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 김복희, 희망은 사랑을 한다

D-29
출판사: 문학동네 (문학동네시인선 144) 분야: 시 저자: 김복희 제목: 희망은 사랑을 한다 발행(출시)일자: 2020.07.20 목차: 시인의 말 1부 기껏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귀신 하기/ 지수/ 머리가 셋 달린 개/ 신의 술/ 사랑하는 신/ sober companion-숨은 낭독자/ 왼손이 하는 오른손의 일/ 엽서를 봉투에 담는 사람의 마음/ 취한 배/ 세라핀의 꽃, 꽃의 세라핀/ 인조 노동자/ 희망의 집에는 샤워볼이 있다/ 종모법/ 완두콩 공주/ 더 둥글고 더 예뻤다-J에게/ 여행하는 눈 2부 우리는 밤에 싸우는지 밤과 싸우는지 천 원이기/ 국화와 가을/ 여름을 보호하기/ 관광버스 멈추기/ 맞닿은 몸/ 내 친구의 손가락/ 좋은 말 좋은 꿈/ 보면/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도나우강_증기선_회사_선장의_미망인/ 새 소식/ 당신이 원하는 사람/ 꽃과 나무, 할머니의 노래/ 집회/ 데츠로와 나/ 세라핀의 흰 물감-해변에서 잠들기 3부 서성이며 일렁이며 만지는 마음 끝까지 읽을 사람/ 귤 까기/ 상을 엎기/ 받침/ 당신은 사랑을 하는군요/ 구름이 바라본 나와 내 친구들의 집/ 아름다운 베개/ Namenlose ring/ 공-독(void)/ 따뜻한 튀김/ 신의 잠/ 소감문 쓰기/ 산더미만큼 쌓인 사과/ 섬집 아기들/ 핏기/ 두 명/ 불/ 바람에 흔들리는 유리 종 삼키기/ 피고용인 잭이 마침표로 읽을 문장은……/ 검은 비둘기 해설| 낯선 주체들의 탈주 | 김영임(문학평론가) 책 소개: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 귀신이 안 되려고 노력하는 모양이 안됐다 기껏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가엾다” -새로운 ‘-되기’를 실험하는 낯선 주체들의 탈주 문학동네시인선 144 김복희 시집 『희망은 사랑을 한다』를 펴낸다.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발명의 시”라는 평을 받으며 2015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언어의 부유는 언어의 의문이 되고, 언어의 민첩함은 언어의 주름이 된다. 이렇게 그의 언어에 대한 자각은 말과 사물의 분열로부터 시작된다”(이수명 시인, 해설에서)는 평이 더해진 첫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을 펴낸 것이 2018년의 일. 2년이 지나 묶는 두 번째 시집에는 총 52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담겼다. 부 제목에서 이번 시집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바, 1부 ‘기껏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2부 ‘우리는 밤에 싸우는지 밤과 싸우는지’, 3부 ‘서성이며 일렁이며 만지는 마음’이 그것이다. 기껏 인간을 좋아하는 것이 ‘가엾다’ 말하는 사람, 천 원을 손에 쥔 채 ‘천 원을 가지는지 천 원으로 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가지는지 생각’하며 어느 밤 싸우듯 골몰하는 사람, 불 앞에 선 채 서성이며 일렁이며 어떤 마음을 만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새로운 궤적을 찾아 나서는 이 인물들이 낯설면서도 기이한 흡인력으로 이끄는 곳, 함께 따라가보자. 출판사 서평: 많이 좋아하면 귀신이 돼 복숭아 귀신 곶감 귀신 그런 것이 한집에 둘이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같이 사는 게 귀신이 아니면 조금 어색하다 약봉지가 서랍 하나를 다 채울 정도로 많아지기에 자네, 이제 약 귀신이 되려나 인사했더니 좋아하는 것이 없어 약을 먹기 시작했네, 빙그레 웃었다 좋아는 하는데 귀신은 되지 않으려고 그러네, 몸이 힘들어 약을 먹어야 한다네, 모를 소리를 하고 그러고는 출근해버렸다 퇴근하면서 가끔 술이며 초콜릿을 가져다주기도 하니 소원이 있거나 겁이 많은 친구일 것이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 귀신이 안 되려고 노력하는 모양이 안됐다 기껏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가엾다 _「귀신 하기」 전문 시집의 첫 번째 자리에 놓은 시. 복숭아나 곶감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복숭아 귀신’ ‘곶감 귀신’이라고 부른다. “많이 좋아하면 귀신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의 화자는 ‘귀신’일 터인데, ‘자네’라 불리는 대상과의 관계가 묘하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 귀신이 안 되려고 노력하는” ‘자네’, 어쩌면 ‘자네’는 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지. “몸이 힘들어 약을 먹어”가며 출근하는 시인은 집에서 그를 관찰하는 귀신과 동거중인지 모른다. 