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2주차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들 어디쯤 도달하셨나요?
담당 편집자가 백미로 꼽는 3장 "가족 내 정치"를 읽고 계신 분들의 의견이 무척 궁금합니다. 우리가 가장 사적인 장소이자 관계로 여기는 '가족'을 '정치'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무엇이 불편하고 또 무엇이 가능할까요?
신성아 작가와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함께 읽기
D-29
마티
화제로 지정된 대화
마티
모임이 조용하니, 제가 작가님께 질문을 던져볼게요.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에 정말 많은 책이 등장합니다. 작가님께서 가장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을 꼽으신다면 무엇인가요?
카라멜장미
서막부터 1막까지 읽고 참여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이제야 들어와 보았네요. 지금 막 2막과 3막까지 연달아 읽은 참 입니다. 아이가 아픈 이야기다 보니 뭔가 말을 꺼내기가 어렵고 고통스러워 쉽게 글을 쓰기가 주저 되었습니다.
하지만 2막과 3막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건 여성의 돌봄에 관한 이야기(이 부분에서는 성격은 좀 다르지만 돌고래 출판사의 <돌봄과 작업>이 많이 생각 나기도 했습니다), 가부장적인 가정내에서의 차별적인 여성의 일과 육아 그리고 가사노동에 관한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공감하는 내용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고 평소에 불공평하고 불편하다고 생각되어 왔던 점들에 대해서 너무 속 시원하게 집어 주셔서 공감과 분노의 밑줄 그어가며 따라 읽었습니다.
특히 100페이지에 <돌봄의 현장은 언제나 처절하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똥기저귀처럼 추하다. 그런데 이 체험에 동참하지 않고 부정하며 아름다운 환상으로 돌봄의 정의를 새로 내리는 한국식 라떼파파의 태도가 바로 키치다. 독박육아의 현실을 부정하고 말뿐인 가사분담, 공동육아를 앞세우며 좋은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으로 행세하려는 허위가 바로 키치다. 그들은 돌봄이 어떤 것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끝내 모른다> 이 부분은 자신은 진보적이며 평균 이상이라고 착각하는 한국 사회의 남편들과 아빠들을 잘 지적한 글 같아 많이 공감했습니다.
결국 남편을 이해하시려는 노력끝에 타협에 이른 <타협은 패배가 아니다>장 에서는 타협이 이상적인 결과도 아니고 매우 어려우며 책임이 따르지만 정치적 말과 행동이 가장 성숙한 형태의 의사소통이니 그것이 가장 유용한 방법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신성아
@마티 반가운 질문입니다! 제 책이 너무 무거워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려우셨다면 우리 다른 책들을 화두로 대화를 이어가봐요 :) 사실 제게 가장 강렬했던 책은 록산 게이의 <헝거>였어요,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데 도저히 읽기를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2막 '돈버는 여성' 부분을 쓰게 한 트리거였달까요.
아이를 돌보는 과정 내내 수시로 떠올렸던 책은 매들린 번팅의 <사랑의 노동>이었고요, 앤 보이어의 <언다잉>은 윤이를 이해하는데 엄청난 도움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번외로 갑자기 추워진 날씨, 이불 속에서 읽으실 책을 찾으신다면 도리스 레싱의 모든 소설들을 권합니다 :)
문지
처음 록산게이의 <헝거>를 읽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정말 크게 한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올해는 <헝거>를 다시 읽고 싶네요. <사랑의 노동>과 <언다잉> 역시도 읽어보겠습니다.
신성아
@카라멜장미 저 사실 100페이지의 키치 부분을 처음 쓸 때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건 너무 심한가'라고도 잠깐 생각했었는데요. 불평등과 차별이 점점 교묘해지는 마당에 그에 대한 비판도 업데이트 하자는 심정으로 폭풍처럼 써내려갔습니다.
밤뱅기
책은 교보문고에서 주문하고 거의 일주일을 기다려 받았습니다. 첫 장을 읽고 덮었습니다. 오래 전 몹쓸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나와 나를 바라보던 부모님의 얼굴, 엄마가 아빠가 했던 말, 그 방안의 공기, 그때 읽던 책, 의사들의 말, 간절했던 기도, 그때 끄적였던 일기 등등이 감당할 수 없이 뒤죽박죽으로 밀려왔거든요. 어이없게도 겨우 한 쪽 읽고 눈물이 나 버렸습니다. 며칠 뒤 오늘, 다시 펼쳐 몇 쪽을 더 읽었습니다.
