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2

D-29
[이 계절의 소설]이 벌써 세 번째 계절, 두 번째 달을 시작합니다. 23년이 마무리되는 12월을 보내며 우리는 2권의 책과 한편의 단편소설을 골라냈습니다. 첫 번째 책은 이치카와 사오의 화제작 <헌치백>입니다. 23년 아쿠타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전형적이지 않은 소재, 주인공과 당사자성이라는 주제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하여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책은 양선형 작가의 <V섬의 검은 짐승>입니다. 독창적인 스타일과 문장으로 주목받는 작가의 신작을 같이 읽어보며 작가가 확장시켜온 소설의 경계를 더듬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더불어, 이번에는 모두의 관심을 이끌었던 단편소설도 같이 이야기해봅니다. 많은 추천을 받았던 안담 작가의 <소녀는 따로 자란다>입니다. 작품으로서도, 새로운 출판형태로서도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이네요. 앞으로 또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 6명의 평론가/편집자/기자/작가 등 다양하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3개월마다 두 차례씩, 여기 그믐에서 독서모임을 열고 29일간 좌담을 벌입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작품에 대한 발견과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희망합니다. 첫 번째 모임은 지난 3개월간 출간된 장편소설 중 다루고자하는 십여권의 소설을 정하고, 짧은 인상평과 전반적인 기대, 요즘의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두 번째 모임에서 깊게 읽고 토론하고 싶은 2-3권의 책을 고릅니다. 두 번째 모임은 선정된 2-3권의 책을 같이 읽고, 그 소설에 대하여 6명의 평론가들이 깊은 비평과 논의를 진행합니다. 세 번째 모임은 앞선 두번의 모임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독자들과 소통하는 오프라인 대담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 소전문화재단은 2016년 12월 설립 이래 다양한 독서 장려 활동과 작가 지원 사업을 벌여 왔습니다. 특히 시대를 넘어서는 장편소설을 바라는 마음으로 장편을 쓰려는 작가들에게 창작지원금과 취재비, 특별 고료를 후원하는 〈문학과 친구들〉, 집필 공간을 제공하는 상주작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왔으며, 문학 레지던시도 설립 준비 중입니다.
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중증 척추 장애인 샤카가 남성 간병인에게 “내가 임신하고 중절하는 걸 도와주면 1억 엔을 줄게요”라고 제안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심사위원 일부가 난색을 표할 만큼 위악적인 상상력을 숨김없이 표출하는 작품이다.
V섬의 검은 짐승“인간의 편이 아닌 소설의 편에 선 소설가”(금정연)로 평가받으며 그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소설을 선보여왔던 양선형의 첫 중편소설이 나왔다. 서해 접경지의 실제 공간으로도 유추가 가능한 V섬에 이뤄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양선형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소녀는 따로 자란다위즈덤하우스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 역대 조회 수 1위, 공개와 동시에 화제에 올라 “섬뜩할 정도의 묘사에 교실 마룻바닥 위에 터진 우유 냄새가 떠올랐다” “마치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든 대사가 내 마음 같았다”는 독자 평을 받은 안담의 첫 소설 《소녀는 따로 자란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지운 편집자님 감사합니다! 이번 달에는 '소설'과 '문학'과 '책'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워낙 개성이 강한 책들이라서요. 저는 우선, 지난 달에 가장 많은 분들이 이미 읽었거나 관련 소식을 알고 있었던 <헌치백>에 대한 감상들이 궁금해요.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정말 이례적이라 할 만큼 호불호가 일지 않았어요. 끌어당기는 힘도, 밀어내는 힘도 없는 상태에서 끝까지 읽었다고 해야 할 텐데, 그런 와중에도 끝까지 봤던 건 모종의 호감도보다 앎에 대한 의무감이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은 분들의 리뷰 중에는, 그래서 공감하기 힘들었다거나, 극단적 위악에 대한 냉소적 평가들도 있던데요, 일정 부분 동의가 되면서도 결국엔 이런 생각 쪽으로 기울더라고요. 개인적 호감과 취향이 거의 절대 기준인 시대에 알기 위해 무엇인가를 읽게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가.. 사회적 언어로서의 소설, 공적 감각을 재구성하는 매개로서의 소설은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데 지금 일본에서 호명된 소설은 헌치백이구나. 큰 틀에서의 제 감상은 이런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해요.
