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1. <사람을 위한 경제학>

D-29
7장에서도 경제학자 열전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이름들이 대거 나오네요. 호치민도 그렇고, 버지니아 울프, 버네사 벨, T. E. 로런스, 장 콬토, 마르셀 프루스트... 20세기 인물은 아니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도 나오고요. 이제 몇 페이지 뒤에서 1920년대 펼쳐지면 헤밍웨이나 올더스 헉슬리 나오려나요?
YG님 말씀 때문에 슘페터가 나올 때마다 어떻게 몰락할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어요. 그런데 ‘크게 거절당하는’ 30대를 보내고 나서 자기 나이 반절의 ‘진정한 사랑’을 만나서 재도약을 하다니... 408~410쪽 읽다가 어이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몰락 과정도 비장미라고는 전혀 없을 거 같은 느낌적 느낌...
하하하. 비장미 없습니다. 사실, 짠한 사람은 어빙 피셔죠. 이제 대공황 편에서 피셔의 몰락이 본격적으로 나오죠. (다같이 예상 못했는데 피셔는 <뉴욕타임스>에서 공적으로 지목하는 바람에;)
6장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6000만 국민의 복리를 맡게 된 사회당 정치가들은 사회주의 경제가 작동되는지 그때껏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326p) "좌우익 논객들은 즉각 슘페터를 기회주의자로 매도했다. <디 모르겐> 기사는 “한 사람이 세 영혼을 가졌으니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는 뜻이었다." (331p) "연합국이 독일을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인다면 “우랄 산맥에서 라인 강까지 도처에서 스파르타쿠스단이 출현할 수밖에 없다.”라고 로이드 조지는 예언했다. 로이드 조지의 암울한 예언은 너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339p) “슘페터는 부유층에 전쟁부채를 부담시키자고 제안함으로써 보수파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다음, 민간기업의 사회주의화는 외국인 투자자 유인과 경제회생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치라고 주장함으로써 사회민주당 각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347p) “연합국은 오스트리아를 독일 못지않게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오스트리아공화국의 생존능력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이미 흔들리고 있던 슘페터의 위신까지 산산조각 냈다. 슘페터는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 순진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일기에 자기는 정치적 현실에 대한 직관력이 없는 사람이며 ”촉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적었다.”(353p)
케인스는 20대의 대부분을 영국 주재 소국 통화 전문가로 보냈다. 통화에 대해서 생각함으로써 그는 ‘무역’이나 ‘노동’이나 ‘산업’등을 따로따로 생각하는 대신 경제를 총체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익혔고, 아울러 몇 가지 지표를 근거로 핵심적인 결론들을 도출하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통화에 대해서 생각함으로써 그는 어떤 유의 정부 조치들이 특정 산업이나 특정 집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조수에 영향을 미치는 달처럼 전 체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감각을 얻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7장, 366p,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케인스가 보았을 때, 전쟁이 아니었더라도 생활수준의 지속적 향상이 오래 계속될 수는 없었다. 유럽이 번영한 이유는 기업가들과 다량의 자금에 우호적 환경을 제공하는 경쟁이라는 “교묘한 메커니즘”덕분이 아니라 성장 장애물을 일시적으로 제거해준 역사적 우연 덕분이었다. 유럽이 싼값에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다량의 수출 가능한 잉여 식료품 덕분이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7장, 389p,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전쟁으로 인해 케인스는 통념을 더욱 불신하게 되었고, 진보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게 되었다. 경제적 현실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정부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가혹한 교훈을 얻었던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경제기적은 생산력의 빠른 성장과 생활수준의 극적 상승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자유로운 경쟁과 아울러 모종의 정부 조치들이 행해졌던 덕이었다. 이러한 교훈을 익히 알고 있던 케인스는 정부가 어떻게 번영을 회복할 책임을 무시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7장, 391p,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불황을 실패의 신호이자 불안정의 원천으로 보았다. 슘페터는 정반대의 관점을 취했다. 순환은 발전의 원천이므로, 불황은 건강한 현상이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8장 기쁨 없는 거리: 빈의 슘페터와 하이에크,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버지니아 울프가 열성적인 우생학자였군요... (452쪽) 1970년대 이후의 우생학과는 다른 거라고 설명이 붙어 있기는 합니다만.
이 책에 나오는 "우생학은 초당적 대의"(451p)라는 내용을 읽자니, 전에 읽은 책들이 떠오르네요 <오펜하이머>에 나왔던 "공산주의"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들이 대세였던 시기 - 진보적이거나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가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강하게 믿었던 얘기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우생학"을 유명 대학들에서 가르치고, 사회적 대세로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얘기며 "내가 받은 전체 교육과정 가운데 이 나라가 우생학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우생학은 미국식 신여성과 포드 모델 T 못지않게 미국 문화의 두드러진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비주류가 아니었고, 당파를 가리지 않았으며, 20세기의 첫 다섯 대통령이 모두 우생학의 밝은 전망을 찬양했고, 하버드부터 스탠퍼드, 예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프린스턴까지 전국의 모든 명망 있는 대학들에서 우생학을 가르쳤다."(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85p) 반유대주의도 나치때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계속 있었다는 얘기도 기억나서,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1인으로서 우생학, 반유대주의에 대한 역사서가 있으면 읽고 싶어지네요:: 우생학이나 반유대주의의 어떤 면이 사람들을(우생학의 경우는 진보적인 페이비언들까지) 끌어당겼는지 .. 궁금하기도 하구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드는 불금입니다. ㅠㅠ
우생학의 역사를 놓고서는 놀랍게도 그 주제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호연 선생님의 국내 저서가 있어요. 영국, 미국, 독일을 중심으로 19세기 후반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우생학의 역사를 정리한 책입니다. 제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소개하면서, 함께 읽을 책으로 여러 차례 권하기도 한 책이죠. 장애학에서도 우생학은 아주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장애와 유전자 정치』는 원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유전자 정치'라는 키워드로 우생학부터 최근의 유전학까지를 훑고 있는 책이에요. 김호연 선생님 책과 함께 읽으면 20세기 우생학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사르도 지적하듯이, 당대의 좌파(?) 지식인마저도 우생학의 대의를 공감했다는 게 우리로서는 놀라운 일인데요. 특히, 우생학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기는 데에 적극적인 이들은 당대의 좌파 과학자였습니다. 축적되는 유전학의 지식으로 인류를 진보시킬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오늘날 트랜스 휴머니즘으로 이어지죠. 특히, 『과학 좌파』의 앞 부분에서는 영국의 좌파 지식인이 우생학에 심취한 맥락을 살필 수 있어서 유용합니다. 세 책 다 서점에서도 구매할 수 있고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니 한 번 살펴보셔도 좋겠어요.
