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1. <사람을 위한 경제학>

D-29
네~ 이 책 읽고 도전해 봐야겠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섬세한 이목구비, 비단결 같은 금발머리, 반짝이는 푸른 눈의 한 청년이 런던의 유스턴 역에서 글래스고행 기차에 올랐다. 1867년 6월 초순이었다. 짐은 지팡이 하나와 책으로 가득 찬 배낭 하나였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2. 앨프리드 마셜,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2장에서 나오는 앨프레드 마셜은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려진 것 같아요. (작가 사심일까요? 외모묘사도 소설 주인공급?!) 뛰어난 두뇌에 빈자에 대한 연민과 여성권리에 대한 자각을 탑재하고, 증거에 기반한 과학적 접근과 관찰(공장 견학했다는 부분에서 굳이 또 마르크스랑 비교ㅋㅋ)으로 현대경제학을 열어젖히고, 당대의 염세적인 임금-노동이론에 굴하지 않고 교육으로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과 임금 상승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한.... 뭐 그런 존경할만한 위인으로 나오네요. 잘 몰랐던 내용이라 흥미로웠습니다. 괜히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군요. 여튼 신고전학파의 시조새로 추앙받고있는 줄 알았는데 실상 경제학에 인간성을 덧씌운 휴머니스트였다는... 아담 스미스 만큼이나 오해를 받고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디킨스 <위대한 유산>의 핍과 마셜을 병치시키는 부분도 그렇고, 조지 엘리엇의 <미들 마치> 인용 등등 작가의 빅토리아 소설 사랑도 이어져서 저도 덩달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장은 더 재밌다니 얼마나 더 재밌을라구... 허허
사실, 마르크스와 비교하면 마셜이 외모는 낫긴 했죠. :) 마셜의 인간됨은 다른 책에서도 대체로 호평 일색이니, 작가의 사심이 들어갔더라도 존경할 만한 지식인이었음은 틀림 없을 것 같아요. 1장과 2장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와 마셜의 대의와 개인의 삶 사이의 대비를 보면 여러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세요?
마셜이 너무 완벽한 인간으로 그려지는 데다가 외모 묘사가 자꾸 나오니 '이 양반 덕질하나'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라고요. ^^
사실, 1장의 마르크스의 지질한 모습은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에서 가져온 게 많아요. 하지만, 윈이 『마르크스 평전』에서 의도했던 것은 우상화되거나 악마화된 마르크스가 아닌 '인간' 마르크스의 복원이었답니다. 그래서, 이 평전을 읽다 보면, 지질하지만 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르크스의 모습도 많아요.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딸바보였는데요. 딸들과 빅토리아 시대 응접실에서 많이 했었던 '고백' 게임을 즐겼었답니다. 윈이 인용한 1860년대 중반에 했던 게임에서 마르크스가 했던 고백은 이랬답니다. 마르크스의 고백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미덕은 : 단순함. 당신이 남자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미덕은 : 강함. 당신이 여자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미덕은 : 약함. 당신의 중요한 특징은 : 목적의 단일함.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 싸우는 것. 당신이 생각하는 불행이란 : 굴복하는 것. 당신이 가장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악덕은 : 속기 쉬움. 당신이 가장 혐오하는 악덕은 : 노예 근성.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 마틴 터퍼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중 작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 책에 파묻히기.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 셰익스피어, 아이스킬로스, 괴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산문 작가는 : 디드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은 : 스파르타쿠스, 케플러.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주인공은 : 그레트헨(괴테의 『파우스트』 1부의 주인공)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 월계수.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 빨강.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름은 : 라우라, 예니(와이프와 딸의 이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 생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경구는 : Nihil humanitarian's a me alien puto(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은 : De omnibus dubitandum(모든 것은 의심해보아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 싸우는 것." 아이고.
아마, 당대의 지식인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도 맨날 싸움만 하다가 사이 틀어졌을 것 같아요. :)
슬프네요 ㅠ 작년에 아마르티아 센의 책을 그믐에서 함께 잘 읽었던 기억이 나서 참여하고픈데 읽을 책이 많아 아직 눈팅 중이지만 재밌네요 ㅎㅎ
그믐 책 모임, 특히 이 '벽돌 책' 모임은 그냥 눈팅만 해도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책은 나중에 읽으시더라도 함께 하시죠! :)
엥겔스는 호구인가? 마르크스는 교묘한 사기꾼인가? 했거든요. 요런거 좋아요~ 책 읽지 않아도 책에 언급되지 않은 것까지 알려주시네요. 주말에 2,3장 따라갈께요 기대되네요
83~84쪽에서 원고를 독촉하며 잔소리를 하는 엥겔스와 류머티즘, 간질환, 독감, 치통, 채권자들에 종기까지 언급하며 대답을 피하는 마르크스의 찌질한 모습에 엄청 웃었습니다. 아, 남 얘기가 아닌가... ^^;;;
그런데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의 평전의 역자는 서문에서(오늘 읽었어요, 참고서적이 배보다 배꼽), 오히려 그런 지질함에서 마르크스가 대단한 인물임을 찾아내더군요. 관점에 따라 이렇게도 볼수 있구나 하는걸 느꼈습니다.
이 책이 이룬 정말로 소중한 업적이 있다면, 마르크스가 그렇게 프로메테우스가 되어 사당에 들어앉아 모든 '쿨판' 진보파들의 수호신으로 영원히 향 냄새를 맡게 되는 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실패와 실패로 누덕누덕해진 시시포스이며, 그런 구린 땀내를 피우는 '찌질한' 존재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로 여기에서 19세기 최고의, 아니 전 인류의 모든 지성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의 모습을 본다.