그 귀신은 무엇을 많이 좋아해 귀신이 되었나. 만약 ‘읽고 쓰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인간을 너무 좋아’해서 귀신이 된 거라면, ‘자네’와 ‘귀신’은 같은 처지 아닌가. “시 역시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동시성을 알지 못했을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서로 교차하면서 시가 시작되고, 이때 우주의 한 조각이 마치 처음인 것처럼 모습을 드러낸다”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말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김복희 시인의 섬세한 감각, 그것이 만들어내는 다종다양한 주체들을 새로이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시 「지수」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읽어봄직하다. “옆집 사람들이 새를 기르는 것 같다 이사온 날 못 보았으니까 나는 영원히 옆집 사는 새를 보지 못할 것이다” 생각하는 화자는, 옆집에서 들리는 “지수야 엄마 왔어” 소리를 듣고 새 이름이 지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수’가 여자아이건 남자아이건 새이건, 누군가에 의해 ‘길러지고’ 있다는 데서 매한가지인바, 집이라는 좁은 세계, 새장이라는 좁은 세계에 갇혀 있다는 데서 매한가지인바, “지수가 새장에 덮인 천 가운데서 새답게 얕게 자다가 문득 옆집에서 기르는 나를 나만큼 생각하면 좋겠다”며 화자는 묘한 동질감을 끌어안고 옆집에서 나는 소리에 귀기울인다. 영원히 비가 오지 않는 곳이 있다 크게 짖어도 돌아오는 소리가 없고 열지 못하는 문이 있을 것이다 내가 지키는 문 내가 주인은 아닌 문 몸 지옥의 내부 지옥이 무너지고 난 후 지옥에 깃들었던 문틈을 본다 누군가 꿈같이 종이를 밀어내어 문밖으로 종이를 조금, 밀어내놓은 것이다 개 주인이 보고 가장 먼저 본 머리가 먹어, 그런다 그걸 시라고 피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_「머리가 셋 달린 개」 부분 ‘귀신-자네’ ‘지수-나’처럼 가깝고도 먼 관계에 이어 세 번째로 놓인 시 「머리가 셋 달린 개」에 이르러서는 한 몸에 달린 머리 셋이 등장, “지옥에 깃들었던 문틈”으로 내민 종이, 그것을 “가장 먼저 본 머리가 먹”게 되는데, “그걸 시라고 피부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메타시로까지 확장해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시집의 맨 앞 세 편의 시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낯선 모습의 주체들이 맺는 생경하고 기묘한 관계들이 김복희 시인 특유의 방식으로 직조돼 있다. 전보다 선명하고 구체적이며, 여전히 아름답고 서늘한 언어들로. 일상을 비일상으로, 안정을 불안정으로, 가지런함을 불규칙함으로, 그 모든 것을 또 반대로 배치하고 또 재배치하며 익숙한 관계의 사이를 잘라내고 그 틈에 새로운 궤적이 그려지는 것을 따라가보는 일이 김복희 시세계의 여행법이리라. ‘새 인간’ ‘기계 인간’ ‘인조 노동자’ ‘귀신’과 같은 분열적 형태로 나타나는 김복희의 시적 주체들과 대상들은 그것들의 발명 자체로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열증적 주체는 ‘-되기’를 통해 욕망의 탈영토화를 실현하기 위해 탈주한다. 변화한 주체들은 분열을 넘어서서 타성에 젖은 습관적인 관계 맺음을 거부한다. 결벽증처럼 읽히기도 하는 그들의 속성은 가장 순수한 ‘사이’를 꿈꾸는 궤도에 오르기 위한 필요조건일 수 있다. 우리는 오염된 관계의 속성을 알면서도 오랜 시간 그 흠결을 이데올로기로 포장해왔는지도 모른다. 김복희는 그 장막을 걷고 탈주선을 찾기 위해 새로운 ‘-되기’를 계속해서 실험중이다. -김영임, 해설 「낯선 주체들의 탈주」에서 시란 ‘무엇에 관해’ 쓰는 것만은 아닐 터, ‘무엇을 향해’ 쓰이느냐에 방점을 찍고 이어지는 시편들을 감상하길 권한다. 그러다 「희망의 집에는 샤워볼이 있다」에서 시집의 제목이 된 시구 “희망은 사랑을 한다”를 마주한다면 잠시 머무르며 ‘희망’의 집을 들여다봐주길 바란다. “사랑을 보여달라고 하면” “놓고 간 물건”을 보여주는 ‘희망’의 이야기를 말이다. 희망은 사랑을 한다 희망은 아주 약한 사람처럼 더 많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보여달라고 하면 네가 놓고 간 물건을 보여준다 나는 희망의 집에서 몸을 씻는다 누군가 희망의 집에 놓고 간 회색 샤워볼 땀에 젖은 운동 셔츠처럼 처박혀 있던 것 아무는 듯 물에 적시자 어두워졌다 바보가 되는 걸 두려워하면 바보가 된다 그러면 말이다 희망아, 희망이 되는 걸 두려워하면 희망이 될까 나는 겁이 없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 그 누구도 나보다 강할 수는 없다 _「희망의 집에는 샤워볼이 있다」 부분 ‘나의 사랑하는 새 인간’에서 시작한 김복희의 사랑은 ‘희망은 사랑을 한다’에서 이렇듯 ‘희망’과 ‘운명’ ‘(귀)신’으로 확장된다. 