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섬의 검은 짐승>은 그야말로 추상화처럼 읽게 되는 소설이네요. 모종의 핵 심은 공유되지만 구체적인 이해는 제각각 다르다는 점에서요. 일상의 대부분을 관습적으로 사고하며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저 역시 비선형적인 구조로 전개(어떤 면에서는 전개되지 않는)되는 소설은 읽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쉽게 몰입되지 않는 까다로운 독서를 하게 되면 그만큼 얻게 되는 게 있고, 그 득실의 비중이 저한테는 소설을 평가하는 한 기준이 되기도 해요. 이 소설 같은 경우엔 V섬을 촬영해 영화로 만들려는 감독과 그 감독의 페르소나로 낙점돼 배우로 출연하게 된 소설가의 관계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하고 해석하는 재미가 컸어요. 소설가로서는 영화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또 알고 싶은 생각도 별로 지만 돈 때문에 일단 섬으로 들어가고, 막상 이 판을 짠 감독은 섬에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섬에서는 다양한 존재들을 다양한 국면에서 만나게 되고, 여전히 이 섬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가 없고..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2
D-29
박혜진
박혜진
제겐 이 과정이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상상처럼 읽혔어요. 내가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나만이 주인공일 수 있는 곳에 초대받았지만 이곳으로부터 환대받는다는 느낌은 없고 어쩐지 소외된 채 화자로서의 역할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제 삶의 실존을 감각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거든요. 저는 이런 제 해석과 의미 부여가 작가의 의도에 썩 부합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의도라는 것이 이미 너무 선형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그런 의도에 맞춘 해석에 대해서도 얼마간은 자유롭게 생각하는 중이에요. 어쩌면 이런 것이 '문학'에 대한 실존을 체험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요. 이렇게 생각하면서 읽어가다 보면 '검은짐승'이란 말로 상상할 수 있는 존재의 범위가 달라지고 V섬이라는 공간에 대한 개념도 달라지면서 이 소설은 그냥 저의 소설이 되는 거죠. 조금 이상한 말일 수도 있지만 작가가 쓴 특정한 소설을 그림 구매하듯 내가 소유하는 느낌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림 사 본 적은 없지만..
박혜진
하지만 주관적 감상으로만 이 소설을 읽고 있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 구체적인 일화들이 '미디어'에 대한 낯선 이해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사회적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느껴요. 보원 평론가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소설이나 영화를 만들지만 그들이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듯 모르는 상태를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계속해 나가는 데서 드러나는 창작의 역설이 있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건 V 섬을 기록하는 도구의 변화였는데, 상공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카메라, V섬을 활공하는 원격 나그네새를 조정하는 개구리복 남자들 앞의 모니터는 죽은 느낌의 V 섬을 묘사하는 데 비해 검은짐승에 마을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V섬은 살아 있는 느낌이었어요. '검은 짐승'을 기억하는 건 역시 소설에 대한 하나의 비유일 거라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박혜진
작가가 재현하고 있는 현실을 당연이 알게 되는 소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