이번 달에도 의미있는 대화 기대됩니다. 특히 이번에 선정된 소설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것 같아 특히 기대되는 것도 있어요. <헌치백> 읽고 좋았다 안좋았다를 떠나 저 역시 소설을 통해 인물에 관해 '알게' 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앎'이 그 자체로 소설의 가장 큰 의미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물의 특수한 상황을 정보로 혹은 상식으로서 모르지 않았지만 소설을 통해 특별히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숨김없이 남김없이 보게 되어(보여줘서) 1차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흥미를 느끼는 것 자체가 이 소설을 복잡한 마음으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사자가 당사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당연하게) 허용되는가? 말하기의 형식과 한계는 당사자가 결정하면 되는 것인가(그래도 되는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앗 저는 헌치백 말고 나머지 두 편을 먼저 읽어서, 금방 읽고 <헌치백> 이야기 같이 나누겠습니다 ㅎㅎ 두 분의 짧은 감상을 읽으니 더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 느낌이네요...!
저는 「헌치백」에서 중증 척추 장애인인 주인공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도 그 주인공이 장애 유무로 인해 극중 권력 관계에서 늘 최하층의 위치에 놓이지만은 않는다는 역학 구도가 입체적이고도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장애 여성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부자유와 곤경들이 1인칭 시점에서 제시돼 비장애인 독자들에게 충격을 선사하지만, 상속 재산의 규모를 비롯해 여타 요인들을 두루 고려해보면 주인공의 지위를 무작정 약자로 전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주인공이 명시적으로 ‘갑’의 위치에 서는 상황이 작품에 꽤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우위마저 그야말로 명시적일 뿐 주인공이 실질 차원의 약자성을 탈피할 만큼은 아니지 않은가 고민이 들기도 했습니다. 대충 상호교차성이나 강약 구도의 유동성 같은 개념/표현으로 지칭해볼 수 있을 텐데, 이런 측면에서 미묘하게 곱씹어볼 만한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이 재밌게 느껴졌어요. 좀 생뚱맞을 수 있는데 김유정의 <동백꽃>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거기서도 소설에 입체성을 확 부여하는 게 '나'-점순이가 갖는 남성-여성의 구도가 계급적 위계에 의해 반전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헌치백>에서는 그보다는 더 복잡하게 이 구도를 설정하고 있지만요... 김지운 선생님 말씀처럼 주인공이 명시적으로 갑의 위치에 서는 상황에서도 그걸 그렇게 곧이 곧대로 볼 수만은 없는 부분들이 있고요. 다만 '다나카' 씨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는 부분이... 자체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임신 중절을 위해 관계를 갖는 행위 자체는 주인공의 욕망이기도 하지만 그 욕망은 스스로를 상처입히고자 하는 욕망에도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이 공격성 속에서 그 행위가 사실 다나카 씨를 상처입히려는 욕망과도 겹쳐지는 것 같았거든요. 이 미묘한 긴장이 저에게는 소설을 확 풍부하게 느끼게 만들어줬던 것 같아요.
헌치백을 함께 읽자고 발의한 사람으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ㅎㅎ 저는 이 소설만큼이나 소설을 둘러싼 여러 역학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저는 이 책을 다룬 한겨레의 리뷰 기사를 읽고 <헌치백>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기사의 제목이 <나의 꿈은 고급 창부다, 임신 중절이다>였어요. 저 역시 리뷰 기사 제목으로 낚시(?)를 제법 해 본 사람으로서, 분명 어그로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충격적인 제목에 도저히 기사를 클릭해보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물론 책을 다 읽고 나면 말씀해주신 것처럼 ‘극단적 위악'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맥락에 납득,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되구요. 이런 극단적 위악에 수긍하게 되는 데는 당연히 작가인 치카와 사오의 당사자성이 자리하고 있을텐데, 당사자 소설의 복잡한 점이 독자가 개입할 여지가 무척 적어진다는 점 같아요. 실제로 미오튜블러 미오퍼시 장애를 앓고 있는 작가가 그렇다는데, 그 고통과 소망에 공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독자로서 뭐라고 말을 더 보태기가 어려우니까요.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간다고 말하는 문장이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했으리란 걸 떠올리면 그 어떤 자학과 도발 앞에서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고요. “당사자가 당사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당연하게) 허용되는가” 라는 정용준 선생님의 질문이 작가 입장에서의 질문이라면, 저는 독자로서 “당사자가 아닌 독자가 당사자 소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묻게 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당사자 소설은 소설의 이야기성 자체만큼이나 독해의 방식에 더 민감해지는 것 같아요.