김복희식 ‘-되기’의 영역에서 사랑은 어떤 감정 혹은 상태 혹은 차원의 일인가. 사랑을 보여달라고 하면 그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까. 너무 좋아해서 귀신이 될 것 같은 것을 보여줄까. 그 대답을 품어보며 같은 시집을 저마다 다르게 읽게 될 당신들게 이제 이 시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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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나는 아주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고 싶다. 2020년 여름 김복희
화제로 지정된 대화
1부 | 기껏 인간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태양은 매일이 없게 매일 타오르는 불 시간을 모를 것 같다 저렇게 먼데도 그늘 밖으로 손을 내밀면 이렇게 뜨겁다 영원을 사는 종족은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도 모를 것이다 신은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다
희망은 사랑을 한다 「사랑하는 신」 (p.17), 김복희 지음
얼마나 여름이었을까 어느 만큼이나 여름이었을까 짧아도 밤은 밤이라 말하지 못한 것들은 전부 신경이 된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만져본다 나뭇잎이 들어 있다
희망은 사랑을 한다 「엽서를 봉투에 담는 사람의 마음」 (p.21), 김복희 지음
화병에 놓인 꽃을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신보다 신의 사자를 사랑해선 안 되는 걸까 그림 속의 꽃을 내가 그린 꽃을 독을
희망은 사랑을 한다 「세라핀의 꽃, 꽃의 세라핀」 (p.25), 김복희 지음
희망은 사랑을 한다 희망은 아주 약한 사람처럼 더 많이 사랑을 하고 사랑을 보여달라고 하면 네가 놓고 간 물건을 보여준다 나는 희망의 집에서 몸을 씻는다 누군가 희망의 집에 놓고 간 회색 샤워볼 땀에 젖은 운동 셔츠처럼 처박혀 있던 것 아무는 듯 물에 적시자 어두워졌다 바보가 되는 걸 두려워하면 바보가 된다 그러면 말이다 희망아, 희망이 되는 걸 두려워하면 희망이 될까 나는 겁이 없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 그 누구도 나보다 강할 수는 없다
희망은 사랑을 한다 「희망의 집에는 샤워볼이 있다」 (p.28), 김복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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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우리는 밤에 싸우는지 밤과 싸우는지
약한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세상은 아름다워야지 그래 뭔가 계속 없는 여름도 좋아하기로 했다
희망은 사랑을 한다 「여름을 보호하기」 (p.41), 김복희 지음
너는 나를 슬프게 하는 한 기쁨
희망은 사랑을 한다 「좋은 말 좋은 꿈」 (p.46), 김복희 지음
신에게 물었다 인간은 무엇이냐고 신이 답했다 네가 무슨 꿈을 꾸느냐고
희망은 사랑을 한다 「세라핀의 흰 물감—해변에서 잠들기」 (p.61), 김복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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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서성이며 일렁이며 만지는 마음
내가 사랑을 배우려고 한다면 네가 있다는 것을 배우느라 사랑이 무엇인지 알 틈도 없겠지
희망은 사랑을 한다 / 「당신은 사랑을 하는군요」 (p.72), 김복희 지음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을 미워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오늘은 마침표 대신 이 문장을 백 번······ 넘게 읽었다. 마침표를 「마침표」라고 읽는 것, 거인이 거슬린다고 해서 궁리해 낸 방법이다. 눈으로 만든 거인은 차갑고 아름답고 내가 읽은 문장에 쉽게 상처받는다. 내가 읽은 책에 너무 많이 녹아내리면 거인은 내객을 맞이한다. 내객이 다녀간 날 거인은 늦잠을 자고 나는 눈 속에 두 손을 박아 책을 꺼낸다. 표지를 턴다. 지상으로 사람의 것이······ 내린다. 펄펄 내린다.
희망은 사랑을 한다 / 「피고용인 잭이 마침표로 읽을 문장은······」 (p.97), 김복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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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금) 이번 그믐밤엔 소리산책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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