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 김화진, 공룡의 이동 경로

D-29
출판사: 스위밍꿀 (문학동네시인선 144) 분야: 소설 저자: 김화진 제목: 공룡의 이동 경로 발행(출시)일자: 2023.08.08 ———······———······——— 목차: 사랑의 신 ◦ 7 나의 작은 친구에게 ◦ 47 나 여기 있어 ◦ 87 이무기 애인 ◦ 129 공룡의 이동 경로 ◦ 175 추천의 글 마음의 경로를 따라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 | 강보원(문학 평론가) ◦ 217 눈을 감으면 보이는 내 마음의 빛깔은 온통 노랑과 파랑, 그리고 초록 | 임선우(소설가) ◦220 작가의 말 ◦ 223 ———······———······——— 책 소개: “친구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 친구를 잃지 않으리라고 과신했다. 잃어버리지 않는 친구,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마음의 이동 경로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다섯 편의 이야기, 김화진 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가 출간되었다. 누군가와 멀어질 때만큼 마음의 움직임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또 있을까? 내 것이지만 좀처럼 내 것처럼 되지 않는, 살아 움직이는 마음 말이다. ‘공룡’과 함께, 이런 마음의 아름다운 유영을 맘껏 즐기게 되기를! ———······———······——— 출판사 서평: 일 년에 한 권씩, 삶의 속도로 이야기를 펴내는 스위밍꿀에서 김화진 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가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를 통해 지칠 줄 모르는 마음 탐구자로서의 면모를 선명히 드러낸 그는, 사람을 향해 절로 일어나는 마음, 못나고 이지러진 모양일지라도 회피하지 않는 끈기로 독자들의 적극적인 감응을 불러일으켰다. 『공룡의 이동 경로』는 다양한 관계 중, 특히 ‘친구 관계’를 다룬 연작 소설로, 마음의 움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유도 모른 채 가까워지고 또 한순간 소원해지는, 익숙하지만 어려운 친구 사이. 누군가와 멀어질 때만큼 마음의 움직임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또 있을까? 내 것이지만 좀처럼 내 것처럼 되지 않는, 살아 움직이는 마음 말이다. ‘공룡’과 함께, 이런 마음의 아름다운 유영을 즐기게 되기를! “사람은 주머니 같다. 나는 그 안이 궁금해.” 들여다보고, 또 꺼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대한 모든 것 5월인데도 열대야처럼 무더웠던 어느 봄밤, 우연히 한 테이블에 둘러앉게 된 네 명의 친구들-주희, 솔아, 지원, 현우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아직 무언가가 되지 못한 이들은 그것이 될 때까지 필요한 노력을 각자 알아서 하는 ‘되기 전 모임’을 결성한다. 이 모임 안에서 이들은 특별히 누군가와 더 거리를 좁히게 된다. 들여다보고 싶고, 또 꺼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면서. 「사랑의 신」은 말 그대로 ‘사랑의 신’인 주희의 이야기다. 때문에 ‘다정하다’는 칭찬과 ‘헤프다’는 악담을 들어왔는데, 누가 뭐라든 끊이지 않는 사랑을 모른 척할 마음은 없다. 예정된 일처럼 주희는 현우와 연애를 시작하지만, 정작 사랑하는 건 두 언니 솔아와 지원이다. 그는 둘에게 스미고 섞여 들고 싶다. 「나의 작은 친구에게」는 친구가 좋아, 헤어짐이 미리 슬픈 솔아의 이야기다. 솔아가 가장 싫어하는 표현은 ‘마음의 문을 연다’는 숙어. 언제나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 노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꼭 닫힌 지원의 문 앞에 서 있다. 어느 날 지원이 새겨준 공룡 타투 ‘피망이’가 사라지면서 그의 고민이 시작된다. 「나 여기 있어」는 복잡한 마음과 달리 단순한 선으로 타투를 새기는 지원의 이야기다. 지원은 자신을 향한 솔아의 마음을 안다. 알지만, 그는 자신이 새겨준 타투가 사라졌을 때 솔아가 상처받을 게 뻔한 말을 골라 건네고 만다. 왜 뾰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손에 쥐게 되는 걸까? 「이무기 애인」은 놀림받는 것을 잘하는 현우의 이야기다. 이제껏 별다른 욕망 없이 살아온 현우에게 최초로 뚜렷한 욕망이 생긴다. 주희가 소중히 여기고 들여다보는, ‘구슬’이 되고 싶다는 것. 하지만 자신과는 그저 연애로 엮인 정도일 뿐이고, 주희가 실제로 섞인 사람들은 지원과 솔아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는 구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공룡의 이동 경로」는 공룡이자 타투이며, 빛이고 마음인 피망이의 이야기다. 피망이는 솔아의 팔목을 떠나 그의 눈꺼풀 안쪽으로, 또 그곳을 벗어나 그의 방 창가에 걸린 선캐처 쪽으로, 그렇게 자꾸만 이동한다. 최초의 탄생으로부터, 계절이 변하고 해가 바뀌며 그가 도달한 자리는…… “그걸 다 느껴보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딱딱해지지 말고, 생생하게 삶 쪽으로 나아가는 일 김화진이 그려내는 마음의 이동 경로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부드럽고 환한 자리만 딛게 되지 않는다. 틀림없이 무언가에 부딪혀 아파하고 지레 움츠러드는 순간을 맞이한다. 물론 제멋대로 들이받고 발 구르며 찌르는 순간까지도. 그러니까 상처받을 뿐만 아니라 상처주는 마음까지 고스란히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김화진은 “서 있는 곳이라면 벽과 천장과 바닥을 모두 느끼며 살고 싶”어하는 인물들과 함께 서 있다.