나아가서 흥미롭다고 여겼던 건 작가의 이력과 아쿠타가와상을 타게 된 계기였는데요. 이치카와 사오는 이미 20년 동안 연애, 판타지, SF같은 소설 공모에 응모해왔고 고타스 기사와 성인 소설을 오래 써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문화 쪽에서는 아쿠타가와상의 인지도가 가장 높고 뉴스 속보로 보도되는 건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 뿐"이라 “아쿠타가와상 후보장들을 연구했고 지금까지 쓰여지지 않은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쓴 게 이 <헌치백>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쿠타가와상이 일본 순수문학계에서는 최고 권위의 신인상으로 여겨진다는 걸 생각하면 <헌치백>은 결국 ‘문학상에서 선호되는 소설의 경향과 주제'라는 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방증일 것이고, 그게 이른바 ‘문학성'이라고 불리는 요소일텐데, 그게 아마도 박혜진 선생님이 언급해주신 것 같은 “사회적 언어로서의 소설, 공적 감각을 재구성하는 매개로서의 소설" 혹은 정용준 선생님이 언급해주신 “‘앎 자체로서의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전까지 일본 문학계 나아가 한국 문학계에서는 한번도 ‘공적 감각'이 된 적 없었던 여성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담론 한가운데로 소환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소설로서의 역할은 다한 셈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일본 현지에서 아쿠타가와상 발표 직전에 서평가 좌담이 라이브로 방송됐는데, 그때도 이 작품의 당사자성을 두고 몇 마디 논의가 오간 모양이더라고요. 패널 한 명이 이 작품이 당사자의 오토픽션이 아니라 허구적 장치를 둔 점이 좋았다면서 이치카오 사오가 아니라 다른 사람(비장애인)이 썼다면 이 작품의 문장이 모두 무가치한 것이 되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고 해요. 당사자성을 옹호하던 다른 패널은 이 물음 앞에서 곤란함을 고백하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소수자 서사를 논하며 무작정 당사자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소수자 서사의 다양한 맥락을 경시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작중 인물의 위악적 태도를 불편하게 여기는 감상이 있다는 건 말씀을 듣고 새롭게 알았습니다. 정확히 어떤 리뷰가 얼마나 있는지 알지 못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작중 인물의 성정이 착하지 않고 모난 구석이 있다는 데서 불호의 감정을 발산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이보다는 이 작품을 깊게 읽는 방식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ㅎㅎ
작품에 대한 불편한 감상은 이곳저곳 리뷰를 찾아보니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낙태"를 하고싶다니! 어린 생명을 죽이는 "낙태"는 무조건 나쁜 것인데! 이런 감상을 본 적이 있어서 크게 공감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오! 선생님들 덕분에 <헌치백>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어 기쁘네요. 저 역시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저는 이 소설에 상세하게 붙어 있는 주석들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이렇게 공적으로 가시화된 적 없던 장애 여성의 성적 욕망이 어떤 사회적, 문화적 맥락 아래 은밀하게 표출되고 있었나를 알 수 있어서 꽤 즐거운 독서를 했던 것 같아요. 일본의 서브 컬쳐에 대해 궁금증이 더 생기기도 했고요. 여러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소설이기에 소설을 둘러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작품성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소범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당사자가 아닌 독자가 당사자 소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입을 떼기 힘든 까닭도 있을 것이고, 문학상 수상작이니만큼 '훌륭하니까 뽑았겠지...' 하는, 조금은 무심하고도 안일한 생각 때문에 소설로서의 작품의 완성도 등에 대한 이야기는 논의의 중심에 서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의 대화들이 최근 나온 장편소설을 살피고 집중된 논의를 나누는 것도 있지만, 처음의 목적은 미래의 고전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발굴해보자! 라는 의미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 소설은 그에 부합하는 책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ㅎㅎ 용준 작가님 말씀처럼 "앎"이 이 소설의 의미라는 점에 저도 동의를 하는데요. 어떤 미래에서도 독자를 '앎'으로 이끌 수 있는 소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어요.
