이 없었고 지금도 이름이 없다. >> 이 대목에서 저는 나라를 이루는 서민들을 떠올렸습니다. 나라가 혹은 수사관이 이춘재를 '간첩죄, 보안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 으로 잡아 가두기 전까지 그가 그랬듯이 그저 시대의 흐름을 따라 시대 변화에 맞춰가며 살아가는 1인들.... 2. 섬이 하얘서 지도에는 백도라고 적혀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새똥섬이라고 불렀다. 미역바위 다섯 개는 새똥섬 주변에 박혀 있었다. 새똥섬 미역은 끓일수록 국물이 뽀얘졌고 오래 끓여도 향기는 풋것으로 남아 있었다. 소출이 많아서, 미역바위는 어촌계가 공동관리했다. 마을 여자들이 순번을 정해서 미역바위까지 헤엄쳐서 건너가 미역을 땄다. 등대가 없던 시절에 저물어서 돌아오는 목선들은 새똥섬의 흰빛을 보고 방향을 가늠했다. 해안선을 따라가며 들어선 포구마을들이 다 똑같은 지형과 구도였는데, 하얗게 빛나는 새똥섬은 멀리서도 향일포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였다. 죽은 노인들은 향일포를 백포라고도 불렀는데 새똥섬을 귀하게 여기는 뜻이었다. 3. 이춘개는 고기잡이의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가자미는 어두운 물, 광어는 모래, 우럭은 바위틈에 모이고, 꽁치 멸치 고등어는 초봄에 난류를 따라 올라오고, 명태 가자미 홍어는 초겨울에 한류를 따라 연안으로 내려오는데, 촛대바위와 거북바위 사이를 기점으로 해서 동북쪽으로 이 킬로미터쯤 올라가면 해류가 느려지는 자리가 명태와 고등어의 길목이라는 것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산맥 쪽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은 아침에 시작해서 해질녘에 그치는데, 먼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북동풍은 들고 나는 때를 알 수 없고, 북서풍과 북동풍이 부딪치면 바다가 뒤집혀서 파도가 방향을 종잡을 수 없이 사방에서 들이닥치게 되니까 겨울 바다에서는 늘 북서풍에 의지해서 북서풍이 시키는 대로 배를 부려야 하며, 북동풍의 조짐이 있으면 서둘러 포구로 돌아와야 한다고 먹통노인은 말했는데, 바다가 나가보면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4. 먹통노인이 죽었을 때 이춘개에겐 다섯 살 난 딸과 세 살 난 아들이 있었다. 그때가 서른여덟인가 마흔인가, 바다에서 이춘개는 제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스무 살인가 싶기도 하고 쉰 살인가 싶기도 했다. 태어날 때부터 서른 살이었거나, 태어날 때부터 딸과 아들을 데리고 왔던 것 같기도 했다. 바다에서 시간은 구획되지 않았고, 북서에서 남동으로 풍향이 바뀌어도 바람은 늘 물위를 달려가서, 물은 제자리에서 출렁거렸다. >>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독자의 귀에, 명태와 고등어에 대해, 먹통노인의 놀라운 바다지식에 대해, 그리고 바다에 의지해 사는 사람은 나이도 결혼도 자식도 그저 물처럼 유연하게 흘러가는 삶을 산다고 알려주는 작가의 자상함을 느낍니다. 세상은 그런 이들 중 무작위로 집어내 삶을 휘젓고 망가뜨립니다만 아무도 미안해하거나 반성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춘재가 돌아갈 곳은 가족이 모두 떠나버린 향일포였고 먹통노인처럼 죽음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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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모처럼 친절하지 않은 소설입니다.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앞부분부터 살펴봐야할 만큼 인물들과 주제에 대한 작가의 구상을 알아채기 어려웠습니다. 제목과의 연계성을 찾으면 강물에 뛰어들었지만 살기 위해 구조자를 꼭 잡은 연옥의 '손'입니다. 하지만 주제를 흐릴 만큼 화자와 화자의 개인적 삶 그리고 연옥의 아버지의 모습은 작가가 말하려는 '손'보다 두드러집니다. 또한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정상범위'를 벗어난 듯한 등장인물들의 사회성이나 공감능력의 부족이 독자의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제 생각을 정리하면, 대단한 애착이나 목표나 열정 없이 다만 살아 있으므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조차 아니 누구라도 막상 죽음을 맞닥뜨리면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도움을 얻기 위해 손을 내밀지 않을까 싶습니다. 1. 철호는 말을 늦게 배웠다. 두 돌이 지나서도 엄마 소리를 하지 못했고 말을 겨우 배운 후에도 한동안 말을 더듬었다. 속에서 말을 거꾸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철호는 하려던 말을 삼켰고, 말을 하다가도 중간에 멈추어버려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더 자라면서 말더듬증은 없어졌지만, 철호는 늘 말이 적었다. 철호는 말로 표현되거나 말로 구성되는 자리가 아닌, 다른 감각의 세계에서 사는 아이 같았다. 철호는 후각과 청각이 짐승처럼 날카로웠고, 감각의 영역이 넓었다. 중학교 때 철호는 어슴푸레한 새벽에 일어나서 공원과 야산을 쏘다니다가 돌아오곤 했다. 