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절대 너에게 상처주지 않을게, 라는 말은 얼마나 순백색의 멍청함”인지 아는 인물들, 또 어떤 기억을 지우고 싶냐는 질문에 “삶을 편집할 순 없어. 묵묵히 봐야 해. 그것 때문에 나는 지금 아프지만”이라고 답하는 인물들의 편에 말이다. 아프고 싶지 않아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일은 얼마나 흔한가, 그 자리에 멈춘 채 더이상 나아가기를 주저하면서. 딱딱해지지 말고, 생생하게 삶 쪽으로 나아가는 일. 소설 속 마음의 이동 경로가 우리에게 안내하는 방향은 오직 그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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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신」 ◦ 7
내가 애써 사랑을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사랑은 홀로 산다. 인생이 바다만큼 넓고 골짜기처럼 깊은 거라면, 내가 노를 저어 사랑 쪽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사랑이 지느러미를 달고 내 주위에서 끊임없이 헤엄치는 것이다. 사랑이 잠깐 내 곁에 머물고 또 떠나가고,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그러길 반복한다.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지는 오직 사랑에게 달렸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 별명이 (그냥도 우습지만) 정말 우습다고 생각한다.
공룡의 이동 경로 p.9-10, 김화진 지음
우리는 아직 되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뭔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그저 지금 아닌 다른 모습을 원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는 나은 모습이고 싶어했다. 되고 싶다는 마음의 속성은 아마도 잘 시니컬해지지 못하고 아직도 소중한 것이 있고 그것 때문에 곧잘 울고 마는 촌스러움인지도 몰랐다. 잘 안 될 거라는 시그널이 발밑에 수북한데도 자꾸만 이상하게 잘될 거라는 믿음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파랑새 같은 낙관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이 전부 나 같았고 그래서 좋았다. 찐득한 떡처럼 들러붙는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맨정신에는 너무 자기 검열이 심해서, 잔뜩 취해야만 찐득해지는 게 가능한 사람들이라는 건 그때는 몰랐다. 우리는 한층 진실된 목소리로,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눈 서로에게 이상한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온도나 질감은 조금 달랐겠지만 네 명 모두에게 중요한 순간임은 분명했다.
공룡의 이동 경로 p.17-18, 김화진 지음
소음 속에서 사락사락 사랑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슬픔 곁에는 왜 항상 사랑이 맴돌까. 우리는 왜 비슷하게 슬퍼야만 감춰둔 사랑을 꺼내게 될까. 나는 이 이야기를 어째서 현우나 솔아 언니에게는 하지 못하고 지원 언니에게는 하게 된 걸까. 슬픔은 슬픔을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공룡의 이동 경로 p.42, 김화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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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친구에게」 ◦ 47
그러나 그것도, 그 마음이라는 것도 내가 움직여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은 언제나 혼자서 생겨서 혼자서 죽어버리고. 나는 그 감정이 나를 채우도록 내버려두고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이다. 이겨본 적이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늘 그렇게 시작됐던 것 같다. 마음이 갑자기 스스로 커지는 일. 커진 마음이 나를 잡아먹도록 내버려두는 일. 그건 짜릿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혼자 멀리 가보고 빙빙 돌다가 다시 돌아오고. 나는 이제 그런 게 우습다. 우스우면서도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좋아하면 왜 함께 있고 싶을까. 왜 자꾸 말을 걸고 질문을 하고 뭔가를 같이 하자고 하고.
공룡의 이동 경로 p.50-51, 김화진 지음
내 삶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거나 뒤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야. 파도처럼 아래가 위를 덮치고 뒤가 앞을 밀어서 계속해서 오는 거야. 끊임없는 고통이고 위로야. 그걸 다 느껴보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파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영원히 그러고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무엇보다 그런 게 힘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바라보는 것. 눈을 거두지 않는 것. 바라보는 쪽을 바라보는 것. 나는 고개를 빼고 내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는 사람. 피망이가 사라져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늘 빈자리를 문지르는 사람이 되었다.