여기 글을 쓰고, 또 여러 글들을 읽으면서 며칠 동안 문학에서의 당사자성이라는 표현과 의미를 생각했어요. 조금 새삼스럽기도 하고 뒷북을 치는 것 같기도 한 시간이었는데요^^;; 소송 용어로서 당사자성은 원고와 피고에게 재판의 주도권을 줌으로써 각자가 공격과 방어를 하는 과정에 판사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두는데, 이런 원칙을 두는 건 당사자 소송이 대등하게 대립하고 있는 당사자 사이의 권리 관계에 관한 소송이기 때문이더라고요. 그런 반면 사회운동에서 쓰이는 '당사자주의'란 장애인 인권 운동 등에 있어 인권 운동가 등이 '약자'를 '위해' 혹은 '대신' 활동하기보다 본인이나 그 가족 등, 한마디로 당사자들이 직접 운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런 배경에는 주체성의 강조가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문학에서의 당사자성이란 소수자 정체성을 지닌 작가가 그 정체성을 소재이자 주제로 의식화한 작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는데 법률적 개념에서의 대등성, 사회학적 개념에서의 주체성이 문학적 개념으로 오면 일종의 '진정성'으로 특정되고, 이건 문학, 특히 소설이 '허구'적 세계이기 때문에 강조되는 특성일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여기에는 오히려 대등성에 반대되고 주체성에 반대되는 태도가 들어서는데, 당사자성을 공유하지 않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제3자적 위치로 멀어지거나 정보 및 해석에 있어 상하관계로 경직된다는 면에서요. 그래서 지운 편집자님 얘기처럼, 또 여러 분들이 경계하는 것처럼, 당사자성이 작품을 해석할 공간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방해'하는 감상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헌치백은 어느 작품보다 더 당사자성이 두드러지지만 동시에 소설적 욕망이 아주 크고, 그 때문인지 작품에서 멀어지기보다 안으로 들어가서 따지고 묻게 되는 면이 더 많았어요. 보원 평론가님이 말한 "미묘한 긴장"을 느끼는 부분들이 많았던 소설이에요.
그나저나 이번 시즌부터 소전서림 '이달의 소설' 선발대 분들도 토론에 참여하게 됐는데, 아직 의견이 올라오지 않아서 궁금증이 증폭하고 있습니다 ㅎㅎ 헌치백이든 V 섬의 짐승이든, 어떻게 읽으셨는지 의견을 나누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 계절의 소설 후발대(마지막에 평점 좋은 것을 찾아 읽고 있는......& 선택받지 못한 도서들의 한 줄평을 쓰고 있는) 소전서림 황보유미입니다. 드디어 저희도 참여할 수 있게 됐네요! 동시에 우왕왕왕한 여러분의 아우라 덕(?)에 감히 막 지껄여도 되나 두려움도 들어요. ㅎㅎㅎ 저는 <헌치백> 먼저 읽었는데요. 앞에서 모두 언급하셨지만, 저 역시 신문 기사의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라는 문장에 먼저 작품을 알게 됐고, 찾아 읽게 되었지요. 그만큼 자극적인 문장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책을 읽고나서 그 자극을 느낀 제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 문장은 여성 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온전히 담아낸 진정한 '원함'의 문장이란걸 알게되었으니까요. "나는 종이책을 증오한다. 독서 문화의 마치스모를 증오한다. 그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른바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는 문장에서는 여기 있는 모두가 같은 부끄러움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연스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여성 장애인들의 성적욕망'을 담론의 중심으로 끌고온 것이 이 작품이 문학으로서의 의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앞서 정용준 작가님이 얘기하셨던 "'앎'이 그 자체로 소설의 가장 큰 의미겠다"는 말씀처럼 말이죠. 반면, 서브컬쳐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저로서는 읽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는.... ㅜㅜ (V섬은 아직 읽고 있는 중....)