유전의 정치학, 우생학 - 강제 불임에서 나치의 대학살까지우생학의 형성, 이론적 근거, 다양한 실천, 그리고 사회적 영향을 영국, 미국, 독일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 및 생물학주의가 역사적으로 사회에 미친 영향과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장애와 유전자 정치 -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12권.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우생학적 횡포를 나치 때나 같은 과거의 일로 치부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책 <장애와 유전자 정치>는 우생학이 첨단 유전 기술과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념과 만나 더욱 세련되고 암묵적인 시스템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폭로한다.
과학……좌파왼쪽으로 가는 과학자들의 20세기 사회운동사. '이매진 시시각각'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영국에서 활동한 과학사가이자 급진 과학 운동에 투신한 활동가이기도 한 게리 워스키가 2007년에 발표한 논문을 옮긴 책이다.
추천해주신 책들 모두 관심 책장에 담았습니다. 우생학이 현재의 트랜스휴머니즘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정말 그렇네요! 좌파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우생학을 주장했다는 사실은 몰랐고 이유도 궁금해집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을까요.
추천 감사합니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케인스가 볼 때 불황이란 자동차 고장이 그렇듯 사고와 정책 과실에서 비롯되는 결과였다. 불황으로 야기되는 생산의 낭비는 마치 시간 낭비처럼 영구적인 낭비, 만회할 수 없는 낭비, 그냥 낭비였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10장 시동불량: 대공황의 케인스와 피셔,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불황에 대한 케인스의 생각들을 읽고 있으니 저 역시 불황을 도덕주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호황은 여름이자 거품이고, 불황은 반드시 와야 하는 겨울이고 재조정의 시기다, 호황 때 베짱이처럼 흥청망청하면 불황에 고생한다, 호황에 거품에 취한 사회는 불황에 더 타격을 입는다, 그런 식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19 시기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를 때에도 ‘저거 다 버블이고 언젠가는 터져서 한국 사회에 큰 탈을 일으킬 거야’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황을 없애고 영구적 사이비 호황을 유지’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조금 얼떨떨하기도 합니다.
476쪽, 노년에 경제적 재앙을 맞고 오히려 활기차게 글을 쓴 피셔. 본받고 싶습니다.
오스트리아의 하이에크와 슘페터는 경제가 어떻게 불황에 이르게 되었나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황을 불황에 선행한 호황의 맥락에서 설명했다. 반면, 케인스는 불황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케인스는 제약 없이 경쟁하는 자유시장경제에서 고실업과 유휴 생산 능력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좀 더 근본적인 미스터리에 관심이 있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10장 시동불량: 대공황의 케인스와 피셔,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이제 이 책도 후반부로 치닫고 있어서 슬슬 2월에 함께 읽을 책도 고민해야 하는데요. 『사람을 위한 경제학』을 다시 읽어 보니, 1970년대 이후 흔히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극단적인 시장 중심의 자유 방임 경제학의 득세를 다루는 부분이 아무래도 약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비교적 최근인 2019년에 바로 그 대목에만 초점을 맞춘 경제학 대중서가 한 권 나왔습니다. 『경제학자의 시대』! '경제학자의 시대'는 슘페터 평전(『혁신의 예언자』)을 썼던 토머스 매크로가 다른 책에서 썼던 용어를 저자 빈야민 애펠바움이 차용한 것인데요. 저자는 칼 폴라니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2008년까지 극단적인 시장 중심의 자유 방임 경제학이 어떻게 부흥하기 시작했고, 어떤 일을 했으며, 또 어떤 문제를 낳았는지 추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을 중심에 놓고요. 『사람을 위한 경제학』만큼의 발랄함은 없습니다만, 경제학 교양서 치고는 상당히 가독성이 높아요. 또 『사람을 위한 경제학』으로 1월에 연습을 한 번 하셨으니 연속해서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순서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떠세요? 700쪽이 넘는 책이긴 합니다만, 엄청난 분량을 차지하는 아주 자세한 후주를 빼면 본문은 550쪽 분량이라서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한 번씩 살펴보시고 의견 주세요.
경제학자의 시대 -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경제학설사보다는 《러시아 혁명사》에 더 가까운, 논쟁과 모험과 행동과 사회의 대변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극과 같은 책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동부터 패배까지의 40년을 정밀 지도처럼 입체 추적한 이 책은 경제 저널리즘의 백미이며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흥미진진한 역사서이다.
저는 좋습니다! 700쪽이 넘어서 더 좋네요(벽돌책 칼럼에 써먹을 수 있어서...). ‘거대한 활극과 같은 책’, ‘경제 저널리즘의 백미’라는 책 소개 문구에도 끌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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