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을 엄청 열심히 할 때, 『작은 아씨들』(1868) 『오즈의 마법사』(1900) 『빨강 머리 앤』(1908) 등을 놓고서 소설 속 등장 인물(조, 도로시, 앤)을 등장시켜서 가상 대화로 기사를 쓴 적이 있었어요. 그 한 대목입니다.
(아래 가상 대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실제로 프랭크 바움은 아주 강한 금본위제 반대자였어요. 그래서 소설 속의 노란 벽돌 길은 금본위제, 그리고 그 노란 벽돌 길을 따라 가는 길은 기득권과 허상을 옹호하는 일, 악인(동쪽 마녀, 서쪽 마녀)은 금본위제 옹호자(정확히 말하면, 기득권 옹호자) 등을 염두에 뒀다는 적극적인 해석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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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 지난 100년간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을 대표하는 환상 소설처럼 인식되었고, 또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지면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어요. 하지만 언론인이었던 프랭크 바움 할아버지가 이 소설을 쓸 때는 당대의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요소가 곳곳에 있었거든요.
『오즈의 마법사』가 나온 1900년이 어떤 시점인가요? 마크 트웨인이 『도금 시대(The Gilded Age)』(1873)라고 불렀던 시대(1865~1901년)의 끝물이었어요. 이 시대에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모든 사람을 탐욕의 화신으로 만들었고, 미국이 바로 그 무대였습니다. 그 시대의 가장 성공한 탐욕가들이 바로 우리가 자본주의 정신의 원형이라고 묘사하는 카네기, 록펠러, 모건 같은 이들이고요.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바로 이런 미친 시대를 꼬집는 상징으로 가득해요. 예를 들자면, 허수아비는 급속한 산업화로 그 입지가 좁아진 농민을, 양철 나무꾼은 노동자를 상징합니다. 겁쟁이 사자는 미국-스페인 전쟁(1895~1898), 미국-필리핀 전쟁(1899~1902)에 반대한 평화주의자 혹은 백인과는 다른 모습의 아프리카,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뜻하지요.
오즈를 지배하는 '오즈의 마법사'는 기득권을 가진 이들의 편에 선 당대의 대통령들이었습니다. '도금 시대'의 미국을 상징하는 에메랄드 성은 어떤가요? 사실은 초록색 안경을 벗으면 환상이 깨지는 곳에 불과했잖아요. 바움 할아버지는 평범한 미국인을 상징하는 도로시가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와 '더불어 함께'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이 허상을 깨는 과정을 그린 거예요.
조 : 그 역시 당대 미국인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경쟁' 대신에 '연대'를 강조한 것이니 이단적이었지. 실제로 바움 할아버지가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를 동경하였고,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시어도어 루스벨트 같은 진보적 정치인을 지지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면 그런 해석이 무리한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면, 지난 100년간 미국을 대표하는 『작은 아씨들』이나 『오즈의 마법사』가 당대의 반골들에 의해서 창조된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네. 사실 여성 해방, 노동 해방, 농민 해방을 역설한 '빨간책'이었는데 말이야!
도로시 : 바움 할아버지는 『오즈의 마법사』 후편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역시 독자의 요청으로 계속해서 오즈 연대기를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총 열네 권의 방대한 오즈 연대기가 탄생했지요.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의 뒷얘기가 궁금한 독자 입장에서야 즐거운 일이었겠지만, 그 뒤편은 애초 『오즈의 마법사』에 담긴 이런 전복적인 상징이 많이 약해졌죠.
조 : 당연하지. 바움 할아버지도 돈맛을 안 거지. (웃음)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1. <사람을 위한 경제학>
D-29
YG
장맥주
크리스마스 캐럴 은 맬서스에 대한 비판이었고! 오즈의 마법사 는 금 본위제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 독서 모임 하다가 머리를 여러 번 얻어맞습니다. 머리 얻어맞는 느낌을 느낌표로 표현해봤습니다. 정말 그저 신기할 뿐... ^^;;;
느려터진달팽이
크리스마스 캐럴이 으뜨케 맬서스에 대한 비판이 될 수가 있을까요 ㅠ 잠시 맬서스가 아버지에 대한 반대로 극악한 표현들을 인구학에서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은 그냥 혼자 ㅋ 가진 적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소피아
YG님 글 을 두 번 정독 후 좀 찾아보니, 역사학자들이 <오즈의 마법사>의 정치적 알레고리에 대해 제각각 해석을 내놓은 것 같은데 프랭크 바움 본인 생각도 좀 궁금하고요 (음흉한 할아버지 같으니!)
오즈(Oz)가 금이나 은의 무게 단위 ounce 약어라는 대목 @.@ 에메랄드 성은 달러 지폐 배춧잎 색깔이랑 비슷해서 설정한 거라고.@.@ 노란 벽돌길은 금본위제, 실버 구두는 은본위제를 상징한다는데 다시 한 번 기절초풍하고 갑니다. 앞으로는 올드팝 goodbye yellow brick road만 들어도 금본위제를 떠올릴 판입니다. 하아- 순수한 마음은 이제 안녕~
장맥주
Over the rainbow는 앞으로 어떻게 들어야 하나요...
기실 가짜였음이 밝혀지는 믿었던 마법사는 공화당의 클리블랜드 대통령이라고 하 네요. ㅠ.ㅠ
바나나
이 얘기 전에 한번 YG님이 해주신거 같은데...다시 읽어도 재밌고, YG님은 대체 모르시는게 뭔가요. 매일매일 놀라는 중. 이제 그만 놀랄때도 된거같은데 말이죠.ㅎㅎㅎ
YG
저는 운전을 못합니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듣고요; (맨날 욕먹어요.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1년 정도 살면서 정말 최고로 욕 많이 먹었어요.)