카를 마르크스 - 위대함과 환상 사이 39쪽,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지음, 홍기빈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주말 동안 뒤늦게 시작한 분들은 2장까지 따라오시고요. 다음 주 월요일(1월 8일)에는 3장 '포터 양의 일과 사랑'을 읽습니다. 3장의 주인공은 비어트리스-시드니 웨브 부부입니다. 아마, 이 책에 실린 수많은 경제학자 가운데 (조앤 로빈슨과 함께) 한국의 독자에게는 제일 생소한 등장인물일 겁니다. 하지만! 1. 비어트리스-시드니 웨브 부부는 흔히 독일 비스마르크가 시작했고 영국의 윌리엄 베버리지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현대 복지 국가 아이디어를 내놓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했던 이들입니다. (복지 국가의 할머니-할아버지?) 2. 저자도 강조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싱크 탱크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제로 그것이 가능함을 보였던 이들이고요. (이때 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받았던 정치인이 보수당의 제2차 세계 대전 영웅이었던 '올드 처칠'이 아니라 자유당의 개혁 정치인이었던 '영 처칠'입니다.) 3. 상당한 부와 정치적 영향력으로 오늘날도 명문 대학으로 꼽히는 영국 런던의 런던정경대학(LSE)의 창립자도 이들 부부랍니다. 3장은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남편 시드니 웨브가 아니라 그를 사실상 조종했던(?) 비어트리스 웨브의 시선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정말, 저는 너무 웃겨서 이 장을 읽으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여러분도 즐겁게 읽으세요.
백년 전에 ㅋ 사회정책을 공부한 일이 있는데요~ 그때 복지국가 welfare state의 기틀을 영국은 무려 전쟁 중에 만들었네! 싶었는데, 계속 인용되는 베버리지 보고서는 마치 헌법의 기초와도 같은 세계인권선언 UDHR처럼 후대가 계속 이정표처럼 각국의 상황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형하되 어떤 원형처럼 작용할 수도 있는 그런 보고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했었는데 한 부부였군요^^ 엄청난 커플이네요! 모두가 폐허 속에 잠긴 전쟁의 한 복판에서 국가를 재건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한 표현이될까요~
@모시모시 님처럼 저도 2장 앨프레드 마셜 인물 묘사에서 막 웃어었요. "섬세한 이목구비, 비단결 금발머리, 반짝이는 푸른 눈의 한 청년" —> 독자들이 검색할 수 있는 알프레드 마셜의 사진들이 흑백이거나 노년의 모습이라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나사르 씨!   "~ 글래스고 행 기차에 올랐다. 1967년 6월 초순이었다." --> "여름이었다"의 19세기 버전입니까?   직접 공장지대와 슬럼 지역을 둘러보는 마셜의 행보는 1장에 나온 헨리 메이휴와 함께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일에서 이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어느 정도 트레이닝이 된 사람들이 이론에만 목매달지 않고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실제 상황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혹은 실제 상황을 이론과 결합해주는 일 또한 정말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훌륭한 저작물에 깊은 감동을 받는 편이라, 헨리 메이휴와 앨프레드 마셜의 글과 주장들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축구 중계를 보면 뛰어난 선수는 "많이 움직이면서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 가는 플레이를 한다"는 멘트가 자주 나오는데, 마셜 이야기를 읽으면서 딱 그 멘트가 생각났습니다. 이전 학자들이 당면한 문제점을 변화하지 않는 상수로 두고 한계나 필연으로 생각했던 데 반해, 마셜은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내며 돌파구를 만들어 가는 듯한 면모를 보이더군요.  세상의 모든 이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거나, 덧붙여지거나, 반박되거나 심지어 잊히기까지 하니, 이론에 앞서 배워야 할 것은 앨프레드 마셜와 같은 관점과 태도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이쯤에서 경제학분야에서의 마셜에 대한 평가가 궁금합니다) 19세기 런던의 최대 뇌관이 '빈곤, 굶주림, 질병'이었다는 부분에서는 11월달 벽돌책 <변화의 세기>의 저자 이언 모티머 씨께서 남기신 진지한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 악취, 인구과밀, 거지가 바로 그것이다" 제가 새해 첫 책으로 읽고 있는 책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관찰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사회학자 매슈 데즈먼드의 <미국이 만든 가난>인데요, 그 책에서도 저자가 "세계 제일의 부자나라 미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최악의 빈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장탄식 하고 있습니다. 이 책 1, 2장에 나오는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상황이 오버랩되더라구요. “최대의 부에 최악의 가난이 따라오는 것은“ 진화하면서도 반복되는 현상인가 봅니다. (힘을 내줘요, 경제학자 분들!!)
마셜에 대한 평가는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입니다. :)
마셜이 묘사하는 공장 장면과 공장생활은 더 구체적이고 더 섬세하고 더 다양하다. 마셜은 오랜 시간 관찰하고, 제조기법과 급여수준과 레이아웃을 기록하며, 사주에서부터 관리자와 현장인력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질문한다. 마셜이 마주친 문제적 현상(조립라인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효과)은 디킨스와 마르크스의 것과 같지만, 마셜이 내놓는 결론은 디킨스와 마르크스 의 것과 다르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 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저도 이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더불어 공장에 한번도 안가봤다는 마르크스...뭥미...싶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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