저도 새로운 글 올라오나 계속 눈팅만 하고 있었습니다. 살짝 무언가 쓰기에 주눅들기도 합니다만 황보님 글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올려보려구요. 소박한 독자의 질문을 남겨보고 싶습니다. <헌치백>은 개인적으로 작가의 상황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에 정작 소설을 읽을 때는 당사자성에 대한 인식이 없이 읽었고, 짧은 소설(장편,단편 나누자면 단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로서는 충분히 소설 자체로서 재미있었습니다. 작가를 빼고 소설 자체에 대한 얘기는 많이 없는 것 같은데, 새로운 "앎"의 재미 외에는 소설적 가치는 별로 없는 걸까요? 두 번째는 <V섬>인데, 읽으면서 충격을 받는 중입니다. 지난 달 <V섬>에 대한 호평을 들었던 터라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읽고는 있습니다만, 이게 좀처럼 쉽게 읽히지는 않는데 이게 맞는건가요? 워낙 난감한 읽기를 하는 중이라 질문조차 어색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제가 느끼기에 양선형 작가는 글쓰기와 관련된 조건들에 대한 탐구를 계속 수행하는 작가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재미를 느끼는 부분은, 뭐랄까... 그런 글쓰기 속에서 마주치는 난관들이 있을 텐데, 이 난관들을 관찰하고 냉소하고 동시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음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양선형 작가 특유의 방식인 것 같아요. 가장 큰 층위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쨌든 이 소설은 '감독'이 화자에게 배우를 해달라는 제안을 하고, 화자가 촬영 장소인 V섬에 가서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감독은 무언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데 그 영화의 주인공인 화자는 이 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돈 때문에 섬에 가게 되고요. 그런데 좀 이상해보이는 상황이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글쓰기가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가령 내가 소설로 다루고자 하는 어떤 인물의 삶과, 그를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속에는 정말 큰 간극이 있는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령 내가 어떤 이야기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가정하면... 반대로 나는 그 이야기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관계가 생기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V섬>의 화자가 끊임없이 감시를 받는다고 느끼고,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이 이야기가 되니까요... 말하자면 한편에는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네가 쓰는 것은 아무리 잘 꾸미더라도 실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냉소적 관찰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그럼에도 이야기가 실재를 그물처럼 포획하는 현상에 대한 관찰이 있고...
그러니까 우리가 소설을 두고 '이건 소설일 뿐이야'라고 말할 때, 소설은 실재가 아니라고 말할 때, 그건 소설이 그 자신의 총체성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하나의 관점에서 조작된 형성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그 '소설적 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려는 시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비판적 관점은 동시에 하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행위가 실재에 얼마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간과하게 하는 측면도 있는 거죠. 뭐랄까, 영향을 끼친다는 게 어떤 직접적인 피해나 이득과 관련이 될 수도 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게 어렵게 만드는? 가령 <헌치백>에서 저희가 당사자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가 이 작품을 그냥 소설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작가가 <헌치백>의 화자와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읽기에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작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가령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자신이 지니고 있는 어떤 특성들을 객관화하고 대상화해서 인물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인물이 작가 자신과 아무리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이미... 어떤 면에서 우리는 '샤카'를 알게 되고 나서 그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없었던 것처럼 작가인 이치가와 사오, 혹은 더 넓게는 그와 유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볼 수는 없다는 거죠. 물론 <헌치백>의 경우 이러한 작동은 어느 정도 의도된 것이지만 또 언제나 의도를 초과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저는 이런 부분이 정용준 선생님이 위에서 던지셨던 '당사자가 당사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당연하게) 허용되는가?'