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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혼자 읽기
D-29
수우모임지기의 말
수우
“ 최근 수십 년간, 페미니즘 사상 중 어떤 흐름은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을 '생존자'라 부르는 쪽을 선호한다. 나는 이 어휘를 쓰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생존자'같은 꼬리표는 정체성을 공격 '이전'과 '이후'에 기반한 것으로 구성하여, 성폭력 희생자가 가해자의 행동에서 (다시 한번) 스스로를 규정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이는 자율성, 개인의 자유, 자기 결정권에 대한 미국적 이데올로기에 젖은 개념이다. (선한) '생존자'와 (나쁜) '가해자'간의 엄격한 이분법 때문에 많은 '가해자'들이 성 학대의 '생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희생자'꼬리표 또한 나름대로 위험할 수 있다. 동정심을이끌어내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희생자'는 여성화되며, 도덕적으로 나약하고 (미국의 신자유주의 담론에 따르면) '잘못된 선택'이나 '생활방식의 실수'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는다.
...
성폭력에 관해 생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차성이다. 교차성 없이는 억압을 이해할 수 없다. 교차적 접근을 통해서 보면, 젠더 폭력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중에서 가장 끔찍한 피해는 아닐 수도 있다. 교차적 접근은 여성들이 특정한 '서구의' 패러다임과 다양성을 맞바꿀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헤게모니적 이론들을 경계하도록 촉구한다. 또한 이 책은 공유하는 취약성,교차성,관계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에게 자율성이 있다고 믿기보다는, 이 책은 삶에서 우리 모두가 타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 장소, 물건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된다. 초국가적, 교차적 접근을 포용함으로써 이 책은 지식을 탈식민화하는 정치적 과업에 기여하고자 한다. ”
『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47-49,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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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 차이의 벡터들 중 어떤 것이 본질적으로 부수적이어서가 아니라, 특권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차이를 열등한 것으로 만든다. 다시 말해서, 성 학대 희생자들이 겪은 유린은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치와 굴욕이 된다. '인식의 정치학'에서 핵심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제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으로, 행위자로 구성된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상호 작용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세계와 판단이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가를 포함하여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한다. 또한 그것들은 인식의 결핍이나 오인으로 이끌 수도 있다. 이것은 평등한 과정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식하게 만들거나 혹은 인식하지 못하게 할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폭력 생존자임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는데 주된 장애 중 하나가 수치다. 그러므로 잠시 멈추고 이 대목에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수치란 무엇인가? ..수치는 사회의 가치와 실천에 대한 상호 관계적 반응으로 이해된다. 누가 어떤 짓을 했는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희생자-생존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는가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수치는 개인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시기, 지리적 장소, 무수히 많은 권력의 제도적 체제에 깊이 뿌리박힌 사회적 감정이다. 그것은 광범위한 젠더와 인종, 민족성, 종교, 성적 지향, 연령, 세대를 포함하여 다양한 교차적 자아들을 통해 굴절된다. 수치는 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 식민주의,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하여 지배의 관계들을 통해 심어지기 때문에 불균등하게 분배된다...수치는 여성을 포함하여, 다른 종속적이고 존중받지 못하는 자로 폄하당하는 사람들을 구성하는 과정의 일부다. 그래서 인식의 페미니즘 정치학은 경험과 유대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강조해야 한다. ”
『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64-65,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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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 *해시태그 페미니즘의 한계
첫 번째로, 온라인 페미니즘은 조직적으로 학대당한 공동체보다 개인에게 특권을 부여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젊은 고소득 페미니스트 '인플루언서'들이 부상하면서, 동정보다는 경쟁이 규범이 되었다. 고통의 이야기들은 '브랜드화된' 상품이 되어 '생존자'들이 '좋아요'를 더 많이 받으려고 닫툰다. 성 학대 이야기를 폭로하는 것ㅇ느 사회 변혁을 위한 페미니즘 전략이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인 자기 과시일 수 있다. 정치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이다.
두 번째로, 온라인 페미니즘은 공감은 예측 불가능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목격한다고 해서 모두가 공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성 학대에 대한 경험을 '#결코알린적이없다'로 공유한 여성 여든두 명을 연구했더니, 거의 4의 3이 나중에 포스팅에 악플을 받았다. 또 다른 연구는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자기 잘못으로 당한 일이라고 비난한 트위터 사용자들은 희생자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트윗한 사람들보다 리트윗하는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로, 소셜미디어 활동의 잠재적 고립에 대해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키투 운동은 '개인주의적 전환'이라는 큰 물결에 휩쓸렸다. '소리내어 말하기'는 그 자체로 원래 좋은 것'이 되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치유를 희생자들의 책임으로 돌릴 위험이 있다.
