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1. <사람을 위한 경제학>

D-29
그믐 책 모임, 특히 이 '벽돌 책' 모임은 그냥 눈팅만 해도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책은 나중에 읽으시더라도 함께 하시죠! :)
엥겔스는 호구인가? 마르크스는 교묘한 사기꾼인가? 했거든요. 요런거 좋아요~ 책 읽지 않아도 책에 언급되지 않은 것까지 알려주시네요. 주말에 2,3장 따라갈께요 기대되네요
83~84쪽에서 원고를 독촉하며 잔소리를 하는 엥겔스와 류머티즘, 간질환, 독감, 치통, 채권자들에 종기까지 언급하며 대답을 피하는 마르크스의 찌질한 모습에 엄청 웃었습니다. 아, 남 얘기가 아닌가... ^^;;;
그런데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의 평전의 역자는 서문에서(오늘 읽었어요, 참고서적이 배보다 배꼽), 오히려 그런 지질함에서 마르크스가 대단한 인물임을 찾아내더군요. 관점에 따라 이렇게도 볼수 있구나 하는걸 느꼈습니다.
이 책이 이룬 정말로 소중한 업적이 있다면, 마르크스가 그렇게 프로메테우스가 되어 사당에 들어앉아 모든 '쿨판' 진보파들의 수호신으로 영원히 향 냄새를 맡게 되는 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실패와 실패로 누덕누덕해진 시시포스이며, 그런 구린 땀내를 피우는 '찌질한' 존재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여기에서 19세기 최고의, 아니 전 인류의 모든 지성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의 모습을 본다.
카를 마르크스 - 위대함과 환상 사이 39쪽,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지음, 홍기빈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주말 동안 뒤늦게 시작한 분들은 2장까지 따라오시고요. 다음 주 월요일(1월 8일)에는 3장 '포터 양의 일과 사랑'을 읽습니다. 3장의 주인공은 비어트리스-시드니 웨브 부부입니다. 아마, 이 책에 실린 수많은 경제학자 가운데 (조앤 로빈슨과 함께) 한국의 독자에게는 제일 생소한 등장인물일 겁니다. 하지만! 1. 비어트리스-시드니 웨브 부부는 흔히 독일 비스마르크가 시작했고 영국의 윌리엄 베버리지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현대 복지 국가 아이디어를 내놓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했던 이들입니다. (복지 국가의 할머니-할아버지?) 2. 저자도 강조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싱크 탱크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제로 그것이 가능함을 보였던 이들이고요. (이때 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받았던 정치인이 보수당의 제2차 세계 대전 영웅이었던 '올드 처칠'이 아니라 자유당의 개혁 정치인이었던 '영 처칠'입니다.) 3. 상당한 부와 정치적 영향력으로 오늘날도 명문 대학으로 꼽히는 영국 런던의 런던정경대학(LSE)의 창립자도 이들 부부랍니다. 3장은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남편 시드니 웨브가 아니라 그를 사실상 조종했던(?) 비어트리스 웨브의 시선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정말, 저는 너무 웃겨서 이 장을 읽으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여러분도 즐겁게 읽으세요.