돌아와 다시 잠들어서 학교에 자주 지각했다. >> 엄마인 화자는 타인처럼 철호의 어린 시절을 진술합니다. 화자는 철호의 성장과정에 거의 관여한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화자와 그녀의 아들 철호는 가족이지만 타인처럼 한 집에서 지내다가 결국 타인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2. 연옥이는 철호 밑에 깔려서 강간당할 때 겁에 질려서 똥을 쌌다고 여자 수사관에게 진술했다. 어둠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었는데, 아랫도리가 풀려서 똥이 쏟아져나왔다고 했다. 그때 빈 아파트 옆방에서는 나중에 잡힌 공범 한 명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아이도 똥냄새가 났다고 진술했다. 똥냄새에 대한 진술은 범인과 피해자와 공범이 일치했다. 철호는 똥에 뒤엉킨 연옥이의 가랑이 속에 사정했다. 연옥이의 질 속에서 똥이 검출되었고, 파열상이 남아 있었다. >> '과연 이 소설에 꼭 필요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한 편으로는 연옥 또한 삶에 대한 의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인가 싶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너무 쉽게 삶을 놓아버리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서입니다. *윗글을 쓰고나서 책 마지막 부분에 있는 작가의 <군말>을 읽었습니다. '오영환 소방사의 글을 읽고 나서 나는 그에게 전화를 해서 그때의 손의 느낌을 더 자세히, 더 육감적으로 말해보라고 다그쳤는데 그는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세 마디를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글을 써서 그 빈자리를 메꾸기로 했다. 나는 오영환 소방사가 전한 느낌을 등대처럼 바라보면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이리저리 지어내어 그 등대에 연결시키려고 애썼다. 십 년이 지나서 다시 읽어 보니, 나의 이야기는 꿰맨 자리가 여기저기 드러나 있다. 간절한, 강력한, 따스한..... 이 세마디를 이겨낼 도리가 없다. 글은 삶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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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내기 장기> 사람 사는 이야기, 아니 하루 하루 견디며 사는 이웃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마른 하늘 아래서 벼락을 맞듯 IMF를 겪고 간신히 버티며 살아가는 두 서민과 그들 중 한 명과 지내는 개의 일상을 대화 없는 무성 영화처럼 작가는 그리고 있습니다. 짧기 그지없는 그들의 대화는 그저 그들 사이의 행동만으로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간결합니다. IMF로 인한 직접적 경험이나 상황을 목격한 적이 없어 당시 시민들이 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이 짧은 글을 통해 그로 인한 가족의 분열과 개인의 추락 그리고 헤어나지 못하는 가난을 추측하게 됩니다. 1. 공원 매점 옆 소나무 그늘 아래서 장기판이 벌어졌다. 구경꾼들이 빙 둘러섰고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기판은 여름에는 그늘을, 겨울에는 햇볕을 따라갔고 비 오는 날에는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아무나 짝을 지어 장기를 두었고, 며칠씩 함께 장기를 두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행방을 묻지 않았다. >> 장기판처럼 사람들의 생활도 그렇게 뜨거운 햇살을 피하고 살 에이는 추위를 피하고 쏟아지는 비를 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2. 이춘갑은 오개남과 통성명했지만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고, 오개남도 마찬가지였다. >> 취미가 아니라 할 일이 딱히 없어 시간 때우기로 두는 장기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을 것입니다. 몇 날 며칠 같은 상대와 장기를 두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3. 멀리서부터 한 걸음씩 다가오는 초졸들을 이춘갑은 빤히 들여다보면서도 막을 수가 없었다. 졸들은 한 칸씩 기어붙었고 좁은 길을 뚫어서 복병을 불러들였다. 장기판에서는 갈 수 없는 길들이 빤히 보였다. 갈 길은 못 갈 길 뒤에 숨어 있다가 빼도 박도 못하게 되면 비로소 보였고 보이면 갈 수 없었다.' >> 바둑이나 장기 두는 사람들이 하는, '판 안에 세상이 있다'라는 말은 과연 그러한가 봅니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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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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