사회학자 앨리슨 핍스는 특히 '경험'의 상품화를 비판한다. 그는 개인의 경험을 '자본'의 형식으로 전환하면, 결국 "구조적 역학의 신자유주의적 비가시성을 반영하고 영속화하는" 결과로 끝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모든 경험을 동등하게 놓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불평등을 고고화한다. 그는 경험에 의지하면 "개인적 내러티브를 통해 설명하려 해서", 결국 경험을 "탈역사화하고 정체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기 쉽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경험을 출발점으로 받아들인다면 경험을 형성하고 생산하는 역사적 조건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데올로기적 시스템과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강화시킬 위험이 있다."
”
『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81-82,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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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 아이러니하게도,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이 죽음보다 나쁘다는 관점을 강조함으로써 수치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핍스가 지적하듯이, "우리가 없애려고 하는 성적 차리르 생산할 위험"은 없을까? 다시 말해서, 성 학대가 희생자-생존자에게 수치를 안기는 방식에 관심을 쏟음으로써, 여성의 굴욕과 취약성에 대한 생각을 재각인할 위험이 있다. 여성과 다른 소수 집단에 대한 남성의 권력 개념을 가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희생자-생존자의 수치를 당한 몸과 마음은 의존성과 행위성 부족의 관점에서만 흔히 생각된다. 그들은 온정주의적 반응을 끌어낼 수도 있다. '희생자'는 남성이나 특권을 가지느 여성들의 '보호'를 필요로 하느 ㄴ약한 존재다.
그러므로 희생자-생존자와 가족들이 수치와 수치를 주는 관행에 적극적으로 맞서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85,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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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 말은 상처를 입힌다. 조지 오웰의 말처럼,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말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세계를 어떻게 경험할지를 결정한다.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ㅏㅇㄹ려준다. 말은 그 밑에 깔린 가정을 드러낸다. ”
『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135,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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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 이 장은 언어가 "사고를 오염시킬"수 있다는 오웰의 주장으로 시작했다. 이 경군는 성폭력에 대한 모든 말과 생각과도 관련이 있다. 그것은 퀴어 신체의 삶을 지우는 젠더 이분법의 맥락에서 특히 새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권력, 식민 지배, 무장 분쟁으로 인해 누구나 취약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취약성을 특정한 유형의 사람들에게 고유한 불변의 특징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취약한 주체성'이 따로 있다는 식의 접근은 소수 집단 사람들이 학대를 당연히 두려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접근은 공포와 불안을 자극한다. LGBTQ 사람들이 벽장 속에 머무르도록(혹은 벽장 속으로 돌아가도록) 부추기고, 시스젠더 남성 희생자들의 눈물과 공포를 차단한다. 침묵시키는 관행에 동조하고, 안전을 '위험에 처한'사람들의 책임으로 돌린다. 사람들에게 깊은 무력감을 심어준다.
하지만 가이카와 같은 레즈비언들의 '젠더 트러블'이 그들의 성적 혹은 젠더 정체성의 결과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런 정체성을 수용한 데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다 시 말해서, 성폭력은 취약성에 반응할 뿐 아니라, 취약성을 만들어낸다. ”
『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175-176,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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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 여성을 영원한 희생자 위치에 두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미 언제나 상처받고 지배당하는 젠더로 보는 것은 문제다. 사회평론가 새런 마커스는 "여성의 취약성이나 남성의 폭력만으로 강간을 설명하려 하면, 강간범이나 피해자의 정체성을 강간 자체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게 된다"고 통찰력 있게 지적했다. 젠더와 행위성, 종속에 대하여 더 섬세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이 장에서는 남성성이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거나, 여성성은 수동적이라는 근본적인 가정을 다룬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생리학적으로 남성과 여성 신체에 연결짓는 것 또한 젠더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를 드러낸다...앞으로 보겠지만, 성 학대 행위는 젠더화된 노동의 산물이며 그 노동은 정치적이다. ”
『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224-225,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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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
“ 여성 가해자들에 대한 내러티브에서 이런 차이는 성폭력 에 대한 젠더화된 이해에 기인한다. 언론과 법, 정치 해설자들은 단 하나의 질문 주위를 맴돌았다. 어떻게 여자가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 장 말미에서 나는 이것이 젠더의 의미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할 뿐 아니라 여성성과 남성성을 둘 다 본질화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질문임을 밝힐 것이다. 그러나 젠더가 이분법적으로 개념화되는 경향 때문에, 성적으로 공격적인 여서으이 여성적 정체성에 불가피하게 집착하게 된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여성성은 수동적이다.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여성들은 정상을 벗어난 것이며, 그들은 '남자 같다'.
이는 어째서 많은 해설자들이 군사 제도의 역학에 주목하는지 설명해준다. 군사 제도는 강력하게 남성저긍로 젠더화된다. 결과적으로, 여성 구성원들은 적극적인 군인이 될 권리를 내세우려면 남성 상대들보다 더 공격적으로 행동하거나 그런 척해야 한다. ”
『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253,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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