백년 전에 ㅋ 사회정책을 공부한 일이 있는데요~ 그때 복지국가 welfare state의 기틀을 영국은 무려 전쟁 중에 만들었네! 싶었는데, 계속 인용되는 베버리지 보고서는 마치 헌법의 기초와도 같은 세계인권선언 UDHR처럼 후대가 계속 이정표처럼 각국의 상황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형하되 어떤 원형처럼 작용할 수도 있는 그런 보고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했었는데 한 부부였군요^^ 엄청난 커플이네요! 모두가 폐허 속에 잠긴 전쟁의 한 복판에서 국가를 재건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 표현이될까요~
@모시모시 님처럼 저도 2장 앨프레드 마셜 인물 묘사에서 막 웃어었요. "섬세한 이목구비, 비단결 금발머리, 반짝이는 푸른 눈의 한 청년" —> 독자들이 검색할 수 있는 알프레드 마셜의 사진들이 흑백이거나 노년의 모습이라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나사르 씨!   "~ 글래스고 행 기차에 올랐다. 1967년 6월 초순이었다." --> "여름이었다"의 19세기 버전입니까?   직접 공장지대와 슬럼 지역을 둘러보는 마셜의 행보는 1장에 나온 헨리 메이휴와 함께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일에서 이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어느 정도 트레이닝이 된 사람들이 이론에만 목매달지 않고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실제 상황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혹은 실제 상황을 이론과 결합해주는 일 또한 정말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훌륭한 저작물에 깊은 감동을 받는 편이라, 헨리 메이휴와 앨프레드 마셜의 글과 주장들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축구 중계를 보면 뛰어난 선수는 "많이 움직이면서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 가는 플레이를 한다"는 멘트가 자주 나오는데, 마셜 이야기를 읽으면서 딱 그 멘트가 생각났습니다. 이전 학자들이 당면한 문제점을 변화하지 않는 상수로 두고 한계나 필연으로 생각했던 데 반해, 마셜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내며 돌파구를 만들어 가는 듯한 면모를 보이더군요.  세상의 모든 이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거나, 덧붙여지거나, 반박되거나 심지어 잊히기까지 하니, 이론에 앞서 배워야 할 것은 앨프레드 마셜와 같은 관점과 태도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이쯤에서 경제학분야에서의 마셜에 대한 평가가 궁금합니다) 19세기 런던의 최대 뇌관이 '빈곤, 굶주림, 질병'이었다는 부분에서는 11월달 벽돌책 <변화의 세기>의 저자 이언 모티머 씨께서 남기신 진지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 악취, 인구과밀, 거지가 바로 그것이다" 제가 새해 첫 책으로 읽고 있는 책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관찰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사회학자 매슈 데즈먼드의 <미국이 만든 가난>인데요, 그 책에서도 저자가 "세계 제일의 부자나라 미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최악의 빈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장탄식 하고 있습니다. 이 책 1, 2장에 나오는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황이 오버랩되더라구요. “최대의 부에 최악의 가난이 따라오는 것은“ 진화하면서도 반복되는 현상인가 봅니다. (힘을 내줘요, 경제학자 분들!!)
마셜에 대한 평가는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입니다. :)
마셜이 묘사하는 공장 장면과 공장생활은 더 구체적이고 더 섬세하고 더 다양하다. 마셜은 오랜 시간 관찰하고, 제조기법과 급여수준과 레이아웃을 기록하며, 사주에서부터 관리자와 현장인력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질문한다. 마셜이 마주친 문제적 현상(조립라인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효과)은 디킨스와 마르크스의 것과 같지만, 마셜이 내놓는 결론은 디킨스와 마르크스 의 것과 다르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저도 이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더불어 공장에 한번도 안가봤다는 마르크스...뭥미...싶었고요.
1장 새로운 기적 : 엥겔스와 마르크스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에게 불을 훔쳤다면, 산업혁명은 인간이 환경을 통제하도록 부추겼다. (51p)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영국의 생산력이 계속해서 여러 배씩 증가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분배 메커니즘의 치명적 결함이 체제 전체를 붕괴시키리라고 확신했다. "(52p) "칼라일은 "영국에서 산업이 성공하고 부가 넘치는데, 국부 덕에 돈을 번 사람은 아직 없다. 국부는 마법에 걸린 부다."라고 호통쳤다."(54p) "그가 쓸 걸작의 주안점은 사유재산 및 자유경쟁 체제는 작동될 수 없으며, 따라서 "혁명은 불가피하다."라는 것을 "수학적으로"증명하는 것이었다. 그가 원한 일은 "현대사회의 작동법칙을 폭로"하는 것이었다."(70p)
1장을 읽으면서 맬서스의 인구론에 대해 당대 지식인들이 품었을 생각이나 감상을 한참 상상해봤어요. 경구피임약이나 질소비료가 발명되기 전이었고,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이잖아요. 반박은 해야겠는데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분이었을까요? 저는 대체로 인간의 도덕적 직관은 수렵채집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 믿을만 하지 못하고 그보다는 이성을 따라야 한다는 주의인데, 그런 저에게 맬서스는 강한 반례가 됩니다. 지금 인간 본성이나 윤리 규범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과학적'인 이론 중에는 나중에 인구론 취급을 받을 얘기는 없을까도 생각해보고요. 진화심리학이든 사회과학 이론이든.