느려터진달팽이
그렇군요!
느려터진달팽이
백년 전에 ㅋ 복지정책 공부할 때 북유럽 사민주의 social democracy와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 이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극단적인? 사회주의의 연대적 측면을 가져와서 어떤 온건한 공동체를 만들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되는건가 했는데요. 역시 하지 말라셔서 ㅋ 못했었는데 나중에 혼쟈^^ 샌델을 파다가 그가 말하는 공동체주의가 그런 지향점을 가지는 건가? 둘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했지만 스승이 없어 진전은 못봤네요;
그나저나 <오즈의 마법사>는 집나가면 ×고생이라는 당연한 결론을 온몸으로 체득하게 해쥬는게 아니었고;; 저리 심오한 이론적 싸움들이 있었다니요! 😭
시어러
해석 잘 물어봐주셨네요 오즈의 마법사가 그런내용이었다니 @YG 설명 감사합니다
소피아
헉, 이 무슨 동심파괴 모먼트입니까? 제가 <오즈의 마법사>를 안 읽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크한 어른들의 세계가 있던 이야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전 도로시가 동네방네 친구들 모아 어디론가 가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 어린이용 로드 무비인줄;;;; 아래 보니, 14권이요? 프랭크 바움 (이 분 이름도 몰랐음)은 20세기의 조앤 롤링이었나요?
지금 놀라서 기절 중인데, 정신줄 다시 챙긴후 아래 길게 쓰신 글 정독해보겠습니다.
장맥주
새삼스러운 말씀이지만 어떻게 이런 책들 다 아시고 읽으시는지 매번 신기합니다. 존경심이 절로 듭니다. ^^
YG
정말 근본 없는 책읽기죠; 심지어 요즘엔 읽은 내용이 기억도 안 나고, 막연한 인상만 남아 있어요. 『철학, 마법사의 시대』 같은 책은 작가님도 좋아하실 듯!
장맥주
근본 있는 독서란 뭘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왠지 무섭게 들리는데요! ^^) 『철학, 마법사의 시대』도 제목을 처음 들어보는 책인데 책 소개를 보니 재미있을 거 같아서 마음 속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려놨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YG
어려서 좀 더 체계적인 독서, 공부를 했더라면 지금 사는 꼴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이렇게 망상해보는 거죠. (그런데 저는 엉덩이가 가벼워서 한 분 야를 깊이 파고들지 못하겠더군요;) 『재수사』 같은 작품을 시간과 공을 들여서 쓰시는 작가님이 존경스러울 뿐이죠.
장맥주
저도 제대로 어떤 학문을 공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기자라는 과거 직업도 그렇고, 작가라는 현재 직업도 그렇고, 뭘 잡다하게 읽기는 하는데 그게 체계적인 지식은 아니지요. 20년을 그렇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가 알거나 배웠던 것들은 다 낡아졌고요. 소설가로 정식 데뷔하기 전에는 유학을 가볼까 하는 고민도 잠시 했었어요. 당시에 배워보고 싶었던 학문은 경제학이었는데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거기에 기여를 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이제 평균 수명도 늘어나고 MOOC 같은 것도 생겼는데 나이가 들면 뭘 제대로 공부를 해볼까요. 바둑? 기타? 도덕철학? 기술사회학? 이런저런 공상을 해봅니다. 제 엉덩이도 정말 가벼운데... ^^
느려터진달팽이
저는 장작가님 서 계신 스탠스가 좋은데요~ 글쎄 제가 못해서^^ 저 포도는 시다라는 입장일 수 있겠지만, 아주 예전에 어떤 경제학 박사님께 그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다가 미시적인 주제에만 집중하게 하는(박사논문 주제들) 그런게 말하자면 뺑뺑이 돌리기 아닙니까? 라구요. 젊은 분이셔서 동조하셨던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교수를 하고 계신 지인에게도 비슷한 취지로 질문을 했었는데요. 잡무가 너무! 많으니까요. 공부를 하려고 학자가 되었는데 큰 그림은 못 보시는게 아니냐구요 ㅠ 잘못 던진 질문이었지요; 그 언젠가 줌으로 진행한 공부모임에서도 학계의 상아탑 현상에 대한 입장을 학계에 계신 분께 질문하기도 했었는데;; 역시 부적절한게 아니었나 ㅠ 인정하셨지만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 서 장작가님의 <당선, 합격, 계급>에서 보여주신 문제의식과 이런 엄정한 글이 학계 내에서만 소통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에 질문을 던져 공감을 얻게하는 그 전문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실천의식 촉구까지^^ 저는 그래서 그 책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ㅎㅎ 그 책 읽은 다음부터 당시 열심히 듣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마음만큼은 거의! 정자세로 청취하지 않았겠습니까~:D
쭈ㅈ
책이 오늘(1/9)에야 구해져서 뒤늦게 따라가려합니다. 진짜 벽돌이네요.^^ YG님이 <책걸상> 방송에서 추천하셨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을 도서관에 희망도서만 신청해놓고 읽지 않은/못한 부채감이 남아있는데😅, 이 책은 꼭 완독하고 싶습니다.
장맥주
조금 속도 조절을 해볼까 했지만 책이 재미있어서 그냥 6장을 읽고 있는데 참 숨이 막히네요.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떠올리며 읽고 있는데 츠바이크의 이름이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샌님에 약골에 내성적이고 딱히 길바닥의 생존 재주도 없는 저는 이런 시대가 오면 도태될 사람 1순위일 것 같아요.
장맥주
"어제의 세계"도 살포시 꽂아봅니다. ^^
어제의 세계슈테판 츠바이크의 회고록.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일부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아 출간하는 개정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책에서 1914년, 유럽에서 설마설마했던 전쟁이 어떻게 어이없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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