공룡의 이동 경로 p.84, 김화진 지음
버리려고 쓰다니. 덜어내려고 쓰다니. 나는 갖고 남기고 기억하려고 썼다. 잊지 않으려고. 잊기 전에 남기려고. 남겨서 가지고 있으려고. 나는 아직도 거짓말과 진심이 딱 달라붙은 순간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거짓말은 다른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것. 거짓말은 진심으로 나온다.
공룡의 이동 경로 p.65, 김화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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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어」 ◦ 87
그 감각을 알았다. 나는 가고, 너는 여기 남겠구나. 누가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가고 내가 남겨진 것이기도 하겠지. 그러나 그런 건 의미가 없고 그저 우리가 함께가 아닌 순간에 대한 예감만이 또렷했다. 나는 언제나 그 감각을 알았다. 그런 감각이 스미는 순간을 알았다.
공룡의 이동 경로 p.115-116, 김화진 지음
오래오래 무럭무럭 자라나는 사이는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건가 봐. 다른 영양분이 있어야 하는데 나한텐 그게 없나 봐.
공룡의 이동 경로 p.121, 김화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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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 애인」 ◦ 129
나는 주희의 구슬이 되고 싶었다. 나는 되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거의 최초로 정확한 욕망이 들었다. 어느 면으로 보자면 주희도 나의 구슬이 된 셈이다. 구슬을 갖는 일은 뿌듯하면서도 조바심이 나는 일이다. 언제라도 잃게 될까 전전긍긍하게 되니까.
공룡의 이동 경로 p.134, 김화진 지음
지나간다. 솔아의 타투가 그렇고 지원에게 친구가 그렇고 주희에게 동생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 모든 일들을 우리가 서로 전혀 공유하지 않고 발설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 각자의 상처를 자연스럽게 벌려 보이게 될 때가 온다고. 솔아에겐 이런 일이 있었고 지원에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주희에게도 어떤 하나의 일이 그저 일어난 것뿐이라고.
공룡의 이동 경로 p.167, 김화진 지음
그게 내 거야. 주희는 말했다. 삶을 편집할 순 없어. 묵묵히 봐야 해. 그것 때문에 나는 지금 아프지만. 한번 아픈 곳이 계속 아플까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 된 거겠지. 아플 때도 주희는 강하기는 했다. 그 사람이 원래 지니고 있던 태도가 아프다고 해서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공룡의 이동 경로 p.168, 김화진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공룡의 이동 경로」 ◦ 175
솔아의 팔은 너그러웠고 그곳에서 고독하고 묵묵하게 살 수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나는 그곳을 떠나왔다. 그건 아주 힘들었지만. 나는 괜한 것이 궁금했고 그걸 참지 못했고 결국 솔아의 눈꺼풀 뒤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솔아의 시선이 궁금했다. 나는 너무 작았고 작은 채로 솔아의 팔목 안쪽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주로 목소리들을 들었다. 솔아를 둘러싼 목소리들. 솔아는 가끔 어떤 목소리나 어떤 순간을 마주하면 슬퍼지는 것 같았다.
공룡의 이동 경로 p.182, 김화진 지음
나는 마음에 관한 숙어는 다 별로라고 생각했어. 그중 ‘마음을 연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지. 그 말이 가장 오만하다고 생각했어. 왜 대부분 이렇게 쓰이잖아.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가 힘들었는데······” “마음을 여는 데 좀 오래 걸리는 편이거든요” 별별 이유가 있겠지만 다 알겠고 마음이 그렇게 열리고 닫히는 거라면 그 문고리를 자기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싫었어. 얄밉고 억울했어. 야 나는 뭐 좋아서 니 마음에 대고 매번 노크하고 그 마음 앞에 찾아가고 기웃거리는 줄 아니. 나도 열 줄 알아. 나도 마음 뒤에서 문고리 잡고 열까 말까 고민할 줄 안다고.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어.
공룡의 이동 경로 p.189, 김화진 지음
여전히 마음이 열리고 닫히는 그런 거라서 누가 영영 닫아걸어 잠그면 불가능하겠지만 말이야.그 말도 결국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말 아니겠니. 네가 지원의 손끝에서 나온 것처럼. 지울 수 없을 것 같던 네가 훌쩍 떠나 갔다면 이을 수 없던 것도 슬쩍 이어지기도 하겠지. 지금 나에겐 그런 믿음이 있다.
공룡의 이동 경로 p.197, 김화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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