맬서스의 이론은 최근에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성장의 한계를 최초로(!) 진지하게 성찰하고 경고했던 경제학자로요. (아마, 경제학자 중에는 맬서스가 과학자 가운데는 소련의 레센코가 21세기에 애초 그들이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재조명되는 이들이 아닌가 싶어요.) 당대 사람들이 느끼는 당혹감에 대한 코멘트,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사실, 질소 비료 나오기 전까지는 맬서스가 옳았죠! :)
아, 맬서스를 그런 각도로 볼 수도 있군요! 한때는 정말 동네북마냥 틀린 이론가로 언급되었는데... 인류가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면, 지구 자원의 한계를 걱정하지 않게 되면 또 맬서스는 어리석었다 운운하게 될까요.
마르크스가 헨리 메이휴처럼 책상을 박차고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았거나 자기와 똑같은 문제와 씨름하고 있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명석한 동시대인들과 교류했더라면, 세계가 자기와 엥겔스와 예견했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p. 73 ch. 1장 새로운 기적 : 엥겔스와 마르크스,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제가 있는 곳은 금요일 오전인데, 어젯밤에야 책이 도착해서 이제 막 프롤로그를 읽었어요.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나는 그냥 동화처럼 읽었구나, 책의 배경에 이런게 있었구나 싶어서 아침부터 무가 머리 한 대를 친것 같아요. 올해가 가기 전에 크리스마스 캐롤부터 제대로 읽어야지라는 다짐을 했어요.
Dickens’s depiction of the poor earned him satirical labels such as “Mr. Sentiment,” but the novelist never wavered in his conviction that there was a way to improve the lot of the poor without overturning existing society.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p. 9,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He wanted them to stop treating poverty as a natural phenomenon, assuming that ideas and intentions were diametrically opposed. Dickens was especially eager for political economists to practice “mutual explanation, forbearance and consideration; something… not exactly stateable in figures.”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p. 10,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와, 존스의 평전까지 벌써 살펴보셨군요. 언급하셔서 저도 오랜만에 책을 펼쳐서 옮긴이 서문을 다시 읽어봤어요. 이 책이나 서문을 안 읽으실 분들도 계실 테니 덧붙이면, 존스의 평전은 기존 마르크스주의자(예를 들어, 알렉스 캘리니코스 같은)의 아주 강한 비판을 받았죠. 특히, 마르크스가 말년에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점점 멀어졌고, 급기야 그의 말년의 선호는 (그가 그토록 경멸하고 거부했던) 러시아의 촌락 공동체주의와 흡사했다는 주장은 충격적이기도 하고요. 옮긴이와 존스의 평전이 강조하는 것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 마르크스의 사상이 19세기 사회, 경제, 정치, 문화의 맥락에서 좌충우돌 형성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2. 그렇기에 마르크스의 사상은 체계적이고 일관성이 있기보다는 스스로도 계속해서 "틀어버리고 바꾸면서" 끊임없이 다시 쓰는 그런 것이었고, 그래서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실패와 실패로 누덕누덕해진"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 3. 특히, 그 "틀어버리면서 바꾸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산한 여러 결과물은 그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걸작이라는 것. 그것은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준 19세기를 여러 측면에서 증언하고 분석하고 성찰할 뿐더러, 우리에게 끊임없이 현실의 모순에 주목하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준다는 것. 다음의 인용문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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