라는 질문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상반된 관점을 동시에 수용했을 때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소설일 뿐) 이미 범죄적인(사물에 대한 착취) 행위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V섬>은 기본적으로 이런 식의 딜레마랄지, 이율배반을 이런저런 각도에서 들여다보는 소설인 것 같아요. 재현이라는 게 어느모로 보나 문제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고, 소설을 쓰거나 읽는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문제적인 부분을 옹호하고 싶어하는데, 양선형 작가는 계속 옹호하기 힘든 포인트들을 찾아내고, 은폐되어 있는 장치들을 들춰내고, 우선은 그런 그런 폭로가 자체로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기도 해서 재밌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자신이 소설을 계속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적이게 되는... 그런 구조가...... 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야기 물꼬를 트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제... 조금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로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요... 뭔가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그래서 저런 이유로 저게 재밌다고? 이 작품의 의도에 그러그러그러그러한 의도가 있어서 즉각적으로 즐거움을 느꼈다고?'라는 의문이 절로 들 것 같아서 약간 민망하네요... 좀 더 읽을 때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면, <V섬>에서 '감독'이나 촬영을 하는 '개구리복 남자'들이 갑작스럽게 예술에 대한 장광설을 토해내고, 그러잖아요. 굉장히 자기 편의적인 방식으로 예술론을 왜곡하고, 그러는데요. 사실 양선형 소설의 재미는 이 장광설들이 도대체 어떤 위치를 갖는 건지, 그러니까 작가가 이 말들을 조롱하는 건지 진심으로 믿는 건지 비판하는 건지 아니면 싫어도 그렇게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그런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양선형 작가 소설을 읽다 보면 찔릴 때가 굉장히 많아요. 저의 경우에는... 왜냐면 딱 봐도 제정신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말을 쏟아낼 때가 있고, 아주 진지하게 그게 자신의 사상이라고 주장하고, 그러니까요... 그러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게 얼마나 믿음직하지 않은 건지, 단단하지 않은 건지 생각하게 돼요. 저의 생각을 바꾼다, 틀렸다고 생각한다기보다는, 그 생각이 굉장히 주관적이고 다른 맥락에 놓였을 때는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가령 아래의 문장 같은 부분이요. "저도 예전에는 상심에 취약한 사람이었어요. 비극의 조짐이 슬며시 제 살갗을 건드리기만 해도 어쩔 줄 몰라 동굴로 후퇴하는 사람. 그래도 적응할 수 있어요. 나쁜 냄새 속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으면 콧속이 시큰해지고 스스로가 더러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나중에는 후각이 마비되고 이곳에서 나쁜 냄새가 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겠죠. 세상은 원래 이렇게 돼먹지 못한 곳이로구나. 나는 세상에 비하면 개미 한 마리만큼 작지. 개미는 묵묵히 자기가 할 일을 하는 법이지. 누구나 평생 동안 개미의 일상을 건사하다가 자신의 삶을 통째로 도둑맞는 법이지. 아무튼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법이니까 까불지 말고 얌전하게 있어.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참기가 어려워요." (52)
위의 인용이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소시민적이고 윤리적으로 마비된 생각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 화자는 자신이 한 말을 어떤 진리라고 생각한다기보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참기가 어려"워서 선택하는 일종의 대안적 서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쨌든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 이야기가 그렇게 잘못되고 틀린 이야기인가...? 나도 이런저런 일로 힘이 들 때 그냥 내가 놓여 있는 구조를 받아들이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무언가를 시작하곤 하고, 그런 마음이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기는 힘든데. 그런데 어떤... 그런 생각이나 행동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의 미묘한 부분들, 그리고 그것이 놓이는 위치, 그런 것들을 조작함으로써 양선형 작가는 내가 별 생각 없이 하던 생각이 가지고 있는 여러 측면들을 들추어내는 것 같고, 그래서 그게 저는 독자로서 읽으면서 뭔가 찔리기도 하고 반발심도 들고, '하지만 작가가 이 발언을 무조건 냉소적으로 비판받는 위치에 놓아둔 게 확실한가?'라고 의문을 가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읽어가는 것 같아요. 읽을 때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나 어떤... 눈에 보이는 걸 그대로 믿기 힘들다는 일종의 불신? 같은 것이 양선형 소설의 읽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인 것 같고요. 그런 점이 제게는 재미있네요...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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