마티
힘겨우시면 덮어두셔도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조금 가뿐해진 날에 다시 들춰볼 수 있으실 테니까요. 책은 도망가지 않으니까 지금 붙잡지 않으셔도 돼요-
해나아
'토닥토닥'을 보내드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마티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신성아 작가 북토크가 열립니다.
📍일시: 2024년 1월 30일(화) 저녁 7시 30분
📍장소: 밝은책방(서울 관악구 봉천로 540-1 2층)
📍신청: https://forms.gle/McVWcww12L8mxsNv6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아요.
✦ 여자의 사랑은 왜 인정투쟁이 될까?
✦ 한국에서 돌봄은 어떤 이슈들과 얽혀 있을까?
✦ 특히 ‘아이’는 돌봄의 주제일까, 대상일까?
✦ 돌봄과 의존의 가치에 대한 고민
등등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마티
<오 마이 뉴스>에 신성아 작가님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정치일 수 있는지, 작가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사입니다. 책과 함께 읽어보세요!
https://v.daum.net/v/20240119060602844
제이치
인터뷰 정독했습니다. 공유해 주셔서 감사해요.
jjaann
“ 당사자도 모르는 새 쉼없이 형태와 성분을 바꾸는 사랑, 그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 자체가 난제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사회계약를 맺으며 영원한 사랑을 공약하지만 사랑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 로맨스에서 돌보는 마음까지,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신성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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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aann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기대는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 이어진다.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 로맨스에서 돌보는 마음까지,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신성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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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아
저도 이 부분 좋았어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과정과 현상과 기분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구나 싶고요.
jjaann
저도 그랬어요. 표현하기 어려웠던 마음이나 어떤 상태들에 대해 작가님이 깔끔하게 정리해준다고 자주 느꼈어요!
jjaann
어느 한쪽이 권력을 독점하고 책임을 회피하면 타협은 결렬되고 정치는 실패한다. 정치의 실패는 사랑을 무너뜨린다.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 로맨스에서 돌보는 마음까지, 찬란하고 구질한 질문과 투쟁에 관하여』 신성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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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anngg
3막까지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육아와 관련해서 저 또한 스타일의 차이, 정도의 차이라는 논리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 '내버려 둬라' 말하면서 아내인 '내'가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 하면 '저'는 그 차이라는 말을 통해서 정작 '돌봄'을 회피하는 자였습니다. 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면서 가부장적 습성을 버리지 못한 키치 그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보니, 또 뭔가 별로입니다. 완전히 뒤바뀐 어떤 상황, 예를들어 제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아내가 밖에서 돈을 번다고 해서 해결 될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아내는 어떤 점에선 슈퍼맘이 될 것이고 남편은 온전히 아이들을 돌보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끊임없는 정치적 투쟁의 연속이지 않을까합니다. 어느 선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상대적 강자인 남성은 '어떤 말'을 불편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젠더적 구조을 바라보고 '그 말'을 환영해야할터인데, 그럼에도 고민입니다.
그 균형이라 불리는 것은 아주 잠깐 찾아왔다 사라져 버릴 뭔가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그 균형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남성은 정녕 그 균형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걸까요?
참고문헌
어떤 균형도 완성형으로 있을 수는 없겠죠. 말씀하신 대로 성역할을 뒤바꾸는 것이 균형은 아니니까요.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아이는 자라고 보호자는 나이 들며 더 나이 든 가족 구성원의 질환 등 상황은 변화하니, 돌봄의 과제도 변화하잖아요. 이때 각각의 정보 를 수집하고 해석하고 가계 예산을 분배하고 시간을 쏟는 일이 본능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돌봄 영역에서 여성에게 더 많은 기대가 쏠리고, 실제로 감정적, 물리적 노동을 여성이 훨씬 많이 투여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저는 결국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성이 '돌봄의 대상'으로 얼마나 많은 수혜를 누려왔는지(여기서 '남성'이란 개개인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구조적 혜택을 받는 보통명사 '남성'을 뜻합니다)를 알고, '돌봄의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이 자기 인식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게 결국 문제네요.
음,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나 실비아 페데리치가 주장하는 것처럼 돌봄 노동의 임금화(가족 내 노동을 포함)는 어떤가요? 이게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신성아
@참고문헌 아, 지난 대선 때 기본소득 논의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가사노동임금' 이야기도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잉여가치로 따지자면야 가사노동만큼 착취가 심한 노동이 또 없죠.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사회가 '돌봄'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등가교환할 준비가 되어야만 돌봄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으리라 봐요. 그 교환 형태가 임금이든 지역 화폐든 우리 사회가 돌봄의 '경제적' 가치를 서둘러 인정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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